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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화루의 복원과 함께 그동안 태화루에 대해 잘못 알려진 사실이 바로 잡혔으면 한다. 어쩌면 울산으로서는 그것이 태화루의 복원보다 더 중요하고 값진 일이 아니랴. 그럼에도 어째서 그 일을 소홀하게 다뤄왔는지가 궁금하다. 물론 태화루의 변천과정을 소상하게 알고 있는 사람들이 꽤 많지만, 시민들에게는 제대로 알려지지 않아 오류가 판을 치고 있기에 하는 말이다.

 근래 출판된 '사진으로 본 울산 100년'이란 사진집에 실린 한 장의 사진이 태화루에 대한 논란의 불씨를 다시 지폈다. '5일장'이란 제목의 일본인이 1909년에 찍은 사진 때문이었다. 책에는 '울산사진문화에서 가장 오래된 작품이다. 현 울산초등학교 앞 도로에 서던 5일장의 모습은 백의민족답게 흰옷이 인상적이다. 멀리 보이는 태화루는 울산의 기상과 멋을 간직하고 있다.'라고 설명해놓았다.

 1909년이란 시점을 놓고 논란이 빚어졌다. 울산의 근대 건축물에 대해 탁월한 연구성과를 내놓고 있는 울산대학교 한삼건 교수는 힘들게 입수한 여러 사진자료 등을 통해 울산도호부의 객사(학성관) 종루(鐘樓)로 쓰였던 누각(태화루)의 당시 상태 등으로 미뤄 1910년 전후의 모습이라고 지난 15일 한 연구모임에서 밝혔다.

 한 교수는 일제강점기 이후 1940년 4월까지 30여년간 존속됐다는 사실을 사진과 동아일보 40년 5월 10일자 4면에 실린 기사를 통해 확인해줬다. 철거사진도 보여줬다. 39년 10월 3일자 1면에도 관련 기사가 실렸다. 40년 5월 초에 울산공립보통학교(현 울산초교)의 강당신축을 위해 굴미화웅(堀米和雄)이란 일본인 군수에 의해 경매에 넘겨져 이채일(李埰一)씨에게 당시 돈 1500원에 팔렸다. 남구 신정동의 학성이씨 월진파의 정자 이휴정(李休亭)으로 탈바꿈한 이유다.

 그러면 여기서 태화루는 어떤 누각을 일컬는 것인가 하는 의문이 생긴다. 지역사 연구에 평생을 바친 김송태(金松泰) 선생은 신라 선덕여왕 12년(643년) 자장율사가 중구 태화동 황모산 아래 반탕골에 지은 태화사의 서남쪽 벼랑에 세워진 문루를 겸한 종루에서 비롯됐다고 말한다. 여말에 왜구의 노략질로 절집은 사라졌으나 문루는 살아 남아 관아에 의해 누관(樓觀)으로서 구실을 했다. 조선 때 그곳을 다녀간 서거정(徐居正)이 한양에 돌아간 뒤에 현판을 써보내와 내걸리므로서 더욱 명성을 얻었다.

 임란 때 태화루가 불탄 것이 정설(定說)로 돼있지만, 각종 읍지류를 살펴보면 사실이 아니라고 한다. 임란 다섯 해 전 선조 20년(1587년) 경에 오랜 풍파로 시달렸는데도 관리를 제대로 받지 못해 자연적으로 허물어졌다. 태화루 편액과 제영(題詠) 현판은 유림(儒林) 한 사람이 보관한 것으로 추정했다. 태화루는 그렇게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임란이 끝나고 현종 때 울산 유림들이 관청에 건의해서 재건된 객사 종루에 그동안 보관돼 오던 서거정이 쓴 태화루 현판을 달고, 원래 태화루의 정서를 회상하면서 새 누관(樓觀)으로 삼았다. 원래 태화루의 이름을 꾸며댔다고 해서 '모칭(冒稱) 태화루'라고 불렸다.

 그 뒤1900년 경에 현판이 낡아 삭게 되자, 때마침 구군대의 해산으로 경상좌병영 남문에 걸려 있던 진남루(鎭南樓) 현판이 사라질 운명에 놓여 그 뒷면에다 누군가 '太和樓'란 글자를 새겨 넣어 새 현판으로 바꿔 달았다. 그리고 1940년 5월 초 일제에 의해 건물이 이채일씨에게 팔려 헐리자 그 현판이 이휴정에 보관돼 온 것이라고 한다.

 이휴정으로 바뀐 모칭 태화루도 원래의 태화루처럼 얄궂은 운명을 맞았다. 지난 1997년 10월 울산광역시 문화재자료 제1호로 지정됐으나, 2003년 9월 화재로 모두 불탔다. 이태 뒤 2005년 6월에 복원됐지만, 원형을 잃은 것이다.

 울산시는 원래의 태화루 자리로 추정되는 중구 태화동 용금소 벼랑 위에 오는 2013년 완공 예정으로 7X4칸 규모의 태화루 복원과 함께 복합역사공원 조성공사를 한창 진행하고 있다. 무려 500억원이 드는 울산으로서는 최고액의 문화재공사다. 하지만 원형을 알 수 없어서 애초부터 다른 곳의 누각을 본뜬 모조품이 될 우려를 낳고 있다. 울산시로서는 이래저래 고민이 깊을 수 밖에 없으리라. 그래도 태화루에 대해 시민들에게 잘못 알려진 오류는 바로 잡는 것이 맨 먼저 할 도리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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