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20세기는 전쟁과 불신으로 점철

무분별한 환경파괴로 생존 위기

21세기 사람·물질 평등 재순환

자연 존중으로 참된 어메니티를

 

새로운 세기는 '환경·정보·복지·문화·교육·여성'의 시대이자 '생존·생명'의 시대라고 한다. 각 분야마다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지만 중요한 것은 우리들의 삶을 총체적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종합적인 삶의 쾌적함' 즉 '어메니티'(amenity)라는 관점에서 21세기를 조망할 필요성이 여기에서 나온다.

 전쟁과 불신, 과학문명의 맹신으로 인류와 지구의 존속이 위협받게 된 20세기적인 삶을 청산하고 21세기는 평화와 믿음, 인간과 자연 존중으로 참된 '어메니티의 시대'를 열어야 할 것이다. 21세기의 생활인은 자신의 의지를 바탕으로 의식주 등 일상생활에서 주체가 되고 지역의 환경을 새롭게 바꿔나가며 국제적인 친교를 끌어내는 어메니티 운동의 중심에 서게 될 것이다.

 프랑스국립고등과학원의 오구스텡 베르크 교수는 "오늘날 지구적 환경 파괴를 불러온 것은 데카르트의 이원론 이래 근대성에 의한 것으로 그 막다른 골목에 이른 근대성을 초극(超克)할 수 있는 것은 '진·선·미를 재통합하는 사상으로서의 어메니티'에 의해야 한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어메니티 운동과 더불어 사회의 자세나 행동 등이 바뀌기 시작했다. 오늘날은 자연을 지배하는 것 보다도 자연을 소중히 다루는 쪽에 사람들은 마음을 쓰고 있다. 넓은 의미의 어메니티 운동은 인간 활동의 모든 차원과 관련이 있다. 그것은 에콜로지처럼 과학적 인식의 발전 뿐만 아니라 풍경, 건축물의 질 등 미적인 배려를 전제로 하고 있고, 행동의 제어가 필요하기 때문에 윤리와도 관련이 있다"

 산업혁명 이래의 근대는 기계나 기술이 사람을 부리는 사태를 낳았다. 20세기에 두번에 걸친 세계대전과 지구 규모의 환경파괴를 거쳐 핵무기와 자원낭비는 인류에게 생존·생명의 절대절명한 위기를 가져다 주었다. 20세기가 '살인의 세기'라고 불리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사랑과 생명'을 주축으로 한 어메니티라는 구석은 하나도 없다. 표면적으로 어메니티의 세기라고 불려질 것 같았던 20세기는 실제로는 극도의 '反어메니티'의 세기였다.

 사람과 물질의 순환에서 일어나는 불평등을 없애고 대등하게 인류가 어메니티로 교류해 나가는 그러한 쾌적한 사회의 모습이야 말로 '완전순환형 어메니티 문명사회'라고 한다.
 물질이 권력이나 부 등으로 말미암아 편재돼 있는 것, 결국은 어메니티재(財)가 편재돼 있는 불평등성을 없애고 물질이 평등하게 리사이클해 순환하고 나아가 자유와 문화가 꽃피는 쾌적한 사회가 바로 어메니티 운동이 지향하는 정점인 상태일 것이다.

 이러한 사람과 물질의 평등순환은, 바꿔 말하면 '진·선·미·애'의 실현이기도 하다.  이는 가령 과학·윤리·예술·사람과 물질에 대한 애정을 융합한 다음에 어메니티 사상에 의한 정보·교통수단의 향상, 욕망의 억제와 남을 배려하는 매너, 아름다움의 공유, 이웃사랑, 인류애, 지구애로 승화시킴으로 이뤄질 수 있을 것이다.

 어메니티 운동은 특정종교와 관계가 없는 시민운동에서 출발했지만 인류의 종교가 지닌 보편타당한 본질에 가장 접근하며 이를 생활에서 구체적으로 실천할 수 있는 21세기적 지혜를 담고 있다. 여기서 '우리가 지향하는 참됨과 선함과 아름다움의 가치를 어떻게 지역에서 실천할 것인가',  '21세기를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물음의 답으로 한번쯤 '어메니티'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어메니티(amenity)란
어떤 장소나 기후 등에서 느끼는 쾌적함을 일컫는 용어로 1990년대 중반부터 서유럽 국가를 중심으로 농촌 어메니티 운동 또는 농촌 어메니티 정책이 유행하면서 의미가 확대됐다.
 어메니티는 농촌개발에만 머무르지 않고, 지금은 어촌개발이나 각종 경제 분야에서도 활용되면서 쾌적성만을 의미하는 단순한 추상명사에서 쾌적함과 만족감을 주는 모든 요소들을 함축하는 용어로 의미가 확대·사용되고 있다.

저작권자 © 울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