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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주 석장동 암각화는 검과 창의 요소를 갖춘 추상적이고 기하학적 문양 27점이 새겨져 있는데 훼손이 심해 자세한 형상을 찾아보기 힘들다.


암각화는 선사시대 인류의 살았던 모습을
엿볼 수 있는 중요한 유적이다.
암각화의 위치와 제작 기법, 시기, 암각화에 등장하는
대상들을 통해 그들의 삶의 단편을
유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주로 남부 지방을 중심으로
암각화가 발견되고 있다.


현재 알려진 우리나라 암각화는
울산 울주군 대곡천에서 발견된 반구대 암각화와
천전리 각석을 비롯, 고령 양전리, 포항칠포리,
영주 가흥동, 남원 대곡리, 영천 보성리,
경주 석장동 등 모두 18곳 가량이다.
하지만 이들 암각화들 중
반구대 암각화와 천전리 각석을 제외하고는
세인들의 주목을 크게 받지 못하고 있다.
특히 문화재 당국과 지방자치단체의
허술한 관리 속에서 유산의 가치를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경주와 고령, 칠포리 암각화를 통해
국내 암각화 유산의 실태를 살펴보았다.

   
▲ 경주 석장동 암각화는 형산강 지류인 북천과 서천이 만나는 합류지점 절벽위에 새겨져 있다.


남쪽 수직단면 6개에 집중 분포...훼손 심해 비전문가 찾기 어려워

#경주 금장대 암각화
지난 1994년 동국대 고고미술사학과 유적조사팀이 발견한 금장대 암각화는 형산강 지류인 서천과 북천이 만나는 '애기소' 북쪽 바위벽에 그려진 것이다. 금장대는 경주지방의 선비들이 풍류를 즐기던 정자의 이름이지만, 지금은 암각화가 있는 산의 이름으로 쓰이고 있다. 동국대 옆으로 난 길를 따라 금장교쪽으로 가다보면 우측에 석장동 암각화라는 이정표가 보인다. 사람들의 발길이 뜸한 탓인지 초입부터 잡초가 무성해 접근하기가 어려웠다.
 암각화는 금장대 남쪽의 수직단면 6개에 집중되어 있다고 하지만 훼손 정도가 심해 비 전문가의 눈으로는 그 형상을 찾는 것 조차 어려웠다.

 선사시대의 것으로 추측되는 암각화는 강물에서 약 15m 높이의 수직 절벽 윗부분에 가로 약 2m, 세로 약 9m되는 범위에 새겨져, 추상적이고 기하학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모두 27점이 확인되었는데, 기하문 8점과 검과 창의 요소를 갖춘 그림 11점, 발자국 4점, 여성의 성기 3점, 배 1점, 그외 동물모습과 해석이 어려운 그림 등이 있다. 서로 조금씩 형태를 달리하고 있지만 기본은 방패 모양과 도토리 모양, 꽃 모양으로 나눌 수 있는데, 이 가운데 도토리 모양과 꽃 모양의 그림은 다른 지역의 바위그림에서는 볼 수 없는 이 지역만의 독특한 특색이다. 특히 검과 결합된 여성기의 그림 등은 칠포리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으로 추정된다.

 이렇듯 석장동 암각화는 다양한 소재들이 한데 섞어 나타나는데, 다른 곳의 신상 암각화들이 하나의 바위 면에 한 가지 신상만 새겨져 있는 것을 감안한다면 매우 독특한 것이다. 경상북도 기념물 제98호로 지정되어 있다.

   
▲ 포항 북구 칠포인근 곤륜산에 흩어져있는 칠포리 암각화는 검의 손잡이 문양에 별자리르 새긴듯한 성혈을 새긴 것이 특징이다.


보존 노력 주변정리·안내문이 전부...주차장 없고 큰 안내판 아이러니

#칠포리 암각화
포항 북구 흥해읍 작은 어촌마을에서 발견된 칠포리 암각화는 대곡천의 반구대와 함께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암각화다.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249호. 칠포리 암각화는 경주 금장대 암각화와는 달리 보존의 노력이 보였지만 단지 암각화 주변 정리와 안내문이 전부였다. 칠포리 암각화중 제일 대표적인 암각화는 도로에서 100m정도 산속에 위치해 있었다. 작은 이정표 하나가 전부였다. 별도로 마련된 주차공간조차 없이 입구 수산물 가공공장에 차를 대야하는 불편을 감수해야 한다. 공장에서 이어진 샛길을 따라가다보면 암각화에 비해 우스광스럽게 큰 안내판을 만난다. 암각화는 작은 계곡을 끼고 양쪽으로 흩어져 분포해있다.

 그림을 새긴 바위는 모두 세군데인데 계곡 옆으로 툭 불거져 나온 바위면과 6m가량 떨어진 계곡에 하나, 그리고 20m 떨어진 곳에도 암각화 바위가 하나 있다. 제일 큰 암각화는 돌출부 앞부분을 거칠게 쪼아서 평탄한 면을 만든 후 서쪽면 전체에 6개의 같은 모양(검의 손잡이)의 그림을 꽉차게 새겨 넣었다. 계곡의 바위는 원위치에서 떨어진 것으로 보였는데, 역시 서쪽면에 2개의 같은 모양의 그려져 있다.
 20m 떨어진 곳에 있는 것은 작고 미완성된 상태이다. 쪼아파는 방법을 사용하여 선으로 그림을 새겼는데, 가운데가 좁고 위아래가 벌어지는 실패 모양의 좌우에 4∼5개의 굽은 선으로 위아래를 연결하고 그 사이 구간마다 알구멍 '성혈(性穴)'을 새겨두었다.

 오도리 쪽으로 방향을 잡고 2㎞정도 달리면 도로가에 작은 울타리를 한 또하나의 암각화를 만난다. 바위는 가로 3m 정도 세로 2m 정도의 크기로 작고 아담했지만, 그림의 형체는 쉽게 알아 볼수 없을 정도로 훼손돼 있었다. 칠포리 바위에 새겨진 그림은 대부분 추상적인 도형들로 이 역시 청동기시대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실제 곤륜산 주변에는 많은 고인돌이 흩어져 있어 청동기시대와의 연관성을 증명해주고 있다. 칠포리 일대에서는 곤륜산을 포함해 모두 일곱 군데에서 암각화가 발견됐다.

   
▲ 국내 암각화중 유일하게 보물로 지정된 고령 양전동 암각화, 동심원, 십자모양등을 새긴 것으로 청동기후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동심원·십자형·가면모양 등...선사문화 연구 귀중한 자료

#고령양전동암각화
양전동 암각화는 경북 고령군 고령읍 장기리 알터 마을 입구에 있는 높이 3m, 너비 6m의 암벽에 새겨진 바위그림이다. 알터마을은 뒤편으로 적림산의 산줄기가 기대어 있으며, 앞쪽으로는 낙동강의 지류인 회천이 감도는 곳에 있다. '알터'라는 이름으로 미루어 난생설화와 관련성이 있는 곳이 아닌가 생각된다.

 바위그림은 동심원, 십자형, 가면모양 등이 있는데, 동심원은 직경 18∼20㎝의 삼중원으로 총 4개가 있다. 동심원은 태양을 상징하는 것으로 태양신을 표현한 것으로 본다. 십자형은 가로 15㎝, 세로 12㎝의 불분명한 사각형안에 그려져 있어 전(田)자 모양을 하고 있다. 이는 부족사회의 생활권을 표현한 듯하다. 가면모양은 가로 22∼30㎝, 세로 20∼40㎝로 머리카락과 수염같은 털이 묘사되어 있고, 그 안에 이목구비를 파서 사람의 얼굴을 표현한 것으로 부적과 같은 의미로 새긴 듯하다. 상징과 기호를 이용해 제단을 만들고 농경을 위해 태양신에게 소원을 빈 농경사회 신앙을 표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근처에 있는 금산령 석기 유적과 고인돌 유적에서 출토되는 석기와 토기를 통해 청동기시대 후기(B.C 300∼0)에 만들어진 암각화로 짐작된다. 선사시대 사람들의 신앙과 사회생활 등 선사문화 연구에 귀중한 자료이며, 조각사와 회화사 연구에도 소중한 자료로 평가된다.

   
▲ 칠포리암각화는 곤륜산일대에 흩어져 있는데 작은 계곡옆 세곳의 바위에 새긴 것이 가장 대표적이다.


반구대·천전리 문화재 독보적 가치...암각화 전시·연구공간 확충 시급


#대곡천 암각화군 한국 암각화 유산의 중심
반구대 암각화와 천전리 각석은 우리나라 암각화 중 가장 탁월한 가치를 지닌다. 암각화에 사실적으로 새겨진 고래그림과 동물, 사람 그림은 다른 암각화에서 찾아볼 수 없는 특별함이다. 천전리 각석의 갖가지 문양은 우리나라 남부 지방에서 발견된 암각화 문양을 대부분 포함하고 있다. 두 유산 모두 우리나라 암각화를 대표할 수 밖에 없는 그야말로 '국보'인 것이다.

 반구대 암각화 암각화박물관에는 우리나라 여러 암각화 모형을 전시하고 있다. 우리나라 암각화 유산의 중심이 되겠다는 시도다. 하지만 우리나라 암각화에 대한 연구수준은 아직 걸음마 단계다. 세계 암각화 유산과의 비교 연구는 물론, 국내 암각화들에 대한 비교연구 조차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반구대암각화 박물관이 우리나라 암각화 유산의 진정한 보고가 되기 위해선 많지 않은 우리나라 암각화 유산을 함께 아우를 수 있는 전시 및 연구 공간이 반드시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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