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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한종합건설 김석만 회장(앞줄 왼쪽 첫번째)이 15일 남구 옥동의 신한디아채 건설현장을 방문해 현장 점검을 한 후 직원들과 화이팅을 외치고 있다.  장지승기자 jjs@ulsanpress.net

 

 미국발 주택버블로 시작된 세계금융위기는 침체기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국내 건설시장에 직격탄이 되고 있다. 우리나라 경제에도 짙은 그림자를 드리우게 해 그렇지 않아도 잔뜩 움츠러들었던 주택시장은 찬바람만 더욱 쌩쌩 불고 있고, 그래서 미분양 아파트가 속출하고 있다. 다른 도시에 비해서는 나은 것으로 평가되던 울산의 주택시장도 급기야 하루가 다르게 냉기에 휩싸이고 있는 실정. 끝 모를 지경이다.
 그런 가운데 불볕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지난 8월 중순 울산 건설업계의 좌장격인 '신한건설'이 10년만에 법원의 화의를 끝냈다는 낭보가 날아들었다.
 한 업체만의 차원을 벗어나 시름에 잠긴 울산 건설업계 전체에 주는 파급효과는 엄청난 것.
 소규모의 울산 건설시장에서 무려 2,440억원이라는 천문학적인 채무액을 10년만에 상환하고 오뚜기처럼 다시 일어서게 한 원동력은 뭘까. 그것만으로도 신한건설 김석만 회장을 만나볼 이유는 충분했다.

 

 -가끔 공·사석에서 뵙기는 했습니다만, 이렇게 인터뷰를 하기 위해 한 자리에서 만나기는 처음인 것 같습니다. 늦었지만 10년만에 화의를 졸업한 것을 축하드립니다. 힘겨운 울산 건설시장은 물론 전체 울산 경제계에도 커다란 힘으로 작용했을 겁니다. 아무래도 화의를 끝낸 이야기를 먼저 듣는 게 순서일 것 같습니다. 그간의 과정을 설명해주시죠.
 ▲IMF가 터진 98년에 연대보증을 섰던 업체들이 줄도산을 하는 바람에 2,440억원이라는 채무를 떠안게 됐습니다. 자동적으로 회사는 파산사태를 피할 수 없게 됐고, 존립위기에 놓였습니다.
 그때 전국적으로 경영위기를 맞은 업체는 대부분이 부도나 파산을 통해 회사를 정리했습니다. 그러나 저희 회사는 저 자신이나 개인의 살길보다는 그동안 믿고 같이해 준 협력업체를 배신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고심 끝에 98년 12월 12일 법원에 화의신청을 하고, 다음해 4월 19일자로 화의인가를 받기에 이르렀던 겁니다.

 

 -직원들은 화의보단 파산을 하자고 했다면서요.
 ▲대출이자가 무려 53%까지 오르는 상황이 되니까 2천억원이 넘는 빚을 다 갚고 회생하는 것은 꿈도 꿀 수 없게 된 거죠. 밑 빠진 독에 물붓기가 된다는 거죠. 하루라도 빨리 모든 걸 털어버리고 새 출발을 하는 것이 낫다고 말하더군요. 그때 상황을 보면 그게 보다 현실적이었습니다. 화의가 돼도 100에 2-3개 업체 정도만 살아남았으니 말입니다.


 -지금 너무 쉽게 묻고 있습니다만, 화의신청 결심을 하기까지 수개월동안 엄청난 마음고생을 했겠습니다. 그런 결심을 하게 된 배경은 무엇이었습니까.
 ▲저 자신의 고통쯤이야 당연히 감수해야죠. 존립위기에 몰리자 그래도 저 자신에게 남은 것은 신용이란 밑천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도저히 부도나 파산을 할 수 없었던거죠. 장삿꾼 김석만의 최대밑천인 신용을 팽개칠 수는 없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신용 때문에 회생의 기틀을 마련할 수 있었던거죠.
 ▲그랬습니다. 신용을 지킨 것이 전화위복의 계기로 작용한거죠. 채권자들이 법원의 보호를 받지 않는 개인부동산 담보물을 팔아 빚을 회수할 수도 있었는데,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협력업체들도 수주받은 공사에 대해 선투자해주지 않았다면 도저히 공사를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저를 신용을 지킬 사람이라고 믿어준거죠.

 

 -끝까지 신용을 지킨 것이 결실을 맺은 거군요. 10년동안 어려움이 많았죠.
 ▲먼저 직원들의 고통이 너무나 컸습니다. 정말 눈물겨웠습니다. 170여명에 달하던 직원을 30여명으로 줄였습니다. 무려 140명이 떠났습니다.
 개인자산 150억을 내놓았고, 요즘 시세로는 평당 1천만원선인 땅 1만여평을 10분의 1 값에 팔았습니다. 화의중이라는 이유로 제1금융권에서 대출을 받을 수 없어 이자가 비싼 제2금융권을 이용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일일이 다 꼽을 수가 없습니다. 2,440억원의 채무액 가운데 99.84%인 2,360억원을 채무조정과 변제하는 데에 성공해서 울산지방법원으로부터 지난 8월 중순에 화의종결처분을 받았습니다. 10년이라는 긴 어둠의 터널을 빠져나온거죠.


 -그 과정에서 울산의 주택건설업체로서는 최초이자 유일한 아파트 독자브랜드를 만들어 승부를 건 것도 화의종결에 도움이 되는 선순환으로 작용했죠.
 ▲그랬습니다. 모험을 시도한거죠. 국내 시장을 면밀히 살핀 것이 주효했던거죠. 아시다시피 국내굴지의 업체들은 다 독자브랜드를 갖고 제품이미지를 높이고 고객신뢰도를 쌓고 있지 않습니까. 그것에 착안해서 서울에 있는 전문업체에 맡겨 독자브랜드를 만든거죠. 6개월의 용역 끝에 만든 것이 '디아채'란 브랜드명입니다.
 
 -'디아채'는 무엇을 뜻하는 겁니까.
 ▲세가지를 들 수 있습니다. (1) Design +Art +채(아름다움의 순수 우리말)로 최상의 아름다움을 뜻합니다. (2) The(최상급) + Arche(그리스어로 최초, 선두, 일등)로 고객이 가장 선호하는 아파트, 앞서가는 아파트를 뜻합니다. (3) 디세(기와의 순수 우리말로 건물을 상징) +亞(버금아) +綵(비단채)로 아름답고 멋있는 집을 뜻합니다. 이런 여러 가지 뜻을 갖고 있는 브랜드입니다.
 이젠 독자브랜드를 달고 아파트를 짓는 만큼 고객이 만족하고 편안하고 안전하게 살 수 있는 아파트 건립에 총력을 쏟고 있습니다.

 

 -독자브랜드로 처음 지은 아파트는 어떤 겁니까.
 ▲지난해 10월 준공한 북구 중산동의 630여세대분 중산동 디아채입니다. 큰 반응을 일으킨거죠. 그 이후 태화동, 구영, 대현동, 옥동 등지에 그 브랜드명의 아파트를 짓고 있습니다.


 -안목을 넓힌 것이 결실을 맺은 셈이군요. 울산에서는 독자브랜드를 가진 게 처음이죠.
 ▲칭찬을 해주시니 몸둘바를 모르겠습니다. 저희 회사로서는 앞에서도 말씀드린대로 모험을 한거죠. 사실은 두렵기도 했습니다. 더 큰 결실을 거두기 위해서는 모험을 해야 한다고 판단한거죠.
 울산 주택시장을 살펴보면 래미안, 푸르지오, 힐스테이트 등등의 국내굴지의 브랜드가 판을 치고 있지 않습니까. 물론 그런 대기업과 경쟁하기에는 무리라는 점을 잘 압니다만, 저희로서도 지역시장은 물론 더 넓은 시장을 개척하기 위해서는 독자브랜드를 가져야 한다고 확신한 것이 효과를 봤습니다. 결과적으로 타이밍이 맞았던 셈이죠.
 
 -건설협회장직도 오래 맡았죠.
 ▲관계 법령에 광역단체마다 건설협회를 두게 돼 있습니다. 울산이 광역시가 되기 전에 울산회장을 맡고 있었는데, 광역시가 되면서 자동적으로 '대한건설협회 울산광역시회'로 승격됐습니다. 그래서 초대부터 3대까지 회장을 맡았습니다.
 
 -울산 건설시장 규모와 업체는 몇 개나 있습니까.
 ▲2007년도 기준으로 공공부문 건설시장은 4천억원 정도입니다. 업체수는 대략 120여개나 됩니다.
 
 -그 정도라면 시장상황이 굉장히 어렵겠습니다.
 ▲그렇죠. 거기에다 장기간 건설시장이 침체된데다 울산의 경제상황은 그래도 낫다는 소식에 다른 지역 업체까지 몰리다보니 울산상황도 어렵습니다.

 

 -향후 울산의 시장전망은 어떻습니까.
 ▲침체기간이 길어질 것 같습니다. 인내심을 갖고 대처해나가야만 합니다. 적절한 대응방안을 찾아 잘 버티어내야죠.

 

 -사업을 처음 시작하실 때의 이야기를 들었으면 합니다. 건설업에 뛰어든 게 88년이었다고 들었습니다.
 ▲88년 3월 10일에 신한건설의 모체인 '신한주택건설주식회사'를 설립했습니다. 3월 21일에 경남 88-48호로 주택건설, 대지조성 사업자등록을 받아 시작한거죠. 그리고 다음해 3월에 회사이름을 신한건설로 바꾸었습니다.
 자본금은 1억원으로 출발했습니다. 현재 신한건설 자본금은 40억원이고, 2000년 설립한 신한종합건설 자본금은 35억원입니다. 설립 당시 직원수는 소수에 불과했습니다. 현재 신한건설의 매출규모는 1,500억원에 달합니다. 화의 전의 직원수는 170여명이었죠. 140명이 나가고 30명이었다가 지금은 70명선으로 늘었습니다.


 -도급금액과 순위는 어느 정도됩니까.
 ▲시공평가액은 토건이 772억원 규모입니다. 산업설비 317억원, 조경 258억원, 전기 19억원, 소방 53억원선입니다. 울산지역 시공능력평가는 1위입니다. 여기에는 현대중공업과 극동건설은 제외된 것입니다. 전국으로는 209위입니다.
 
 -신한건설과 신한종합건설 외에 계열사도 있죠.
 ▲다솜종합건설 등 6개의 계열사가 있습니다. 계열사를 포함하면 전체 인력은 400명선이고, 60%가 현장인력입니다.

 

 -신한건설을 만든 해가 88년 3월이었으니까 올해가 창립 20년이군요. 성년이 된 해에 그 어려웠던 화의를 끝냈으니 더욱 뜻이 깊겠습니다. 감회가 남달랐겠습니다.
 ▲그 어려웠던 고비를 어떻게 넘겼는가 하고 많은 생각을 해봤습니다. 다 함께 똘똘 뭉쳐 달려온 직원들의 노고가 정말 고마웠습니다. 꾸준히 믿고 도와준 협력업체와 채권자들의 고마움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창립 20주년 행사는 치뤘습니까.
 ▲그럴 경황이 없었습니다. 창립일인 3월 10일은 화의를 끝내기 전이었습니다. 연수원을 빌려 직원 연찬회로 가늠했습니다.
 화의를 끝내고 제1금융권과 각종 대출관련 협의 등을 진행하고 있는데, 이런 것들을 마무리한 뒤에 사원단합 또는 결의대회를 가질 계획입니다.
 
 -창립 20년을 맞았고, 울산업체로서는 최초이자 유일하게 독자브랜드까지 만들어 제2의 창업에 버금갈 업그레이드 계기를 마련한 것으로 평가하고 싶습니다. 구상중인 프로젝트를 공개해주시죠.
 ▲현재 세계적인 경제위기로 시장상황이 굉장히 어렵습니다만, 나름대로 그에 대처하면서 10여개 프로젝트를 구상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노하우와 전문인력도 어느 정도는 갖췄습니다. 그래서 수도권에서 몇 가지 사업을 펼칠 계획입니다. 서울사무소를 연 것도 준비작업이라고 할 수 있겠죠.


 -어려운 국가유공자를 돕고 계시죠.
 ▲국가유공자 주거개선사업입니다. 국가유공자의 낡은 집을 고쳐주는 것입니다. 해마다 한 가구를 선택해서 고쳐주고 있는데, 15년 됐습니다. 비용은 1천만원에서 5천만원까지가 들었는데, 평균 2천만원으로 보면 됩니다.
 
 -프로바둑팀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 외에도 체육팀에 지원도 하고 계시죠.
 ▲프로바둑팀인 '디아채 바둑팀'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2년전에 창단했습니다. 감독은 김영환 8단입니다. 팀원은 강동윤 8단과 백홍석 5단 등 6명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프로야구처럼 리그전을 펼치고 있는데, 올해 리그명은 'KB국민은행 2008한국바둑리그'입니다. 저희 팀은 포스트시즌에 진출해 있습니다.
 그리고 중구에 있는 여성족구단에 지원을 하고 있는데, 전국 대회에서 우승도 했습니다.


 -고향은 어딥니까.
▲경주시 양북면 용동리입니다. 그곳에서 학교를 마치고 울산에 온거죠. 그래서 울산에서 터전을 잡아 사업에 뛰어든거죠. 앞으로도 제 꿈을 처음 펼친 울산을 주무대로 수도권을 중심으로 한 다른 지역으로 진출할 계획입니다.
 
 -부모님과 형제자매, 그리고 부인과 자녀들은.
 ▲아버님은 7년 전에 돌아가셨고, 어머님은 올해 76세이십니다. 형제는 3남2녀인데 제가 맏이입니다. 처와 1남2녀를 두고 있습니다. 큰 딸은 대학을 나와 공기업에 다니고 있고, 아들은 고려대 경영학과 2학년, 막내딸은 중학생입니다.


 -무척 바빠 짬을 내기가 쉽지 않으실텐데, 건강관리는 어떻게 합니까.
 ▲운동할 틈이 거의 없습니다. 잘 먹고 잘 자는 것이 건강비결이라면 비결입니다. 편안하게 마음을 갖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도 생각합니다.

 

 -좌우명은 무엇입니까.
 ▲좌우명이라고 특별히 정한 것이 없습니다. 저희 회사 사훈이 '신용 성실 봉사'이기 때문에 '신용'을 철칙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제가 신용을 밑천으로 삼았기에 오늘의 제가 있는 겁니다. 지금 어렵다고 해서 신용을 헌신짝 버리듯 내팽개치면 더 큰 불행을 초래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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