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게 뭔지를 몰랐다. 볼일을 보고 무심코 내려다 본 팬티에는 끈적한 게 비릿한 냄새가 났다. 팬티가 검정색이어서 색깔은 알 수 없었다. 오줌을 지렸나보다. 그렇게 하루가 지났나, 이틀이 지났나 그곳이 몹시 따가웠다. 찝찝했지만 또 들여다 볼 생각을 못 했다. 그렇게 또 하루가 지났나, 다시 내려다 본 속옷은 뻣뻣하니 냄새가 고약했다. 그제야 엄마 앞에 바지
잠이 쏟아지는 유월 초하루 오후 2시가 막 지나고 있었다. 중년의 여자가 사무실 문을 열었다. 언뜻 보기에 안면이 있는 것도 같고 없는 것도 같아서 멀뚱하게 쳐다보고 있었다. 내 눈치와는 상관없다는 듯 그 여자는 흰색 편지봉투를 내밀며 누구에게 전달해 달라고 했다. 직원들이 재대로 알아듣지 못하고 어리둥절 하는 사이에 나는 "분명 어디서 본 적 있
오월의 이른 아침에 기차를 타고 떠나는 일은 나를 설레게 한다. 차량 한 칸에 서너 사람이 앉아 가는 일이 좋아할 일만은 아니지만 산만하지 않아 좋다. 차창으로 스쳐지나가는 풍경 속에 유독 농가 한 채가 내 안에 들어온다. 집 주변에 듬성듬성 흩어져 있는 소소한 것들은 그 존재는 물론 의미조차 미미해 보였지만 앉은 모양새는 당당하다. 그리 넓지 않은 토지와
엄마 생신 쯤 오디가 익는다. 구구구 산비둘기 노래 소리가 한층 구수해지면 뽕나무에서 단내가 난다. 새끼 누에 같은 오디들이 꾸물텅대는 소리. 지난 일요일은 엄마 생신이었다. 오리불고기를 유난히 좋아해서 생신 때마다 향산가든에 오리불고기를 먹으러 갔는데 이번에는 그러지 못했다. 새 전동차를 타고 밭에 다녀오던 엄마가 전동차에서 떨어지면서 발뒷꿈치를 다쳤고
시인 올해 초, 보수 성향의 한 단체에서 대한민국 건국 대통령 이승만 시를 공모한 적이 있다. 대통령 찬양시를 공모한다는 발상도 놀랍지만, 수상작 발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최우수작과 입선작의 수상을 취소하는 소동이 벌어져 놀라움이 더욱 커졌다. 최우수작은 'To the Promised Land'라는 제목의 영작시인데, 겉보기엔 찬양시이지만 총 11행인
요즘 들어 사이란 말이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출발이 어디서부터였는지 확실하게 기억나지 않으나 동인 중 한 사람이 쓴 시 '사이'를 읽은 이후였던 것 같기도 하다. 가끔 사이를 써놓고 차이로 읽기도 하고, 차이를 써놓고 그 사이를 생각하기도 한다. 지난달 일주일 정도 러시아 여행을 다녀왔다. 떠나던 날 울산은 벚꽃이 지고 어린잎들이 다투어 피어나는 연
통에 뭔가를 넣고 칙칙 뿌리기만 하면 되는 스프레이는 빠르고 편리해 여러모로 이용되는 도구다. 벌레를 잡기 위해 약을 뿌리거나, 표면에 마감재를 고르게 칠하거나, 심지어 얼굴에 화장을 할 때도 사용한다. 특히 뭔가를 구분하기 위한 표시를 할 때 더없이 편리하다. 스프레이 사용의 인상적인 예로 사고가 났을 때 흔적을 남기기 위해 뿌리는 경우가 있다. 교통사고
28년 전, 첫 아이를 낳고 키운 그 집에는 대추나무 한 그루가 있었다. 임신한 몸으로 그 집에 이사를 했는데, 집보다도 먼저 내 눈에 들어왔던 나무였다. 아기가 태어나는 봄에 나뭇가지마다 잎이 뾰족뾰족 돋으면 탄생하는 새 생명에 대한 기쁨이 두 배가 될것 같았다. 아기를 안고 제 손톱보다 작은 잎을 보여주면서 놀고 싶었다.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잎사귀를
첫 새벽에 잠을 깼다. 알람시계는 다섯 시가 아직 10여 분이나 남았다. 이 시간에 다시 잠을 청하기가 쉽지 않아 마루로 나와 TV를 켰다.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던 중 어둑한 거실 한쪽에서 인기척을 느꼈다. 어머니였다. 어머니는 소파에 걸터앉은 채로 벽에 걸지 않고 세워둔 액자의 시를 읽고 있었다. 어머니는 잘못을 저지르고 들켜서 머쓱한 아이의 표정으로 &
살면서 힘을 빼라는 소리를 몇 번 들었다. 맨 처음은 수영 강사한테서였다. 온 몸에 힘을 준 채 물 위로 떠오르고자 용 쓰는 나에게 강사는 두 손바닥으로 내 허리를 받친 채 소리쳤다. 힘을 빼세요. 힘을! 두 번째는 운전면허학원 강사한테서 들었는데 핸들을 가루로 만들어 버릴 듯 힘 주는 나를 보다 못한 강사가 내 어깨를 누르며 말했다. 힘을 빼라니까요. 의
모처럼 종일 비가 내린다. 일을 하면서도 봄비 맞은 정원이 궁금해 내 촉수는 달팽이처럼 젖은 집에 먼저 가 있다. 퇴근하자마자 이미 저물어 어둠에 싸인 산책로를 따라 걷는다. 나처럼 평범한 사람은 이런 순간에 감동하고 감사하는 마음을 갖는다. 가까이 있는 것들과 소소한 일상을 돌보며 주변이 무사한 것에 위안을 느끼면서 크게 다를 것 없는 내일을 준비하는 삶
이월 중순경인가, 통도사에 홍매가 피었다고 지인이 소식을 전해왔다. 그리고 한동안 잠잠하더니 삼월 들어선 갑자기 연이어 꽃소식이다. 산수유, 진달래, 개나리, 목련, 살구꽃과 벚꽃까지. 꽃들이 불꽃처럼 피고 있다. 아니, 폭죽처럼 터지고 있다. 어디 나무에 피는 꽃 만인가. 들판에도 파릇파릇 싹이 올라오며 냉이, 별꽃, 벼룩이자리 같은 작은 꽃들을 마구 피
몇 살 때였는지 모른다. 또 읽었는지 들었는지 그에 대한 기억도 없다. 얼굴도 팔다리도 없는 그 이야기는 풍선같이 둥실 마음에 떠서 나를 지켜본다. 사람이 죽어 저승에 가면 염라대왕에게 전생을 비춰보는 커다란 거울이 있다고 했다. 그 앞에 서기만 하면 그 사람이 평생 어떻게 살아왔는지 환히 볼 수 있다고 했다. 그 거울에 비추어지는 업 중에서 죄를 많이 지
나도 그렇지만,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시인으로 윤동주를 꼽는다. 아마 교과서에 실린 의 영향 때문이기도 하겠는데, 나는 그보다 을 좋아해서 그 긴 시를 노트에 옮겨 쓴 적이 있다. 그 시는 소리 내어 읽을 때 '별 하나에 동경과/ 별 하나에 시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하는 부분에서 늘 코끝이 찡해지곤
2016년 정월 대보름달은 구름이 끼어서 볼 수 없다는 뉴스를 몇 번 들었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대보름날 저녁 숟가락을 놓자마자 승용차에 아내를 태우고 몽돌이 아름다운 정자해변으로 달려갔다. 내 기대와는 달리 찾아간 정자 해변은 달맞이 하는 사람들 대신 파도가 포말을 일으키며 몽돌해변으로 몰려왔다 가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해안선을 따
아이들은 나를 '인간 연필깎이'라고 부른다. 내가 문구용 칼로 연필을 정교하게 잘 깎기 때문이다. 그렇다. 나는 진짜 연필깎이의 달인이라 할 만큼 연필을 기똥차게 깎을 줄 안다. 왼손에 연필을 쥐고 칼을 든 오른손으로 대패처럼 나무결을 깎아내고 심을 고른다. 내가 봐도 감탄할 정도다. 아이들 방 청소를 하다가도 연필통이 눈에 들어오면 열일 제쳐놓고 연필
사철 아름다움이 넘쳐나는 가지산과 고헌산 자락 사이에 사람의 마음을 끄는 삽재 마을이 있다. 특히 고헌산 자락에 앉아 있는 나지막한 기와집의 작은 마당에서 바라보는 가지산 자락의 사계는 사람 감정의 흐름을 이리저리 끌고 다니기가 예사다. 이른 봄에 김유정의 '동백꽃'과 김소월의 진달래는 속살이 드러난 산허리를 휘감으며 가장 먼저 핀다. 나는 그 즘 바람
그해 여름을 서울의 이모네서 지냈다. 고등학교 3학년인 사촌동생의 공부를 도와주기 위해서였다. 사촌동생은 방학인데도 학교에 가야해서 오전 시간은 거의 자유롭게 쓸 수 있었다. 나는 그 시간에 서울의 대학을 탐방하기로 마음먹었다. 이모네 집이 연희동에 있어서 가까운 신촌의 대학들을 먼저 골랐다. 방학이라 캠퍼스는 한산했지만, 어느 대학이든 게시판은 대자보로
8년 전 떠돌이 개 한 마리가 골목에 나타났다. 용맹스럽기로 이름난 사냥개 세퍼드였다. 그러나 무늬만 세퍼드였지 모양새가 형편 없었다. 툭툭 불거진 갈비뼈는 빨래판 같고, 겁 먹은 두 눈은 동전이 짤랑거리는 저금통처럼 흔들렸다. 거기에다 혀가 없다. 앙 다물면 잃을 걱정 없는 뜨거운 혀를 도둑맞다니. 또 임신을 했고, 사람들은 잡아라 신고를 하고, 구청에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