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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5월 지표 조사를 통해 발견된 민무늬 질그릇을 통해 청동기 시대 유적임을 알았고 1990년 2월 부산대학교 박물관 조사단이 발굴했다.
특히 산마루를 둘러 판 환호는 고지성 집락의 문제 해결에 중요한 실마리가 된다.
환호란 주위에 호(濠)를 두른 취락으로, 외침(外侵)에서 집단주거지역을 보호하기 위해 시설하였다.
마을 둘레에 파놓은 이 환호는 당시 마을의 방위개념을 보여주는 자료로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확인된 것이다.
'V'형태로 판 이 환호는 현재 길이가 약 300m, 너비 50∼200㎝, 깊이 20∼150㎝ 정도이며, 이전에는 더 깊고 넓었을 것으로 보인다.
집자리와 움집터가 확인되었고 다양한 토기류와 석기류, 가락바퀴(방추차), 그물추 등 약 400여 점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마을의 개념을 나타내는 환호의 발견, 각종 유물들로 인해 당시의 생활상을 살필 수 있어 중요하며 청동기시대 연구에도 큰 역할을 하는 가치있는 곳이다.
이는 이 마을 사람들이 물고기를 잡고, 농사를 지으며, 베도 짰음을 알수 있으므로 청동기시대의 촌락과 취락형태, 집단 구성들을 알려 주는 귀중한 자료로 그 시대의 정치, 경제, 사회상까지도 짐작하게 해 줄 뿐만 아니라, 환호의 경우 일본의 야요이문화보다 300여년이 앞선다는 점은 과거 일본의 야요이 문화 한반도 유입설을 일축한 중요한 단서가 되고 있다.
국립김해박물관에 가면 발굴 당시의 형태를 그대로 본 떤 집단 거주지와 환호 등 모형을 확인할 수 있으며 토기와 돌칼 등 출토 유물은 부산대박물관에 소장돼 있다. (자료제공 울주문화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