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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악한 폭군이 되어버린 도기웅에게는 추석명절이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다음 날에는 소대별 총검술 훈련이 있었다.
 총검술 훈련이래야 군부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그런 총검술이 아니라 1, 2소대가 편을 갈라 상대소대를 서로 공격하면서 한쪽이 무너질 때까지 무작정 공격하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서로 머뭇머뭇하며 찌르는 흉내로 떼우다가 그것으로 승부가 가려지지 않게 되자 그만 피터지게 싸우게 되었다. 그러다가 몇몇 대원이 비명을 지르며 쓰러지자 도기웅은 훈련종료 신호를 보내는 것이었다.

 3소대원들이 겁에 질려 바라보고 있고 훈련이 아니라 실제로 백병전이나 다름없는 싸움으로 모두가 주저앉게 되었을 때 도기웅은 또 모젤권총을 빼들고 공포탄을 쏘면서 장황한 훈시를 늘여 놓았다.
 2소대원 불과 1소대원 1명이 피를 흘리며 쓰러진체 일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동무들! 이게 바로 당찬 혁명전사가 되기 위해서 거쳐야 하는 훈련이란 말이오. 어제 추석맞이 투쟁에 나갔다가 볼품없는 산송장이 되어서 돌아온 모습을 보고 나는 실망했던 것이오."
 도기웅은 문호자를 지칭하면서 한마디 덧붙이는 것이었다.
 "문호자동무가 부른 노래 '아름다운 봄볕아래서'는 나도 잘 아는 노래요. 북반부의 농민병사가 전선에서 망향에 젖어 부른 노래인데 한마디로 이런 노래, 그리고 비생산적인, 비혁명적인 노래가 산속에 있는 우리에게 무슨 도움이 되느냐 이거요?"

 그는 포악함의 극치에 달한 사나운 맹수가 으르렁 거리듯 거침없이 뱉어내고 있었다. 대원들 모두는 숨을 죽이고 말이 없었다.최주만과 같은 개죽음이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도기웅이 총검술 훈련에서 부상을 입고 치료중인 방을 들어서자 치료를 하고 있던 문호자가 바른자세로 거수경례를 했다.
 "오, 문동무! 여기 있었군요. 내가 그렇지 않아도 문동무를 찾고 있었소. 내방으로 와 보시오."
 문호자는 마지못해 하는 눈치다.
 "알겠습니다."
 문호자는 곧 도기웅의 방으로 들어섰다.
 "문동무! 내가 문동무를 빗대어 한말은 문동무만을 향해서 한소리가 아니오. 우리 전대원이 한치라도 망향이나 심약해지지 말자는 뜻으로 한소리인께니 문동무가 이해하시오"
 "지단장 동무! 나도 하루 이틀, 이 빨치산 생활을 하는것도 아니고 해서 잘 이해하고 있어요. 그러나 빨치산에게도 낭만과 시(詩)적인 감성은 있지 않을까요? 우리도 인간이니까요?"
 "아 글세 내 얘기는…."
 "혁명이나 투쟁이전에 누구나 가지고 있는 인간의 애정조차 까뭉개려 든다면 지단장동무의 지휘방침이 흔들릴 수도 있어요."

 "문동무!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거요? 그런 것이 잘 못 자리 잡으니까 혁명투쟁에도 차질이 온단 말이오. 그러니까 며칠 전 최주만이 같은 얼빠진 대원이 나온단 말이오!"
 "알겠어요. 저를 부른 용건은?"
 "아 네, 문동무에게 사정 좀 하려고 보자고 했소."
 "사정이라니요?"
 "나 도기웅이 지단에서 전대원이 몰아붙여도 문동무만 날 이해하고 알아준다면 되는것이오. 이래도 나 괜찮은 놈이오. 우리 호상간에 그렇게 지냅시다."
 도기웅은 문호자의 손을 잡으려 했다. 문호자는 홱 돌아서버린다.
 "어허 어허, 문동무 난 두 번 다시 말을 하지 않는다오. 말 보다는 손이 먼저가는 사람이란 말이오."
 도기웅은 옆구리에 찬 권총에 손을 갖다댄다.
 문호자는 더 날카로워진다.
 "그럼 나도 그 총받이가 된다는 거에요?"
 "아아니…문동무를 어떻게…."

 도기웅이 문호자를 끌어당기려 한다.
 "이거 놓으세요! 이건 혁명정신을 벗어난 행동이에요!"
 문호자는 도기웅에대한 저주스런 감정을 마구 쏟고 있었다.
 "아! 어느 동무의 말을 들으니께니 문동무는 최주만동무와 특별한 관계에 있었다던데…그것 때문에 날 부정적으로 보는거요?"
 문호자는 섬뜩 놀라는 눈치다.
 "아! 그게 맞다는 얘기로군. 그러믄 일찍이 나에게 말을 했어야지. 대체 어떤 관계야요?"
 문호자가 쓴웃음을 지으며 그를 쳐다보자
 "문동무! 이잔 어쩔수 없는 일이잖소. 정말 그만큼 깊은 관계에 있었기나 했소?"
 "…"

 문호자는 말이 없다.
 "그래요, 깊은 관계가 있던 사람이었어요."
 "어떤 관계? 어디 한번 들어보자구요"
 "예, 말해주리다. 최주만 동무는 나와 혼인을 약속한 약혼자였단 말이오. 우린 백년을 가약한 사이였어요."
 "아 이거 문동무! 내가 미안하오. 미안하게 되었소. 그리고 이왕 최주만 동무는 갔지 않았소. 잊어버리시오. 그만 잊어버리시오! 그것이 문동무를 위해서나 우리 지단을 위해서도 잘 평가할 일이 될 것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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