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최근 현대자동차 노사가 성과금사태와 관련해 극한의 대립으로 치닫고 있다. 현대차 노조는 지난 20여년의 역사 동안 1994년 단 한 해를 제외하곤 지금까지 해마다 파업을 벌여왔다. 이같은 파업에는 물론 노조의 이기주의 때문이라는 비난이 크지만 사측의 노무관리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반면 현대중공업은 1995년부터 지난해까지 12년 연속 무분규를 기록했다. 현대중은 올해도 무난히 13년 무분규를 이어나갈 전망이고 이는 조합원의 사측에 대한 신뢰와 의식변화가 가장 큰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과연 현대중은 어떤 방법으로 직원들의 의식변화를 이끌어 냈을까? 현대중의 노무관계를 통해 현대자동차의 사측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살펴본다.

 

 ▲원칙제일주의 노사관
 현대중공업은 지금부터 13년전, 노조가 마지막 파업을 벌인 1994년 처음으로 원칙을 적용했다. 이미 알려진 바와 같이 1994년 현중노조는 건조 중인 LNG선과 골리앗 크레인을 점거하며 63일 동안 파업을 지속해 모두 5천300여억원의 매출손실을 입혔다. 노조의 걷잡을 수 없는 파업에 회사는 직장폐쇄라는 초강수로 대응했고, 당시 이갑용 노조위원장을 고소했으며, '무노동 무임금'의 원칙을 천명했다.
 결코 불의와 타협하지 않겠다는 사측의 강력한 의지로 이갑용 위원장은 1년 6개월의 실형을 살아야만 했고, 출소 후에는 해고를 당했으며 조합원들은 주머니가 가벼워 지는 설움을 느껴야만 했다. 이는 조합원들에게 회사의 원칙제일주의를 확실히 인식시켜주는 계기가 됐다.
 현대중 관계자는 "94년 이전에도 원칙을 지키려 했지만 노조의 반발이 거세 실행에 옮기는데는 실패했다"며 "그러나 94년에는 기필코 원칙을 지키겠다는 의지를 보인 결과 가능했고 이후에는 노조가 회사의 원칙론을 인정하게 됐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이어 "현재의 상생과 화합에는 노사 모두에 여러가지 원인이 결합된 것이지만 사측에서 원인을 찾는다면 철저한 법적대응과 원칙고수가 가장 큰 원인이다"고 덧붙였다.
 
 ▲첫 협상서 최선안 제시
 현대자동차 노사가 극심한 노사대립을 겪고 있는 것은 기본적으로 신뢰관계가 형성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번 성과금사태도 가장 큰 원인이 불확실한 신뢰관계에서 출발했다고 할 수 있다. 현대중공업 사측은 어떻게 노조에 신뢰를 얻을 수 있었을까? 이에 대해 현대중 노사협력 관계자는 "한번에 모든 걸 내 놓은 것이 비결"이라고 말했다.
 현대중에 따르면 매번 벌이는 임·단협에서 회사는 노조에 내 놓을 수 있는 모든 것을 첫번째 교섭에서 제시한다고 한다. 생각밖의 큰 선물에 노조는 처음에는 의심도 하고, 더 받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회사의 제시안을 거부하기도 했지만 "더 이상도, 더 이하도 없다"는 사측의 일관된 주장을 노조도 나중에는 인정하게 된 것이다. 이런 식으로 매년 협상에 임하다 보니 점진적으로 회사에 대한 신뢰가 형성된 것이다.
 현대중 노사협력실 관계자는 "통상 1차 제시안을 내고 조합원의 여론을 파악한 후 추가 안을 제시하는 협상 관행에서 탈피, 노조 요구에 대해 회사의 경쟁력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만족할 수 있는 최선의 안을 제시함으로써 조합원의 신뢰를 쌓아 왔다"고 밝혔다.
 이번 성과금사태에서 현대차 사측이 일정부분 잘못이 있다는 부분도 바로 이 점이다. 회사는 성과금 차등지급이라는 원칙을 내세우며 납품비리로 약해진 집행부와 '무노동 유임금'의 관행을 일시에 바꾸려 했다. 조합원들이 사측에 대한 신뢰를 형성할 만한 시간적 여유가 없었던 것이 사태를 더욱 악화시켰다는 해석이다.
 
 ▲업계 최고  후생복지정책
 현대중공업은 지난 90년대 초 대단위 아파트 신축 및 재건축을 통해 총 1만6천여세대의 사원아파트를 건설해 시중보다 30% 저렴한 가격으로 분양함으로써 직장인들의 가장 걱정거리인 '내집마련'을 해결해줬다. 신입사원들을 위해서는 총 2천호실에 달하는 현대식 기숙사를 제공하고 있다.
 이들 주거공간 주위에는 전통 정자공원과 이국적 정취의 분수공원이 어우러진 예술공원과 산책로, 체육공원 등을 조성하여 쾌적한 생활환경을 가꾸었다.
 이와함께 한마음회관, 현대예술관 등 총 6개 대형 문화예술회관을 건립해 직원과 가족의 다양한 재교육과 여가생활, 문화예술 욕구를 충족시키고 있는데, 각종 취미교실, 스포츠, 공연, 전시회를 연중 싼 가격으로 이용할 수 있게 했다.
 인근에 총 7개면의 4계절 푸른잔디축구장을 건설하여 임직원들이 연중 이용할 수 있도록 개방했고, 인근 바닷가에 3개소의 하계휴양소를 비롯해 전국 유명 휴양지별로 약 60여개의 휴양시설을 무료로 이용토록 했다.
 또 회사 인근에 과학대학교(울산과학대학)를 설립, 사원자녀와 가족을 대상으로 한 교양과정, 직원을 위한 직장인과정을 개설하여 배움의 기회를 폭넓게 제공하고 있다.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이러한 대규모 투자로 이 회사가 위치한 울산 동구는 '방어진 공화국', '현대시' 또는 '울산의 특구', '한국의 싱가포르'라는 별칭을 얻고 있다.
 반면 현대차가 위치한 울산 양정동과 인근 염포동, 효문동 등은 울산시민들이 가장 꺼려하는 곳 중 하나이다.
 
 ▲꾸준한 고용 안전정책
 현대중공업은 조선사업을 비롯해 플랜트, 해양, 엔진기계, 전기전자, 건설장비 등 모두 6개의 사업분야로 이루어져 있다. 일부 사업부문의 경우, 국내외 경기의 침체로 인해 적지 않은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하지만 이 회사는 고용을 경영의 제 1목표로 삼아 창사 이래 지금까지 단 한 명도 인위적으로 해고하지 않았고, 어려울 때일수록 고용안정 정책을 철저히 지킬 것을 조합원에게 약속했다.
 지난 90년대 중반 IMF 당시 줄줄이 도산하는 기업들, 정리해고 등 구조조정을 통해 자생력을 갖추는 기업들을 보면서 직원들은 안정된 회사라는 자부심을 갖게 되었다.
 현대중공업의 이같은 정책들을 살펴보면 원칙적용과 신뢰관계 형성에 얼마나 많은 시간과 돈, 그리고 노력을 투자했는지 잘 나타나있다.
 현대차도 이번 성과금사태와 관련해 신뢰형성에 노력해야 할 것이다. 노조 박유기 위원장도 사측의 장기적인 비전이 없기 때문에 파업이 잦고 격할수 밖에 없다는 언급을 하기도 있다.
 '원칙을 바로 세우겠다'는 강경한 자세는 분명 변함이 없어야겠지만 회사는 분명 조합원들의 신뢰를 얻기 위한 노력도 함께 해야 할 것이다.  박송근기자

 

 ■현대중공업 노조 일지
# 1987년- 노조설립 7, 8월 노동자 대투쟁. 중장비 동원 시청까지 가두시위
# 1988년- 12월 12일 총파업 돌입(89년 3월까지- 128일 최장기 파업)
# 1989년- 3월 1만5천명 공권력 투입(육,해,공 입체작전) 강제해산
# 1990년- 4월 1만5천명 공권력 투입(육,해,공 입체작전). 5월 골리앗 농성 해제
# 1991년- 4월 단협시작. 9월 임협합의
# 1992년- 부분·지속적 동맹파업
 1993년- 현총련 공동투쟁. 직장폐쇄
# 1994년- 6월 골리앗투쟁 및 LNG선상파업 63일간. 직장폐쇄. 무노동무임금 첫 적용. 이갑용 노조위원장 구속·해고
# 1995년~2006년까지 12년 연속 무분규 달성

저작권자 © 울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