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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오후 함부르크 시청에서 미하엘성당으로 이어지는 상가골목. 함부르크 시는 번화가 일대를 대부분 차량통행을 못하도록 제도화해 쇼핑을 즐기는 함부르크 시민들과 관광객들에게 편의를 제공해 주고 있다.

 

 유럽으로 가는 길엔 루이스의 '나니아 연대기'나 톨킨의 '반지의 제왕'을 가방에 넣을 둘만 하다. 눅눅하고 축축한 음지의 기운이 어디서부터 신화로 바뀌어 기묘한 이야기를 풀어내는지 북해와 발트해 근처 어느 땅을 밟아도 저절로 영감이 스친다.
 함부르크(Hamburg)는 독일 북부에 있는 넓이 755㎢에 인구 180만 명의 도시다.
 정식 이름은 자유한자도시 함부르크로 독일에서는 베를린 다음 가는 제2의 도시이다. 811년 카를 대제가 알스터강(江)이 엘베강으로 합류하는 지점에 '하마부르크성(城)'을 쌓은 것이 시의 기원이다.
 
 #2차 세계대전 포화속 잿더미로 변해


 

 함부르크는 특별하다. 독일 여느 도시들과 달리 귀족계급이 중심인 도시가 아니라 상인의 도시로 시작됐다. 고풍스런 성곽이나 장식, 화려한 문양이 빽빽한 건축물보다 뭉툭하고 나지막한 창고형 건물이 즐비하다. 그나마 오래된 중세식 건물들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연합군에 의해 철저하게 파괴됐고 그나마 시청사와 몇 개의 교회가 중세 유럽의 고풍스런 모습을 남기고 있다.


 귀족의 거만함을 정면으로 거부하고 바다에 뛰어든 장사치들의 단순함이 도시에 베여 있는 함부르크. 그래서 효율적이다. 1897년에 지은 함부르크시 청사(Rathaus)는 웅장하다. 시청사는 함부르크 남쪽 시가지 중심부에 자리하고 있는 르네상스양식의 건축물로 영국의 버킹궁 궁전보다 화려하다는 평을 받고 있다.

 시청사 근처에는 함부르크의 번화가 '노이어 발(Neuer Wall)'이 있고 인공호수인 알스터호와 엘베강을 이어주는 샛강을 따라 고급 의상실과 명품가게들이 줄지어 있다. 이 거리에선 여느 유럽처럼 거리악사들이 보인다. 트럼펫, 호른, 튜바 따위의 금관악기들로 연주를 하고 있지만 구경꾼은 별로 없다.
 
 #건축물까지 장사꾼들의 실용성 대변


 독일은 언제나 히틀러와 맥주, 자동차, 홀로코스트, 라인 강의 기적으로 연상된다. 그만큼 독일은 융통성 없고 딱딱하고 재미없는 나라다. 하지만 함부르크에서 만난 독일은 수준 높은 문화를 향유하고 있는 나라였다. 모두 들어가 보진 못했지만 도시 곳곳에는 한 블록만 지나면 다양한 박물관과 갤러리, 극장, 오페라하우스가 즐비했다. 하물며 공창지대인 레퍼반까지 문화거리로 조성해 밤문화를 하나의 문화상품으로 만들고 있는 도시가 함부르크였다.
 함부르크에서 가장 쉽게, 그리고 흔하게 만나는 것이 바로 물이다. 하루에도 몇차례 빗방울이 떨어졌다 그치는 것을 반복하고 도시 곳곳을 흐르는 샛강과 수로가 차라리 징그럽다. 이탈리아 베네치아보다 물길이 많은 도시가 함부르크라고 한다. 샛강 위에는 백조들이 한가하게 떠 있다. 체코로 이어지는 수로에는 신호등이 있다. 도심으로 들어오는 수로에는 허가 받은 유람선 외에는 절대 엔진이 달린 배를 운행할 수 없다고 한다.


 물의 도시답게 재난이 생활화된 도시가 함부르크다. 일년에 한번은 2~3층까지 물이 차올라 해안가 집들은 모두가 1층과 4층에 별도의 출입문을 두고 있다. 이 때문에 이들은 건물 3층마다 비상계단을 설치해 재난에 대비하고 있다.
 예전엔 해안가 수로를 따라 배로 짐을 운반하여 도심까지 들여왔다. 그래서 도심 운하인 수로 근처엔 300년이 넘은 붉은 벽돌 건물들이 빽빽하게 들어서 있다. 건물 앞에는 언제 지었고, 언제 보수했다는 이름표가 자랑하듯 새겨 있다. 지금 이 건물은 대부분 카페트나 건축재료 등을 보관하는 창고 겸 사무실로 쓰고 있다.
 낡고 칙칙한 건물이 그대로 불편함을 드러내지만 그들은 낡은 건물들을 허물고 새로 짓지 않는다. 그저 보수할 뿐이다. 일부 건물은 눈으로 보기에도 위험스럽게 기울어졌지만 그들의 눈에는 그저 아버지와 그 아버지, 그리고 그들의 생활공간일 뿐이다.

 

 #음악의 도시다운 세계 최대 수상 오페라 하우스


 함부르크는 클래식 음악으로도 의미 있는 곳이다. 우리가 익히 아는 노래인 멘델스존의 '노래의 날개 위에' 가사가 하이네에 의해 함부르크에서 씌어졌을 것이란 말도 있다. 함부르크에는 독일 최초로 상설 오페라 하우스가 세워졌으며 헨델(1685∼1759)이 그의 첫 작품인 '알미라'를 이곳 무대에 올렸다고 한다. 브람스가 함부르크 출신이며, 베버의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을 위해서 특별히 세운 극장 '신 플로라'가 세워지기도 했다.
 함부르크 항구에 지금도 공사 중인 오페라 하우스는 세계 최대의 수상 홀로 건설 중인데 마치 한척의 범선이 북해를 향해 닻을 올린 모양을 하고 있다. 이 오페라하우스는 함부르크에 본사를 둔 니베아그룹 등 이곳 재벌 4인이 공사금액을 전액 기부해 도시브랜드마크로 건설 중이라고 한다. 안내원의 설명을 들으며 바라본 오페라하우스는 차양에 가려져 있지만 마냥 부러움을 감출 수가 없었다.
 
 #환경친화적 도시조성으로 세계 도약


 함부르크는 과거 유럽 최대의 무역항이었다. 12, 13세기경 한자(Hansa)라고 불리는 상인들의 단체가 많이 있었는데, 이들이 '한자동맹'이라는 도시동맹을 결성, 중세 상업사의 획을 그었다. 바로 그 동맹의 중심도시가 함부르크였다.
 함부르크 명성의 최고점은 아이러니컬하게 2차 세계대전에서 꽃피었다. 제3제국이 개발한 첨단 잠수함은 연합국의 상선들을 무차별 공격하여 보급선을 끊었다. 함부르크는 그들 잠수함을 만들어내던 본산지였다. 덕분에 함부르크는 2차대전 종료 당시 연합국의 폭격으로 폐허가 됐다.
 과거의 명성은 명성일 뿐, 현재와 미래를 내다보는 함부르크는 이제 대변신 중이다. 옛 항만에 건설중인 하펜시티(Hafencity)가 바로 함부르크의 미래다. 국제해양박물관, 하펜시티대학교, 초등학교, 과학센터, 크루즈센터, 바스코 다 가마 플라자, 마르코폴로 광장, 전통선박항구 등이 들어섰거나 건설 중이다. 항만의 낡고 퇴락한 시설공간에 최첨단건축물을 세워나가며 녹색정치의 본산답게 지극히 환경친화적인 수변공간을 제시한다.


 함부르크는 한때 아메리카 신천지로 향하는 가난한 독일 사람들의 출발지였다. 이민 떠나는 이들이 함부르크 항구에서 마지막 밤을 지샜으며, 뉴욕-함부르크 정기노선은 오늘날 미국사회에서 독일계의 전신을 이루고 있다. 현재 미국 사회의 주류로 활동하는 유태인들도 그 조상은 바로 함부르크 항에서 밤을 보내고 이민길에 올랐던 후예들이다.
 세계도시는 항만이나 강을 끼고 있는 물의 도시다. 물을 잘 관리하는 도시가 세계적인 도시가 된다는 이야기다. 물 많기로 이름 난 함부르크가 알스터라는 인공호수를 도심에 만들어 친수공간으로 활용하는 것은 물이 주는 문화적 가치가 얼마나 큰 것인가를 생각하게 한다. 친수공간의 활용이 과제가 되는 울산으로서도 충분히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는 이야기다. 글·사진=김진영 편집부국장 cedar@ulsanpres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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