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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로이트는 69세부터 83세까지 턱에 생긴 암 때문에 23차례나 수술을 받았지만 최후까지 저술 작업을 쉬지 않았다. 사법자제론을 주창한 법학자 올리버 웬들 홈스는 93세 생일에 플라톤의 책을 읽다가 축하를 전하러 온 루스벨트 대통령에게 왜 그 책을 읽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그러자 그는 "수양하기 위해서"라고 간단하게 대답했다. 미국의 민속화가 그랜드마 모제스는 67세부터 그림을 그려 80세 때 처음으로 개인전을 개최했고, 이후 수많은 명작들을 남겼다.


 인상파의 창시자 모네가 그 유명한 연꽃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것도 60세가 넘어서였다.
 존 스튜어트 밀은 70세 때 그리스어를 배우기 시작했다. 보는 바와 같이 노년은 여생(餘生)이 아닌 새로운 시작이다.


 "나이가 든다는 것도 '시작하다'의 참뜻만 잊지 않으면 멋진 일이다"
 즉 서른 이전이 젊음을 내세운 꽃이라면, 쉰 이후의 꽃은 '진실의 꽃'이다. 그리고 그 꽃의 아름다움은 젊음도 감당해내지 못한다. "한 송이 꽃을 극찬할 때, 그 꽃이 시든다는 사실도 유념해야 한다. 그 시듦은 꽃보다 우위의 것이다. 꽃이 시드는 것은 즐거운 일이지만, 꽃피지 않은 초목이 시드는 건 그리 즐거운 일이 아니다. 꽃이 핀다는 것이 중요하듯이, 이후 그 시든 모양 또한 중요하다.


 얼마전 기차역 대합실에서의 일이다. 칠순이 되어 보이는 할머니를 배웅 나온 아들이 자판기 커피 두 잔을 들고 온다.
 "나는 차에서 마시는 원두커피가 좋던데" 어머니가 하는 말에 "그건 비싸잖아요?"아들은 눈을 크게 뜬다.
 "그래도 멋있잖아" 차창에 기대어 한잔의 여유를 즐기는 노인의 모습을 상상하면서 저 나이에도 자신의 멋과 낭만을 말 할 수 있는 그 목소리가 내겐 신선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크게 눈 한번 감았다 떴을 뿐인데 흔적조차 없이 사라져가는 내 목소리를 찾아 나서려던 참 이었다.
 여자가 편하려면 벙어리로 사는 수밖에 별 도리가 없다는 어른들의 말씀을 숙명처럼 알고 살았다. 아이들이 커가는 것을 보며 그 나마 고달픈것을 몰랐다.
 다 자라서 모두가 제길 찾아 떠나버린 빈 둥지가 되고서야 텅 비어있는 것은 바로 나 자신임을 알고 공허한 마음을 걷잡을 수가 없었다.
 가정의 한귀퉁이를 지키면서 잃어버린 이름에 볼품없는 주름이 주인 행세를 하고 있다. 손녀가 그리는 이다음에 제가 살 집엔 다른 식구들 방은 다 있는데 할머니 방은 아예 그리지도 않는다.


 저희들의 미래에 할머니란 존재는 보이지 않는 모양이다.
 지금도 나의 위치는 있는 듯 없는 듯 서서히 지워지고 있으니까 말이다.
 노인들이 불편한 몸을 어린아이가 타다버린 낡은 유모차에 쓸어질듯 매달려서 다니신다.


 생활전선에서 한발 물러선 어른들이 모여서 사시는 평수가 작은 아파트촌이다.
 흔들거리는 몸을 돌보는 이도 없이 겨우 혼자 추스르며 사시는 어른들을 보며 현대판 고려장을 떠 올리는 것은 지나친 비약일까.


 하루에 매달려 한 치 앞조차 가늠 못하고 살아온 날들, 그동안 흘린 땀방울은 고스란히 가슴에 한으로 남는다. 할 말이 너무 많아서, 그 말을 들어줄 이가 없어서 입을 다문다. 나이가 웬수야 길게 내뿜는 한숨에 청아하던 목소리는 꼭꼭 숨어버린다. 그 틈에서 어슬렁거리는 나를 본다.


 지워져가는 삶의 끝자락에서 벌떡 일어난다. 다시 나의 목소리를 찾아 두드린 문예대학에서 새롭게 만난 문학은 앞으로 나의 좋은 길동무가 될 것이다.
 늦었지만 뚜벅뚜벅 나의 길을 갈 것이다. 무엇인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은 삶에 신선한 활력이 된다. 잔뜩 움츠렸던 어깨에 힘이 실린다. 이제 겨우 시작이지만 일상 속에서 나만의 세계를 그려보는 것으로 마음은 항상 부풀어 오른다.


 그 기간이 얼마라도 좋다 내가 살아서 숨 쉬는 동안 급하지도 느리지도 않은 걸음으로 기억의 동산을 더듬어가다가 미처 챙기지 못하고 떠나온 주머니 아직도 매여 있는 끈 하나 잡아당기면 숨겨놓은 내 목소리 와르르 쏟아져 나올지도 모르겠다.
 녹슨 목소리 다시 갈고 닦아서 누구라도 마음 놓고 쉬어 갈수 있는 정감이 넘쳐나는 내 존재가 숨 쉬는 그늘을 만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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