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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저녁, 산뜻하게 새로 지은 KTX 울산역사는 서울행 열차를 타려는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다. 하루 이용객이 만 명 가까이 된다고 하니 매일 울산인구의 약 1%가 이 곳을 드나드는 셈이다. 울산이 얼마나 활발한 도시인지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몇 차례 언론에 보도된 대로 편의시설이 부족해 대기중인 승객들에게 불편을 주는 면이 없진 않으나 대부분 사람들은 크게 개의치 않아 하는 모습이었다. 오히려 여행을 앞 둔 설레임과 꿈의 열차 KTX에 대한 기대감으로 약간 들뜬 표정을 읽을 수 있었다.

 울산역을 출발한 열차는 채 30분도 지나지 않아 동대구역에 도착했다. 시속 300㎞를 오르내리며 쏜살같이 달렸지만 그렇게 속도감을 느끼진 못했다. 열차 특유의 덜컹거림도 없었다. 서울 가는 길이 이렇게 빠르고 편안하다니. 어두워진 창 밖을 보며 잠시 과거 기억들을 떠올려 본다. 서울에 처음 간 것은 중학교 2학년 수학여행 때였다. 1972년 가을. 어느 덧 40년 전의 옛 이야기지만 아직 기억에 남아있다. 까까머리에 검은 색 교복을 입고 교모를 쓴 친구들은 학성동의 옛 울산역에서 중앙선 완행열차를 탔다. 대부분 서울길이 초행인 친구들은 설레임과 기대를 안고 덜컹거리는 열차에 몸을 맡겼다. 아침 일찍 울산을 출발한 열차가 영주 제천 원주를 거치며 종일 달려 어두울 때 청량리역에 도착했으니 열 시간 이상 걸렸던 것 같다. 서울에서 2박 3일간 고궁과 남산, 어린이대공원 등을 구경하고, 올라갈 때와 같이 열 시간 이상 열차를 타고 울산에 내려왔다. 그 시절 한창 유행하던 노래 '고향역'을 소리쳐 부르며.

 그 후 나이가 들면서 서울~울산을 오가는 일이 잦아지게 됐으나 매번 느끼는 것은 그 일이 쉬운 게 아니라는 것이었다. 항공기는 편수의 제한과 비용 부담이 있고, 열차는 지난 달 KTX가 개통하기 전에는 언급할 형편이 못됐다. 가장 자주 이용하는 것이 고속버스인데 5시간 이상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있는 일은 큰 고역이었다. 특히 서울에 직장이 있을 때는 명절에 고향을 다녀 가는 게 큰 일이었다. 지금은 사방으로 도로가 많이 개설돼 덜하지만 십 여 년 전만 해도 귀성길 정체를 뚫고 10시간 가까이 운전하다 보면 파김치가 되곤했다. 그렇게 힘들던 서울길이 고속철도 개통으로 엄청나게 편안해졌다. 타지의 울산출신 향우들이나 출장이 많은 직장인에게는 여간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저런 생각에 잠긴 동안 열차는 벌써 대전역에 도착했다. 내릴 사람 내리고 오를 사람 오르니 열차는 잠시의 머뭇거림도 없이 승강대문을 닫고 출발하기 시작한다. 예전엔 정차시간에 잽싸게 내려 우동을 먹기도 했는데 고속철도 시대에는 그런 정취를 맛보기는 어렵게 됐다. 또 식당칸 창 의자에 느긋하게 앉아 맥주를 마시는 여유가 사라졌다는 점도 다소 아쉬운 듯하다.  

 좌석 뒤 그물망에 꽂혀 있는 열차잡지를 빼 보니 마침 '서울~울산 원데이 투어'라는 특집기사가 실려 있었다. 서울역에서 아침 일찍 출발해 당일로 울산여행을 즐기고 밤 기차로 올라간다는 내용으로 글을 쓴 여행작가는 울산에서 가볼 만한 코스 2개를 꼽아 소개했다. 하나는 겨울바다를 만날 수 있는 '신명~강동~주전' 해안도로 드라이브코스이고 또 하나는 도심 속 숲길을 걸을 수 있는 '태화강 십리대밭~선암호수~솔마루길' 코스였다. 울산시민들도 대체로 수긍할 수 있는 적절한 코스선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 여행을 마친 소감은 어떨까? 외지인의 눈에는 울산이 어떻게 비쳤는지 궁금했다. 그 의문에 대해서는 제목이 말해 주었다. '당신이 몰랐던 울산의 두 얼굴'. 그렇다. 작가는 울산에 대해 조선소와 자동차 공장이 많은 공업도시로만 알고 있었고 그 외는 전혀 몰랐는데 단 하루의 여행으로 바다와 숲의 풍경을 보면서 새로운 울산을 알게 됐다는 것이다.

 KTX 개통이 울산경제에 끼치는 영향에 관해 다양한 의견이 있다. 우선 공항·고속버스 등 직접적인 경쟁관계에 있는 교통분야는 수요 감축이 불가피해 보인다. 의료나 쇼핑 등 몇몇 분야도 서울 등으로 일부 수요가 이전될 것이라는 우려가 있다는 것도 들었다. 그러나 대한민국 절반의 인구가 살고 있는 수도권 사람들이, 울산을 잘 몰랐던 그 사람들이 울산을 새로 알고 쉽게 찾게 된다면 우려보다 긍정적 효과가 더 크지 않을까. KTX 개통은 유동인구 증가로 지역경제를 활성화시키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기차는 정시에 서울역에 도착했다. 2시간 10분 소요. 5시간대에서 2시간대로 무려 3시간이나 단축된 것이다. 미래에 기술 발전으로 시간이 더 단축될 지도 모르겠으나 과거를 안고 살아가는 세대의 입장에서는 가히 놀랄 일이 아닐 수 없다. 반나절 생활권으로의 변화를 실감한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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