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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도에는 카스트(caste)라고 하는 폐쇄적 계급제도가 있어, 가축처럼 천대받고 혹사당하는 불가촉천민(untouchable people)이 아직도 남아있지만, 200여 년 전인 1791년 프랑스 혁명이 일어난 이후, 세계는 원하든 아니하든 간에 인간의 보편적인 가치인 자유와 평등, 박애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자유와 평등은 어떤 면으로는 대립적인 개념이라 할 수 있다. 무제한적 자유를 위해서는 평등이나 박애가 거추장스럽기 때문이다. 그러나 진정한 자유는 '무엇으로부터의 자유'(freedom from)가 아니라 '무언가를 위한 자유'(freedom to)라고 한다. 참된 자유는 평등이든, 박애든 자기가 옳다고 믿는 그 무엇을 위해 살아갈 수 있는 자유를 말한다.
 우리나라도 프랑스 혁명정신인 자유와 평등과 박애를 법의 기본정신으로 삼고 있으며,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고 헌법 11조에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많은 경우에 평등이 보장된 평등이라기보다는 허용된 평등이라 함이 더 적합할 것이다. 교육이나 취업 제도도 역시 기회가 허용되기는 하지만 보장되지는 못한다. 이와 같이, 사회 구석구석에 아직도 불평등한 제도나 관행들이 산재해 있다. 이러한 불평등을 해소하고 사회를 통합하는 수단이 바로 사회보장제도이다. 우리나라도 이제는 4대 보험의 정착으로 사회보장제도의 기틀이 잡혀가고 있다.
 그러나 국민건강보험과 국민연금이 재정고갈 문제가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국민 건강보험이나 국민연금의 재정고갈은 준비미흡과 부실운영도 하나의 이유이겠지만 평균수명의 연장으로 수혜기간이 늘어나고, 노령인구의 급증과 노동력의 감소가 가장 큰 원인일 것이다. 그러나 또 한편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이 고소득층의 기여금 탈루현상이라 할 것이다.
 조세연구원의 보고에 의하면 자영업자의 소득파악률이 현재 50%에 불과하다고 하는데 소득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서 어떻게 사회복지를 하는지 놀라울 뿐이다. 일부 고소득 전문직 종사자들이 자신의 소득을 숨긴 채 배우자의 피부양자로 신고하여 보험료를 내지 않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니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다.
 사회복지제도가 발달되어 있는 스웨덴을 비롯한 유럽 국가들은 정확한 사회통계에 기초하여 모든 국민이 인간답게 살 수 있도록 생활권을 보장해 주고 평등한 권리를 누리도록 시장경제체제와 사회복지제도가 잘 조화를 이루고 있다. 여기에는 자유시장체제를 통해 획득한 자기의 소득을 못 가진 자들과 나누어 가지려는 기득권층들의 도의적인 의무, 즉 '노블리스 오블리즈'(noblesse oblige) 정신이 깔려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경제위기 이후 실직자가 늘어나면서 빈부간의 격차가 점점 심화되어가고 있다. 즉, 가장 잘사는 20%의 사람들의 전체소득이 가장 못사는 20%의 사람들의 소득에 비해 6배에 달한다고 한다. 스웨덴의 경우는 시장소득에 따른 빈부율은 우리와 비슷하지만 우리나라의 조세부담율이 평균 20%정도 인데 비해 스웨덴은 53.4%에 달하는데 과세와 사회보장 실시 후에는 빈부격차가 1.5배로 줄어든다고 한다. 사회복지제도가 매우 미약한 미국의 경우도 시장소득에 따른 빈부율은 약10배의 차이가 나지만 과세후 소득은 3.5배로 줄어드는 결과를 나타내며, 유럽에 비해 제도적인 재분배는 미약하지만 청교도정신과 가진 자의 도의적 책임, 그리고 자발적인 봉사정신에 따라서 평등사회를 실현해 가고 있다.우리나라는 말로는 평등과 기회균등을 부르짖으면서도 제도적 복지나 가진 자의 도의적 의무가 매우 미약하여 선진국으로 진입하는데 큰 걸림돌이 되고 있으며, 아름다운 나눔의 정신보다는 오히려 지나치게 특권의식에 사로잡혀 있다면 지나친 말일까?
 한 조사보고서에 의하면 지난 20년간 미국으로 입양된 한국고아가 6만 명이 넘어 미국전체 입양자의 1/3이 한국고아라고 한다. 그런데도 한편으로는, 주말 국제공항 이용자의 절반을 골프여행자가 차지한다고 한다. 물론 가진 자에게도 행복추구권(?)이 있지만 가진 자들이 어려운 사람의 고통을 분담하며, 사회적 책임을 감당함으로써, 존경받는 부자가 점점 늘어가기를 간절히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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