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하 화상이 혜림사에서 추운 날을 만나 목불(木佛)을 태워 추위를 막았다. 주인이 와서 꾸짖자 단하 화상이 말했다. "다비를 해서 사리를 얻으려던 참이었소" "나무토막에서 무슨 사리가 나오겠소?" "그렇다면 어찌 나를 꾸짖으시오?" 주인은 이로 인해 앞 눈썹이 몽땅 빠져 버렸다. 흔히 말하는 단하소불(丹霞燒佛)의 고사로, '조당집' '단하 화상' 조에 전하는 이야기다. 단하 스님이 추위를 피하기 위해 나무로 된 불상을 태운다. 다른 사람도 아닌 스님이 불상을 태우다니, 이건 너무 막된 행위가 아닌가? 절의 주지 스님의 눈에도 당연히
쪽 창가에 앉아 햇살이 따스하게 비치는 커튼 사이로 사색에 잠겨 커피를 마실 때면, 어릴 적 추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그 시절 그 교실에서 초등학교 아이들이 즐겁게 뛰어놀며 공부하던 그때가 참으로 행복하고 더할 나위 없는 좋은 시절임을 깨닫는다. 사람이 나이가 들면 지난 과거가 더 그리워지는 것은 우리들은 모두 같은 생각일지도 모른다. 동창회 모임이라고 참석을 해보면 머리가 희어지고 체형은 젊음을 뒤로하고 자꾸만 줄달음을 친다. 꿈보다 해몽이 좋다는 말이 있다. 눈이 침침해지는 것은 나쁜 것을 보지 말고 좋은 것만 보라는 뜻이고,
봄이라는 말만 해도 마음이 두근거린다. 생기가 돌고 뭔가 새로운 시작을 해야 할 것 같은 강한 의지가 돋는다. 동백, 개나리, 목련이 봄의 기운을 불어넣는다. 울산에는 봄을 제대로 즐길 힐링의 장소 태화강국가정원에서 계절마다 다양한 분위기의 꽃과 식물을 볼 수 있어 행복하다. 필자가 근무하는 요양원에서도 따뜻한 봄이 되면 어르신들을 모시고 산책을 늘 한다. 하지만 보행이 힘들거나, 먼 거리를 걸을 수 없는 연령대가 있다. 보행을 한다는 것, 너무나 일상적이고 당연한 일이라는 생각은 나이가 들수록 당연한 것이 아닌, 순간이 온다. 노
발을 단단히 디뎌야 한다다리를 꼿꼿이 세워야 한다이제부턴 아랫도리 힘으로만 버터야 한다-중략-허영자 시인의 시에는 노년을 겨울이라는 계절과 쓸쓸해지는 노년의 삶을 비유하며 잔잔한 비애를 노래한다. 입동이 되어 나뭇잎이 다 떨어진 나무들이 뿌리로 겨울을 이겨내야 하는 것을 시로 표현한 것이다. 아이가 자라나서 노인이 되듯이 우리는 노화 앞에 운명적인 시간을 맞이하게 된다. 말랑하고 부드럽고 윤기나던 피부는 수분이 빠지고 근육이 탄력을 잃어 가면서 쭈글쭈글한 주름이 온몸을 점령한다. 요즘은 상대의 나이를 함부로 가늠하면 안 될 정도로
인간이 지구상에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지금부터 약 300만~350만년 전으로 알려져 있다. 최초의 인류는 아프리카에서 화석이 발견된 오스트랄로피테쿠스였다. 이들은 살기 위해 나무 열매를 따 먹고 동굴에서 생활하였다. 오로지 생명을 이어가기 위한 수단으로 밤과 낮을 이어갔다. 이들도 어떻게 보면 생명유지가 행복이었을 것이다. 인류 문명이 발달해 갈수록 행복의 척도는 변화하고 이를 위해 많은 종교가 탄생했다. 사상가나 철학자, 예수의 탄생, 석가모니 부처님의 고행, 모두가 인간의 행복을 염원하는 길을 걸었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종교나
유구한 세월을 지나온 인연, 대단히 고맙고 존엄한 것, 헤아릴 수 없는 세월의 강을 건너 말랑말랑하고 부드러워 다양한 모양의 사랑으로 만들기까지 서로에게 베풀고 인내하고 기다려준 자식 농사. 대풍은 아니라도 풍년작은 되었지 싶어도 늘 아쉬운 것이 자식 농사다.처음 부모가 돼보았고, 자식이 됐다. 2회차 인생이 아니고 첫 주연으로 발탁된 것이다. 마음이 시키는 대로 살아가기 힘든 세상이다 보니,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서는 하기 싫은 일을 해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세상 쉬운 것은 없다. 고단한 삶 속에서 이루고 성취해 나가며 '이런
남도 끝자락, 산사의 밤은 적막하다. 스마트폰도 놓아두고 인터넷이 없는 방에 객으로 머문 지 한 달, 산사 밖의 소식은 먼 나라 이야기가 됐다. 새벽 예불도 객인 내가 참견할 일이 아니어서 밤늦도록 불을 켜고 누워 책을 뒤적거리고 글을 끄적거리는 것이 일과처럼 됐다. 오늘은 방 한구석에 자리 잡은 책상 위에 '노블레스 오블리주'란 제목을 단 책을 뒤적였다.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는 '고귀한 신분에 따르는 도덕적 의무와 책임'을 뜻하는 프랑스 말로,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를 가진 사람들은 그에 걸맞은 사회에 대
한 번뿐인 인생, 한번 왔다가 두 번 다시 오지 않는 인생이지만, 사람들은 현실에 급급해 살아가다 보면 자신을 잃고 살아간다.한편으로는 현실의 중요성도 이루 말할 수 없다.우리가 살아가는 이유는 과연 어디에 있을까?변화무쌍한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는 정보화 물결 속에, 밀려오는 새로운 혁명과 과학과 문화를 다 흡수하기도 힘들다.자신의 정체성을 잃고 하루하루 살아가는 현실이 안타깝기도 하다.아쉬운 이야기지만, 한국은 자살률 1위, 저출산 1위, 노인 빈곤율 1위 그리고 고령화 속도는 급속도로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이런 사실은 매스컴을
빛과 어둠이 다투는 미명의 시간, 어둠은 물러나지 않을 듯 짙게 드리워져 있다. 하지만 동이 트는 건 어떻게 막을 수 있나?어김없이 찾아오는 불멸의 진리를 오늘의 태양은 또 말해 줍니다.지금이 가장 좋은 때, 어제도 아니고 내일도 아닐 수 있다.삶은 계획한 대로, 생각한 대로 다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새로운 곳을 찾아가는 미지의 여행길 같은 인생, 다만 여느 때와 같은 하루를 보내고 또 하루를 맞이하는 무한반복의 시간이다.일상이 쌓이면 일생이 되고 그 수많은 이야기는 서사로 펼쳐지는 것이다.올해도 빠르게 지나가 버린 순간들 속
가을 햇살이 따사로운 창가에 앉아 책을 읽는 김 어르신 모습은 너무 여유롭고 행복해 보인다. 평화로운 일상은 계속되지만, 김 어르신도 치매 진단을 받고 요양원에 계신다. 하지만 일상적인 대화는 문제가 없을 정도이고, 보행도 큰 문제가 없으시다. 몇몇 어르신들은 요양시설에 오지 않아도 가정에서 노치원을 다니거나 자녀의 돌봄을 받으며, 생활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이지만, 각 가정 상황은 어떠한지 모르기 때문에 함부로 단정 짓기는 어렵다. 돌발 행동을 할지도 모르는 상황도 있고, 24시간 돌봄을 밀착 케어한다는 것은 바쁜 일상을 살아가는
늦더위가 지루하다가도, 시원한 빗줄기가 퍼붓는 날에 맞물려 농부가 꼬는 새끼줄처럼 조금씩 길어지는 밤, 낮이 확연히 다른 기온 차가 느껴진다. 이미 가을이 스며든 지 오래고, 추석 명절도 보냈다. 성묘를 한 날에 모인 친척들은 지금의 50~60대가 마지막 성묘 세대라 말하며 정성을 다해 조상 묘를 다듬었다. 깨끗하게 단장한 묘 앞에 앉아서 구슬땀을 식히며 형제들은 부모와의 지난 이야기를 나누었다. 지금의 젊은 세대와 현시대 상황에는 대부분 납골당에 모시기 때문에, 성묘하는 풍경은 사라질 것이다. 조상에 대한 예를 갖추는 모든, 의식
더위에 지쳤던 여름이 끝자락을 보이고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기운이 느껴진다. 아파트 내 벚나무는 마른 잎을 떨구어내고, 가로의 나무들도 부쩍 수척해졌다. 서둘러 갈무리에 들어가는 식물들은 사람이 느끼는 계절보다 훨씬 더 빠르게 변화를 예견하고 대처하는 모양이다.9월의 첫 번째 오일장에 나갔다가 깜짝 놀랐다. 따글따글 여문 햇밤이 상품으로 나와 있는 것이 아닌가. 겨우 8월을 벗어났는데 햇밤이라니 제대로 뒤통수 한 대 맞은 기분이었다. 시간의 흐름을 좇아가지 못한 나는 밤이 저리 속살을 채우는 동안 뭐하고 살았을까 싶어 피식 헛웃음이
깨달음을 얻기 위하여 참선에 들어가기 전에 수행자가 진리를 찾는 문제를 처음 마음에 담는 말이 화두이다. 대부분의 화두는 풀릴지는 몰라도 효에 대한 화두만큼은 풀어도 풀어도 끝이 없는 미로다. 그만큼 진중하고 깊은 것이다. 요양원에는 하루 종일 침상에 누워만 계시는 어르신들이 많다. 치매로 인해 기억은 거꾸로 흘러가고, 아주 오래전 가슴에 품었던 옹이 같은 응어리, 이야기보따리는 하루하루 조금씩 실타래처럼 술술술 풀어낸다. 어쩌면 이승에서의 남은 삶의 모서리를 깎고, 있는지도 모른다. "나는 아들 여섯에 며느리 여섯, 도합 열둘이다
"너와 함께한 시간 모두 눈부셨다. 날이 좋아서, 날이 좋지 않아서, 날이 적당해서, 모든 날이 좋았다." 나에게도 모든 시간이 좋은 날들이다 지난 6월 중순, 경주에 다녀왔다. 유월에 햇살은 눈부시고, 싱그러운 연초록은 더욱 빛났다. 연인을 만나러 가는 길처럼 마음이 두근거렸다. 경주에 대한 기억은 언제나 좋다. 어느 해 겨울, 박목월 시인의 생가가 있는 건천읍 모량리에 갔다. KBS 포항 방송국에서 생가 복원을 앞두고 취재를 나왔다가 인터뷰를 하게 되었다. 박목월 시인의 '나그네' 시를 낭송하기도 하고, 복원에 대한 의견을 묻는
기나긴 겨울 같이 춥고 어두운 날들도 있었고, 또 다시 돌아온 봄날은 언제나 그렇게 별빛 따라 흐르고 흘러가 버렸다. 마치 멈추지 않은 강물처럼. 자식들에게 큰 나무처럼 그늘을 주고 꽃을 피워, 은혜 주시던 부모님들은 연로하셔서 치매와 더불어 대부분 요양시설에 계신다. 시간이 지나면서 식사를 잘하시다가, 죽으로 다시 미음으로 결국은 숟가락을 놓고 곡기를 끊는 날이 오면 요양보호사들은 직감한다.생의 시간이 그리 많이 남지 않음을. 요양보호사로 근무하면서 많은 어르신들을 떠나 보냈지만, 그날은 유독 마음이 저려 왔다. 장맛비가 억수같이
장마가 시작되고 눅눅함이 사방에 깔려 몸과 마음이 바닥으로 가라앉는 느낌이다. 비를 좋아하는 나도 우기가 끝나기를 은근히 기다리는데 빗소리를 유난히 좋아하는 지인이 있다. 주고받는 안부 문자마다 빗소리가 빠질 때가 없다. 빗소리 아름다운 밤이라든가 빗소리 듣기 좋은 날이라는 문구가 어김없이 들어 있다. 청소년 시절에야 문학 소년소녀가 아니라도 빗소리에 귀 기울이고, 바람 소리에도 공연히 설레어 긴긴 겨울밤 잠을 설친 적도 있다. 그러나 나이가 들어 감상적인 마음이 많이 줄어들었을 것임에도 그녀는 여전히 빗소리가 아름다운 것이다. 떨
내가 머무르고 있는 공간 3층에서 뒤편 구릉지를 내려다보면 경사진 산비탈을 깎아 아기자기하게 만든 밭이 계단을 이루고 있다. 그곳에서 막 가을걷이를 서두르고 있는 농부들의 손놀림을 보며 흐르는 세월을 잠깐씩 감상한다. 내가 이곳에 발을 붙인 건 2년 전, 온갖 농작물들이 다복다복하게 푸름을 더해가는 4월 중순쯤이다. 산기슭에 자리하고 있지만, 앞쪽은 콘크리트 덩어리들과 한 치의 양보 없이 경적을 울리며 지나는 문명의 이기들로 북적거리는 도회의 모습이요 뒤쪽은 정반대다. 그러니까 같은 공간에서도 제자리에 선 채로 뒤로 돌면 농촌이요
다시 오지 않기에 찬란한 오늘. 그 시간 들 속에 산다는 건 맑은 하늘에 떨어지는 빗줄기, 여우비처럼 신기하기도 하고, 폭풍우 몰아치는 두려운 날들도 있다.사계절이 뚜렷한 나라에 산다는 것, 또한 복이다.마치 인생의 희노애락처럼 흘러가는 시간의 묘미가 있다. 산줄기의 근육질이 살아 숨쉬는 겨울은 잉태의 계절이다. 척박한 땅을 끌어안고, 품고 견디는 인고의 시간이다. 긴 침묵의 시간이 지나면 조그만 새의 입처럼 연두의 새순이 눈을 뜬다. 영하의 온도를 견디며 온 힘을 다해 봄을 알리는 것이다. 영롱한 봄비를 머금은 매화를 따서 덖어
이 땅에서 노인으로 살아가기란 쉽지 않다, 어떻게 살아야 잘 사는 것인지 요즘 들어 더욱 생각해보게 된다. 조금은 서럽고 조금은 서운한 마음을 침묵하는 다수의 노인을 대신해서 드러내 보고자 한다. 하루는 친구들과 멀리 있는 공원에 소풍을 나갔다. 여기저기 구경하고 그늘을 찾아 앉으니 옆 자리에 앉은 아기가 가까이 와서 빤히 쳐다보기에 '오, 예쁘구나, 아가야 이리 온' 하고 한 번 안아주려 했더니 친구가 무슨 짓이냐고 요즘은 그러다 큰 봉변당할 수 있다고 기겁을 한다. 당황스럽기도 하고 무안하기도 하여 먹던 과자를 몇 개 주려니 옆
봄 햇볕이 따뜻하다. 매년 돌아오는 봄이지만 마음이 설레는 것은 나이를 먹은 탓이다. 나이가 드니 길가에 핀 꽃 한 송이, 풀 한 포기도 소중하다. 그래서 지금이 좋고 오늘의 삶에 욕심이 생긴다. 욕심이 생기는 만큼 만족스럽지 못한 일들도 많아서 어떻게 해야 불만족스러운 삶과 이별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게 된다. 한 해를 넘길수록 아픈 곳도 넘쳐나는데 그래서 시작한 것이 만 보 걷기다. 한 걸음씩 걷다 보면 내 몸에 엉킨 실타래가 가지런히 정리되는 느낌이 든다. 건강을 생각해서 조금 더 일찍 내 몸 돌보기를 시작하지 않았을까? 뒤늦