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거지는 잡념을 끌어들이는 자석이다. 물소리에 맞춰 눈과 손만 협응하고, 머릿속은 어수선하다. 애써 정신을 가다듬는데 침대 옆에 둔 찻잔이 생각난다. 찻잔을 가지러 가다 보니 사람 없는 화장실에 불빛이 새어 나오고 있다. 화장실 열린 문틈으로 치약이며 수건이 흐트러져 있는 게 보인다. 문을 왈칵 열고 들어가 청소를 한다. 욕조까지 닦고 나니 손대는 곳마다 뽀드득 소리가 날 것 같다. 개운한 기분에 커피나 한잔할까 해서 부엌으로 간다. 개수대에는 여전히 밥풀과 고춧가루를 묻힌 설거지 더미가 들어앉아 있다. 움직이는 틈마다 잡생각이 끼
영화 '리빙 : 어떤 인생'에서 주인공 빌나이가 부른 '로언트리'가 생각이 난다. 죽음을 앞두고 기억 저편에 있는 어린 시절이 마법처럼 얽힌 가지와 첫 새봄을 알리는 너의 잎새라며 내 소중한 나무라 노래한다. 무심히 서 있기만 한 나무이지만 누구에게는 위안이 되기도 하고 추억을 만들어 주는 소중한 나무가 되기도 한다. 그래서 나무에 대한 감정은 대체로 긍정적인 부분이 많은 것 같다. 완전한 나무 박라연 전신이 쓸쓸할 때 차오르는 저 가로수의 수액을 잠시 빌려 쓰면 어떨까 연두가 돋아나는 봄 가로수가 되려면 서서 잠드는 나무의 곁을
3고(고금리·고물가·고환율)에 시달려 장기화되고 있는 경기침체로 우리 경제의 성장동력이 빛을 잃고 있다. 이런 데는 여러 원인이 있겠지만 그중 심각한 아킬레스건으로 지목되는 게 건설 분야다. 지금 국내 건설업은 진퇴양난에 빠진 형국이다. 건설업계는 삼중고에 빠져 체감경기에 타격을 주고 있다. 미분양 증가, 자금회전 난항, 시공단가 인상이라는 악순환 속에서 허덕이는가 하면 폐업도 갈수록 늘어나는 추세라는 게 건설업계의 현주소다. 여기에다 부동산 PF 부실도 내수시장 활성화에 큰 악재로 꼽힌다. 이는 건설업계의 뇌관으로 작용하면서 경기
우리 국민들이 '자기 삶에 만족하거나 자신의 일이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비율이 떨어지고 있어 걱정이다. 통계청이 최근 발표한 '2023 한국의 사회지표'에 따르면 지난해 국민 중 자기 삶에 만족한다는 비중은 전년(75.4%)보다 1.3%p 감소한 74.1%로 집계됐다. 삶의 만족도가 '행복감'과 크게 연관성이 있다고 볼 때 참담한 심경이기도 하다. 또한 자신이 하는 일이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의 비중도 68.4%로 전년(72.6%)보다 4.2%p 낮아졌다는 점도 마찬가지다. 일과 생활의 균형을 일컫는 이른바 '워라밸'이 화두인
고요하게 흐르는 강물에 나룻배 한 척, 그 뱃머리에 대금을 부는 여인의 머리칼이 잔잔하게 날린다. 멀리 강기슭 대숲에서 바스락 소리가 들리자 백로, 왜가리 등 새들이 한꺼번에 날아오르는데, 그때 누군가가 허공을 가로지르며 하늘 높이 날아올라 부채를 '촤락' 펼치며 대나무 꼭대기에 외발로 섰다. 태화강 대숲을 지날 때면 가끔 이런 말도 안 되는 상상을 하곤 한다. 오빠들의 영향으로 무협 영화를 많이 보며 자란 탓이다. 태화강은 남편의 오랜 케렌시아 장소다. 새벽 다섯 시, 남편은 조용히 눈을 뜬다. 내가 깨지 않도록 주섬주섬 운동할
그동안 고위 관리나 CEO 등 소수만을 위한 것으로 여겨졌던 리더십 교육이 어린 학생에 이르기까지 그 범위를 넓힌 것은 불과 수년 전부터다.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아이들은 그 누구나 리더가 될 수 있으며, 리더로 나설 수 있어야 한다. 리더의 역할이나 위치, 모습 등 리더라는 의미는 수직적인 관계에서의 이끔이를 의미하는 단순한 정의를 벗어난다. 리더십이 특정 소수만이 가진 자질이 아니라는 말이다. 누구나 갖춰야 할 덕목으로서의 리더십을 키우는 것이란 오늘날의 아이들에게 꽤나 어려운 공부의 하나다. 홀로 자라는 경우가 대부분인 아
오늘부터 22대 총선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된다. 여야 후보들과 정치권은 앞으로 13일 동안 표심을 잡기 위해 전력을 쏟을 것이다. 국회의원 선출의 중요성은 새삼 강조할 필요도 없다. 민의를 대변하고 법치주의의 출발인 입법권을 쥐고 있어서다. 하지만 지금까지 보여준 여야 후보들과 정당의 모습을 보면 유권자는 안중에 없는 퇴행적 행태에서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각 정당과 후보가 제시한 공약만 봐도 민생을 살피는 정책이 아니라 '선거만 이기면 상관없다'는 식이다. 나라 곳간은 비어가는데 '총선용 포퓰리즘' 경쟁을 벌이는 듯하다
자영업이 우리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큰 데도 정부가 시행하고 있는 저출생 지원대책 가운데 자영업자가 수혜자인 정책은 찾아보기가 힘들다. 한마디로 육아 휴직 및 근로시간 단축 때 금전적 지원을 받는 정책에서 자영업자들은 사각지대에 놓여있다는 뜻이어서 안타깝다. 일례로 '3+3 부모육아휴직제'는 올해부터 '6+6'으로 확대 개편됐다. 생후 18개월 내 자녀를 둔 부모가 동시에 또는 차례로 육아휴직을 사용하면 첫 6개월에 대한 육아휴직급여를 통상임금의 100%로 지원한다. 또 연초 경제정책방향에서 직장어린이집 위탁보육료 지원금을 비과
우리는 과연 단일민족일까? 역사를 되짚어 보자면 그렇다고 단언할 수만은 없다. 고려 때 이미 혼혈이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의 역사는 외침과 함께였다. 우리나라의 지리적 특성은 인근 나라들의 길목일 수밖에 없고, 이런저런 이유로 우리나라를 오갔던 그들은 곱게 지나다닌 것이 아니었다. 약소국에서도 약자들인 여성들은 그 길목의 가장 큰 피해자였다. 성적 유린으로 숨어서 낳은 자식이 생겨났음은 슬프지만 인정해야 한다. 드러난 이야기의 주인공도 많다. 환향녀나 기황후 같은 인물이다. 이들은 혼혈과 절대로 무관할 수가
도로 환경의 안전을 위협하는 주요 요인은 과적 차량과 정비 부실이다. 이는 도로 파손을 가속화하고 인명 피해를 동반한 대형 사고를 불러올 수 있다. 이는 사전 점검과 관리 감독 강화로 예방할 수 있는데, 화물차주들이 이를 제대로 실천하지 않는 게 큰 문제다. 한국교통안전공단이 집계한 지난해 말 기준 화물자동차 검사 미필 차량은 38만1,051대다. 전체 검사 대상 차량 396만106대 중 9.6%나 된다. 적지 않은 화물차들이 시간과 경비 절감을 빌미로 허용한도를 초과해 적재물을 실어 나르거나 정비 부실, 불량 타이어 사용, 불법
질병관리청은 최근 일본에서 연쇄상구균 독성쇼크증후군(STSS) 환자가 증가함에 따라 국내외 발생 동향을 면밀히 모니터링 중이라고 한다. 이에 따라 울산시도 STSS 유입 차단을 위해 집중 감시체제를 구축해 시민의 건강과 안전에 힘쓰고 있다. 최근 일본 국립감염병연구소(NIID)가 발표한 STSS 환자 발생 현황에 따르면 일본 STSS 환자는 2023년 941명으로 증가했고 올해 2월 말까지 신고된 환자 수가 414명으로 예년 대비 높은 발생을 보이고 있다. 우려스러운 것은 2월말까지 발생한 환자 414명 중 90명이 사망했다는 점이
엔지니어링은 세상의 문제를 해결하고 더 나은 결과를 창출하는 일이다. 필자와 같은 엔지니어들은 종종 문제를 해결할 때 조금만 더 품을 들이고, 시간을 들여서 완벽한 기술적 해답을 제시하고 싶은 욕망이 있다. 이런 집요함은 결과물의 품질을 올리는 긍정적인 결과를 낳는다. 그러나 때로는 이런 집요함이 지나쳐, 투입하는 자원 대비 결과의 효용 가치가 그다지 높지 않은 경우를 종종 만들어 내기도 한다. 필자가 십수 년 전 모바일 메신저 개발을 위해 일본에서 일할 때의 이야기를 예로 들겠다. 일본의 대도시들은 전철역 간의 거리가 서울과 달리
아침 햇살이 부드럽게 과수원에 내려온다. 유성 같은 빛줄기가 나무 사이를 스며들며 황금빛으로 물들인다. 얇은 안개가 감싸고 있는, 그 안에는 붉은 사과들이 더욱 빛을 발한다. 아름다움은 마치 자연 그 자체가 현실과 꿈 사이에서 춤을 추는 듯하다. 나무 가지는 색종이처럼 반짝이며, 과실들은 붉은 보석처럼 그 위에 달려 있다. 시집간 누나를 따라 버스를 타고 처음 놀러 온 포항시 오천읍은 온통 붉은색 천지였다. 버스도 붉은색, 군가를 부르며 구보를 하는 해병대도, 사과도 붉은색이었다. 마치 열정의 도가니처럼 느껴졌다. 사과만큼 사람과
똑똑한 사람들은 많다. 말도 똑소리 나게 잘 하고 논리에도 맞는 것 같다. 그렇다고 정답이라고 할 수는 없다. 맞는 말인데 그것이 상대를 기분 상하게 하고 분위기에 안 좋은 영향을 끼쳤다면 변수가 되기 때문이다. 그게 어렵다. 이번 어떤 정당의 선거 공천에서도 평소 똑소리 나게 쓴소리하며 당을 비판 했던 사람들이 대부분 낙천당했다. 나름 합리적이고 날카롭고 옳은 지적이라며 싫은 소리도 용기내어 한다는 사람들이 대거 탈락한 것이다. 왜 내가 낙천되었느냐고 따져 봐야 결과는 바뀌지 않았다. 그것이 정치다. 칼자루를 쥔 사람은 아무리 똑
사물인터넷 등의 기술이 도시의 모든 측면에 통합돼 시민의 생활을 더욱 편리하고 안전하게 하고, 도시생활을 효율적으로 만들어주는 사업이 바로 스마트 시티 조성사업이다. 도로마다 센서가 설치돼 교통체증을 예측하고 밤길에는 스마트 가로등이 자동으로 켜지는가 하면 CCTV와 연동돼 범죄를 예방한다. 그런 만큼 스마트 시티는 우리의 미래를 형성하는 핵심 요소라고 할만하다. 지난해 5월 국토교통부 공모사업에 선정돼 추진 중에 있는 '울산시 거점형 지능형도시(스마트시티) 조성사업'이 지난달 국토교통부의 실시계획 승인에 이어 최근 행정안전부 20
지금은 소비자의 감성을 충족하는 제품을 만들어야 성공하는 시대다. 소비자들은 기술이 아니라 자신만의 감성적인 요소로 상품을 선택하게 되는 경향이 갈수록 커지고 있어서다. 따라서 기술과 품질을 뛰어넘는 독특하고 색다른 디자인과 브랜드, 그리고 스토리를 만들어 내는 디자인이 필요한 것이다. 그런 차원에서 제품에 차별적 요소를 부여하고 감성 가치를 만들어 내는 디자인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하지만 대기업과 달리 중소기업들은 제품 디자인에 신경쓸 여유가 없다. 대부분 중소기업은 제품의 외형개선 정도로만 인식하고 브랜드에
경남 산청군 금서면에는 돌을 쌓아 만든 이국적인 무덤이 있다. 그 무덤은 가야의 마지막 왕인 구형왕의 무덤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삼국에 가려 먼 후대까지 전해 내려오는 자료가 많지 않아 구형왕릉이라는 설조차도 제대로 인정받지 못해 앞에 전 자를 붙여 전 구형왕릉으로 불렸고, 최근에는 산청 전 구형왕릉으로 명칭이 바뀌었다고 한다. 돌을 네모로 깎아 쌓은 피라미드형 적석총의 모습도 이색적이었지만 역사책에 몇 페이지를 장식했던 가락국 가야라는 이름이 내 마음에 남았다. 한때는 화려한 왕국으로 찬란한 미래를 꿈꾸었을 그들의 시간이 잠들어
남녀가 일심동체가 되는 혼인은 음양의 합이자 완전함을 이루는 것이고 만복의 근원이다. 그 부부가 하나 되는 것이 가화만사성의 시작이고 해로하는 것이 인생의 목표 중 하나이다. '슬픔은 짧았고 기쁨은 길었네' '달 속의 항아가 다계 마을의 즐거움을 안다면 닷새 밤낮을 함께 해도 좋으리' 2012년 11월 울산에서 처음 확인된 언양 '회근록'에 실린 축시 중 일부이다. '회근록, 癸亥 二月 二十 七日' 언양 평리(괴말) 안동 권씨 집안에서 보관한 필사본 문집의 표지 제목이다. 혼인 60주년을 맞아 연 회혼식에서 낭독하고 남긴 축시(7언
자연을 넓게 보면 참 아름답고 신기하고 질서 정연함을 느끼게 된다. 철 따라 꽃이 피고 열매를 맺고 다시 싹을 틔우는 자연의 순리가 인간에게 큰 이치를 깨닫게 한다. 하지만 그 속에는 치열한 생존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약한 자가 강한 자의 먹이가 되는 약육강식의 현장이기도 하다. 이것이 자연의 생존 법칙이다. 그러면 이 자연 속에 인간생태계를 한번 보자. 인간은 이성과 양심을 가진 동물로서 옳고 그름을 판단할 줄 안다. 그리고 사회적 규범이 인간생태계를 지배하고 있다. 하지만 인간생태계도 생존경쟁이 없으면 발전할 수가 없다. 그것은
우리나라 55~64세 임금근로자 10명 중 3명은 비정규직인 것으로 조사됐다. 이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가장 높은 비율이라는 점에서 우려가 크다. 중장년층의 고용 불안정을 우려하는 자조 섞인 한탄이 나오는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최근 발표한 '중장년층 고용 불안정성 극복을 위한 노동시장 기능 회복방안'(한요셉 연구위원)에 따르면 2022년 기준으로 우리나라 55~64세 임금근로자 가운데 임시고용 근로자의 비중은 34.4%라고 밝혔다. 성별로 보면 남자가 33.2%, 여자가 35.9%로 O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