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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두동초등학교 200년생 '등나무' 

 

갈등이 첨예한 시대다. 사람들마다 이익만을 좇아 끼리끼리 모이고 무리를 짓고, 뜻이 조금이라도 다른 사람들과는 담을 쌓고 지내는 풍조가 날로 심해지고 있다. 그런 병폐가 쌓여 근래의 우리 사회는 갈라지고 찢겨지고 온통 상처 투성이다. 누구나 소통을 말하면서도 갈등을 쉽게 풀지 못하고 있다. 그만큼 우리 사회의 갈등이 깊다는 증거다.

 

잎꽃 식용·줄기는 가구재료 버릴것 없어

 

   
▲ 오동나무를 사이에 두고 북쪽방향의 등나무는 몸이 땅과 맞닿아 배배 꼬인 것이 마치 먹이를 휘어감은 뱀과 같아 눈길을 끈다. 이창균기자 photo@ulsanpress.net


갈등은 덩굴나무 칡(葛)과 등(藤)의 엉킨 모습에서 유래했다. 등나무는 시계방향으로 감기고, 칡은 반대인 왼쪽으로 꼬인다. 둘이 만나 서로 엮이기라도 한다면 풀기가 이만저만 어려운 일이 아니다. 나무세계의 갈등이야 자연적인 현상이므로 인위적으로 풀려고 애쓸 일이 아니다. 깊은 상처로 남을 사람세계의 갈등을 푸는 데에 마땅히 힘쓸 일이다.
 칡과 등나무가 감기고 꼬인 모습의 갈등이란 말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선조들은 등나무에 대해서 그리 좋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휴식공간을 만드는 데에 등나무만한 것을 찾기도 쉽지 않다. 여름이면 넉넉한 그늘을 제공하는 등 쓰임새가 많은 대표적인 조경수로 꼽혀왔다. 오래 전부터 공원과 정원에 많이들 심고 있다.
 흔히들 등나무라고 일컫지만, 정식 이름은 '등(藤)'이고 더 정확히는 '참등'이다. 콩과의 낙엽 덩굴식물로, 혼자 설 수가 없어 주변의 나무 또는 다른 물체를 감거나 그것에 기대어 오른쪽으로 감으면서 10m 이상까지 자란다. 메마르고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지만, 기름지고 수분이 알맞은 곳에서는 생장이 매우 빠르다.
 잎은 서로 어긋난 형태로 13~19개가 달린다. 달걀 모양의 타원형이고 가장자리가 밋밋하며 끝은 뾰족하다. 꽃은 5월에 30-40㎝의 크기로 아래쪽으로 처진 모습으로 피며, 색깔은 자줏색이거나 흰색이다. 포도송이가 주렁주렁 매달린 것 같아 장관을 이룬다. 향도 진하다. 흡사 작은 초롱불을 아래로 길게 켜 놓은 것 같아 환상적이다. 한여름에 커다란 열매가 매달린 모습이 아주 멋스럽고 시원한 느낌을 준다. 9월에 익는다.
 잎과 꽃은 먹을 수도 있다. 새순은 등채(藤菜), 꽃은 등화채(藤花菜)라 하여 삶아서 나물로 무쳐 먹거나 약술로 담아 먹는다. 또 잎은 염료의 재료가 되기도 하고, 뿌리는 이뇨제로 쓰이거나 피부병에 효과가 있다. 줄기는 질기고 탄력이 있어 바구니와 의자 등 가구를 만드는 재료로 쓰인다. 단단해서 지팡이 재료로는 그만이다.

기댈 이웃있으면 척박한 땅에서도 '뿌리'

 

 

 

   
▲ 등나무 줄기가 벗겨지고 썩은채 방치되고 있다.

제 힘으로는 일어설 수 없는 운명을 지닌 탓인지 나라 안에는 수백년이 된 노거수 등나무가 그리 많지 않다. 그래도 울산에도 노거수 등나무가 있다. 울주군 두동면 구미리 두동초등학교의 노거수 등나무가 그 주인공이다. 등나무 가운데에는 노거수가 드문데도 대접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다. 두동초등학교에 있는 노거수 은행나무 앞에는 안내판을 세워놓았으면서도 노거수 등나무에는 안내판이 없다.
 두동초등학교의 정문을 들어서면 왼쪽에 둥근 소나무 한 그루가 눈에 띈다. 원만한 수형을 갖추고 있다. 운동장 건너 정면인 북쪽에 본관 건물이 자리잡고 있고, 그 옆 서쪽에 체육관이 있다. 체육관 옆 운동장 귀퉁이에 음수대가 있고, 그 곁에 오동나무와 함께 오동나무를 칭칭 감은 등나무가 있다. 떨어져서 보면 등나무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가까이 가서도 등나무를 판별하기가 쉽지 않다.

홀로 일어설 수 없는 탓에 노거수 드물어

 등나무는 두 그루다. 오동나무를 가운데에 두고, 남북으로 나뉘어 오동나무를 타고 올랐다. 지표면에 가까운 벌거벗은 밑둥치는 상처 투성이다. 껍질이 벗겨지고 썩었다.
그대로 방치하다가는 노거수 등나무를 잃을 우려가 높다. 등나무의 가치를 제대로 몰라서 그대로 둔 것인지 울주군의 한심한 노거수 보호대책을 엿볼 수 있다. 시급히 전면적인 치료에 나서야 한다.
 울산생명의숲이 지난 2003년에 펴낸 '울산의 노거수' 책에는 노거수 등나무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록해 놓았다. '추정 수령 100-200년. 키(수고) 9m. 수관폭 13.5m. 가슴높이 둘레 0.75m, 1.1m. 뿌리부분 둘레 1.53m, 1.78m. 용도 정자나무'. 울산생명의숲은 등나무가 심어진 유래와 정확한 연도를 파악할 수가 없었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면서 최하 100년에서 최고 200년생이라고 추정했다. 무려 100년이란 편차가 나는 것으로 밝혀 신뢰성에 의문을 갖게 한다.
등나무의 중심축 노릇을 하는 중앙에 있는 오동나무의 키는 8m. 굵기는 1.9m. 수관폭은 15m쯤 돼 보였다. 땅에 드러난 뿌리 부분 6개는 마치 이무기가 꿈틀대는 것 같은 모습으로 오랜 연륜을 내보이고 있다. 남쪽 부분 뿌리에는 한 개의 혹이 나있고, 큰 줄기에는 청태가 잔뜩 끼어 있다.
 오동나무는 1.8m 지점에서 세 가닥의 큰 줄기로 나뉘었다. 한 가닥은 중앙에서 남쪽으로 조금 쏠렸으나 대체로 곧게 뻗었다.
 다시 세 개의 작은 줄기로 나뉜 뒤에 한 개는 곧게, 다른 것은 남쪽과 서쪽으로 각각 뻗었다. 또 한 가닥의 큰 줄기는 살짝 북쪽으로 굽은 뒤에 두 개의 작은 줄기로 나뉘었다. 그리고 다른 한 가닥의 큰 줄기는 남동쪽으로 뻗었다.
 남쪽 등나무는 땅에서부터 위로 30㎝ 쯤 치솟은 뒤에 90도로 몸을 완전 꺾었다. 그리고 60㎝ 가량 수평을 유지한 채 북쪽으로 뻗다가 한 차례 굽은 뒤 배배 꼬여 15도 각도를 이루며 비스듬히 위로 나아가 오동나무를 타고 자라 올랐다.

오동나무와 동고동락 200년 두동초 참등

 그리고 오동나무 큰 줄기가 세 가닥으로 나뉘는 지점에서 두 가닥의 큰 줄기 사이를 건넌 뒤 다시 다른 한 가닥을 타고 넘어 몸통을 휘어 남쪽으로 계속 뻗었다. 그 밖에 작은 등나무 가지들도 오동나무 큰 줄기를 타고 위로 뻗어올랐다. 땅에 가까운 몸통의 윗 부분은 껍질이 벗겨지고 썩었다. 아래쪽도 마찬가지다. 그밖에 다른 몸통에도 군데군데 흠집이 나있다.
북쪽 등나무의 몸통은 지표면에 거의 붙어 배배 꼬였다. 그런 뒤에 위로 조금 솟은 뒤에 아래쪽으로 살짝 한 차례 휘었다.  그리고 남쪽으로 50㎝ 가량 몸을 뒤집어 동쪽으로 1m쯤 뻗었다. 마치 코브라가 몸을 납작하게 뒤집은 모습이다. 그러다가 몸통으로 직경 30㎝ 가량의 원(圓)을 그린 뒤 북동쪽으로 뻗었다.
 그리고 원형으로 휜 부분에서 살이 삐져나와 동쪽으로 뻗은 줄기에 타원형의 몸통을 붙었다. 마치 2개의 동심원이 생겨난 모습이다. 몸통은 북동쪽으로 1m쯤 향하다 꺾였다가 북쪽으로 방향을 튼 뒤에 위로 치솟아 오동나무 북쪽 큰 줄기에 몸을 의탁했다. 북쪽 등나무의 몸통도 남쪽 것과 마찬가지로 껍질이 벗겨지고 썩어 있는 등 흠집판이다.
 두 등나무는 오동나무에 몸을 의탁하고 있는 부분이거나 아래쪽도 수세가 원만치 못하다. 오동나무 역시 원만한 편이 아니다. 잎이 무성하고 색깔 또한 푸르름이 짙은 띄어야 할텐데, 그렇지가 못해 안타깝다. 나무 아래에는 야외수업 용도로 쓰이거나 쉼터 역할을 할 수 있게 인조목 둥근 탁자 세 개와 의자가 놓여 있다. 또 쉬는 데에 부족함이 없게 평평한 바위도 놓여 있다.

진귀함 몰라보고 상처투성이 방치 '씁쓸'

 

 

 

   
▲ 울주군 두동면 구미리 두동초등학교에는 오동나무를 칭칭 감은 등나무가 있다. 오동나무를 가운데에 두고, 남북으로 나뉘어 오동나무를 타고 올랐다.


전국에 걸쳐 등나무 노거수는 드물다. 천연기념물 등나무라야 세 그루에 불과하다. 천연기념물 제254호 서울 삼청동 국무총리 공관의 등나무는 나이가 700~900년이다. 밑동의 굵기는 무려 2m나 된다. 천연기념물 제89호 경주시 현곡면 오류리의 등나무는 팽나무에 엉켜 자라고 있다. 네 그루로 키는 17m, 수관폭은 27m. 슬픈 전설을 간직하고 있다. 신라 때 그곳을 용림(龍林)이라 했고, 그래서 등나무는 용등(龍藤)이란 이름을 갖고 있다. 그 등꽃을 말려 만든 베개를 베고 자면 부부의 금슬이 좋아지고, 잎을 삶아 먹으면 부부애가 되살아 난다고 해서 지금도 찾는 이가 끊이지 않는다고 한다.
 부산 금정산에는 등나무가 숲을 이룬 군락지가 자리잡고 있다. 천연기념물 제176호. 범어사 옆을 흐르는 계곡에 500여 그루가 무리를 이루고 있다. 5월이면 등꽃이 피어나 계곡을 화사하게 물들인다. 마치 보랏빛 등꽃이 계곡에 구름처럼 모여 있다. 등운곡(藤雲谷)이라 불린다.
등꽃이 지고 나면 봄도 지고 여름날이 시작된다. 제 홀로 서지 못하고 비록 남의 몸을 타고 자라오르지만, 봄에는 천지간에 진한 향기를 내뿜는 보랏빛 등꽃을 피워 올리고 여름엔 푸른 그늘을 만든다.
 등나무는 결코 낯선 나무가 아니다. 지난 학창시절부터 즐겨 만나온 나무다. 교정에 심어진 등나무 그늘에서 추억을 가꾸곤 했다. 등나무 그늘에 앉아 방울방울 하늘대며 은초롱 금초롱 불을 밝힌 등꽃의 고운 자태를 바라보는 멋과 맛이란 그 무엇에다 비교하랴. 노거수 등나무를 길이 보호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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