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진흙속에 자라도 꽃잎은 깨끗
고고함과 향기는 만인이 칭송
연꽃처럼 은은한 새해 됐으면


연꽃은 썩은 시궁창에서 자라도 염화미소(拈華微笑)의 깨끗함과 부드러움을 보인다.
 스스로 더럽혀지지 않고 처염상정(處染常淨) 하며, 짧은 하루를 꽃 피어도 화과동시(花果同時) 즉, 꽃짐과 동시에 열매를 맺는다. 화과동시는 그 누구보다도 본연의 인과율을 상징하는 것으로 부처님이 가르치는 정도의 핵심사상이다.

 이같이 하찮은 것 같아도 연꽃이 인간에게 시사하는 바는 매우 크다. 그래서 석가모니 곁에는 늘 연꽃으로 수놓은 사물들이 떠나지 않는다. 그것은 연꽃이 일생동안 살아가는 섭리와 중통외직(中通外直)의 고고함은 곧 성인과 군자에 비교될만 한 꽃이기 때문이다.

 중국 송나라 유학자이며 도가사상의 영향을 받아 새로운 유교이론을 창시했고, 윤리를 강조하고 우주생성 원리와 인간도덕 원리는 같다고 주장한 주렴계(본명 주돈이)는 사군자인 매란국죽을 매연국죽으로 읊을만큼 연꽃을 좋아했다.

 '나 홀로 연꽃을 사랑하니/진흙탕 속에서 꽃을 피웠으면서도/오염되지 않았고/맑고 깨끗한 꽃을 피웠으면서도/그 요염함을 자랑치 않고/속은 비었어도 밖은 곧으며/넝쿨도 없고 가지도 없다'

 지난 달 어느 신문 일간지에 세계옹기축제에 관한 기사가 길게 실렸다. 내용인 즉 D씨가 쓴 개인적인 사견으로는 세계옹기축제가 무슨 가치성이 있으며, 그 축제에 참여했던 문화단체의 전시에 대한 비판적인 글이었다.

 한마디로 편협하고 이기적인 한푼의 가치도 없고, 어느 누구도 공감하지 못할 자기만의 속 좁은 생각이었다. 어느 누구나 축제가 끝난 뒤 가타부타의 글은 쓸 수는 있다. 칼럼의 글을 씀은 개인의 자유이나 그 글이 시민 모두에게 읽혀지는 글이라면 신중하게 씀이 마땅하다.

 젊은 날 모 직장에서 만인이 부러워하는 한시절을 풍미했다. 권불십년, 인간사 호사다마라 했던가 D씨는 한 때 차마 언급하고 싶지 않은 영어된 생활에서 질곡의 삶을 살기도 했다.
 하늘은 모든 사람에게 공평함을 준다고 하지않았던가? 몇 해 전 D씨에게도 몹쓸 병마가 덮쳐 거동이 불편해졌다. 소식을 접한 주변의 선·후배, 동인들이 십시일반 힘을 보태어 어려운 생활에 도움을 주었다.

 웬만큼 관계를 맺었던 사람들은 한번의 배려에 그치지 않았다. 당시 눈물나게 고맙다는 가족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앞으로의 남은 여생 동안은 그래도 마음이나마 베풀면서 이웃과 어울어지기를 바랬다. 시간이 지나니 그 바람도 순간일 뿐, 끝내는 지난 날 휘둘렀던 무소불위의 힘이 그리웠던지 모두가 얼굴 찡그리고 마음 편찮은 글을 써서 선한 사람들에게 마음의 상처를 내고 말았다. 배은망덕, 인면수심이란 말이 가슴을 짓누른다.

 제발 바라노니 옳고 바른 의식으로 밝아오는 신묘년 새해에는 백설보다 더 하얀 백묘(白卯) 같은 향기로운 글을 쓰기 바라는 심정이다.
 이 세상은 혼자만이 사는 사회가 아닌 서로가 협력하고 공존하며 살아가는 인간세상이다. 그래서 사람 '人'字는 서로 기대어 있는 형상이다. 현 사회는 아무리 잘나고 똑똑해도 천상천하 유아독존 같은 존재는 없다. 더불어 사는 아름다운 세상이어야 한다.

 만백성이 화합하고 행복해질 신년을 맞으며, 연꽃같이 깨끗함과 부드러움을 베풀어서 이제는 아름다운 사람으로 거듭 나기를 기대한다. 더불어 복된 노후를 위해 건강이 하루 빨리 회복되기를 빈다.
 우리 모두 새해는 염화미소로 살자.

저작권자 © 울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