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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대 앞 방파제에서 낚시를 즐기는 시민들.

 

 1983년 건립후 94년 현재위치로 이전
   2002년 증축후 전망대·엘리베이터 등 설치
   1층 전시관엔 다양한 볼거리
   44m에서 내려다보는 바다는 탄성이  절로

 

어진 포구에서 오른쪽으로 발길을 향하니 쭉 뻗은 방파제를 만났다.
 목적지인 화암추 등대(화암추항로표지소)까지는 1.3km, 옷깃을 세워 목을 감추고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어도 세밑 등대에 부는 바닷바람은 살속으로까지 스며들었다.
 '이 길은 운동하기 좋겠다'는 생각에 걷다가 뛰다가를 반복했다. 얼굴 전체를 감싸는 마스크를 끼고 빠른 걸음을 내딛는 사람들과 가볍게 뛰는 사람들이과 여럿 마주쳤다. 역시 운동하기 좋은 코스였다.


 한길이 넘는 방파제의 너머 모습이 궁금해 사이사이 놓인 간이사다리를 타고 올랐다. 딱 한사람만 걸을 수 있는 넓이의 방파제 상단에 서니 얼굴을 가르는 바람은 더욱 거세다. 하지만 찬바람을 맞으면서도 바다를 보는 건 바다를 바라볼 때만 느낄 수 있는 감동을 아는 사람에게만 가능하다.
 그런데 이 곳에서 보는 바다는 그 풍경이 좀 다르다. 울산항 입구라서, 현대중공업과 현대미포조선이 옆에 있어서인지 유달리 배가 많다. 그냥 푸른 바다만 보는 것도 재밌지만 거대 선박이 오밀조밀 떠있는 바다도 색다른 맛이 있다.


 잠깐 바다 구경을 하고 방파제를 내려왔다.
 걸어서 20분. 화암추 등대에 도착하니 육중한 몸매가 드러났다.
 화암추 등대는 1983년 1월 현재의 위치보다 뒷쪽으로 300여m 지점(현대중공업 해양사업부 내)에 세워졌으나 인근 바다가 매립되면서 1994년 현대중공업이 지금의 위치로 옮겨 다시 세우고 울산지방해양항만청에 기부했으며, 2002년 증축한 뒤 올 7월 리모델링 공사를 통해 전망대 등을 갖추고 시민들에게 개방됐다.
 이 등대는 백색원형 철근콘크리트 구조이며, 높이는 44m로서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등대다. 이전 최고 높이를 자랑했던 부산 가덕도 등대(40.5m)보다 약 3.5m나 높다. 또 이 등대의 특징으로는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갈매기 형상의 뛰어난 조형미를 가지고 있다. 앞 마당에는 운동기구가 여럿 있었다. 역시 이 인근 주민들은 이곳까지 운동하러 다니구나 싶었다.


 현관을 열고 들어가니 곧바로 전시관이다.
 화암추 등대는 1층 로비가 전시관으로 꾸며져 있었고, 바닷길을 안내하는 해상용 등명기와 대형 나침반이 먼저 눈에 뛰였다. 등대모형 전시 코너에는 기원전 280년경에 세워진 세계 최초의 등대인 이집트의 '파로스 등대'와 우리나라 최초인 인천 팔미도 등대가 화암추 등대와 함께 미니어쳐로 나란히 서있다. 중구의 마호타 등대 등 세계의 특이 등대 9기도 사진으로 장식돼 있다. 울산항의 과거 변천사와 오늘의 모습, 미래를 한눈에 볼 수 있도록 만들어 놓기도 했다.
 전시관을 둘러보고 있으면 인상이 좋은 등대지기가 인사를 건넨다. 최창록(50) 소장이다. 화암추 등대에서 7년을 숙식하며 근무한 진짜 등대지기다. 이제는 친구가 생겨 한결 편하게 등대를 누볐다.


 이 등대에는 엘리베이터도 있었다. 1층과 8층만 운행한다. 8층에 전망대가 있기 때문이다.
 이 전망대는 4방위를 주작, 청룡, 백호, 현무 등 동양의 사신도로 표현했고, 24절기를 형상화하도록 전체를 24각(방위)으로 만들었다.
 또 전망대에서 내려다 본 인근 지역의 지형 디오라마를 석유화학, 조선, 자동차 등 울산항의 3대 산업 및 주요시설물 중심으로 구현해 놓기도 했다.
 전망대에서 방위표를 중심으로 남쪽을 향하니 울산석유화학 단지가 보였다. 야경으로 유명한 곳이어서 꼭 한번 저녁 시간이 지나 찾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옆에 있던 최 소장은 "여름에는 6시 겨울에는 5시까지 등대를 개방하지만 시민들이 미리 전화를 주면 저녁에도 문을 열어 주기도 한다"고 했다.


 오른쪽으로 돌아 서쪽을 보니 현대중공업(해양사업부)이 보인다. 육중한 크레인과 거대한 선박. 그 아래 작업자들의 움직임은 마치 난쟁이 마을을 구경하는 듯 했다.
 반대편 동쪽으로는 동해의 아름다운 해안선과 끝없이 펼쳐진 바다가 보였다. 맑은 날에는 육안으로 20km 넘게 볼 수 있다고 한다. 뒤를 돌아가니 북쪽으로는 화암마을이 자리잡고 있었다.
 전망대 구경을 마치고 1층으로 다시 내려오면 현관 옆에 방명록이 있었다. 유치원생이 남겨 놓은 듯 '너무 좋아요'라는 글씨가 커다란 그림처럼 그려져 있었다.


 화암추 등대는 지난 7월 전망대 공사가 완료된 이후부터는 전국 각지에서 관광객들이 찾아오는 곳이 됐다. 이름이 이뻐서인지 이제는 제법 그럴듯한 명소가 되고 있다. 한 때 이 곳은 울산12경에 이어 13경의 자리에 오를 뻔한 곳이다.
 주차장으로 발걸음을 옮기니 등대지기는 한 마디 더 한다. 홍보기회를 놓치기 아쉬웠던 모양이다.
 "청명한 가을에는 화암추 등대는 최고의 경관을 자랑합니다. 단체 관광객이 오면 직원들이 설명도 해 줍니다. 시민들은 아무때나 찾아 오세요. 전화주시고 오면 저녁이라도 문을 열어놓고 기다리겠습니다. 허허허."

글=박송근기자song@ 사진=유은경기자 usyek@ulsanpres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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