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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흘 뒤 11월 1일이면 울산에도 KTX가 오가게 된다. 한편으로 반가우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울산공항의 운명을 걱정해야 한다. 손님이 없어 지난 74년에도 폐장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울산공항은 일제강점기 때의 우리 나라 최초의 비행장인 울산비행장에서 비롯된다. 울산비행장이 들어섰던 곳은 당시 경남 울산군 삼산면 삼산리로, 현재의 남구 삼산동 아데라움 아파트를 중심으로 한 인근 지역이다.
 일제는 1928년 초에 경성(서울)비행장과 울산비행장 설치공사에 들어가 그해 12월에 울산비행장, 다음해 1929년 4월에는 당시 경기도 고양군 용강면 여의도에 경성비행장을 완공했다. 울산비행장은 공사가 끝나자 그해 12월 2일 먼저 임시비행장으로 개장했다. 그리고 1929년 9월 24일에 여의도비행장과 함께 정식으로 개항식을 가졌다.
 조선일보는 1928년 12월 5일자에서 '울산비행장 개장. 개장식 성황'이라는 제목 아래 임시개장식 모습을 보도했다. <울산 임시비행장 개장식은 12월 2일 오전 10시부터 관·민·유지 등 2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엄숙히 거행됐다. 평양 제6비행연대의 정찰기 25, 26, 27호 등 세 기가 시범비행을 감행하기 위해 대전 이남의 2,000m에 달하는 두꺼운 구름층을 뚫고 비래하여 갖가지 비행연습과 고등비행술을 보여주어 수만 관중을 감탄케 했다. 그날 근교로부터 참집한 노유남녀는 약 5만에 달했다.>고 개장식이 대단한 성황을 이뤘음을 생생하게 전했다.
 울산에 비행장이 들어선 것은 일제가 만주침략을 위한 중계기지로서 최적의 조건을 갖춘 것이 이유였다. 일본과 중국 대륙을 연결하는 지정학적인 입지조건과 당시의 비행기는 비행거리가 짧아 중간 기착지가 필요한 기술적인 문제가 겹쳐졌기 때문이다. 울산비행장은 일본 오사카와 후쿠오카에서 울산-서울-신의주-중국 대련 등을 거쳐서 중국이나 소련 내륙으로 연결하는 항로로서의 역할을 맡았던 것이다. 그래서 일제가 나중에 만주침략을 자행하는 데에 큰 몫을 차지하는 비극적인 역사를 지니고 있다.
 울산비행장은 원래 일본 육군의 야외 비행장이었으나 규모를 확장하여 6만여평 규모로 만들어졌다. 당초 600m 길이의 남북 방향의 활주로 외에 똑 같은 길이의 제2활주로도 건설할 목적으로 동서 방향으로 4만평을 확장키로 했다.
 그러나 1935년에 조선항공 제2기 확장계획에 따라 대구에 14만평 규모의 대규모 비행장 건설계획이 세워졌기 때문에 무산됐다. 그 뒤 울산비행장은 일제의 군용비행장으로만 쓰이다가 광복과 함께 그 운명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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