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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8월 동구 대왕암에서 개최된 문무대왕제가 논란의 중심에 서 있다. 각 구군에서의 행사를 보면 그런대로 구군민들이 납득할 수 있고 현실에 입각한 근거에 의해서 축제를 치루고 있으나 문무대왕제는 전혀 축제를 할 만한 근거가 없다는 것이다.


 이 지역의 향토문화계 몇 사람의 편견으로 가시적 토대위에서 축제를 한다는 것은 매우 잘못된 발상이 아닐 수 없다.
 도대체 어떤 근거에서 울산 동구 대왕암에서 문무대왕제를 하게됐는지 안다면 삼척동자라도 웃을 일이다. 전설이나 민화는 만들기에 따라서 생겨나겠지만 어떤 사건이나 사물에서 유사하게 꾸며지고 만들어져서 유포된다면, 그렇다는 타당성이 있겠으나 실마리의 전개과정을 수긍하게 되겠지만 얼토당토않은 거짓(꾸밈)일 때는 그 이야기에 귀 기울여 공감하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지난 90년대 중반 모 방송국에서 수중릉을 찾는다는 명목으로 2~3회 용추암 바닷속을 스쿠버다이버들이 탐색한 적이 있다. 결과는 아무것도 없었고 다만 바다 속 한 곳에 석관(石棺) 비슷한 바위 두 개가 있었다고 조사팀이 보고했다. 이 말을 들은 당시의 관계자는 마치 릉인 것처럼 왜곡했다. 이후 문화재 관련부처나 학계에서 믿을만한 근거가 어디에서도 찾아 볼 수 없다고 일축했다. 그 돌들은 주변에 있던 바위가 풍화작용으로 크게 떨어져 바다 속으로 굴러 유입 된 것이며, 이 곳 주변에는 농짝같이 큰 바위들이 바다 속에 많이 산재 해 있다.

 

   필자가 태어난 곳도 동구의 한 어촌이다. 삽짝(대문)에서 다섯 발자국만 떼놓으면 바로 갯물을 적실 수 있는 순수 토종이다. 어릴 때부터 귀 아프게 들어 온 댕바우(대왕바위)의 전설은 오히려 다른 곳에 있다. 왕이 죽어 장사 지낸 곳이나 왕비가 용이 되어 승천하다 떨어져 숨어 든 곳이 용추암이라고도 하는데, 이곳 이름은 용추암 많이 아닌 대양암, 망양암등으로 불리기도 한다. 그렇다면 대왕암은 어느 곳인가? 댕바우라 불리기도 하는 이 바위는 등가 있는 산 전체의 큰 바위 무리를 아울러서 부르는 이름이다. 더 깊이 어원을 접근해보면 동면팔경에 읊어지는 어풍귀범(御風歸帆)의 자리가 일산동 고늘(꽃놀이)쪽이 아닌 대왕암 산쪽 임을 감목관 홍세태(洪世泰 효종4년,1653~영조1년 1725)의 '어풍대'란 고시에서 찾아 볼 수 있으며 울산 읍지에 다음과 같이 기록 되어 있다.


 '어풍대'는 본부(本府)에서 동쪽 30리 일산포(日山浦)에 있는데 바윗돌이 바다에 우뚝 솟아 있는 곳이다. 이 臺는 육지와 이어져 石山에 바위구멍이 북으로 향해 뚫어져있는데 파도가 치면 요란한 소리를 낸다. 구멍에는 배(船)한척을 간직해 둘만한 곳이다"라고 기록 되어 있다.


 이와 같은 대목은 일산동 마을뒤쪽에 있는 그늘(고늘, 곳놀이, 곳나루, 꽃나루)즉 화진(花津)으로 변음 되어왔고 신라왕이 배를 타고 일산만을 지나 찾아 간 곳이라면 의당 대왕암 바위였을 것이다. 이 바위에 올라 동해를 바라보며 자적하게 시간을 즐겼으리라. 그렇다면 문무대왕제 보다는 어풍대제혹은 어풍제로 동구지역의 문화제로 뿌리내린다면 만인이 공감하며 호응하리라. 문무대왕제가 더 많은 사람들로부터 구설수에 오르기 이전에 동구를 아끼는 한 사람으로 조언하는 바이다.


 항간에는 대왕암에 얽힌 전설을 찾다보니 눈에 보이지 않는 경쟁적 이기심이 싹터서 가설적 근거를 제시하는 경우가 없지 않다. 이들 또한 향토문화를 아껴 발굴 조사하는 충정심은 높이 살만하다해도 지나친 유사문헌 대입이나 왜곡하는 것은 올바른 문화유적을 가꾸어 나가는 계기가 못 될 것이다. 과거 울산울주 향토문화연구회장을 지냈던 김석보(1998년 2월28일 사망)와 김송태 전 울산향토사연구회장이 발표한 글들에서 각기 그 전설을 달리하고 있다. 두 글에서 모두 구비적인 일면 뿐 이렇다 할 문헌상으로 남겨진 것은 전무하다. 가설적인 토대에서 언급하고 있다. 전자는 문무대왕비가 용이 되어 숨어든 바윗골이 용추암이란 것과 후자는 삼국사기 본기 효성왕조에 있는 혜명왕비의 수중릉이란 대입은 어쩌면 모두 아이러니컬한 견해들이다. 한쪽은 용추(龍湫)가 릉으로 가증하는 것과 다른 한쪽은 물속에 있는 자연바위를 릉으로 가증하는 것이 다를 뿐 가증의 근원은 모두 허구인 셈이다.


 끝내 고집하여 문무대왕제를 계속한다면 울산시민, 아니 더 나아가서는 전 국민, 전 세계인들의 귀를 막고 눈을 가리고 우롱하는 것밖에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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