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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련됨 하고는 한참 거리가 먼 '정선 아우라지'는 울산연극인들의 얇은 주머니로도 술맛과 살맛, 연극할맛을 마음껏 느낄 수 있는 지역에 몇 안되는 문화사랑방이다.

 

 울산문화예술회관에서 삼산동 쪽으로 난 북적이는 길에 들어섰다. 큰 길에 못미쳐 작은 네거리에 자리한 건물의 가파른 계단을 오르니 유리문이 나온다. 문을 열자 쾌쾌한 막걸리와 안주 냄새가 코를 자극한다. 여기가 울산 연극인들이 자주 찾는다는 '정선 아우라지'다.
 
 "크~" 막걸리가 넘어간 목구멍으로 감탄 섞인 탄식이 터져나왔다. 
 "여기 오면 비슷한 고민을 안고 사는 선후배 연극인들을 만나 정보도 교환하고, 술도 한 잔" 웃음 섞인 소리로 잔을 권했다.
 마침 연말 밤늦은 10시께 연극 연습을 마친 일곱여덟명의 연극인들이 하나둘 함께 하면서 분위기가 무르익었다. 둔탁한 뚝배기잔이 허공에서 다시 부딪쳤다. '어울림'이었다.
 이들의 에너지가 허공을 깨우고, 형식에 구애받지 않는 모습은 지극히 '연극스럽고' 자유롭다.
 내 집 같은 안락함, 상업적이지 않은 실내 인테리어는 정선 아우라지 만의 분위기를 연출한다.


 가게 입구에 놓여있는 울산연극협회 합동연극 '도덕적 도둑'을 비롯 처용연극페스티벌, 무룡예술제 등 얼마전 무대에 올린 공연물 팸플릿이나 포스터가 그렇고, 연극 소품으로 쓰인 낡은 책가방과 꾕가리 등 세련미와는 거리가 먼 실내분위기가 막걸리를 들이키는 연극인들의 술맛을 돋운다.


 김종수(45·배우)씨는 "예술가라고 연습실에 박혀 세상과 벽만 쌓는 것이 아니라 여러 사람들도 만나고 정보도 교환할 공간이 필요하다"며 "울산은 문화예술 시장이 크지 않아 활발한 교류가 이뤄지고 있진 않지만 그래도 목마른 사람이 우물판다고 여기서 서로의 고민을 나누고 연극하는 힘을 얻는다"고 말했다.
 역시 배우로 활동하는 오만석(43·북구문화예술회관)씨가 옆에서 거든다. "이런 장소들을 '문화의 저수지'라고 표현하면 어떨까요. 아우라지에는 연극, 무용, 음악을 아우르는 다양한 물줄기가 흘러 들어옵니다. 문화에 갈증난 사람들은 이곳에 모여들어 목을 적십니다. 문화 사랑방에서 뒤섞인 '잡종 취향'이 때론 세상을 놀라게 할 작품을 내놓을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아무려면 어떻습니까. 잡기와 술, 권세와 돈에 눈돌리지 않고, 잠시라도 마음을 다듬고 위안을 얻을 수 있다면."


 '아우라지'가 지역 연극인들의 사랑방 역할을 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무엇보다 주인 류길수(45)씨가 연극인이기 때문이다.
 류씨는 극단 '푸른가시'의 신입단원 모집에 늦깍이로 지원해 연극에 발을 들여놓은 지 12년째로 그동안 여러 단역을 거쳐 5년전 추송웅의 모노드라마로 알려진 '빨간 피터의 고백'을 선보인 바 있다.
 얄팍한 주머니로 안주없이 술한병으로 주구장창 시간을 때우는 연극인도 있건만 눈치주는 일은 없다.
 "연극하는 사람들이 술좋아하고 격식따지는 거 싫어하고 그렇잖아요. 주인장이 함께 연극을 했던 사람이기에 우리 속내를 많이 이해해줄 것 같아 좋고 편안하다" 이상훈, 송인경, 박은영 등 연극인들은 약속이나 한 듯 입을 모은다.


 술과 음식이 푸짐하게 차려나오는 것은 당연지사.
 "굽이굽이 휘어진 길들을 따라, 술을 찾아, 주모를 찾아 헤매던 지난 시간들이 내겐 그 무엇보다 소중하다. 가히 내 생에서 전성기였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렇게 마신 술들과 만난 사람들은 내게 인생을 가르쳐주었다. 삶은 이렇게 사는 것이라고, 그리고 세상은 따뜻한 곳이라고…"


 어느 예술인의 대폿집 연가다. 이제 이 같은 공간은 찾아볼 수가 없다. 세월따라 문화예술인들의 사는 모습도 달라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연극이란 예술장르가 땀이 밴 아날로그이듯 직접 상대의 눈빛을 보고 숨결을 느끼고 싶어하는 마음은 숨길 수가 없다.
 그래서 정선 아우라지가 주인 류길수씨의 고향이듯 이 곳은 연극인들에게 고향 같은 곳이다.


 이들에게는 문화의 향유와 교류 그리고 확대 재생샌의 풍족함에 만족해하고 그런 장소를 제공한 이곳을 사랑하고 있다.
 삶의 무게로 불면증에 시달리고 일상이 맹물같다면 '정선 아우라지'로의 발길을 권한다.
 울산 연극인들의 삶에 대한 열정에 코끝이 찡해지며 '아, 살맛나는 세상'을 외칠지 모르는 일이다.  글·사진=김미영기자myidaho@ulsanpres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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