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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벽화옆 평상에서 읍천마을 노인들이 한가롭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한반도의 유일한 부채꼴 주상절리

읍천 주상절리는 지금껏 국방부 소관(?)이었다. 그러나 얼마 전 해안 군부대 초소의 철수로 그 존재가 세상에 알려졌다.
 주상절리는 화산폭발 때 용암이 굳는 속도에 따라 사각형, 육각형 등 다면체 돌기둥으로 나타난다. 대부분 가로로 눕거나 선 모양이 대부분이다. 동해안의 절리는 크게 줄기로 형성돼 있다. 그 줄기는 울산 강동에서 시작해 읍천을 거쳐 포항 호미곶에 이른다.

   
 


 그 바위들 앞에 서면 새겨진 시간이 궁금해진다. 어느 정도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인간의 상상 너머인 것만은 분명하다. 읍천절리의 암질은 현무암이다. 그것은 신생대 3~4기에 생성된 것으로 추정할 뿐이다.
 비슷한 시기에 만들어지고 긴 연장선상에 놓여 있어도 그 시간의 무늬는 제각각이다. 울산 화암절리가 육각기둥을 일렬로 차곡차곡 포갰다면, 읍천절리는 옆으로 누워 합죽선처럼 펼쳐져 있다. 국내 유일한 존재로 자연이 만든 또 다른 아름다움의 극상이다.

 읍천절리는 읍천항 입구 군부대에서 봐야 제대로 볼 수 있다. 울산에서 국도 35번을 타고 경주시 경계를 지나면 양남면이다. 관성, 수렴, 하서를 지나 가파르고 좁은 길로 내려가면 읍천항이 누워있다.
 읍천항 500여m 전 쿠페모텔 옆 골목길로 진입하면 군부대 초소가 황량한 모습으로 남아있다. 풀만 무성한 부대 앞에 출입금지 푯말이 선명하지만, 사람들의 호기심은 그 빨간 푯말 하나로 잠재우기에는 역부족인 모양이다. 사람들의 흔적은 담 한 켠 구멍을 통해 확연한 왕래를 보여준다.

   
 


 부대 막사 위나 대공초소에 오르면 발아래로 대양을 향해 뻗어간 절리가 한눈에 들어온다. 길이 5m 남짓한 육각의 기둥들이 가운데 한 점을 기준으로 원을 그리며 펼쳐져 있다. 그것은 부채 같기도 하고, 태양의 빛살 같기도 하다. 원점을 기준으로 가지런하게 누운 돌의 기둥들은 하얀 포말과 어울려 꽃처럼 활짝 핀다.
 읍천 해안에는 이밖에도 약 1.5㎞에 걸쳐 사각과 육각의 돌기둥으로 만들어진 주상절리가 펼쳐져 있다. 바로 선 것부터 옆으로 비스듬히 걸쳐 바다에 누운 것 까지 다양한 형태를 보여 준다. 이 절리가 가진 그 거대한 시간 앞에서면 사람은 작고 초라해진다. 그래서 되레 무덤덤하고 편안하다.

 절리는 오랜 시간을 흘러왔지만 보존상태가 우수하다. 그 많았던 파도 앞에서 단단한 몸짓으로 버티고 누운 오랜 인고의 결과다. 그 버텨냄의 시간이 이제 천연기념물이라는 이름을 가질지도 모른다. 경주시는 천연기념물 지정 추진과 함께 일대를 전망대와 주차장 등을 갖춘 공원화 계획을 세우고 있다.
 읍천항으로 내려가 오른쪽 해안가 군인들의 순찰로를 따라가면 절리에 다가 설수 있으나 파도가 넘나들어 가까이서 보긴 힘들다.
 
#그림 옷을 말끔하게 차려입은 어촌

읍천항의 사람들은 다양한 어업에 종사한다. 고기 외에 자연산 미역과 고동, 소라, 문어 등을 잡아 생계를 유지한다. 바로 옆 나아리가 월성원자력 건설로 인한 집단 이주촌으로 이제 어업보다는 상업적인 시설로 변했다면 읍천은 여전히 전통적인 어업을 고수하고 있는 셈이다. 그래서 읍천항의 집들은 여전히 낮고 오래된 냄새가 완연하다.

   
▲ 읍천항은 완만한 반원형 포구로 외해를 방파제가 막아서 편안한 느낌을 준다. 파도가 심한 날이면 등대가 보이는 갯바위는 근교 사진애호가들이 자주 찾는 명소로 이름높다.


 가파른 진입로로 내려가면 직선으로 그어진 두 개의 방파제위에 빨갛고 하얀 두 개의 등대가 만들어내는 단순한 아름다움이 돋보인다. 그 단순함은 영원히 스러지지 않을 것 같은 견고함으로 무장한 채 밤마다 희망을 빛을 쏜다. 빛은 강렬하고 명료하게 길게 뻗어 뱃사람에게 도달되어지길 바라는 꿈을 잉태하고 있다. 절박할 때는 구원의 빛이요, 생명일수도 있다.
 등대의 빛이 바다를 향한 구원이라면 마을의 색은 사람을 향한 구원이다.
 마을은 반원형 해안을 따라 집이 다닥다닥 붙어있다. 집들은 낮고 볼품없다. 남루한 담벼락과 녹슨 대문이 바람 앞에 열려 바다를 보고 섰다. 사람들은 그 오래된 벽에 색을 입혔다.

 한수원 월성원자력본부가 마련한 '그림 있는 어촌마을 벽화그리기대회'가 그 일환이었다. 전국 52개팀 150여명이 참가한 대회에는 국전 당선자부터, 전문 작가, 대학생, 중학생, 외국인까지 참여해 저마다의 염원을 벽에다 입혔다.
 꿈꾸는 아이들, 읍천항의 저녁노을, 어머니와 고등어, 경주 이미지, 해녀와 바다 등 다양한 주제의 벽화들이 완성될 때 마다 마을은 아름답게 치장됐고 칙칙함을 벗고 산뜻해졌다. 풍경이 변했고 사람들마저 변했다. 외지인의 출입이 많아지자 횟집의 매출은 늘었고 덩달아 어부들의 삶도 바빠졌다. 골목길 평상에 앉은 노인네들은 외지인의 인사에도 스스럼없었다. 유쾌하고 즐거운 농담까지 이어졌다. 그것은 반가움이었고 사람에 대한 정이었다.

   
▲ 읍천항에는 부채꼴 절리 외에도 신생대에 생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주상절리가 해안을 따라 1.5㎞에 걸쳐 형성돼 있다. 절리의 모양은 제각각으로 흰파도와 어울려 신비함을 자아낸다.


 너울처럼 달려오던 파도가 외항 방파제에서 기력을 다한 탓에 내항은 고요하다. 꼭짓점을 만들며 지나가는 고깃배가 펄쩍 튀어 오르는 숭어처럼 통통거린다. 홑이불처럼 구름이 펼쳐진 오후의 읍천항은 고요했고 활기 넘쳤다. 수천만년의 바위와 한달여의 그림이 공존하는 사람사는 포구의 하루가 가을볕아래 찬란했다.  글·사진=김정규기자 kjk@ulsanpres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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