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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청정(集淸亭). 울주군 언양읍 대곡리 반구대 건너편 길가에 있는 300년 된 정자다. 울산의 15곳의 정자 가운데 원형이 가장 잘 보존되어 있다. 경주최씨인 운암(雲庵) 최신기(崔信基, 1673-1737)가 조선 숙종 40년(1713년)에 고려 말에 언양 요도에 귀양온 정몽주가 반구대를 찾은 이후에 그 빼어난 풍광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것을 애석하게 여겨 건너편 언덕에 별업(別業)을 조성하면서 집청정을 함께 지었다.
 집청정이란 이름은 '집 앞을 흐르는 대곡천인 반계구곡(磻溪九曲)의 맑음을 모으는 정자'라는 뜻을 지녔다. 집청정 편액 외에도 오른쪽에 '청류헌(聽流軒)', 왼쪽에 '대치루(對峙樓)'란 현판이 붙어 있다. 이 정자가 흐르는 물소리를 듣기[聽流]에 매우 좋고, 반구대를 마주 보고 있다는 것[對峙]을 알 수가 있다. 후손들이 일제강점기인 1932년에 중건했으며, 정면 3칸에 측면 1.5칸이다. 정면과 가운데는 마루로 돼 있고, 좌우에는 방으로 이뤄져 있다.
 집청정이 지어진 뒤부터 반구대를 찾는 시인묵객의 숙소로 이용됐다. 한말까지 집청정에 머물면서 반구대의 풍광과 정서를 그린 제영을 남긴 문인만도 300여명에 가까웠다. 그들이 남긴 작품만도 400여편에 이른다. 그 작품을 운암의 후손 최준식(崔俊植, 1909-1979)이 정리하여 한 권의 책으로 묶었다. '집청정시집(集淸亭詩集)'이다. 숙종과 영·정조 때의 문신과 학자도 작품을 남겼다. 경상도 관찰사와 인근지역 고을의 수령들과 각지의 유림도 시집에 이름을 올렸다.
 숙종 때의 문신 권해의 '반구제영(盤龜題詠)'도 실려 있다. <조물주가 어느 해에 이런 기이한 것을 만들었기에/지금까지 산의 뼈대가 거북으로 되었는가?/하늘의 이슬은 신선의 손바닥에 방울지는데/꼭대기의 구름은 도사의 바둑판을 감추었네./못이 검으니 용이 누운 곳임을 분명히 알겠고/달이 밝으니 마땅히 학이 돌아갈 때가 있으리./층진 대(臺)는 한여름에도 매우 시원하고 상쾌하여/기우는 햇살 속에 맑은 술로 말에 오름이 더디네.>
 송도복(宋道復)의 시도 실려 있다. <특별히 신선이 사는 이 곳은 가장 빼어나고 기이한데/천년토록 산의 뼈대가 신령스러운 거북으로 변하였네./창 앞에는 이슬이 삼화수(三花樹)를 적시고/바위에는 이끼가 사호(四皓)의 바둑판을 얼룩지게 하네./구슬 같은 샘물이 지게문을 울리는 밤에는 그 소리를 아끼며 듣고/소나무에 걸린 달이 뜰에 가득한 때에는 그 광경을 기쁘게 보네./선도(仙道)를 찾아 여기에 오른 나그네가 얼마나 되며/누군들 온통 갈 길을 잃고 머뭇거리지 않았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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