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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생의 제도를 위한 법고소리가 영축산 자락에 울려퍼진다. 사물소리를 듣고 범종각으로 모여든 사람들은 작은 미동까지 멈춘다. 일대 모든 생명이 숨을 죽인다.

 

 울산에서 30여분 떨어진 경남 양산시 하북면 영축산 산자락에 고즈넉히 자리잡은 통도사. 가까운 길이라 울산사람이면 누구나 한번쯤을 가봤을 것이다.
 여느 사찰과 달리 통도사 대웅전에 부처의 모습을 볼 수 없다. 3보사찰 중 불보사찰로 대웅전 바로 뒤편 금강계단에 부처의 진신사리가 봉안돼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통도사는 팔만대장경을 간직한 해인사(법보사찰)와 보조국사 이래 열여섯 국사를 배출한 송광사(승보사찰)와 함께 불교의 요체인 불법승을 대표하는 곳으로 꼽힌다.
 통도사 이름은 세 가지 의미를 지니고 있다. 우선 거대한 병풍 같이 감싸고 있는 영축산 모습이 부처님이 설법하시던 인도의 영축산 모습과 통하고, 스님이 되려면 모두 이곳의 금강계단(金剛戒壇)을 통하고, 만법을 통하여 일체 중생을 제도한다는 뜻에서 붙여졌다고 한다.


 통도사는 최근 드라마로 인기를 모으고 있는 신라 선덕여왕 당시인 646년에 자장율사가 창건했다.
 지난 주말 오후 타종식을 취재하기 위해 통도사를 방문했다.
 산문입구를 지나는 진입로는 냇물이 흐르는 길 옆으로 사지를 비튼 소나무들이 늘어서 있다.
 일주문 바로 옆까지 주차장이 있지만 가능한 절에서 먼 곳에 차를 세우고 걷는 것이 좋을 것이다. 겨울에 찾은 통도사는 여름철 울창한 송림과 시원한 계곡물, 가을철 아름다운 단풍을 볼 순 없지만 고요함이라는 정취를 느끼게 해준다. 길가에 수북히 떨어진 낙옆밟는 소리만이 귀를 즐겁게 해준다.

 

 #646년 신라 자장율사가 창건


 

 수백 년은 넘은 듯한 소나무들 사이로 가다 보면 '영축(취)산 통도사(靈鷲山 通度寺)'현판 아래 '불보종찰, 국보대찰(佛寶宗刹 國寶大刹)'이라는 웅혼한 필체의 대련이 돋보이는 일주문을 볼 수 있다. 부처의 진신사리를 모신 적멸보궁이자 계율의 근본도량이라는 의미에서 불보요, 국보대찰은 말그대로 국보급 큰절이라는 알림이다. 일주문과 이어지는 천왕문 좌우엔 수령이 족히 수백 년을 넘은 듯한 소나무들이 하늘을 향해 뻗어 있다.
 이어 불이문을 차례로 지나면 좌우로 고풍스러운 건물과 탑이 도열한다. 적멸보궁은 정면에 서 있다. 사방으로 적멸보궁, 대웅전, 대방광전, 금강계단이라는 현판을 걸었는데 금강계단 글씨와 일주문 현판은 흥선대원군의 작품. 불상이 없는 빈 불단 뒤로 창이 넓게 나 있고 사리를 모신 금강계단(金剛戒壇)이 보인다.


 적멸보궁 옆에는 구룡신지라는 작은 연못이 있다. 통도사의 터는 원래 큰 호수였고 옛날에는 아홉마리의 용이 살았다고 한다. 절을 짓느라 호수를 메우면서 여덟 마리의 용이 쫓겨가고 한 마리만이 절을 지키며 남았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가물어도 물이 줄지 않는다는 신비의 연못이다.
 해가 영축산 자락에 걸릴 무렵, 산사는 고요함을 넘어서 적막하기까지 하다.

 

 #새벽 3시 30분 오후 6시 30분 두차례 예불

 


 곧이어 영축산 자락과 통도사의 하늘은 노을로 붉게 타오른다.
 통도사 하늘의 노을이 희미한 흔적만 남기고 사라지면 적막도 잠시, 가사를 입은 스님들이 바쁜 움직임이 보인다. 모두 범종각에 오른다.
 곧이어 맑은 소종 소리가 울리면서 범종각에서는 스님들의 사물 공연(?)이 시작된다.
 '두두둥 두두둥 딱딱딱' 법고소리, '따다다닥' 목어소리, '땅 땅 따아앙' 운판소리, '댕 댕 댕' 범종소리.
 이들 소리를 듣고 범종각으로 모여든 사람들은 모두 입을 닫고 작은 미동까지 멈춘다. 이 시간이면 영축산 자락 내 모든 생명이 숨을 죽이는 듯 하다.


 법고소리는 크고 힘차게, 작고 여리게 반복된다. 투박하지만 울림있는 목어소리, 맑고 경쾌한 운판 두드림 소리, 그리고 깊고 은은한 범종소리 울려퍼진다.
 타종식에서 시작된 감동은 범종소리가 산자락에 잔잔하게 울려 퍼지고 산사의 불경소리가 새어나올때까지 계속된다. 근심과 걱정은 사라지고 마음은 편안해진다. 머릿속도 맑아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불전사물(佛殿四物)이라는 법고, 목어, 운판, 범종.
 모든 축생을 제도하기 위해 울리는 법고, 물속에 사는 모든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 치는 목어, 공중을 날아다니는 중생을 제도하고 허공을 헤매며 떠도는 영혼을 천도하기 위해 치는 운판소리를 마지막 범종소리가 세상 곳곳으로 전하는 듯하다.
 범종을 타종하는 의미는 지옥중생을 제도하기 위해서이며, 아침에는 28번, 저녁에는 33번 울린다.
 흥을 돋우기 위해 풍물패가 치는 사물과는 전혀 다른 느낌이다. 스님들이 사물의 의미를 염원하며 치기 때문이다.

 

 #중생과 축생을 제도하는 끊임없는 기원


 

 여행을 위해, 또는 휴식을 취하기 위해서, 그리고 연인과의 좋은 추억을 만들기 위해 많은 이들이 통도사를 찾고 있지만 범종각에서 울려퍼지는 사물소리를 들어본 경험은 사람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통도사 현정스님은 "사물이 각각 가지고 있는 의미가 있고 거기에다 스님들의 염원이 담기기 때문에 일반사람들이 치는 사물과는 소리가 다르다. 또 일반사람들이 불전사물을 친다하더라도 이 같은 소리는 나지 않는다"며 "타종식 소리를 들으면 마음이 차분해지고 편안해지는 이유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통도사의 타종은 창건 이후 1364주년 동안 이어져 오고 있다고 한다. 타종 시간은 새벽(오전 3시 30분)과 저녁(오후 6시 30분) 하루 두번 30분씩이다.
 통도사 사물소리를 들으면, 부처님의 가르침까진 깨우치지 못하더라도 편안함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사물소리를 들으러 통도사를 자주 찾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글=김락현기자 rhkim@ 사진=김정훈기자 idacoya@ulsanpres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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