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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치는 우리사회의 모든 것이 녹아 있는 사회적 실체다. 그래서 사람들은 정치를 쉽게 욕하면서도 외면하지 못한다. 언론에서는 '정치뉴스'를 톱 뉴스로 다루지 않는 편집을 꿈꾸면서도 어느 순간 정치뉴스가 톱 자리에 와 있는 현실에 당혹하기도 한다. 그만큼 정치는 우리와 직간접적인 연결고리를 무수히 맺고 있는 '친족관계'인 모양이다. 며칠 전 대장정을 끝낸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만 해도 이를 잘 보여준다. 경선의 끝자리에서 만난 패자의 얼굴은 오히려 승자를 껴안고 미래를 지향했고, 이를 지켜본 모든 이들의 가슴 한 켠을 뭉클하게 만들었다.


 정치집단은 언제나 이성적 논리로 무장하고 있지만 이를 유지하는 것은 대체로 이성의 반대논리다. 논리구조로 따져보면 말이 되지 않는 것도 정치집단 속에 들어가기만 하면 말이 되고 논리가 되는 요지경이 바로 정치라는 말이다. 조선 초 수양을 왕으로 만든 '칠삭동이' 한명회는 이 같은 정치논리를 가장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인물이었다. 그는 안평과 김종서가 득세한 정치판의 흐름 속에서 안평의 책사인 이현로로부터 끊임없이 '러브콜'을 받았지만 비주류인 수양을 택했다. 누가봐도 안평을 택하는게 순리라는 시각을 거스른 한명회의 선택은 시대를 읽는 그 만의 혜안이기도 했지만 "명분은 만들면 된다"는 그의 정치논리에 따른 선택이었다.


 사람을 알아보는 능력은 지도자에게는 필수적이다. 시장통의 건달이었던 유방이 절대적 우위에 있던 항우를 꺾을 수 있었던 것은 사람을 보는 눈이 있기에 가능했다. 항우는 일급 참모인 범증을 의심했지만, 유방은 자신을 따른 장량을 믿고 그를 지켜 결국 천하를 제패했다. 김유신이 김춘추를 자기사람으로 만들기 위해 동생 문희를 죽음으로 몰 수 있는 '화형쇼'까지 감행한 것은 문희의 비범함을 믿은 결과이기도 하다. 장량이나 문희가 유방과 김유신의 영웅성을 간파하고 자신의 목숨을 내 놓았는지 아니면 자신의 출세를 위해 주군과 혈육을 이용했는지 알 수 없으나 이 모두가 일반적인 논리구조로 해명할 수 없는 정치논리가 밑바닥에 흐르고 있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말도 많고 탈도 많던 한나라당 경선도 일반적인 논리구조로 설명이 불가능한 정치논리가 지배했던 무대였다. 1년여 동안 진행된 경선 레이스를 지켜보면서 이명박-박근혜라는 빅2가 벌인 박빙의 접전만큼이나 양대주자의 용인술도 치밀함이 돋보였다. 정치선배인 원로를 배경으로 무게중심을 잡으면서도 소총수격인 전방부대는 새인물로 포진한 점이나, 조직과 기획의 중심에는 중진급 실무진을 포진한 점 등 유사한 점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특히 눈에 띠는 것은 선거전략을 총괄하는 '책사'격인 정두언과 유승민의원이 모두 초선이라는 점이다. 경선과정 내내 양측의 책사는 진검승부 보다 '성동격서'를 구사하며 맞대결을 피해 갔지만 정두언의 공격적 방어책과 유승민의 수비형 공격이라는 색깔은 책사를 보는 주군의 성격과 무관하지 않은 것은 분명해 보인다. 원칙보다 명분이 앞서가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정치논리'인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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