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재지 : 울산 북구 산하동 952-1번지 해역부울산광역시 기념물 제42호지정일 : 2003년 4월 24일주상절리는 분출화산암에서 나타나는 일반적인 현상이다. 주로 현무암질 용암류에서 나타나는 기둥모양의 수직절리로 용암이 화구로부터 흘러나와 급격히 식으면서 발생하는 수축작용의 결과로 형성된다. 주상절리는 수직으로 발달한 절리들에 의해 다각형의 단면을 갖는 기둥모양들이 서로 연결된 형태이다.일반적인 주상절리와는 달리 다양한 형태와 방향으로 발달하고 있다. 대부분의 주상절리들이 수직으로 발달하는 반면 강동 화암 주상절리는 절리면이 지표
소재지 : 울산 북구 중산동 656-1번지 일원울산광역시 기념물 제41호지정일 : 2003년 4월 24일시대 : 삼한 이후삼한시대 후기∼삼국시대 후기의 취락유적으로서 중산리 이화마을과 갓안마을이 있는 지역에 있다. 옛 사람들이 집단으로 살았던 곳으로 2002년 발굴조사에서 주거지, 작업장, 방어시설 등이 확인되었다. 이 유적은 사로국(斯盧國)에서 신라로 성장해 가는 시기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서 당시 취락의 구조, 범위, 배치 및 주변지역과의 교류, 변천과정 등을 구체적으로 알 수 있게 해준다.인접한 중산동 고분군(울산광역시기념물 제
소재지 : 울산 북구 달천동 1-7 외울산광역시 기념물 제40호지정일 : 2003년 4월 24일시대 : 삼한철장이란 철의 원료인 토철, 또는 철광석을 캐던 곳을 말한다. 북구 달천동 및 상안동 일대에 분포하는 이 유적은 원래 이름인 달내[達川]에서 유래하였으며 그 역사는 삼한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중국문헌 『삼국지 위서 동이전(三國志 魏書 東夷傳)』과 『후한서(後漢書)』에는 ‘한(漢)·예(濊)·왜(倭) 모두가 여기서 철을 가져가며 모든 시장에서 철을 사용하여 매매하는 것이 마치 중국에서 돈을 사용하는 것과 같다.’는 기사가 있다
소재지 : 울산 중구 병영12길 15 (동동)울산광역시 기념물 제39호지정일 : 2001년 12월 20일시대 : 일제 강점기이곳은 한글학자 외솔 최현배선생의 생가터이다. 생가는 이미 없어졌으나 2008년 복원하여 현재에 이른다.선생은 여기에서 태어나 병영초등학교를 졸업하였고 1910년 상경하여 한성고등학교에 입학하였다. 이후 일본 히로시마고등사범학교 문과에서 수학하고 1922년 4월 일본 교토제국대학에 입학하여 교육학을 전공하였다.1926년 4월 연희전문학교(지금의 연세대학교) 교수로 취임하여 1938년 9월 흥업구락부사건으로 파면
소재지 : 울산 북구 강동동 판지마을 해수면하울산광역시 기념물 제38호지정일 : 2000년 11월 9일시대 : 고려곽암은 미역바위라는 뜻이다. 이곳 판지마을 바다 속에 있는 자연암이며 ‘양반돌’, ‘박윤 웅돌’ 등으로 불려지기도 한다. '학성지','울산박씨세보' 등에 의하면 그때 박윤웅이 동진의 땅을 하사 받고, 유포에 있는 미역바위 12구를 하사 받아 미역 채취권을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 동진은 현재 울산 강동.농소를 말한다.그 후 조선 영조 때 어사 박문수가 주민들의 호소를 듣고 울산 박씨 문중 후손
소재지 : 울산 울주군 삼동면 하잠리 89번지 일원울산광역시 기념물 제37호지정일 : 2000년 11월 9일시대 : 조선조선시대에 청자, 백자, 분청사기 등을 굽던 가마터가 무리를 이루어 남아 있어 요지군이라고 이름이 붙었다. 이곳에서 흩어진 채 발견되는 파편들로 확인된 그릇의 종류로는 대접, 접시, 종지, 병, 태항아리, 합 등이 있다.수습된 파편 가운데 눈길을 끄는 것으로는 ‘언양인수(彦陽仁壽)’, ‘장흥(長興)’,‘순(順)’,‘예(禮)’ 등 조선시대의 관청 이름과 관련이 있는 명문편(銘文片)들이 있는데 이는 가마터의 성격과 조
소재지 : 울산 울주군 온산읍 강양리 산66번지 일원울산광역시 기념물 제36호지정일 : 2000년 11월 9일시대 : 조선하산봉수대는 온산읍 강양리 산 정상(해발 132m)에 위치한 연변봉수이다. 이길봉수대(서생면)에서 신호를 받아 가리봉수대(남구 남화동)로 전달하였다. 대응봉수노선 거리는 남쪽 이길봉수와는 4.2㎞ 북쪽 가리봉수와 는 9.1㎞ 거리이다. 하산봉수대의 서쪽은 산지로 막혀있고 동,남,북쪽은 바다로 둘러싸여 조망권이 뛰어나고 남으로는 서생포왜성과 서생포만호진성이 위치하고 있다. 봉수대의 중심시설인 연대는 원형에 가까우며
소재지 : 울산 울주군 서생면 화정리 산68번지 일원울산광역시 기념물 제35호지정일 : 2000년 11월 9일시대 : 조선조선시대 전기 울산에는 서생포 만호진성, 염포진성, 개운포진성 등 세 곳의 수군진성(水軍鎭城)이 있었다. 진성은 국경 및 해안지대 등 국방상 중요한 곳에 쌓은 군사적 성격의 성을 가리킨다. 서생포 만포진성은 북쪽으로는 회야강이 동쪽으로 흘러 바다와 합류되고 있어 수군이 활동하기 유리한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성은 구릉의 말단부에 위치하고 있으며 구릉의 경사면과 평지를 연결하여 축조한 포곡식(包谷式) 성이다. 평면
소재지 : 울산 울주군 웅촌면 상대3길 8, 일원 (대대리)울산광역시 기념물 제33호지정일 : 2000년 11월 9일시대 : 삼국대대리 상대 고분의 일대에는 삼국시대 무덤이 조밀하게 분포하고 있다. 발굴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아 내부구조나 시기 등을 정확하게 알 수 없으나 주변에서 채집된 토기편과 고분의 외형적 특징으로 보아 이 고분의 주인은 상당한 세력을 가졌던 인물로 추정된다. 인접한 하대와 중대고분군의 일부 지역에서는 발굴조사가 이루어져 5세기대의 무덤이 확인되었다.중대고분군에서 도질토기와 다양한 철기류가 출토되었으며 이들 유물들
소재지 : 울산 울주군 웅촌면 검단리 455-2 외울산광역시 기념물 제32호지정일 : 2000년 11월 9일시대 : 청동기검단리 지석묘군은 웅촌면 면소재지에서 고연리로 연결되는 도로 옆에 3기(基)가 모여 있는데 덮개돌은 화강암으로 논두렁에 비스듬히 놓여 있다. 3기 가운데 크기가 가장 큰 고인돌은 길이 300㎝ 너비 250㎝ 두께 50㎝ 정도이다. 지금 남아 있는 상태로 보아 정확한 구조적 특징이나 내용 등을 알 수 없으나 겉으로 드러난 모양으로 볼 때 개석식에 속한다.이 지석묘군은 울산 검단리 유적(蔚山檢丹里遺蹟:사적 332)과
소재지 : 울산 북구 창평동 167번지 산45-2울산광역시 기념물 제31호지정일 : 2000년 11월 9일시대 : 청동기창평동 지석묘군은 창평동 난골마을 구릉에 1기(基)가 있고 경작지의 논두렁에 1기가 있다. 덮개돌은 화강암으로 땅 위에 비스듬히 놓여 있는데 구릉에 있는 고인돌은 길이 180㎝ 너비 150㎝ 두께 90㎝ 정도이고 받침돌로 추정되는 돌이 덮개돌 아래에 깔려 있으며 경작지의 논두렁에 있는 고인돌은 길이 210㎝ 너비 210㎝ 두께 90㎝ 정도이고 받침돌은 보이지 않는다.창평동 지석묘군은 청동기시대 창평동 일대의 정치·
■ 갤러리U소재지 : 울산광역시 북구 상안동 223-1울산광역시 기념물 제30호지정일 : 2000년 11월 9일시대 : 청동기상안동 지석묘는 바둑판식 1기로서 상안동 신답마을의 경작지에 있다. 덮개돌은 화강암으로 땅 위에 반듯하게 놓여 있는데 덮개돌 상부 모서리에는 작은 돌로 문질러서 둥글게 판 알[卵] 모양의 성혈(性穴)이 10여 개가 있다. 이 성혈은 풍요와 다산을 의미하거나 태양을 상징한다고 본다.덮개돌 아래의 양쪽에는 받침돌이 보이는데 내부 구조는 학술 조사를 실시하지 않아 자세히 알 수 없다. 지석묘 주변 일대는 언덕 같은
소재지 : 울산광역시 울주군 만화로 250 (두동면, 칠조마을회관)울산광역시 기념물 제29호지정일 : 2000년 11월 9일시대 : 청동기만화리 지석묘는 1기로서 두동면 만화리 비조마을 회관 옆에 위치하고 있다. 덮개돌은 화강암으로 비스듬히 뉘어 있다. 덮개돌 아래에는 사람머리보다 조금 큰 받침돌이 확인되어, 바둑판식 지석묘로 추정된다.덮개석의 상부에는 성혈과 같은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으며 지석묘 부근에서 돌도끼 한점이 출토되었다고 주민들은 전하고 있다.이 만화리 지석묘는 울산광역시 기념물 제21호인 은편리 지석묘군과 함께 청동기시
소재지 : 울산 울주군 두서면 복안리 717-4번지울산광역시 기념물 제28호지정일 : 2000년 11월 9일시대 : 청동기우리나라의 고인돌은 4개의 받침돌을 세워 지상에 돌방을 만들고 그 위에 거대하고 평평한 덮개돌을 올려놓은 것을 북방식 또는 탁자식(卓子式)이라고 하며 땅속에 돌방을 만들고 작은 받침돌을 세운 뒤 그 위에 덮개돌을 올린 것을 남방식 또는 바둑판식이라고 한다. 바둑판식에서 받침돌이 없는 것을 따로 개석식이라고 하여 구분한다. 울산지역의 고인돌은 주로 바둑판식과 개석식이다.복안리 지석묘는 천마산(天馬山)의 동쪽 구릉
소재지 : 울산 울주군 언양읍 반곡리 633번지 외울산광역시 기념물 제27호지정일 : 2000년 11월 9일시대 : 청동기반곡리 지석묘군은 고헌산(高獻山)의 동남쪽 능선자락의 구릉 위에 2기(基)가 서로 80m 정도 떨어져 있다. 화강암으로 된 덮개돌은 반듯하게 놓여 있는데 1호는 길이 300㎝ 너비 200㎝ 두께 75㎝ 정도이고 2호는 길이 400㎝ 너비 350㎝ 두께 87㎝ 정도이다. 1호는 지름 50㎝ 정도인 받침돌 3∼4장 2호는 지름 60㎝ 정도인 받침돌 2장이 확인된다.이 지석묘군은 청동기시대 언양 일대의 정치·사회·문화
소재지 : 울산 울주군 두서면 인보리 산37-7번지울산광역시 기념물 제26호지정일 : 2000년 11월 9일시대 : 청동기백운산(白雲山)에서 동남쪽으로 뻗어 있는 구릉의 끝부분에 자리잡고 있는 2기(基)의 고인돌이다.한국 청동기시대의 대표적 무덤양식인 지석묘는 고인돌, 돌멘(dolmen)이라고도 하며 대체로 북방식·남방식·개석식(蓋石式) 등의 3종으로 분류한다. 주로 경제력이나 정치 권력을 가진 지배층의 무덤으로 알려져 있다.한국의 지석묘는 4개의 받침돌을 세워 지상에 돌방을 만들고 그 위에 거대하고 평평한 덮개돌을 올려놓은 것을
소재지 : 울산 남구 성암동 451-4번지울산광역시 기념물 제25호지정일 : 2000년 11월 9일시대 : 신석기패총은 ‘조개무덤’이라고도 하며 해안이나 강가에 살던 선사시대인이 버린 조개 껍질이 쌓여 무덤처럼 된 유적이다. 조개껍질이 지닌 석회질로 그 안의 토기, 석기 및 짐승의 뼈 등이 잘 보존되어 있어 고고학적으로 귀중한 연구자료가 된다. 성암동패총은 2000년 지표조사에서 확인된 유적으로 외황강과 바닷물이 만나 강물과 바닷물이 섞이는 곳에 분포한다. 유적의 남동쪽에는 성암동패총과 동일한 시기에 해당하는 울산 세죽유적이 위치하
영축사지는 영축산, 문수산, 남암산 등의 산등성이와 구릉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영축산 자락의 말단부 평지에 위치한다. 영축사지 주변으로 통일신라시대의 사찰인 망해사지와 청송사지가 1㎞내외의 거리에 있어 이 일대가 통일신라시대 울산 불교문화의 중심지였음을 알 수 있다.영축사의 창건 유래는 삼국유사에서 그 흔적을 찾을 수 있다. 683년 온천에서 목욕하고 돌아오던 재상 충원공은 꿩이 매에게 쫓겨 굴정현, 현청 북쪽 우물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았다. 꿩은 날개를 벌려 새끼 두 마리를 감싸고 있고 또 매는 이를 잡지 않는 것을 보고 감동하
소재지 : 울산 울주군 상북면 못안1길 106-8 (지내리)울산광역시 기념물 제23호지정일 : 1998년 10월 19일시대 : 청동기언양에서 석남사로 가는 길을 따라 가다보면 향산초등학교를 만난다. 여기에서 지내리 명동마을로 진입하여 올라가면 향산리 지석묘가 나온다. 여기를 지나쳐 계속 길을 따라 올라가면 된다.우리나라 청동기시대의 대표적인 무덤인 지석묘는 외형상 땅위에 책상처럼 세워진 북방식과 상석이 조그마한받침돌에 얹혀있는 남방식 지석묘로 구분되는데 여기 지내리 지석묘는 남방식 지석묘 또는 기반식 지석묘에 해당되는 유적이다.현재
소재지 : 울산 울주군 상북면 향산다개로 54-3 (향산리)울산광역시 기념물 제22호지정일 : 1998년 10월 19일시대 : 청동기향산리지석묘는 상북면 일대에 있는 고인돌 가운데 규모가 큰 것이다.고인돌은 땅 위에 책상처럼 세워진 북방식과 덮개돌이 조그마한 받침돌에 얹혀 있는 남방식으로 구분된다. 향산리에 있는 고인돌은 남방식 고인돌 또는 기반식 고인돌이다. 지내리 명동마을로 진입하는 좁은 길 옆의 밭에 길이 320cm, 너비 300cm, 두께 90cm의 덮개돌(상석)을 비스듬히 드러내 놓고 있다.보존 상태가 양호하며 언양·상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