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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세상을 살면서 높은 것과 낮은 것, 큰 것과 작은 것, 강한 것과 약한 것, 더러운 것과 깨끗한 것 등으로 구분하여 차별을 둡니다.
 따지고 보면 높은 것 위에 또 높은 것이 있고 낮은 것 밑에 낮은 것이 또 있어 구분하고 차별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한데도 말입니다. 무의미한 생각은 번뇌하는 것입니다.
 필자가 출가하기 전 군수사령부 제1정비창에서 근무했을 적 일입니다.
 그때 공직 생활을 하면서 매주 토요일 제1정비창 사병법회를 주관하는 군지도법사 생활을 겸직하고 있었습니다. 하루는 동료 직원 한사람이 나에게 다가와서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계장님, 창밖에 파랑새 한마리가 죽어있어요. 계장님이 묻어주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나는 당연히 그러겠다고 하고 밖에 나갔지요. 파랑새가 눈을 뜬 채 죽어 있었습니다. 파랑새를 손바닥에 올려 눈을 감겨 주고는 다음 생에는 축생 몸을 받지 말고 극락왕생하길 빌고 빌었습니다.
 그런 후 측백 나무 밑을 파고 은행잎을 깔고 그 위에 파랑새를 묻고 또 그위에 은행잎을 소복이 덮고 흙을 채워 묻어주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빌었지요.
 "파랑새야, 꼭 극락왕생하여라"
 이 광경을 본 그 직원이 물었습니다.
 "왜 사람들은 쥐가 죽으면 묻어 주지 않고 쓰레기통에 버릴까요?"
 나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쥐도 묘를 만들어 묻어 주어야하는 것인데 사람들이 쥐는 생긴 것이 흉하고 우리 사람들한테는 해를 끼치니 보이면 잡아 죽이려 하고 더럽다고 쓰레기 통에 버리는 겁니다. 쥐도 파랑새처럼 묻어 주는게 도리입니다"
 파랑새나 쥐나 다 같은 축생인데도 사람들이 보는 편견 때문에 달리 대하는 것이지요. 모든 삼라만상을 평등하게 못 보는 것은 사람들 각자가 세상에 태어나 욕심의 마음으로 판단하기 때문입니다.
 스스로 똑똑하다고 자만하면서 얄팍한 잔머리를 굴리며 나한테 이익되는 것은 어떤 것이며, 어찌하면 손해를 보게 되는지 계산하기 때문이지요.
 세상에는 알고 보면 차별할 것이 아무것도 없는데 말입니다.
 더럽고 깨끗하다는 것은 어리석은 사람들이 차별하는 마음에서 나온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더럽다고 생각하는 똥 오줌으로 복숭아나 사과열매는 탐스럽고 먹음직스럽게 여뭅니다.사람들은 참으로 어리석습니다. 이 이치를 까맣게 잊고 지내니 말이지요.
 사람들은 이미 사회적 편견 속에 갇혀 살고 있습니다. 부모는 자식이 꼭 대학을 나와서 큰 회사에 취직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기주의적인 자기 발상이지요. 요즘처럼 바쁘게 움직이는 세상에서 자식들이 다른 사람들보다 더 높아지고 더 부유해지고 더 명성을 얻기를 부모님들은 바랍니다.
 그렇지만 제가 강조하고자 하는 것은 좀 더 마음을 비우고 깊고 넓게 세상을 보면 그 어디에도 나쁜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자녀들에게 일시적으로 잘 나가도록 교육시키기보다는 오히려 인성교육을 시켜 어느 곳, 어떤 위치에 있더라도 만족하는 사람이 되어 장기적으로 사회에서도 대접받고 즐겁게 인생을 살아갈 수 있도록 인도해주는 것이 어떨까요.
 인생은 바닷물을 보듯 잔잔할 때도 파도칠 때도 있는 법입니다.
 세상살이는 모두가 일장춘몽인데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들어서야 이치를 어렴풋이 깨달으니 그것이 문제입니다.
 지족제일부 현위치에 만족하는 사람이 마음의 부자이며 제일 즐겁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커지려고 많아지려고 욕심내다 보면 어느덧 남의 것도 빼앗으려는 이기적인 동물이 되는 것입니다. 높은 때가 있으면 낮은 때가 있고 많은 때가 있으면 적은 때가 있고 강한 때가 있으면 약한 때도 있게 마련입니다.
 제 욕심만 차리거나 편견에 휩싸여서 참된 인생을 살기를 포기해서는 안됩니다. 높거나, 낮거나 강하거나 약하거나 크거나 작거나 깨끗하거나 더럽거나 다 만물 안에 속해 있으며 각자 주어진 인생대로 만족하게 살면 극락에서 행복하게 살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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