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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겸보다 후대의 언양 출신 천사(泉史) 송찬규(宋璨奎, 1838-1910)도 반구대 주위의 빼어난 풍광을 읊은 시를 남겼다. 송찬규는 언양에 귀양왔던 정몽주의 덕행을 사모해서 그를 추모하고 현양하는 데에 앞장섰던 한말의 선비다.
반구대 인근에는 포은을 기리는 기념물이 산재해 있다. 그 가운데 반구서원 건너편에 있는 유허비 3기도 송찬규의 흔적이 남은 곳이다. 유허비란 한 인물의 옛 자취를 밝혀 후세에 알리고자 세우는 비석인데, 포은대영모비와 포은대실록비, 반고서원유허비실기 등이 그것이다.
포은대영모비는 송찬규가 유학자 권필운과 함께 1885년 비문을 짓고 자신이 글씨를 썼다. 또 포은대실록비도 1890년 송찬규가 비문을 짓고 글씨를 썼다.
때문에 정몽주가 즐겨 찾은 반구대와 작천정이 널리 알려졌다. 그의 또 다른 아호는 정몽주를 추모한다는 뜻의 모은(慕隱)이다.
송찬규가 남긴 모은대시집(慕隱臺詩集)에는 반구대 아홉 굽이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반계구곡음(磻溪九曲吟)'이 실려 있다. 서시와 일곡에서부터 구곡까지를 읊은 열 편의 시로 이뤄져 있다. 서시는 반계의 물줄기를 찾은 정몽주를 그리워한 내용으로 돼 있다. 나머지는 범서 곡연(曲淵)마을과 언양 태기리 옹태(甕台)마을의 풍광과 반구대 주변의 아름드리 암벽과 계류를 노래한 것이다.
일곡(一曲)은 <시내가 깊어 곡연(曲淵)을 거슬러 오르는데/남으로 흐르는 물줄기가 와서 북으로 흐르는 시내와 만나네./징검다리는 들쭉날쭉하고 바위는 연기에 싸여 있으니/누가 물이 발원하는 곳에 별천지가 있음을 알리요?>라고 돼 있다. 육곡(六曲)은 <옹태(甕台)를 둘러싼 층진 봉우리인데/하늘에 가득한 바람과 달빛이 물가에 내려오네./한 해 봄의 풍광이 시내와 산 속에 있으니/새들이 즐거워할 때에 꽃은 절로 피어나네.>라고 했다.
칠곡(七曲)은 <멀리 깊숙한 대곡(大谷)이 바라보이는 곳인데/언덕 동쪽머리의 뽕나무와 삼은 봄빛이 한창이네./아침안개가 걷히면 푸른 산이 우뚝하고/밤비가 내리면 계곡 물이 푸르네.>라고 했다. 마지막 구곡(九曲)은 <옥을 씻은 듯한 물가의 맑은 물결인데/선생의 돈대가 옛날의 반구대에 우뚝하네./비래봉에서 내려온 바위산이 천 길인데/삼현(三賢)의 영모비(永慕碑)가 백세토록 이어지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