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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적인 3대 영화제 중 하나인 칸영화제에서 영화배우 전도연이 여우주연상을 받으면서 영화 '밀양'이 갑자기 유명세를 치렀다. 나도 사실 그 유명세가 궁금하여 영화관을 찾은 사람 중의 한 명이다. 평범한 일상에서 갑작스럽게 직면하게 된 고통, 여주인공 신애의 섬세한 감정처리와 복잡 미묘한 심리묘사는 영화의 주제를 더욱 돋보이게 했다. 영화의 배경이자 제목이기도 한 밀양(密陽)은 '비밀의 햇볕'이란 뜻이며, 이 영화를 통해 감독은 우리 인생 자체 속에 삶의 비밀이 늘 숨어 있다는 것을 암시적으로 표현하려 했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그 삶의 비밀이란 무엇일까? 신의 이름 앞에 인간의 존엄성은 나약하게 짓밟히며, 결국 모든 문제의 해결책은 신이 아닌 인간 자기 자신에게서 찾아야만 한다는 것이다.
 모든 반응의 근원엔 '자기 자신'이 있다. 다만 자신을 고통으로부터 지키기 위해서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 조금씩 다를 뿐이다. 정신분석학자인 프로이드는 사람들은 불안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여러 가지 방어기제를 사용한다고 했다. 자식을 잃고 고통 속에 방황하는 여주인공 신애 또한 많은 방어기제를 사용하고 있었다. 아들의 죽음을 인정하지 못하고 괴로워하는 장면에서는 고통스런 환경이나 위협적인 정보를 거부하는 '부정'의 방어기제를 보이며, 유괴범에 대한 억눌린 분노와 증오를 종교라는 장치를 통해 긍정적 방법으로 해소하려는 '승화'의 기제도 보인다. 이처럼 우리의 마음은 수많은 갈등과 불안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고자 하는 본능적인 치유 능력이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도 한계가 있다. 흐르는 시냇물도 어느 정도까지는 자정 능력이 있지만 일정한 도를 넘어버리면 폐수로 변해버리듯이 사람도 마찬가지다. 원래 이 영화는 이청준의 소설 '벌레이야기'를 원작으로 하고 있는데, 소설 속의 주인공은 영화와는 다르게 신의 배신 앞에 약을 먹고 스스로 목숨을 끊어버리고 만다. 소설 속 주인공의 심리상태는 이미 자가 치유 능력을 넘어버렸던 것이다. 그러나 영화에서는 오히려 삶의 의미를 더 부각시켰다. 정신과 치료를 받고 나온 여주인공이 햇살 속에서 스스로 머리를 깎는 장면을 통해 죽음보다는 한 줄기 희망을 선택한다는 삶의 메시지를 은밀히 남기고 있는 것이다.
 이렇듯 삶의 방식은 사람마다 각자 다를 수 있으며, 그 삶은 결국 자신의 선택에 의한 것이다. 우리의 행동에 동기부여를 하는 것은 외부가 아니라 우리 자신이다. 여주인공 신애는 신의 은총으로 평화를 얻고 용서하는 마음을 얻었다고 믿었지만 결국 자기 자신은 용서하고 있지 못함을 깨닫는다. 이처럼 용서라는 것 또한 외부의 자극이나 신에 의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선택에 의한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우린 늘 올바른 것만 선택하며 살진 않는다. 웅변 원장처럼 뒤늦게 후회하는 선택을 하기도 하고, 분노와 반항심에 절도를 저지르는 삐뚤어진 선택을 하기도 하며, 때론 자살 같은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어떤 결정이든 선택에는 반드시 자기 책임이 따르는 법이다. 죽음을 선택했을 땐 남아있는 가족들의 고통에 대한 책임을 생각해야 하며, 삶을 선택했을 땐 살아있는 동안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책임을 가져야 할 것이다. 비록 잘못된 선택일지라도 신의 등 뒤로 숨기보다는 인간으로서 자기 책임을 질 수 있을 때 우리의 마음은 건강해지는 것이다.  
 이창동 감독은 인터뷰를 통해 "자기가 살고 있는 땅이 정말 아름답고 살 가치가 있어서가 아니라, 여기에 있기 때문에, 누추해 보일 수도 있지만 이 땅에서 삶의 의미를 찾아야 하며, 결국 인간은 자기 문제의 해답을 스스로 찾아야만 한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었다."라고 밝혔다. 그렇다. 문제 해결의 열쇠는 자기 자신의 손에 있는 것이다. 햇볕이 다사로운 마당 한 구석, 강아지풀 그림자가 바람이 일렁이는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문득 궁금해졌다. 진정한 하나님은 누구인가! 여주인공 신애의 깊은 고통을 함께 나누며 항상 옆에서 그림자 같은 애정을 보여준 카센터 종찬이가 진정한 신애의 태양이 아닐까 싶다. 정말 힘들 땐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어진다. 그럴 때 옆에서 지지자가 되어 주는 사람, 누군가의 볕이 된다는 것은 참 따뜻한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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