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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절름발이 준이  "야 저기 절름발이 준이가 간다." 아이들이 두 세 명이 우르르 몰려가며 준이를 놀려댑니다.  "준이는 쩔뚝발이래요. 쩔뚝쩔뚝 쩔쩔뚝" 노래하듯 박자를 맞추며 소리칩니다. 그리고는 준이 뒤에 줄을 서서 걷는 모습을 흉내 내며 따라합니다. "쩔뚝쩔뚝 쩔쩔뚝" "쩔뚝쩔뚝 차차차" 아이들의 놀림에 준이는 속도를 내어 걷기 시작합니다.  그 순간을 빨리 벗어나려는 듯이. 그 모습을 멀리서 지켜보던 나는 화가 나서 달려갑니다. "그만두지 못해, 그만 두란 말이야."  줄을 선 아이들에게 주먹을 날립니다. 그 순간 아이들이 우르르 흩어지며 "한이는 저기저기 쩔뚝발이 동무래요."  "너 거기 서, 잡히면 알지?"  나는 놀린 아이들을 뒤따라가려 합니다.  "그만둬."  준이가 내 옷을 잡고 말립니다. 준이의 눈에는 어느 새 눈물이 고여 있습니다.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준이는 놀림을 받는 것에 익숙해질 만도 하지만 놀림을 당할 때마다 항상 눈물을 보입니다. 그만큼 준이는 몸도 마음도 약한 아이입니다. 아니 너무나 착해 천사 같은 아이입니다.  내가 준이를 대신해 친구를 때려준 것도 여러 번입니다. 그때마다 나는 선생님에게 호되게 야단을 맞았습니다. 자기 때문에 내가 혼이 나는 것이 안 되었던지, 준이는 언제부턴가 나를 말리기 시작했습니다.   2.짝지가 된 절름발이  나에겐 준이란 친구가 있습니다.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지금껏 둘도 없는 친구로 지냅니다.  하지만 처음부터 준이와 친했던 것은 아닙니다.  초등학교 3학년 올라가서 맨 처음 준이는 내 짝지가 되었습니다. 3학년 등교 첫 날, 준이는 한 눈에 띄었습니다.  절뚝절뚝거리며 교실로 들어섰으니까요. 하지만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준이가 내 짝지가 될 거라고는 조금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어떤 친구가 내 짝지가 될까? 예쁜 여학생이 짝지가 되었으면.' 하고 잔뜩 기대를 하였고 '2학년 때 같은 반했던 친구들 중 누가 같은 반이 되었을까?' 를 생각하며 주위를 둘러보았습니다. 그러던 중 또 한 번 준이에게 눈이 가게 되었습니다.  '저 아이만은 내 짝지가 안 되었으면' 드디어 짝지를 정하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선생님은 교실 앞에서 뒤 쪽으로 키대로 줄을 세웠습니다. 그런데 내 바로 앞에 선 사람이 준이었습니다.  혹시나 나하고 짝지가 되면 어쩌나 생각하며 두 사람씩 계산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바로 나와 짝지가 되게 된 것입니다. '하늘도 무심하시지, 하필이면 절름발이와 짝지가 될게 뭐람.'  3.절름발이 짝지는 싫어  난 괜히 준이가 싫었습니다. 절뚝대는 꼴이 너무 보기 흉했기 때문이고 다른 아이의놀림감이 되는 아이와 짝지를 한다는 것이 자존심이 상했으며, 무엇보다 여학생이 아닌 준이와 짝지가 된 데 대한 불만이 가득했습니다. 그런데 준이는 나와 친하게 지내고 싶었던 지 말을 많이 걸어왔습니다.  "한이야 우리 집에 키트란 강아지가 있는데 아주 귀여워, 보러가지 않을래?" "난 강아지 싫어해, 그리고 나에게 자꾸 말 걸지 마." "한이야, 이거 한번 먹어볼래?"  "누가 절름발이에게 얻어먹겠데, 관둬." 준이가 나와 친하게 지내고 싶어 말도 걸고, 맛있는 것을 주려해도 내 머리 속에는 이미 절름발이 준이와는 친구가 되기 싫다는 단단한 생각의 벽이 쳐져 있었습니다.  '절름발이 주제에' 라는. 하굣길에 준이는 친구들에게 놀림을 당하기 일쑤였습니다.  준이를 놀리는 친구들 속에는 나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준이의 걸음을 흉내 내며, 준이를 뒤따라가며 "쩔뚝쩔뚝 쩔쩔뚝" "쩔뚝쩔뚝 차차차" 그때마다 준이는 말없이 울며 걷곤 했는데, 준이가 우는 모습이 재미있어 더욱 더 준이를 놀려대곤 했습니다.   4. "쩔뚝쩔뚝 쩔쩔뚝" 절름발이 준이는 항상 혼자였습니다. 누구도 그에게 말을 거는 친구는 없었습니다. 그런 준이가 때로는 불쌍하게 보이기도 했습니다. 점심때도 혼자 밥을 먹었으며, 등하굣길에도 그는 언제나 혼자였습니다. 소풍을 갔을 때, 다른 친구들은 산으로 걸어올라 갔지만 준이는 버스 안에서 혼자 책을 볼 뿐이었습니다.  언젠가 체육시간 때의 일입니다. 평소 같으면 자리에 앉아 다른 친구들이 운동하는 것을 멀뚱하게 지켜보기만 했던 준이는 무슨 생각을 했는지 함께 하겠다고 나섰습니다. 그날은 뜀틀을 하는 시간이었는데, "준이야, 네가 뛰어넘기에는 무리가 있으니 그냥 앉아있어라."  "아닙니다. 계속 앉아만 있으니 심심하고 저도 한번 해보고 싶어요."  선생님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기어코 뒤로 물러서더니 절뚝거리며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거의 뜀틀 가까이 가서 발을 내딛는 순간 균형이 맞지 않았던지 그만 넘어지고 말았습니다. 넘어지면서 뜀틀에 머리를 부딪쳐 피가 나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을 본 반 친구들 중 누군가가 "절름발이가 무슨 뜀틀을 한다고 꼴좋다." 라고 말하자 친구들 모두 마구 웃어대었습니다.  "조용, 피 흘리는 친구를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그렇게 놀려대면 어떡해" 선생님은 버럭 화를 내며 놀린 친구들을 나무랐습니다.피와 눈물이 범벅이 된 준이는 선생님의 부축을 받으며 양호실로 갔습니다. 그래도 친구들은 여전히 수군대었습니다. "병신이 꼴값하다 잘됐네."  선생님이 보이지 않자 친구들은 "쩔뚝쩔뚝 쩔쩔뚝" "쩔뚝쩔뚝 차차차" 작게 합창을 하였습니다.   5.생각의 벽을 깬 한이  언제부턴가 하교할 때 준이는 나를 따라오기 시작했습니다.  "한아 사거리까지만 같이 가면 안 될까?"라고 조심스럽게 물으면 "누가 병신이랑 같이 간대."하며 핀잔을 주었습니다.  그러기를 몇 번 반복하고 나자 준이는 내 몇 발자국 뒤에서 약간의 거리를 두고 나를 따라왔습니다. 그러다 사거리에 다다르면 "잘 가." 하고는 자기 집 방향으로 가곤 했습니다.  학교에서 사거리까지는 길이 하나 밖에 없었고 준이의 집과 우리 집의 방향은 사거리에서 나뉘어 졌습니다.그러던 어느 날,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향하던 중 사거리 횡단보도를 건너게 되었습니다.  신호등의 파란 불이 켜지자 무심코 길을 건너려 하였습니다. 그때, 과속을 하던 승용차 한 대가 급정거를 하였습니다. 어찌할 바를 모르고 깜짝 놀란 상태에서 몸이 굳어 버렸습니다.  차가 막 나를 덮치려고 한 순간. 누군가 뒤에서 나를 강하게 잡아당기는 것이 느껴졌고 나는 차를 피해 넘어지면서 정신을 잃었습니다.  정신을 차려보니 병원이었습니다. 내 옆 침대에는 준이가 정신을 잃은 채로 누워 있었습니다.  그리고 준이의 아버지처럼 보이는 남자가 준이 침대 옆에 허리를 구부리고 앉아있었습니다. "아이고, 이제 정신이 들었네, 한이야 아프지는 않아"  언제 왔는지 어머니와 아버지가 걱정스런 표정으로 서 있었습니다. "어떻게 된 거예요" "주위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니 과속하던 차가 신호를 보지 못하고 달리다가 너를 보고 급정거를 했다는구나.  달리던 속력이 있어 멈추지 못하고 너를 치일 뻔 했다는데, 저 옆에 누워있는 아이가 너를 차에 부딪치지 않게 했다는 구나. 그리고 저 애도 넘어지면서 약간 다쳐 정신을 잃고 있구나. 둘 다 크게 다치지 않은 것이 진짜 하늘이 도운 것 같아." 안도의 숨을 몰아쉬며 어머니가 말하였습니다. 그 순간 정신이 몽롱한 가운데, 차에 받히려는 순간 누군가 나를 당기던 것이 생각났습니다. '그것이 절름발이 준이었다니.' "조금만 잘못되었으면, 준이도 생명을 잃어버릴 수도 있었다고 한단다. 자기의 목숨을 돌보지 않고 너의 목숨을 구해주었구나. 참 고마운 아이다." 어머니의 말을 들으며, 쩔뚝쩔뚝 거리며 뛰어와 나를 도와준 준이의 모습이 생각으로 그려졌습니다.'난, 이제껏 놀리기만 했는데, 준이가 내 목숨을 구해주었다니!' 그 순간, 나는 머릿속에 생각의 벽이 깨어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것은 준이와 나 사이에 놓인 보이지 않는 벽이었습니다. 그렇게 놀린 나를 위해 자신의 목숨까지도 돌보지 않은 준이가 너무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생각은 망치가 되었습니다. 준이에 대한 나쁜 생각 하나가 하나가, 하나 하나의 벽돌이 되어 쌓여진 생각의 벽을 그 망치는 깨끗하게 부숴버린 것입니다.  음, 음. 준이가 신음을 하며 깨어났습니다."준이야, 준이야, 정신이 드니, 아빠야." 준이 아버지가 준이를 잡고 작게 흔들었습니다.  "아빠, 여기가 어디야"  "응 병원이란다. 정신을 차려서 정말 다행이다. 얼마나 걱정했다고."  "아빠, 한이는 어때" "괜찮아." 정신을 차리자마자 나를 걱정해주는 준이가 너무 고마웠습니다.  "준아, 나 괜찮아, 그리고 너무 고마워" 처음으로 준이의 이름을 다정하게 불러주었습니다. 내 눈에도 준이의 눈에도 눈물이 글썽거렸습니다. 그날 이후 준이와 나는 둘도 없는 단짝 친구가 되었고, 그 우정은 지금껏 계속되고 있습니다.   6.정신적인 불구가 더 큰 불구이다 그 동안 준이를 놀린 것에 대한 미안함과 또 나를 살려준 고마움을 어떻게 갚을 수 있을까? 준이를 만나면 항상 그 생각이 먼저 떠올랐습니다. 또한, 어떻게 하면 친구들이 준이를 놀리지 않을까를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던 중 교내 백일장이 열렸습니다. 백일장 시제는 친구였습니다. '그래, 이거다. 다른 친구들에게 준이를 놀리지 말기를 부탁하는 편지를 한번 써보자' 친구들에게나는 4학년 5반에 다니는 한이야. 내가 너희들에게 편지를 쓰게 된 이유는 4학년에 다니는 준이에 대해 부탁을 하기 위해서란다. 준이는 마음이 천사처럼 곱고 착하단다. 어릴 때 소아마비를 앓아 지금은 다리를 절고 있단다. 아마 우리 학교에서 준이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거라 생각해. 그런데, 준이는 다리가 불편하다는 이유로 친구들에게 놀림을 받고 있어. 이 글을 쓰는 나도 예전엔 너희들과 똑같이 준이를 놀렸어.  "쩔뚝쩔뚝 쩔쩔뚝" "쩔뚝쩔뚝 차차차"하면서 말이야. 그때마다 준이는 눈물을 흘렸어. 그땐 그 눈물의 의미가 무엇인지 몰랐는데, 이제는 알 것 같아. 그것은 준이의 가슴이 흘리는 핏물이었어. 우리가 놀리는 말은 화살과 같다고 생각해. 그것은 곧바로 준이의 가슴으로 날아가 박히는 거지. 화살을 맞으면 피가 나잖아. 그것이 바로 준이의 눈물인거야. 작년에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가다가 사거리에서 횡단보도를 건너다가 과속 중이던 자동차에 치여 죽을 번한 일이 있었어. 그런데 준이는 자기의 목숨을 돌보지 않고 몸을 던져 내 목숨을 구해주었어. 그때 병원에서 나는 느꼈어. 준이가 얼마나 훌륭한 사람인지를. 그 뒤부터 난 준이를 놀리지 않게 되었으며 준이를 놀리는 친구들을 때려주곤 했지. 준이는 다리를 절뚝거리면서도 한번도 남에게 피해주는 일은 하지 않았어. 오히려 몸이 성한 우리는 그런 준이를 괴롭혔어. 그것은 옳은 일이 아니야. 준이는 자기가 되고 싶어서 불구가 된 것이 아니고, 병 때문에 그렇게 되었어. 그런데 우리가 준이를 놀리는 것은 우리 스스로 정신적인 병을 갖게 되는 거야. 그것은 우리가 원해서 얻은 정신의 불구라고 생각해. 육체적인 불구만 불구가 아니라 정신적인 불구가 더욱 심각한 불구야, 그것도 우리 스스로 만든. ?우리 모두 준이를 친구로 받아들이고 내가 그랬듯이 장애인이라는 편견을 깨어버리기를 바래. 앞으로 우리, 준이를 괴롭히지 말고 진정한 친구가 되어보자. 정말, 간절히 바란다. 열린초등학교 4학년 5반 한이 씀 글 : 윤창영 그림 : 김근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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