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에 살면서도 겨울바다를 보러가는 날은 늘 가슴 설렌다. 울산에서 바다를 보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다람쥐 쳇바퀴 돌듯 살다보면 쉬운 일만도 아니어서 밥을 먹는 약속을 할 때는 바닷가 식당을 선택한다. 며칠 전 후배한테서 전화가 왔다. 날 잡아 점심을 먹자고 한다. 장소는 날더러 잡으라고 했다. 그렇다면 당연히 약속장소는 바닷가 분위기 있는
흔히 사람들의 성격을 이야기 할 때 '돈키호테형' 또는 '햄릿형' 등으로 나누어 이야기 하기도 한다. 모두 소설 속 주인공들의 성격을 빗대어서 붙여진 말이다. 이러한 것이야말로 소설의 힘이라 할 수 있다. 픽션인 소설 속 주인공이 실제 생활 속에서 불로장생하면서 살아 움직이는 것이다. 오늘은 문학작가 세르반테스(M. de Cervantes&middo
이제 60대를 바라보는 남편의 두드러진 변화는 식구들이 밥상에 둘러앉아 함께 밥을 먹는 것에 대한 바람이 커졌다는 것이다. 아이들이 자라서 하나 둘 집을 떠나자 빈자리가 크게 느껴졌는지, 함께 한 시간이 많지 않음에 대한 아쉬움 때문인지 남은 식구라도 같은 시간에 함께 밥을 먹길 바라는 것이다. 그래봤자 세 사람이라 둘러앉는다는 표현을 쓰기에도 난감한 편이
산촌의 겨울 해는 노루꼬리만큼이나 짧다. 해가 이마에 걸리면 낮동안 녹아 질척거리던 마당이 다시금 얼기 시작한다. 처마 끝에 고드름이 송곳같이 서늘하고 잔뜩 흐린 하늘에 컴컴해진 집집마다 서둘러 호롱불을 밝힌다. 일찍 저녁을 먹고 호롱불 아래 홀로 앉아 책장 넘기는 소리만 적요하던 밤, 소년은 '스스슥 삭삭' 뒷 봉창의 눈발 치는 소리에 가만 일어서 방
자식들 중 내가 아버지를 가장 많이 닮았다. 아버지께서는 돌아가시기 전, 요양 병원에 계셨는데 깨끗이 씻긴 아버지의 손과 발을 보고 깜짝 놀랐다. 내 손발과 똑같았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장수하신 편이지만 평생 지병을 앓으셨는데 유감스럽게도 그것을 나만 고스란히 물려받았다. 웃을 때 살짝 튀어나오는 광대뼈까지 남김없이 물려받았다. 덕분에 나는 병원 출입이 유
지금은 외관을 중시하는 시대라 많이 사라졌지만 한때는 담 위에 깨진 유리병이나 뾰족한 쇠꼬챙이를 박아 도둑을 막는 집이 있었다. 그런 집들은 대개 성채처럼 네모난 붉은 벽돌집에 출입구나 작은 창 말고는 별로 틈이 없어 보이고, 담은 여느 집보다 훨씬 높아 선뜻 넘기 어려워 보이는 데도, 그 담 위에 저런 조형물을 촘촘히 설치하곤 했던 것이다. 오래돼 지붕
며칠 전, 서울에서 돌아오던 중 고속도로 휴게소에 들렀을 때다. 평일인 데도 휴게소 안은 마치 설 대목장처럼 북적댔다. 주차장은 각처에서 달려온 관광버스가 사열해 있고 식당가·화장실은 초만원이었다. 화장실 앞에서 차례를 기다렸다. 주변 사람 대부분은 마치 약속이나 한 듯 붉은색 상의에 예쁜 모자와 스카프로 치장한 것이 '단풍놀이'에 나선 이
수필가
저녁 밥을 지으려고 쌀을 씻는데 문득 시골에 혼자 사는 친정엄마 생각이 났다. 꼽아 보니 연락을 전하지 못한 것이 열흘이 넘었다. 전화를 하니 받지 않는다. 밭에 갔겠지. 마을 회관에 갔겠지. 병원에 갔겠지. 보이지 않는 엄마의 동선을 그려보다가 다시 전화를 들었다. 또 안 받았다. 갑자기 드는 불안한 생각. 지금은 집에 계실 시간인데…. 언니
시인 "고장 난 테레비 삽니다." 중간고사가 끝나고 모처럼 한가하게 책을 보고 있던 아이는 창 밖에서 이 소리가 들리자 "저 소리가 아직도 들리네"하며 귀를 기울인다. 늦게 다니느라 어릴 때 이후 잘 듣지 못하던 소리가 새삼스러운가 보다. 하지만 이내 근심스러운 표정이다. "장사가 될까요?" "
얼마나 그리웠으면, 얼마나 애달팠으면 붉은 꽃이 찢기듯 갈래로 피었을까. 가슴이 천 갈래 만 갈래로 조각난 사랑의 표현일까. 상사화로 불리는 꽃무릇을 보고 온 날 그 꽃에 얽힌 슬픈 사랑 이야기가 한 사내를 쉽게 잠들지 못하게 했다. 지난 가을초입 꽃무릇 축제가 열리고 있는 전남 함평 용천사를 갔다. 버스 안에서도 그냥 그렇고 그런 축제이겠거니 지레 짐작만
집 앞, 초등학교 운동장이 왁자하다. 가을소풍을 가는 모양이다. 열어젖힌 창문으로 보는 조무래기들의 얼굴이 갓 핀 나팔꽃처럼 풋풋하고 싱그럽다. 손바닥만 한 등에다 따개비처럼 소풍 가방을 붙이고 재잘대는 운동장 풍경 위로 유년의 기억이 뭉게뭉게 피어오른다. 소풍날을 손꼽아 기다렸다. 그날만큼은 과일이나 삶은 계란이 귀하지 않았다. 엄마가 주는 약간의 용돈을
시인
동화작가 가난한 친정보다 가을 산에 먹을 것이 더 많다는 말이 있다. 이맘때면 씨 뿌리지 않은 산에 먹을 것이 가득하니 그 말이 꼭 맞다. 산을 오르는 노고만 있으면 만날 수 있는 초대형 자연 마트. 어느 누가 찾아가도 후하게 대접하는 가을 산 인심은 변함이 없네. 추석 다음 날 아버지 산소에 가 보니 정말 그랬다. 산밤나무에 알밤이 툭툭, 아버지보다 더
수필가 서늘한 바람이 분다. 계절을 사람보다 먼저 아는 꽃이 있다. 시골집 모퉁이에 훤칠하게 핀 해바라기다. 초가을 햇살을 받아 노란빛이 더욱 짙어간다. 늘 바깥을 내다보고 서 있는 둥글둥글한 해바라기를 보니 저 꽃을 닮은 어머님이 얼비친다. 시어머님은 아버님을 일찍 여의고 오직 아들만 바라보며 사셨다. 아들이 도회지로 나간 후 부터는 기다리는 나날이 되었
수필가 지난 여름, 한 친구를 만났다. 우리는 오래전 경주에서 같은 여고를 졸업하고 헤어졌다가, 결혼 이후 우연히 울산 방어진에서 다시 만났다. 당시 나는 가게를 하고 있었고, 그는 손님으로 왔다. 그때 처음으로 친구가 지척에서 과일가게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나는 보상심리가 발동했던지 그날 이후 수시로 친구네를 들락거렸다. 더 기막힌 사실 하나
'겨를'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어떤 일을 하다가 생각 따위를 다른 데로 돌릴 수 있는 시간적 여유'라고 나와 있다. 비슷한 말로 '틈'이 있다. 틈을 다시 찾아보면 '어떤 행동을 할 만한 기회나 겨를'이라고 되어 있다. 겨를은 보통 '없다' 같은 부정어와 결합된다. 신경 쓸 겨를이 없다. 손 쓸 겨를이 없다. 말릴 겨를이 없다와 같은 말들
오늘 아침도 팔순이 넘은 노모와 환갑을 바라보는 아들이 입씨름을 했다. 요즘은 별것도 아닌 것을 놓고 모자가 진지한 자세로 한바탕 입씨름을 벌이는 일이 종종 있다. 어머니와의 다툼은 시간이 흐르면서 방향타를 잃어버린 목선처럼 갈팡질팡 하다 평온을 찾는다. 어머니는 젊을 때 보다 나이가 들면서 아들에 대한 관심이 더 많아졌다. 해거름 때부터 아들이 퇴근해서
3월에, 딸아이가 취업을 해서 집을 떠났다. 대학교를 타지에서 다녔기 때문에 짐을 싸는 데는 이골이 났지만, 이제 다시는 집에 돌아오지 않으리라는 출가와 독립의 첫걸음이라 유난히 더디게, 꼼꼼히 짐을 쌌다. 하지만 딸아이는 결국 베개를 떨구고 갔다. 나는 떠나기 며칠 전부터 여행 중이어서 딸의 가는 모습을 보지 못했는데, 딸은 의도하진 않았지만 자신의 체취
우리 일상에 늘 함께 하는 것이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공기처럼 알게 모르게 함께하는 것이 '세금이'다. 먼저 아침에 일어나 세수할 때 필요한 수돗물은 '세금이'로 만들어진 배관을 통해 내 집까지 배달된다. 외출 때 타는 승용차나 버스는 '세금이'로 만들어진 도로 위를 달린다. 우리 집 길 건너편이 초등학교다. 현대식으로 예쁘게 지어진 본 건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