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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수산 등산로를 따라 2km쯤 가면 정골약수터가 나온다. 약수터 20여m 아래쪽 풀밭에 250년생 노거수 산돌배나무가 있다. 이창균기자 photo@ulsanpress.net

근래 가을 등산길에서 좀처럼 잘 익은 돌배나무나 산돌배나무를 만날 수가 없다.
한 입 베어 물면 입 안에 가득 고이는 그 향기롭고 달콤한 맛을 어찌 잊을 수가 있으랴.
봄에는 천지간을 화사하게 수놓는 흰꽃물결을 이루고,
가을이면 맛깔스러운 과일을 매달고 있는 모습이 눈에 삼삼 맺힌다.

배나무에는 여러 종류가 있다. 산과 들에서 자라는 우리 나라의 야생배나무가 있고, 과일나무로 재배되는 품종이 있다. 과수원에서 재배되는 것은 외국에서 도입됐거나 국내에서 개발된 품종이다. 야생종 가운데에는 돌배나무나 산돌배나무가 가장 자주 만날 수 있는 것들이다.
 산돌배나무 노거수는 나라 안에서도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그동안 보호의 손길을 제대로 받지 않은 탓에 무수히 베어져 사라졌다. 노거수 산돌배나무를 울산에서 만날 수가 있다. 그와 함께 청실배나무 노거수도 울산에서 자라고 있다. 울산과 배나무의 인연이 오래 됐음을 나타냄이다.

 

 

   
▲ 정골약수터 250년생 산돌배나무.

 


   문수산자락 정골약수터 아래쪽 둥지
   울산과 배나무 수백년전부터 인연


 울산의 배는 공단으로 만들어지면서 지금은 옛날만은 못하지만, 오래 전부터 그 명성이 높았다. 울산 배의 역사는 조선 초로 거슬러 올라간다. 1454년에 발간된 세종실록지리지에 울산의 토산물에 포함돼 있었다. 때문에 그 휠씬 전부터 야생종과 관상용으로 배가 재배된 것으로 추정할 수가 있다.
 근대적인 배재배는 일본인에 의해 비롯됐다. 1900년경 일본인 구라가따가 울산이 배재배에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음을 확인한 뒤, 지금의 남구 여천동과 삼남면의 2개 농가의 90ha에 일본 품종의 배를 가꾸게 했다. 일제강점기인 1934년에는 주산단지였던 옛 대현면에 대현산업조합이 생기고, 40여 농가가 100ha에 재배했다. 고소득작물로 판매가 엄격하게 제한됐다.

 광복이 되고 1961년까지 최고의 전성기를 누렸다. 고사동과 여천동 등 지금은 공장지대로 변모한 옛 대현면 일대는 온통 배밭이 뒤덮었다. 봄이면 배꽃이 만발해 둥실둥실 꿈 나라에 빠져든 듯 했다. 64년에 일본과 중국에 첫 수출도 했다. 그러다가 공단이 조성되면서 긴 쇠퇴기에 접어들었다.
 70년대 들어 신기술을 바탕으로 변두리로 밀려난 과수원을 재정비해서 재배면적이 무려 8900여ha에 이르렀다. 다시 개발바람에 밀려 1450여ha로 급격하게 줄었다. 그러나 기술개발에 힘써 연간 3만2천여톤을 생산하고, 세계적인 명품 반열에도 들었다. 2005년에는 '울산보배'라는 고유 브랜드를 만들고, 그해 8월에는 첫 미국 수출길도 텄다.

 울산에는 산돌배나무 노거수 한 그루와 청실배나무 노거수 두 그루가 있다. 청실배나무 노거수는 울주군 온양읍 내광리의 200-250년생과 청량면 율리 안영축마을의 150-200년생이다. 산돌배나무는 남구 무거동 문수산자락 아래 정골약수터에 있다.
 정골약수터로 가려면 울산과학대학 옆 남쪽 마을길을 따라 맨 안쪽에 자리잡고 있는 골프연습장을 찾으면 된다. 골프연습장 옆의 현대협성아파트 정문을 지나 문수산 등산로를 따라 2km쯤 가면 정골약수터가 나온다. 약수터 20여m 아래쪽 풀밭에 노거수 산돌배나무가 있다.

 풀밭에 서쪽을 향한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마구 자란 풀섶에 가려 안내판이 잘 보이지 않는다. 풀들을 젖히고 안내판을 읽어 봤다. '고유번호 12-2-8-2. 수종 돌배나무. 지정일자 2002년 5월 11일. 수령 200년. 수고(키) 30m. 나무둘레 2.54m. 소재지 남구 무거동 923번지. 관리자 광주안씨 판사공파 중망성문회'로 돼 있다. 고유번호는 무엇을 나타내는 것인지 알쏭달쏭하다.

 울산생명의숲이 밝힌 내용은 '수종 산돌배나무. 추정수령 200-250년. 수고(키) 13m. 가슴높이 둘레 1.6m, 1.45m. 뿌리부분 둘레 2.72m. 수관폭 15.1m'로 돼 있다. 울산생명의숲은 산돌배나무라고 밝힌 반면 남구청은 돌배나무라고 적어 놓았다. 산돌배나무와 돌배나무는 다 같이 산에서 자라는 야생종으로 비슷한 것 같아도, 다르다고 한다. 키도 남구청과 생명의숲이 다르다. 남구청이 밝힌 30m보다는 작지만, 생명의숲이 밝힌 13m보다는 크다.

 돌배나무는 장미과 배나무속에 속하는 낙엽성 큰 키나무다. 산이나 마을 근처에서도 자란다. 키는 5-20m 가량 자라고, 잎은 달걀 모양의 긴 타원형으로 길이가 7-12Cm, 잎자루 길이는 3-7Cm이다. 4-5월에 피는 흰꽃은 지름이 손가락마디 하나 길이 만큼 큼직해서 보기에 좋다. 수술은 20개 가량 되고, 암술대는 4-5개다. 가을에 익는 열매는 지름이 3㎝ 정도로 작다.

 산돌배나무는 산에서 자라는 야생배나무 가운데 가장 흔한 종류다. 전국적에 걸쳐 분포하지만, 태백산에서 큰 나무가 자란다. 나무 모양은 타원형이고, 키는 10-20m까지 큰다. 나무 껍질은 흑갈색이고 어린 가지는 갈색이다. 잎은 둥근형으로 길이는 5-10Cm다. 광택이 나고 양면에 털이 없으며 침모양의 날카로운 톱니를 가지고 있다. 4-5월에 피는 순백색의 꽃은 지름이 3-3.5Cm다. 10월에 익는 황색열매는 돌배나무보다는 작다.

 산돌배나무에는 잎 뒷면에 잔털이 있는 털산돌배나무와 잎이 넓은 타원형인 금산돌배나무, 꽃이 큰 문배나무, 잎자루와 어린 가지에 털이 있는 남해배나무, 그리고 백운배나무 등 여러 가지 변종이 있다고 알려져 있다.
 돌배나무와 산돌배나무의 목재는 재질이 고르면서 단단해서 쓰임새가 많다고 한다. 고려와 조선 때 출판된 책들은 거의가 두 나무의 목판으로 만들어 펴냈다. 특히 팔만대장경의 목판은 산벚나무 다음으로 두 나무가 많이 쓰였다. 그밖에도 다식판과 염주알, 주판알로도 쓰였다.

 

 

 

 

   
▲ 산돌배나무의 벗겨진 껍데기와 갈라진 나무 사이에 이끼와 풀이 자라고 있다.

 


밑둥치 남북으로 갈라져 좌우대칭
독립수 생육공간 확보 자태 위풍당당
동쪽·정면 말라버린 가지·잎 없어


 정골약수터의 산돌배나무는 아랫도리는 붙어있지만, 지표면에서부터 80Cm 높이에서 밑둥치가 남북 방향으로 두 개로 갈라져 좌우대칭을 이뤘다. 균형이 잘 잡혔다. 풀밭인 생육공간이 충분하게 확보된 상태에다 다른 나무의 간섭 없이 독립수(獨立樹)로 자랐기 때문일 것이다. 딴 나무 없이 홀로 서있기 때문에 등산길을 따라 올라오면 우뚝 서있는 모습이 한 눈에 들어온다. 그 모습이 거침이 없다. 당당하다.
 남쪽 것은 2.5m 지점에서 남으로 작은 가지를 내놓았다. 아래쪽 가지는 부러져 잎들도 말라 버린 상태에서 큰 줄기에 걸처져 있다. 그 조금 위쪽에서 큰 줄기 1개가 곧게 뻗은 뒤에 대여섯 개의 작은 가지를 내놓으면서 위로 우뚝 솟았다. 그리고 다른 1개의 큰 줄기는 북으로 뻗다가 서너 개의 작은 가지로 나뉘었다.

 북쪽 것도 역시 2.5m 높이에서 동으로 두 개의 큰 줄기를 내놓았다. 한 개는 말라 뭉툭하게 잘렸다. 한 개는 동쪽으로 계속 뻗어나가 여러 개의 작은 가지와 잎을 매달고 있다. 고운 맵시가 나무 전체가 보여주는 균형미를 이루는 톡톡히 한 몫을 하고 있다.
 남북으로 나뉜 큰 줄기 두 개는 사이 좋게 자신들이 있는 방향으로 나란히 가지를 내뻗었다. 남쪽 것이 남향한 가지를 내놓으면 북쪽 것도 북향한 가지를 내놓았다. 동향한 가지를 내놓으면 역시 반대편 서향한 가지를 내놓는 방법으로 동서남북으로 가지를 뻗쳤다. 그런 한편으로 땅에서부터 뻗친 줄기는 곧게 솟아 올라 최상층부에서 조화를 이뤘다. 두 줄기가 마치 상의라도 한듯 상하와 좌우로 긴 타원형의 균형 잡힌 원만한 수형을 만들었다. 그만큼 잘 생긴 나무도 드물다.

 산돌배나무가 있는 풀밭에서 나와 정골약수터와 광주안씨 재실 무거재를 지나 60여m 떨어진 정골못 둑에서 바라보는 것이 가장 좋다. 못둑에 서서 아래쪽을 바라보면 산돌배나무의 당당한 모습이 한 눈에 들어온다. 둑 아래엔 이삭이 패기 시작한 벼가 넘실넘실 푸른 물결을 이룬 논이 펼쳐져 있고, 그 건너 풀밭에 산돌배나무가 우뚝 서있다.
 하지만 오른편 동쪽 중간 부분 한 군데가 비었다. 가지와 잎이 없어서 허(虛)한 느낌을 준다. 정면에도 시꺼멓게 말라 버린 가지와 줄기가 드러나 있다. 좌우 비례가 맞지 않는다. 완벽미를 갖추는 것이 그렇게도 어려운가 보다. 한 점 흠결이 없는 절대미란 존재할 수 없음인가.

   산돌배나무 1그루·청실배나무 2그루
   천연기념물급 노거수 보존 급선무


 정골약수터의 노거수 산돌배나무는 국내의 산돌배나무 가운데 유일하게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경북 울진 쌍전리의 250년생 산돌배나무에 못잖다. 천연기념물 제408호 쌍전리 산돌배나무는 키가 20m이고, 가슴높이 둘레는 5.35m이다. 나라에 변고가 있을 때는 '웅웅'하는 소리를 내어 미리 알려주기도 하고, 배가 많이 달리면 그해 농사는 풍년이 든다고 한다. 신목(神木)으로 알려져 있다.

 경북 청도 상리에는 키 18m, 가슴높이 둘레 3.68m의 수령 200년생 노거수 돌배나무가 있다. 경북도가 기념물 제119호로 지정해 보호하고 있다. 울산광역시도 경북도처럼 정골약수터의 노거수 산돌배나무와 두 그루의 노거수 청실배나무를 자체 기념물로 지정해서 보호했으면 한다. 노거수는 학술적인 가치를 지닌 문화재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울산은 오랜 배재배 역사를 가지고 있고, 또 울산광역시의 시화(市花)와 울주군의 군화(郡花)가 배꽃이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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