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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정시장에서 30년 동안 뻥튀기를 해오고 있는 정연수·황임자 부부의 정성과 손때가 묻어나는 '박상'과 '강정'을 한입 베어물면 깊고 고소한 맛이 입안 가득 고여온다. 뻥하는 순간에 김이 자욱하게 솟아오르며 하얀 티밥들이 그물 통발 속으로 솨르르 쏟아진다. 정씨 부부와 30여년동안 생사고락을 함께 해온 뻥튀기 기계는 그들에게 화수분같은 존재.

 

 신정시장 입구에 들어서자, 뻥튀기 아저씨가 "뻥, 뻥이요" 하며 강냉이, 튀밥, 누룽지 등 고소한 고향 냄새가 온 시장을 맴돌고 있다.
 어느새 설밑이 가까워졌나 보다. 신정시장 농협 옆에서 30여년 동안 뻥튀기를 해오고 있는 정연수·황임자 부부가 뻥튀기와 강정을 기름에 튀겨 고명(참깨, 튀밥 등)을 발라내는 바쁜 손놀림에 그만 코끝이 '킁킁' 저려온다.
 
 정연수(58)씨가  "뻥이요" 하고 외치는 소리가 시장을 찾은 이들의 발걸음을 붙잡는다. 잊어버린 명절 풍경을 떠올리고 시골냄새를 다시 맡을 수 있어서이다.
 많은 세월이 흘렀건만, 뻥튀기 옆으로 죽 늘어놓은 강냉이, 콩, 쌀, 깡통 됫박 행렬은 여전하다. 다만 예전에 손으로 돌렸던 뻥튀기 기계가 반 자동화 돼 스스로 돌아가는 모습이 바뀌었을 뿐이다.

 

   그득한 바구니에 마음도 절로 넉넉
 몸통이 뜨겁게 달궈지면, 쇠꼬챙이로 주둥이를 걸어 돌려 빼는 순간 "뻥" 하는 소리와 함께 뽀얀 김이 모락모락 솟아오른다. 그러면 하얀 티밥 '박상'들이 그물 통발 속으로 순식간에 솨르르 빨려 들어간다. '뻥' 한 방을 튀겨내는 데 걸리는 시간은 십오분 정도. 그 동안 뻥튀기 아저씨는 부인 황임자(52)씨와 혹은 가게를 찾은 아줌마들과 구수한 농담을 주고받으며 싱글벙글한다.
 "아저씨, 행복해 보이십니다?" "그렇구먼, 하잘 것 없는 작은 낱알들이지만, 몇 배나 크게 부풀어 바구니가 그득해 올 때마다 마음이 저절로 넉넉해 오누만요."
 통발 속에서 풍겨나는 구수한 냄새는 금새 코를 벌름거리게 만든다. 코를 킁킁 거리며 티밥을 한 움큼 입안에 털어 넣어본다. 옛날의 그 맛은 아니지만 여전히 입안을 살살 돌며 잊어버린 추억을 녹여내린다.
 어린시절 광주리 바깥으로 퉁겨나온 티밥을 몇알 주우려고 뻥튀기 아저씨의 눈치를 보며 머리를 들이대고 쏜살같이 달려들던 친구들의 옛 모습이 '박상' 속으로 하얗게 내려앉는다.
 그러나 오늘은 티밥을 주우려는 조무래기들은 아무데도 없다. 세상이 많이 달라졌나 보다. "뻥" 소리에 놀란 시장 상인들과 손님들이 눈을 두리번거리며 눈길을 한번 줄 뿐이다.
 더군다나 주변 상인들은 뻥튀기 냄새와 연기로 괴로움을 토로하고 있는 실정이다. 우리에게 잊혀진 많은 것들이 세월따라 다르게 다가오는 것처럼.
 쌀, 현미, 옥수수, 찹쌀, 보리, 참깨, 검정콩, 수수 등이 뻥튀겨지고 나면 이젠 강정으로 만들 차례.

 

   올 설엔 정성으로 만든 강정을
 강정 만들기가 시작되면 황임자씨의 몸가짐이 사뭇 진지해진다. 허툰 행동과 말을 함부로 하다보면 강정이 제대로 안된다고 예부터 믿어왔기 때문이다.
 "강정을 만들려면 잔손이 여간 가는 게 아닙니다. 기도하는 자세로 찹쌀을 말갛게 씻어 일주일 정도 냉수에 담가, 건지고, 말리고, 체로 쳐, 반죽을 주물러냅니다. 반죽을 펄펄 끓는 물에 뜯어 넣고 찐 다음, 방망이로 조심스레 두들겨 꽈리가 일어날 때까지 쳐댑니다. 꽈리가 잘 부풀게 하려면,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게 손끝에 힘을 모으고 호흡조절을 잘해야 한다는데…. 지금은 그나마 반자동화돼 훨씬 수월하지요."
 황임자씨의 말대로 그 정성과 노고를 어찌 다 말로 하랴 싶다.
 그동안 남편 옆에서 한가하게 자리를 지키던 그였건만 강정에 조청을 발라내는 순간만큼은 누구보다도 재빠르다. 강정 위로 어른거리는 황씨의 저 거북등처럼 터졌던 손등과 새카맣게 때가 끼어 볼품사납던 손톱 끝이 위대하게 보인다.
 사라지는 것은 그리움을 낳는다. 시대는 변했고 사라져 가는 것을 억지로 막을 수는 없다. 그러나 우리는 잘 살기 위해 너무나 많은 것들을 잃고 떠나보내야 했다.
 설즈음 생활의 속도를 줄이고 뻥튀기 등 우리 주변에 사라져가는 것들에 눈길을 놀려보자. 혹 아는가, 그 옛날 떠나보낸 사랑처럼 그리움을 불러올지.  글=김미영기자 myidaho@ulsanpress.net 사진=김동균기자 dgkim@ulsanpres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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