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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북구 매곡 마동마을 350년생 '소태나무'

'소태를 씹은 표정이다'거나 '소태같다'는 말을 들어보았을 것이다. 마뜩잖은 모습을 짓고 있는 것을 '소태를 씹은 표정'이라고 한다. '소태같다'는 말은 몹시도 쓰다는 것을 나타낸 말이다. 거기서 쓰인 소태는 바로 소태나무에서 비롯됐다. 소의 태처럼 지독히 쓴맛이 나서 그런 말들이 생겨났다. 소태나무는 우리 나라 어디에서나 잘 자라는 잎 떨어지는 큰 키 나무로, 암수 딴 그루다. 노거수로 자라난 것을 흔하게 볼 수 있을 것도 같은데도 그렇지가 않다. 소나무와 느티나무와 회화나무와 은행나무와 팽나무 등의 노거수는 많지만, 유독 소태나무 노거수는 드물다. 소태나무 노거수를 보기가 힘든 것은 그 쓰임새와 생태특성이 가장 큰 원인이다.

 

   
▲ 북구 매곡동 마동마을 당산목인 '소태나무'. 수령이 300~350년으로 추정되는 만큼 우람한 줄기와 무성한 잎이 굴곡진 세월을 그대로 나타낸 듯하다. 유은경기자 usyek@

양지바른 산 골짜기나 중턱서 잘 자라
옛부터 껍질·열매등 약재로 널리쓰여

노거수로 살아 남기 위해서는 생태특성이 아주 중요하다. 소태나무는 산에서 주로 자라는데다, 다 자라야 그 키가 10m를 겨우 넘을 뿐이다. 또 노거수의 주요 기능인 마을의 정자나무나 당산나무로 심기에도 적절하지가 않다. 그렇다고 종교단체나 양반계층의 품격과는 어울리지가 않았다. 절이나 서원이나 명문가의 저택에서 터를 잡기가 힘들었던 이유다.
 또 다른 원인은 예부터 잎이나 목질부가 한약재로 널리 쓰였으므로, 노거수로 자라 날 틈이 없었다. 노거수로 채 자라기도 전에 가지가 잘리거나 몸통이 베어져 약재로 만들어졌다. 요즘도 웰빙바람을 타고 한약재로 쓰이기 위해 심어지고 있다. 그러므로 소태나무는 태어날 때부터 노거수로 자랄 수 없는 운명을 지니고 있었던 셈이다.
 소태나무는 볕이 잘 드는 산골짜기나 중산간 지역에서 주로 자란다. 키는 보통 10~12m 가량 곧게 자라, 가지가 층을 이루며 수평으로 퍼진다. 껍질은 흑갈색이며, 어린나무는 마름모 모양의 껍질눈이 있고 자랄수록 껍질이 세로로 갈라진다. 6월 경에 황록색의 꽃이 피며, 수꽃은 4~5개의 꽃잎과 4개의 수술이 있고 암꽃은 암술머리가 4개로 갈라진다. 가을에 잎은 황색단풍이 든다.
 소의 태처럼 지독히 쓴맛이 나는 것은 쿼사인(quassin)이란 성분을 함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고목(苦木)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잎과 목질부와 열매는 소화불량과 위장·인후·편도선염 등의 증상에 치료제로 쓰인다. 옛날에는 어머니가 아기의 젖을 뗄 때에 쓰였다. 젖꼭지에 소태나무 수액을 발라 젖을 떼던 것이다. 민간에서 소태나무를 집 주변에 길렀다.

   
▲ 안동의 천연기념물 지정 소태나무에 버금가는 자태를 자랑하는 마동마을 소태나무는 지난 2000년 북구청이 보호수로 지정했으나 별다른 관리가 없는 실정이다.


 그런 쓰임새에도 불구하고 소태나무의 노거수는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이름을 떨치고 있는 노거수 소태나무라야 전국적으로 손가락을 꼽을 정도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300여 곳의 노거수 가운데 소태나무는 딱 한 그루다. 소나무는 무려 40여 그루나 되고, 은행나무 20여 그루, 느티나무 16그루에 비하면 턱없이 적다. 노거수 소태나무라야 손을 꼽을 정도인 터에 천연기념물로 지정될만한 것이 있으랴.
 소태나무 가운데 유일하게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것은 경북 안동시 길안면 송사리 길송분교 뒤뜰에 있는 400년생 소태나무다. 1966년 1월에 천연기념물 제174호로 지정되었다. 키는 14.6m이고, 가슴높이 둘레는 3.2m(동), 2.3m(서)다. 성황당과 함께 회화나무와 팽나무와 말채나무와 섞여 작은 숲을 이루고 있다. 마을의 당산숲이다. 당산숲에 있은 덕분에 노거수로 클 수가 있었다.
 그 소태나무보다는 못해도 대구 달성군 유가면 가태리에도 노거수 소태나무가 있다. 나이는 200년. 키는 8m이고, 가슴높이 둘레는 70㎝다. 마을의 입구에 있으면서, 드물게 정자나무로 쓰이고 있다.
 그들 두 소태나무에 견줄만한 노거수 소태나무가 울산에도 있다. 어쩌면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안동의 소태나무에 맞먹을만한 수형을 갖추고 있다. 나이와 키는 그것만 못해도 수세라든가 모양은 결코 뒤지지 않는다. 바로 북구 매곡동 마동마을의 당산나무인 350년생 소태나무다. 울산의 노거수 280여 그루 가운데 소태나무로는 유일하다.
 

동네당산목 수백년 위용 마동 노거수
안동 천연기념물 못지않은 자태에도
기껏 보호수 이름 달랑…서러운 신세

 

   
▲ 무성한 줄기가 만들어내는 나무그늘에서 더위를 식히고 있는 할머니의 모습에 여유와 한가로움이 묻어난다.

북구 농소동의 호계를 거쳐 매곡천을 옆에 끼고 마우나오션리조트 방면으로 달리다가 농소어린이집 근처에서 매곡천을 연결하는 다리를 건너면 남쪽에 있는 대하아파트와 으뜸아파트를 만난다. 그 일대가 바로 매곡동 마동마을이다. 그곳에서 동대산 아래까지 연결된 비좁은 길을 따라 들어가면 시내버스 종점이 나온다. 30여m 떨어진 북쪽에 마을 당산숲이 자리잡고 있다. 당산숲의 으뜸목이 바로 당산나무인 소태나무다.
 주변은 낡은 옛 집과 비포장 옛 길이 제대로 정비되지 않은 채 급속하게 도시화가 이루어져 온통 혼란스럽다. 더욱이 새로 수십층 짜리 고층아파트가 지어지고 있어 난장판이 따로 없다. 그런 한편으로 아직도 탱자나무 울타리를 한 감나무밭 등이 남아 있어서 시골의 정취를 느끼게도 하지만, 머잖아 개발바람이 결코 비켜갈 리가 없으리라.
 매곡동(梅谷洞)은 본래 조선 때 풍수지리의 대가 성지(性智) 스님이 땅의 형상이 '매화가지를 드리운' 형국인 '매화낙지(梅花落枝)'의 명당이라고 하면서부터 매곡이란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괴목(槐木)인 회화나무가 있었던 것에서 연유한 괴정(槐亭)과 신기(新基)와 매곡(梅谷)과 마동(麻洞) 등 네 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마동(麻洞)마을은 처음에는 인삼(人蔘)을 재배했기에 삼밭(蔘田)이라고 불리었다. 그 뒤 삼밭(麻田)으로 바뀌면서 삼(麻)이 마(麻)이므로, 마을 이름도 자연적으로 마동(麻洞)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100여평 가량의 당산숲에는 맨 앞에 남향한 성황당이 자리잡고 있다. 성황당은 기와지붕에 외벽은 콘크리트이고, 앞에 알루미늄으로 문을 갖추고 있다. 성황당 뒷 벽에 바짝 붙어 당산나무 소태나무가 자라고 있다. 그리고 바로 뒤에 주민의 살림집으로 이용되는 콘테이너가 놓여 있고, 뒤쪽에 소나무 여덟 그루와 팽나무와 은행나무와 감나무 등 열대여섯 그루의 나무가 둘러싸고 있다.
 당산숲 앞쪽에 북구청이 소태나무를 보호수로 지정한 표지석이 세워져 있다. 내용은 '지정번호 12-33. 지정일자 2000년 12월30일. 수종 소태나무. 수고 12m. 수령 350년. 나무둘레 3.87m(흉고 1.28m). 소재지 북구 매곡동 209번지(마동마을)'로 돼 있다.
 반면 울산생명의숲이 밝힌 자료에는 '추정수령 300~350년. 수고 10.5m. 가슴높이 둘레 2.1m, 1.98m, 1.82m. 뿌리부분 둘레 3.83m, 1.99m. 수관폭 13.7m'로 돼 있다.
 땅 위에 드러난 소태나무의 뿌리는 기묘한 모양을 하고 있다. 마치 이무기가 혼신의 힘을 다해 승천의 순간을 맞는 모습이다. 하지만 하늘로 훨훨 날아올라 용이 되려는 소망이 끝내 실현되지 못하고, 지상에 주저 앉아 또 다시 수백년 세월을 견뎌야 하는 안타까움이 물씬 배어 있다. 그 비운의 모습에서 천지간의 업(業)이 제 노력만으로 이루어지지 않음을 알게 한다. 시운(時運)이 맞아야 이루어짐을 실감한다. 이무기의 비운을 상징하듯 외과수술한 흔적이 크다.
 밑둥치는 지면에서부터 둘로 나뉘었다. 남동쪽의 것이 크고, 북서쪽은 그 절반 가량 된다. 북서쪽 것은 1m쯤 높이에서 다시 두 개의 큰 줄기로 나뉘었다. 한 개는 곧게 올라 80㎝ 높이에서 네 개의 가지로 나뉜 뒤에 맨 서쪽 것은 다시 두 개의 가지로 나뉘었다. 아래쪽 곳곳에는 외과수술한 흔적투성이다. 한 곳에는 가지가 처지는 것을 막기 위해 철제 받침대를 받쳐 놓았다.
남동쪽 것은 30도 가량 굽어져 뻗어 올라 두 개의 큰 줄기로 나뉘었다. 당집을 온통 뒤덮은 가지가 처지는 것을 막기 위해 두 곳에 역시 철제 받침대를 받쳐 놓았다. 또 큰 가지와 가지를 철사줄로도 묶어 놓았다. 가지와 잎이 사방으로 고루 퍼져 원만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듯 하지만 전체적으로 앞쪽 성황당을 뒤덮은 뒤 남쪽으로 쏠린 편이다. 그 대신 뒤편인 북쪽은 조금은 빈 느낌을 준다. 그러나 뒤쪽의 키 큰 소나무를 비롯한 다른 나무들이 받쳐줘 그런대로 균형잡힌 모습이다.
 당산숲 앞 남동쪽에서 바라보는 것이 가장 좋다. 알맞춤한 키에 사방으로 균형 있게 뻗은 가지와 잎이 마음을 풍성하고도 원만하게 만들어준다. 더욱이 잎이 워낙 무성하여 짙은 녹음을 만들어 준다. 사상 유례 없이 따갑게 내려쬐는 8월의 햇살이 비집고 들어 올 틈도 결코 허락하지 않는다. 소태나무의 그늘이 그만큼 넓기 때문인가. 푸른 바람이 분다.
 마동마을 소태나무는 이름값에 걸맞는 대접을 받지 못하고 있다. 나라 안에서 그만한 소태나무는 안동 길안의 소태나무 밖에 없는데도 말이다. 북구청이 기껏 10년 전에 보호수로 지정했을 뿐이다. 다른 광역단체처럼 울산광역시가 노거수에 대해서도 지방기념물로 지정하는 등 실질적인 보호대책을 마련했으면 한다. 마동마을의 노거수 소태나무는 세상의 썩은 정신들에게 소태나무의 쓴맛을 알게 한다. 소금으로 기능하는 것이다. 세상이 올바로 나아가게 하는 길이 아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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