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집에 머물 수 있는 일요일이다. 이른 아침에 가을 산책을 즐기자니 고졸한 맛이 일품이다. 허기진 영혼에 살이 오르는 듯해 혼자 걸어도 미소가 번진다. 다사다난한 일상 속에 책갈피처럼 끼어 있는 이 순간이 소중해 아끼며 느린 걸음으로 걷는다.자연도 샘이 나는 것일까. 심술궂은 바람 한줄기가 휙 지나간다. 여기저기 나뒹굴던 낙엽이 참새 떼같이 종종걸음을 치다가 금잔화 꽃무더기에서 물구나무서기를 한다. 십일월 하순에 접어들었지만 금잔화는 아직 꽃대도 건강하고 피지 못한 꽃봉오리마저 사랑스러워 계절의 경계가 모호하게 느껴진다. 실
아파트의 앞 베란다는 누군가 야멸차게 싹둑 잘라낸 것 같이 아예 없었다. 안방 창문이 적나라하게 하늘에 노출된 채였다. 여름날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지면 창 쪽으로 놓은 텔레비전에 비가 들이치므로 부리나케 창문을 닫아야 했다. 알루미늄 새시에 불투명 유리를 끼운 현관문은 방범이 허술해 보였다. 거실을 사이에 두고 안방과 작은방이 나뉘고 밖으로 난 주방문을 열고 나가면 집 뒤쪽으론 좁다란 베란다였다. 그 끝에 연탄창고가 붙어 있었다. 연탄보일러 시설이 내장되지 않은 거실엔 겨울 내내 석유난로를 켜야 했다. 서른 몇 해 전 울산으로 이사
데크에는 떨어진 포도가 수북하다. 시들다 떨어진 송이들이 나뒹굴고 있다. 어느 해보다 더 뜨거운 여름이라 포도나무도 볕을 견디지 못했다. 그악스러운 더위를 견딘 것이 용하다. 포도를 먹지 못한 아쉬움보다 빠른 기후 변화가 두렵다. 흐트러진 자연의 질서를 회복하기가 쉽지 않을 것 같아서 걱정이다. 비로 쓸어 모아서 버린 포도가 밭 가운데 쌓였다. 좀 허탈했다. 묘목을 파는 농원에서 나무를 사다 심었던 나무라면 좀 덜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곡절도 있고 특별한 포도라서 마음이 더 시렸다.몇 년 전 지인이 포도를 심은 화분을 들고 방
살다 보니 어느 한쪽이 득이면 다른 쪽이 손해되는 걸 종종 본다. 소위 대응관계(大應關係)가 되는 것이다. 필자가 알고 있는 가장 유명한 예는, 현대 경제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1970년 미국인 최초의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폴 새뮤얼슨(Paul Samuelson)의 행복 공식이다.그의 공식은 경제학자답게 지극히 자본주의적이다. 즉 행복=소비(소유)/욕망이 그것이다. 이를 풀어보면, 욕망하는 크기만큼 소비(소유)해 주면, 즉 먹고 싶은 것을 먹고 싶은 만큼, 사고 싶은 자가용이나 고급 주택, 좋은 옷 등을 사고 싶은 만큼 소비(소유)
"우다다다다."이것은 쥐가 달음박질하는 소리."와다다다다."이것은 쥐를 쫓아가는 고양이 소리.가 아니다. 우리 집 천장 위의 쥐와 고양이 이야기다. 어릴 때 우리는 '나비'란 이름의 검정과 회색이 섞인 줄무늬 고양이를 길렀다. 농사를 지으니 부엌이나 창고에 쥐가 자주 출몰했는데, 이 쥐들은 밤이 되면 안방 천장 위에서 시끄럽게 달리기를 했다. 쌀알이나 멸치에 쥐약을 버무려 놓아두어도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자 참다못한 어머니가 천장 도배지가 내려앉은 틈으로 나비를 올려 보냈다. 우다다다. 와다다다. 쥐는
울산만 서쪽 해안에는 고래잡이로 유명했던 장생포가 있다. 포경업이 금지되면서 역사의 뒤안길로 밀려났던 포구가 고래박물관, 고래문화마을, 고래생태체험관, 고래바다여행선 등 다양한 문화 공간이 생기면서 옛 향취를 찾으려는 사람들로 줄을 잇는다. 테마 관광으로 인기가 많은 고래바다 여행선에 올랐다. 눈부신 하늘이 파란 바닷물에 녹아들고 까칠한 바람이 소맷자락 속으로 파고든다. 뱃고동 소리와 함께 출발한 유람선이 육지에서 멀어질수록 이번에는 고래를 볼 수 있을 것 같은 기대감에 마음이 부푼다. 장생포에서 고래를 만날 수 있는 확률은 얼마나
새댁 적의 일이다. 돌아가신 시 백모님께서 방문했을 때였다. 둘째 아이에게 짜증을 내고 몹쓸 소리 했더니 '화내지 않게 마음을 다잡으라'고 하셨다. 그 이후 화가 쉬이 풀리지 않을 때마다 그분을 생각하며 자제를 하려 애쓴다. 그분은 아이들 이름을 어질게 살라고 '어진이'라 지어 주시고 착해지라고 '착한이'라고 별명을 지어 부르길 좋아했다. 식구가 많아 하루도 조용할 날 없는 막내 시 숙모님 댁의 사촌 동서가 낳은 아기에겐 '화목동이'라는 별칭을 지어주셨다. 이제 내가 그분의
지난 추석 스마트 폰에 문자로 명절인사들이 들어왔다. 그 중에는 풍요로운 한가위 되라는 다운 받은 그림으로 보낸 추석 인사도 있었다. 잊지 않고 기억해 주어서 고마웠지만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한 통로의 이웃 아이가 안녕하세요, 하고 무심히 던지는 의례적인 말 같기도 해 보는 마음이 조금 밋밋해지기도 했다. 내가 고루해서인지 그림 밑에 직접 써넣은 문자 몇 글자 달려 있으면 더욱 고마울 텐데 하는 생각도 들었다.큰아버지 집안에 양자로 간 추사가 8세 때 아버지 김노경에게 보낸 편지엔 아이의 천재성과 따뜻한 마음이 들어 있다. '
오래된 초등학교 앞에 섰다. 운동장이 손 한 뼘에 다 들어온다. 손으로 만든 앵글 안에서 이리저리 각도를 바꿨다. 어떤 방향이어도 작은 것에서 비켜서지 못했다. 그토록 크게만 느꼈던 운동장에 속은 것 같아 야속하기만 했다.앞산에 있는 아버지 산소를 보고 오던 길이다. 길목인데도 매번 지나치기만 할 뿐 쉽게 들어서질 못했다. 어떤 일이든 때가 있나 보다. 이번에는 가볍게 마음이 동했다. 손님처럼 조심조심 교문을 들어섰다. 어린 날을 보냈던 학교는 이미 폐교가 된 지 오래다. 수련장으로 쓰이는 방갈로가 휑한 운동장을 메웠다. 넓었던 운
벌써 오래전 일이다. 같은 대학을 선생과 학생으로 다녔던 조카가 결혼과 동시에 맞벌이로 살 때다. 집안 대식구가 거실에서 삼삼오오 쉬고 있었다. 다과상 주위로 제각각 TV시청, 카드놀이, 대소사 의논, 잡담 등을 하는데, 필자는 소파에 그냥 앉아 있었다. 조카내외가 눈앞에 앉아, 처음엔 가만가만 얘기만 하더니 차츰 서로 손을 잡고 만지고 하다 어느 순간 신랑 뒤에서 껴안고 누르고 장난이 심하기에 하긴 신혼이니까 하고 넘어갔다. 헌데 화장실을 갔다 오는데 이젠 신랑 얼굴 여기저기 슬쩍슬쩍 뽀뽀까지 하는 등 스킨십이 지나친 게 아닌가?
야산 기슭에 버려진 의자를 보았다. 1인용 갈색 비닐 소파인데 등받이 부분은 비닐이 뜯어져 스펀지가 비어져 나오고, 앉는 자리는 꽤 오래 사용한 듯 푹 꺼져 있다. 그런 의자가 잡목과 잡풀 사이에 버려져 있는 것이다. 쓰레기를 무단으로 내다 버린 현장이지만 쓰레기 불법 투기라는 환경론적 측면보다는, 저것은 의자에 대한 예의가 아니지 않은가 하는 감정적 씁쓸함이 더 컸다.오래 사용한 물건, 특히 앉는 곳이 꺼질 정도로 오래 사용한 의자라면 버릴 때(이 정도로 주인에게 봉사한 물건이라면 버린다는 표현보다는 헤어진다라는 표현이 더 적합할
원시림으로 뒤덮인 마구령을 넘는다. 부슬부슬 내리는 비는 안개 자욱한 숲길을 더욱 운치 깊게 몰아간다. 산모롱이를 돌아서자 수려한 산세에 안긴 김삿갓 문학관이 보인다.산 깊은 골이라 조용할 것 같았던 문학관 모습이 아니다. 길가에 세워진 차량 행렬과 천막 규모를 보아 제법 큰 행사가 있는 듯하다. 벌써 잔치 분위기가 고조되었는지 빗소리와 함께 구수한 노랫소리가 들린다.때마침 나선 길이 삼도(三道) 접경지 이웃들이 모여 화합하는 날이다. 강원도 영월, 충북 단양, 경북 영주 사람들의 흥겨운 웃음소리가 소백산 줄기를 타고 수런수런 흘러
1. 냠냠 식당손주들이 소꿉놀이를 한다. 오늘의 놀이는 식당 놀이란다. 둘이서 머리를 맞대더니 식당 이름을 냠냠 식당이라고 정한다. 머리에 얹은 긴 원통형의 요리사 모자를 쓴 손자와 세모 스카프를 쓴 손녀가 운영하는 식당이다. 메뉴는 김치찌개 된장찌개 햄버거 고등어구이 스파게티다.냠냠 식당 사장의 운영방침이 신선하다. 손님이 들어올 때는 반드시 '안녕하세요?'하고 먼저 인사를 해야 하고 냠냠 식당 사장은 허리를 굽히고 두 손을 배꼽에 모으고 '어서 오세요'라고 반겨야 한다. 식사는 냠냠 맛있게 먹어야 하
한 해에 몇 차례씩 만나는 젊은 시절의 셋방살이 동기가 있다. 그녀는 내가 갖고 있지 않는 재능을 여럿 가지고 있다. 그중 미용기술은 대단하다. 처음 만날 때는 이십대 초보였지만 끊임없는 공부로 지금은 대학 강단에도 설 정도다. 그런 그녀가 벗이 돼 마흔 해가 지난 지금까지 내 머리 손질을 해주고 있다. 물론 비용이 만만치 않지만 그녀만의 특별한 계산 방식은 매우 합리적이라 나는 당당한 VIP 고객이 돼 부담 없이 드나들고 있다.달포 전에도 늦은 저녁 시간에 들렀다. 직원들은 퇴근하고 원장인 동기만 남아 내 머리를 손질하고 세발까지
닭갈비를 먹은 뒤 밥 하나를 볶아 달라고 주문했는데 아르바이트생 청년은 밥을 수북이 가져와 철판에 넣고 볶기 시작한다. 함께 앉은 지인이 청년을 보며 말한다. "우리 많이 먹으라고 밥을 넉넉하게 가져왔죠?" "네." 아르바이트를 잘 해야 한다는 긴장감이 있어서일까. 아직 얼굴에 무표정 외엔 표정이 담기지 않은 청년이 얼른 대답한다. 특별하게 반기거나 표현하지는 않지만 이 식당에 두 번째 온 우리한테 잘해 주고 싶어 하는 청년의 마음을 은연중 느끼고 있었다. 그 마음이 밥을 한 공기보다 많이 가져온 것이리라. 한창때 젊은 사람의 양으
어머니 부재로 느꼈던 그리움이제는 결혼한 딸에게로흔적은 시간의 한점 일뿐나도 홀로서기가 필요할것같아 퇴근해서 집으로 들어서는데 마음이 허해졌다. 며칠 볼일 겸 쉬려고 왔던 딸 내외가 돌아가고 없기 때문이다. 이부자리는 정돈되어 있고 결혼 전에 딸이 쓰던 방을 서재로 만들었는데 아이들이 그 방에서 임시로 며칠을 묵었다. 어수선했던 방이 원상복귀 된 것을 보면서 떠났구나 하는 허전함이 빈 집에 내려앉은 듯했다. 누군가 다녀갔다는 흔적은 내게 트라우마였다. 매번 겪었던 어린 시절도 그랬는데 성인이 되어서도 변함이 없다. 친정에 왔던 딸이
일상이 늘 빠듯한 도시인들에게 공원은 그야말로 숨구멍이다. 학성공원과 진해탑산은 여러 모로 닮았다. 애들 어릴 때 즐겨 찾았고, 두 곳 모두 벚꽃이 무척 탐스럽다. 도심 한 가운데 있고, 규모 또한 아담하다. 그럼에도 거대한 역사의 격랑 속에서 학성(울산왜성)은 왜구와 진해탑산(제황산공원)은 일제와의 피비린 과거를 고스란히 증언하고 있다.여전한 왜와 일제의 잔재없애거나 벴다고 사라지지 않아그 만행을 잊지않는 것이또 당하지 않는 유일한 방법학성공원은, 그간 연구해온 '봄편지'의 시인 서덕출의 땅이다. 힘겨웠던 일제 강점
정말 덥다. 불가마, 가마솥, 찜통, 한증막. 더위를 표현하는 온갖 수식어가 무색할 지경이다. 그저 뜨겁다. 너무 덥다 보니 비교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폭염과 한파 중에 어느 것이 나은가 선택해 보라고 한다. 추우면 옷을 껴입으면 되지만 더우면 땀 때문에 불쾌하고 찝찝하다고 한파 편을 드는 사람, 더우면 불쾌하긴 하지만 생존은 할 수 있는데 한파엔 생존의 위협을 받기 때문에 폭염이 그나마 낫다는 의견. 나는 추위보단 더위를 잘 참는 편이긴 하지만, 그것도 어느 정도이지 이런 더위엔 슬그머니 한파의 손을 들어주고 싶다는 생각도 든다.
꾸려두었던 행장을 짊어지고 집을 나섰다. 새벽부터 쉬지 않고 달렸건만 백담사에 도착하니 오전 시간이 절반 지나갔다. 갈 길이 바빴다. 천하절경도 고단함을 물리칠 수 없는지 가도 가도 끝이 없는 산길이 버거웠다. 남을 위한 작은 친절에도쌓이는게 공덕,백만석의 쌀보다마음 보시가 더 크다는데…쉬었다 일어나면 금세 꿰찬 피로를 달래며 영시암, 수렴동대피소, 쌍룡폭포를 지나 봉정암에 도착했다. 불자라면 누구나 평생에 단 한 번이라도 오르기를 소망하는 곳이 아닌가. 지쳐도 지친 내색 없이 걷다 보니 두 다리가 성치 못했다.간신히 법당에 들러
세계는 지금, 월드컵 축구경기로 열기가 꽉 차 있다. 경기에 몰두해 텔레비전 화면 속으로 빠져들어 가듯 보다가 심판의 호루라기 소리가 경기를 멈출 때는 잠시 숨을 멈춘다.멕시코와 경기를 할 때였다. 우리 선수가 거침없이 상대 진영을 돌파해 나갈 때 상대 선수가 우리 선수의 다리를 찼다. 누가 봐도 의도적인 듯한 상대편의 반칙이었다. 상대방 선수에게 파울이 선언될 줄 알았는데 그대로 경기가 진행됐다. 유난히 우리선수에 엄격했던월드컵 축구경기 심판들규칙은 지키라고 만든 약속어디서든 정당한 판정이 필요그런데 정작 우리 선수에게는 과격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