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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울주검단리유적(蔚州檢丹里遺蹟)은 울산 울주군 웅촌면 검단리 산62외에 있는 청동기 시대 집단 마을터 유적으로 낮은 구릉의 비탈면에 위치한다. 1990년 8월에 사적 제332호로 지정됐다. 
 1989년 5월 지표 조사를 통해 발견된 민무늬 질그릇을 통해 청동기 시대 유적임을 알았고 1990년 2월 부산대학교 박물관 조사단이 발굴했다.
 특히 산마루를 둘러 판 환호는 고지성 집락의 문제 해결에 중요한 실마리가 된다.
 환호란 주위에 호(濠)를 두른 취락으로, 외침(外侵)에서 집단주거지역을 보호하기 위해 시설하였다.
 마을 둘레에 파놓은 이 환호는 당시 마을의 방위개념을 보여주는 자료로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확인된 것이다.
 'V'형태로 판 이 환호는 현재 길이가 약 300m, 너비 50∼200㎝, 깊이 20∼150㎝ 정도이며, 이전에는 더 깊고 넓었을 것으로 보인다.
 집자리와 움집터가 확인되었고 다양한 토기류와 석기류, 가락바퀴(방추차), 그물추 등 약 400여 점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마을의 개념을 나타내는 환호의 발견, 각종 유물들로 인해 당시의 생활상을 살필 수 있어 중요하며 청동기시대 연구에도 큰 역할을 하는 가치있는 곳이다.
 이는 이 마을 사람들이 물고기를 잡고, 농사를 지으며, 베도 짰음을 알수 있으므로 청동기시대의 촌락과 취락형태, 집단 구성들을 알려 주는 귀중한 자료로 그 시대의 정치, 경제, 사회상까지도 짐작하게 해 줄 뿐만 아니라, 환호의 경우 일본의 야요이문화보다 300여년이 앞선다는 점은 과거 일본의 야요이 문화 한반도 유입설을 일축한 중요한 단서가 되고 있다.
 국립김해박물관에 가면 발굴 당시의 형태를 그대로 본 떤 집단 거주지와 환호 등 모형을 확인할 수 있으며 토기와 돌칼 등 출토 유물은 부산대박물관에 소장돼 있다.   (자료제공 울주문화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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