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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한 겨울에 여름을 체험한다는 상상조차 해본 적이 없다. 가능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나에게 상상조차 해 보지 않았던 기회가 왔다. 사이판 자전거 여행을 하기로 한 것이다. 두꺼운 옷에 목도리까지 하고 다니는 일상 속에서 언뜻 언뜻 여름을 상상해본다.  사이판 국제공항에서 나를 제일 먼저 맞이한 것은 여름이었다. 겨울에, 처음으로 만난 여름은 나에게 순식간에 다가왔다. 아직 두꺼운 겨울옷을 벗을 준비도 안 했는데. 하기야 이런 상황을 머리 속으로는 알고 있었으면서 이동하는 동안 추운 것이 싫어서 땀 흘릴 각오를 한터다. 사이판 섬은 우리나라에서 동남쪽으로 약 3,000km 떨어져 있으며 면적은 185㎢로 우리나라 거제도의 3분의 1 정도이다. 이 섬은 1521년 마젤란이 발견한 뒤 스페인이 영유하였고, 1899년부터 1914년 까지는 독일이, 1914년부터 1944년까지는 일본의 통치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 후 미국의 신탁통치를 받아오다가 1978년에 북마리아나제도연방을 결성하면서 자치정부를 갖게 되었으며 1986년에 미국연방에 편입되었다. 미크로네시아 마리아나제도의 원주민은 차모로족인데 17세기 말 괌 섬으로 강제이주를 당한 뒤에는 혼혈이 되어 순수한 차모로족은 없단다. 사이판을 다녀왔다는 몇 사람에게 들은 이야기는 편하게 쉴 수 있는 곳이라는 점 외에는 기억에 남는 것이 없다고들 한다. 하지만 '사이판 자전거 여행'은 다르다. 사이판에서는 하루에 30㎞ 정도 자전거를 탔을 뿐인데 아직도 그곳이 눈에 선하다. 사이판에서 가장 번화한 곳으로 괌에 수용되었던 차모로족이 돌아와 최초로 건설한 거리라는 가라판, 태양의 각도에 따라 변화하는 아름다운 해변을 볼 수 있는 마이크로 비치, 산호세, 비치로드, 섬 체가 한눈에 들어온다는 해발 473m의 타포우차산, 산호초 위에 솟아 있는 석회암으로 이루어진 섬인 새섬, 사이판의 정글 등. 사이판이나 티니안에서는 자전거로 여행하기는 큰 불편함이 없다. 안전과 강렬한 태양으로부터 피부를 보호하는 것 등을 신경 써야겠지만. 나는 일부러 선탠크림을 바르지 않았다. 한겨울의 검은 피부를 자랑하고 싶어서이다. 귀국하기 전날 사이판의 온도는 영상 32도였다. 서울에는 영하의 기온이라고 한다. 사이판에 좀더 머물렀으면 좋겠다. 이번 겨울에도 나는 가끔씩 사이판으로 상상속의 자전거 여행을 떠난다. 이재택 자전거 문화운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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