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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98년 남구 야음동에서 개관한 울산시 남구노인복지회관. 남구지역 60세 이상 어르신들이 이용하는 시설이다. 3층 단독 건물이었던 이 복지관은 개관 당시 3층에 조그만 휴게실을 만들었다. 가로 5.5m 세로 3m 규모의 이 휴게실은 일부 어르신만 드나들며 바둑·장기를 두면서 시간을 보내던 그야말로 휴게실이었다. 하지만 이 휴게실은 이제 대부분의 어르신들이 이용하는 젊음의 공간으로 변모했다.

   
▲ 남구노인복지회관에는 어르신들이 당구장이라 부르는 휴게실이 있다. 복지관은 과연 어르신들이 당구대를 반길지 일종의 모험을 감행, 당구대가 들어온지 5년이 지난 지금 이 당구장은복지관을 찾는 어르신들의 일등 여가 공간으로 자리잡았다.

휴게실에 당구대…일종의 모험 대성공 
어르신 옷깃마다 번호표…구경도 즐거워
고난이도 기술 자유자제 실력 수준급
여가 즐기고 건강까지 챙기니 일석이조

등록회원 3,000여명, 일일 이용 회원이 500~600명에 달하는 이 복지관은 어르신들이 이용하기에 불편할 정도로 공간이 협소해 지난 2005년 또 하나의 3층 건물을 지으면서 현재의 모습인 2개 동 건물로 증축됐다. 바둑과 장기판이 있던 이 휴게실은 이때 신관 건물로 이동했고, 빈 공간에 당구대가 들어온 것이다.
 당구대가 들어온 것은 그야말로 파격이었다. 당시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의 일부 노인복지회관에 당구대가 있었지만 울산지역에서는 처음이었다. 어르신들이 좋아할 지 알 수 없었기 때문에 당구대 구입은 일종의 모험이었다.
 남구노인복지회관 최연철(39) 총괄부장은 "직원들과 함께 5평 정도의 공간을 어떻게 활용하지 아이디어 회의를 하면서 고민이 많았다"며 "좁은 공간에서 어르신들의 건강도 챙길 수 있는 운동은 당구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최 부장은 이어 "당구대 구입은 당시 어르신들도 그 효과에 반신반의했지만 지금은 가장 좋아하는 놀이가 됐다"며 "할머니들의 실력이 장난이 아니다"고 덧붙였다. 모험은 대성공으로 이어졌다.
 지금도 '휴게실'이라는 푯말이 붙어있지만 아무도 휴게실이라고 부르지 않았다. 대신 어르신들의 입에서는 '당구장'이라는 말이 흘러나왔다.
 당구장으로 발을 들여놓았을 때 입이 딱 벌어졌다. 20여명에 이르는 할아버지 할버니들이 당구장을 가득 채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당구도 그냥 당구가 아닌 고난위도의 기술과 집중력을 필요로하는 포켓볼이었고, 할머니들이 상당수여서 더 놀라웠다.
 큐를 손에 들고 있는 8명의 어르신들은 서 있었고, 나머지 어르신들은 큐 없이 앉아서 게임이 끝나길 기다리고 있었다. 독특한 것은 게임에 나서고 있는 어르신들은 모두들 옷깃에 번호표를 하나씩 매달고 있었다. 당구대가 하나밖에 없어 어르신들이 자체 규정을 만들어 많은 이용자들이 골고루 포켓볼을 즐기기 위한 수단이다. 홀수번호와 짝수번호로 편을 갈라 순번대로 당구를 치는 것이다. 한 게임이 끝나면 대기자들이 번호표를 넘겨받아 3대3 또는 4대4로 대결을 펼치는 방법이다.
 게임에 나선 어르신들의 입가에는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한 큐에 탄성을 한 큐에는 탄식을 마음껏 질렀다. 어려운 샷을 성공했을 때는 하이파이브로 서로를 축하해줬다.

   
▲ 짝수·홀수로 팀을 나눠 순번대로 포켓볼을 즐기는 어르신들.포켓인 성공으로 기쁨의 하이파이브를 하고 있다.

 이날 당구를 즐기고 있던 20여명의 어르신들은 모두 당구경력이 5년 이하였다. 복지관에 당구대가 들어오면서부터 시작했기 때문이다.
 복지관 개관 때부터 회원으로 활동했다는 박귀한(77·야음2동) 할머니는 "예전에는 게이트볼을 즐겼는데 당구장이 생기고부터는 게이트볼을 잘 치지 않는다"며 "게이트볼은 야외 경기여서 요즘처럼 덥거나 추우면 하기 힘든데 당구는 실내 운동이어서 비가오나 눈이오나 아무때나 할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알롤달록 컬러풀한 옷을 입은 박 할머니는 "포켓에 공이 하나하나 들어가는 것을 보면 짜릿함을 느낀다"며 "이용자들이 많은데 당구대가 한 두개 더 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젊은 시절 4구 당구 점수가 150점이었다는 박윤생(70·달동) 할아버지는 "5년전 이곳에서 포켓볼을 처음 배웠다"며 "할머니들하고 편을 나눠 함께 치니까 4구보다 더 재밌는 것 같다"고 말했다.
 복지관 내 자타공인 최고의 고수인 김계수(78·야음동) 할머니는 "당구를 배운 후 자식들에게 자랑을 했더니 대단하다고, 젊게 사는게 보기좋다고, 자기들도 엄마처럼 늙고 싶다고 하더라"며 "자식들과 포켓볼 게임을 한 번 할 수 있는 시간을 가져보고 싶다. 아마도 내가 이길 것 같다"고 수줍게 웃었다.
 옆에 있던 박선미(27) 사회복지사는 "이제는 다른 복지관에도 당구대가 있어요. 당구를 즐기는 어르신들이 점점 늘어나는거죠. 우리 복지관 어르신들이 복지관 대항 당구대회를 개최하자는 요청을 많이 해요. 아마도 우승할 수 있는 자신감과 울산 원조 실버당구맨으로서 자부심이 대단한 것 같아요"라고 설명했다.
 취재를 마치고 돌아서는 기자를 보고 어르신들은 한마디 덧붙혔다.
 "여보게 기자양반, 당구대 하나 더 들어올 수 있게 관장에게 얘기 좀 잘 해줘…. 허허허"
 글= 박송근 song@·사진= 이창균 기자 photo@ulsanpres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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