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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균형이 잡힌 정책을 펼쳐야 울산의 미래동력이 더욱 튼실해 지리라 확신한다"는 대원그룹 박도문회장은 자신이 펼치는 환경운동과 관련 "기업경영에서 물러나게 되더라도 환경운동은 계속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울산에는 유망 중견기업이 대기업의 그늘에 파묻혀 홀대를 받고 있다. 대기업이라야 마치 기업으로 대접하는 풍토에서는 중견기업의 발전을 기대하기는 쉽지 않다. 재벌그룹의 대기업이 많다보니 일어나는 현상이라고 가볍게 넘겨버릴 수만은 없다. 그런데도 좀처럼 편향된 인식이 바뀌지 않고 있다. 행정기관은 여전히 대기업 중심의 정책을 펴고 있다. 그러다보니 시민들도 대기업 외에는 제대로 된 기업으로 생각하지 않는 그릇된 기업관을 갖게 마련이다. 세계시장을 개척하며 연간 1조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는 대원그룹도 울산에서는 그 실상이 제대로 알려져 있지 않다. 전체 유망 중견기업의 올바른 자리매김을 위해 박도문 회장으로부터 실상을 들어본다.

 

 ▲중견기업의 중요성이 날로 높아지고 있는데도 울산에서는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 그렇습니다. 울산에는 국내 어느 곳에 내놓아도 결코 빠지지 않는 중견기업이 많습니다. 저희 경우도 충북 오창과학단지에 있는 파캔오피씨라든가, 전북 장수와 경남 진주에 있는 마이다스 같은 회사는 그곳에서는 도지사와 시장, 군수로부터 최상급의 대접을 받고 있습니다. 첨단기업인 점도 있지만, 큰 버팀목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죠. 울산도 하루빨리 대기업에 편향된 인식을 털어버려야만 합니다. 균형이 잡혀야 울산의 미래동력이 더욱 튼실해지리라 확신합니다.

 

 ▲파캔오피씨와 마이다스에 대한 말씀을 하셨는데, 중견기업의 중요성을 알기 위해서도 두 회사의 이야기부터 먼저 나눴으면 합니다.
 - 파캔오피씨는 팩시밀리와 디지털프린터기의 핵심부품인 오피씨드럼과 전자여권, 칩을 생산하는 첨단업종의 회사입니다. 70%는 수출을 하고 30%는 삼성전자에 보내고 있는데, 연간 1,000억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습니다. 물론 그 지역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남다르기 때문이겠지만, 충북도를 비롯한 해당 군청의 행정서비스가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울산에서는 감히 생각할 수 없을 정도의 편의를 받고 있습니다.

 

 ▲마이다스는 어떻습니까?
 - 98년에 창립했습니다. 국내 3군데에 공장이 있습니다. 스포츠장갑과 패션장갑, 산업용장갑을 생산합니다. 장갑하니까 별걸 아닌 업체라고 생각하시겠죠. 결코 그렇지가 않습니다. 첨단산업인 반도체생산에 필수적인 반도체용 장갑을 생산하는 업종입니다. 세계시장의 태반을 저희 제품이 차지하고 있습니다. 5% 가량만 국내 반도체업체인 삼성반도체와 하이닉스에 팔고, 나머지는 수출하고 있습니다. 수출액이 연간 1억달러를 상회하고 있는데, 앞으로 세계시장 전망은 무척 밝은 편입니다. 저희 제품의 우수성을 인정받고 있기 때문이죠.
 98년에 전북 장수군 천천면에 제1공장을 세웠습니다. 2002년에 경남 진주시 금곡면에 제2공장을 지었죠. 그러자 전북도와 장수군에서 난리가 났습니다. 자기들이 무엇을 소홀이 했기에 진주에 갔느냐는 거였습니다. 그래서 솔직히 말했죠. 장수의 1공장이 농공단지에 입지하고 있었는데, 그러니 애로가 많았다. 또 종업원을 구하기 어려웠다고 말입니다. 전북지사와 장수군수가 바로 서류로 행정지도하던 것을 지양하고 해당 공무원이 직접 현장에 나가 문제점을 청취하고 애로사항을 해결하도록 했습니다.
 농공단지 아닌 곳에 부지를 구했습니다. 조성원가는 38만원인데, 13만원에 제공받았죠. 전북도내 다른 지역에서도 필요한 종업원을 확보할 수 있게 버스까지 동원해 종업원 출퇴근용으로 제공해주었습니다. 최상의 행정서비스를 받았습니다. 2005년 10월에 장수군 장계면에 제3공장을 짓게 된 배경입니다.
 울산 같으면 도저히 생각할 수도 없습니다. 기업에 대한 예우가 이만저만이 아니죠. 물론 공장이 많지 않기 때문에 파격적인 대우를 해준다고 평가절하할 수도 있겠지만, 결코 폄하할 게 아니라고 봅니다. 잘 나갈 때 조심해야 한다는 말처럼 지금 울산이 잘 나간다고 정성을 기울이지 않는다면 어떤 기업이 울산에 공장을 지으려고 하겠습니까?

 

 ▲정말 중요한 이야기이군요. 울산이 꼭 새겨야 하리라 봅니다. 언제 사업을 처음 시작하셨습니까?
 - (박도문 회장은 빈촌이었던 경북 경주시 양남면 기구리가 고향. 식구는 조부모님과 부모님, 그리고 7남매 등 모두 11명. 식구가 11마지기에 불과한 경작지에 목을 매고 있었으니,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학교를 졸업하고 현대자동차에서 2년간 근무했습니다. 어느날 앞으로의 진로를 생각해보니까 답답하더군요. 뻔한 직장생활. 미래가 불투명한거죠. 모험을 결심했죠. 때마침 결혼을 했고, 신혼여행을 다녀온 뒤 사표를 냈습니다. 퇴직금을 갖고 대구로 갔습니다.
 친구 아버님이 모기장공장 간부로 계셨는데, 신용을 밑천으로 원단을 받기로 했습니다. 수동미싱기 5대를 갖춘 소규모 공장을 차렸습니다. 나이론 모기장이 처음 나올 때였습니다. 불티나게 팔려나갔죠. 울산의 중앙과 성남시장에도 납품을 했습니다. 타이밍이 맞았던거죠. 꽤 많은 돈을 벌었습니다.
 그 돈을 종잣돈으로 삼아 만여평의 땅과 80여마리의 젖소를 구입해서 목축업에 뛰어들었습니다. 그때가 박 정권 초기였고, 농촌살리기운동이 대대적으로 벌어질 때라 전망은 무척 밝았습니다. 호사다마였습니다. 어느날 아침 목장에 나가보니 소가 모두 죽어있었습니다. 인부가 꿩을 잡기 위해 만든 독약이 든 콩알이 잘못돼 사료에 들어갔고, 그걸 소들이 몽땅 먹었던거죠.
 눈앞이 캄캄했고, 그대로 쓰러졌습니다. 이틀만에 깨어나보니 병원에 눕혀져 있었습니다. 졸지에 알거지가 된거죠. 그때 지금 38살인 큰아들이 태어났는데, 갖난애와 아내를 처가에 맡기고 배낭을 매고 전국을 돌아다녔습니다. 주로 광산지역을 다녔고, 광업권에 관해 눈을 떴습니다. 생업 때문에 동서의 도움으로 울산에 페인트가게를 냈습니다. 제법 돈을 모았죠.
 페인트업을 하면서 조선업에 샌딩모래가 필요한 사실을 알게 됐죠. 경북 울진 일대의 규사광업권을 샀습니다. 첫 사업체인 '현대광업'을 창립한거죠. 대원그룹의 모체입니다. 1972년입니다.

 

 ▲기업을 창업하기까지의 과정이 정말 드라마틱하군요. 제조업체는 어느 회사를 처음 창업했습니까?
 - 지금 인터뷰하고 있는 이곳 대원에스앤피를 처음 만들었습니다. 현대광업을 설립한지 12년 뒤인 84년입니다. 처음 회사명은 대원기공이었죠. 감회가 새로웠습니다. 이제 버젓한 기업을 가졌다는 자부심이 생겼습니다. 탄소강관과 각형강관을 생산하고 있는데, 미국과 멕시코에도 해외법인을 두고 있습니다. 국내 5대 강관업체에 꼽힙니다.

 

 ▲그룹 산하 업체는 얼마나 됩니까?
 - 국내에 있는 업체가 15개이고, 해외법인은 7개입니다. 국내 사업장 가운데 울산의 비중이 35%에 이르며 그룹본사도 울산에 있습니다. 전체 종업원은 4천여명쯤 됩니다. 지난해 매출액은 국내업체 8500억원과 해외법인 1500억원 등 1조원에 달했습니다. 국내업체의 매출액 가운데 60%는 수출액입니다.

 

 ▲첨단업종도 두고 있는데, 기술연구에도 더욱 비중을 높이고 계시죠?
 - 기술연구에 사활을 걸고 있습니다. 파캔오피씨를 예로 들면 전체 종업원 300여명 가운데 70여명이 연구인력입니다. 아까 말씀드린 오피씨드럼의 경우 세계 각국에 맞는 제품을 생산하기 위해 연구소에 나라별, 시간대별 온도를 설정한 시스템을 갖추고 있습니다. 전체 매출의 10%를 연구비로 투입하고 있습니다.

 

 ▲향후 경영목표 또는 전략은 어떻습니까?
 - 5개년 경영목표를 간략하게 말씀드리자면 매출 2조를 세워놓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 새로 플랜트사업과 발전사업에 참여할 계획입니다. 그래서 온산에 16만평의 공장부지를 만들고 있습니다.

 

 ▲기업활동 외에도 울산의 환경운동에 각별한 관심을 가지고 애정을 쏟고 계시죠?
 - 한때 울산을 공해백화점이라고들 했죠. 그래서 96년에 울산검찰의 도움을 받아 민, 관, 학, 기업이 참여하는 울산검찰청환경보호협의회를 만들었습니다. 그러다가 올해 1월에 사단법인 환경보호협의회로 바뀌었습니다. 전국적인 환경운동을 위해 사단법인체 등록도 환경부에 했습니다.
 공해백화점이라는 울산이 최근 깜짝 놀랄만큼 달라졌죠. 저희 협의회도 기여를 한 것 같아 자부심을 느낍니다. 사실 그동안 비아냥도 많이 받았던 게 사실입니다. 그러나 초심을 잃지 않고 묵묵히 일해온 덕분에 가시적인 성과가 나타났고, 그것을 울산광역시장을 비롯한 시 관계자들도 인정을 하고 격려를 해온데 대해 큰 위로로 여깁니다.
 저 자신은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기업경영에서 물러나게 되더라도 환경운동은 계속할 생각입니다. 사람은 평생 일에서 손을 놓았서는 안된다는 게 제 지론이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회활동도 하고 계시죠?
 - 환경운동 외에도 장학과 체육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15년 전에 대원교육문화재단을 만들어 장학사업을 펴고 있습니다. 그중에서 가장 보람을 느끼고 있는 것이 올해 7회째인 '울산참교육인대상' 제도입니다.
 또 열악한 지역스포츠를 위해 6년전에 아마추어 여자농구팀을 운영해서 궤도에 올려놓기도 했습니다. 현재는 여자볼링팀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대원그룹 박도문 회장과 가진 인터뷰를 끝내고 대원에스앤피 공장을 나오자 가을을 재촉하는 빗방울이 더욱 굵어지고 있었다. 인터뷰를 통해 울산의 미래 도시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대기업 편향의 인식을 시급히 바꿔야 한다는 점을 절실히 깨달았다. 그러는 한편 울산사회가 유망 중견기업에 대해 홀대를 하는 이유를 생각해봤다. 조선과 자동차, 석유화학으로 대별되는 구조 탓인가. 아니면 대부분의 중소기업이 대기업에 매어있는 하청구조 탓인가. 그렇지 않은 유망 중견기업도 많은데도 말이다. 새로운 방향모색과 함께 전환점이 필요한 때이다. 울산의 흥망이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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