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더웠다, 여름이니 당연히 더워야 했겠지만 지독히도 더위는 가시질 않았다. 전국이 가장 긴 장마로 물폭탄에 몸살 앓는다고 보도했지만, 울산은 끝끝내 마른하늘로 장마를 마감했다. 분지라는 지역적 특성으로 전국 최고의 기온을 자랑하던 대구를 몇 번이고 이겨먹었으니 명실공히 여름 최고기온은 이제 울산이 거머쥐게 생겼다. 더위 속에 전력난까지 겹쳐 참으로 힘겹기
오래전, 태국 푸켓으로 여행을 다녀온 적이 있었다. 부부동반으로 간 나들이라 기대와 설렘이 가득했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지 않던가. 그 말이 딱 맞는 여행이 되고 말았다. 도착한 날부터 조짐이 좋지 않았다. 새로 산 선글라스 한쪽 다리가 부러졌다. 거기에다 보석상에서 진주목걸이를 사려는 나를 마뜩찮아 하는 남편 때문에 기분이 상해 버렸다. 바닷가에서
집 앞 공원의 배롱나무가 붉은 꽃을 피웠다. 주변이 온통 초록이라 배롱나무의 붉은 빛이 더욱 붉다. 커다란 장미 다발이나 타오르는 횃불 같기도 하다. 그러고 보면 여름에 피는 꽃은 대체로 붉다. 개양귀비, 능소화, 장미, 접시꽃, 백일홍, 채송화, 다알리아, 칸나, 한련, 늦여름의 샐비어까지. 물론 노란 해바라기나 하얀 옥잠화, 눈빛승마처럼 다른 색의 꽃도
몇 년 전부터 바로 서고 바로 앉고 바로 걷기가 힘들어졌다. 아니 바로 서고 앉고 걷는 법을 잊어버렸다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이 되겠다. 무심하게 일어나고 앉고 서고 걷고 하던 지극히 기초적인 이 행위들이 이리 어려울 줄을 예전에 미처 몰랐다. 병원에서는 너무 많은 시간동안 욕심과 편함을 탐닉한 탓으로 몸을 지탱해줄 근육들이 사라져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
우리 집 거실에는 한여름 말고는 서쪽 창문으로 들어오는 햇빛은 거의 금빛에 가깝다. 해질 무렵 거실 안을 기웃거리는 햇살은 황금빛 가루를 뿌리며 들어온다. 햇살이 가는 바람을 데리고 삐죽이 고개를 빼고 들어올 적에는 눈이 부셔 두 손등으로 가려야 할 정도다. 오늘은 새로 사 온 발을 쳤다. 여름 햇살을 가리는 데는 발 만한 것도 없다. 발을 통해 보는 바깥
혼자 여행을 갈 일이 생기면 가기 전부터 마음이 몹시 바빠진다. 시야가 좁아서 시각장애 판정을 받은 후부터 생긴 버릇이다. 어떤 교통수단을 이용하건 간에 출발과 도착할 때 마음 편하게 도와 줄 사람이 필요하고 가는 곳의 상황이 어떤지도 염두에 두어야 하기 때문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조심스레 혼자서 잘 다닌 편이었다. 그러나 익숙지 않은 낯선 길은 곳곳이
그럴 수 있다면 도서관 옆에 살았으면 좋겠다. 나이가 들어 한가해진다면 늦은 아침을 먹고 도서관에 가서 신문이나 잡지를 뒤적거리거나 이런 책을 차례차례 읽어보고 싶다. 등나무 그늘에 앉아 자판기 커피를 마시며 시를 읽고, 종이를 꺼내 김 훈처럼 연필을 눌러가며 글을 쓰고 싶다. 도서관에 자주 들락거리면 열람
장마가 오기 전부터 시간 시간마다 뉴스 첫머리에 장마소식으로 호들갑이었다. 그 예보 덕으로 이불과 베개호청은 빨아 넣었고, 숯은 흐르는 물에 먼지를 씻어 쨍한 햇볕에 종일 말렸더니 챙챙 기분 좋은 소리를 낸다. 반질거리는 칠흑빛 숯은 바구니에 담아 방방이 들여놓고 거실과 부엌에도 놓았다. 아직 제습제를 몇 개 더 준비해야 안심할 수 있겠다. 이렇게 할머니,
"딱 한 통만." 여자는 오늘도 손가락 하나를 내보이며 한 통의 물만 받아가겠다고 한다. 들어볼 것도 없이'노'다. 우리 집 대문 앞 수도꼭지는 옷을 홀딱 벗고 동네 것이 되어 있다. 길가 집인데다가 대문까지 없으니 누구든 지나가다 제 것인 양 틀어댄다. 여름에는 학생들이 지나가다가 '쏴'하고 틀어서는 땀범벅이 된 머리통을 들이대고
'두고 보자'라는 말은 무관심보다 무서운 관심이다. 휴일 아침에 느지막이 눈을 뜬 나는 라디오를 켰다. 즐겨듣는 음악 프로를 하는 시간이었다.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이 흐르더니 헨델의 '왕궁의 불꽃놀이'가 끝났다. 방금 끝난 불꽃놀이의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에 차분한 목소리의 진행자는 조곤조곤 이야기를 시작했다. 여름에 듣는 '눈구덩이 이야기
순천에서 열리고 있는 국제정원박람회에 가고 싶다고 했더니 남편은 집 뒤에 정원을 두고 어디를 가느냐고 핀잔이다. 하긴 내가 사는 아파트는 산기슭에 자리 잡고 있어서 문을 열면 바로 산이다. 바람이 불면 나뭇잎들이 까불까불 춤을 추는 것이 보이고 산새들은 호잇호잇 울면서 스칠 듯이 날아간다. 봄이면 산벚나무가 꽃 대궐을 이루고 가을이면 단풍이 타오르듯 붉다.
태화강변의 기적은 다시 시작되었다. 텅 빈 들판에 갖가지 꽃들이 피어나 한바탕 꿈같은 세상을 펼쳐놓고 있다. 긴 겨울을 거쳐 서서히 푸르러지나 했더니 오월 초입부터 붉은 기운을 앞세워 툭툭 터져 나온 꽃송이들이 푸른 강바닥까지 붉은 기운을 드리워 사람의 눈을 즐겁게 하고 발걸음을 가볍게 하고 콧노래를 부르게 하고 있다. 하지만 이 꽃들 처음부터 훌쩍 큰 키
주말 오후, 시계를 보니 인기 드라마 방송 시간이다. 소파에 비스듬히 누운 남편은 텔레비전을 켜놓은 채 가늘게 코를 골고 있다. 손에 꼭 쥐고 있는 리모컨을 살며시 뺏어본다. 벌떡 일어나며 뉴스를 보던 중이었다고 올빼미 같은 눈을 한다. 오늘도 내가 양보하는 편이 더 좋을 것 같다. 이웃들은 손에 손을 잡고 꽃놀이가 한창이지만 둘만 사는 우리 집은 절간이나
요가를 시작한 지 이태 가까이 되었다. 규칙적으로 해도 축적되지 않는 것이 운동이라더니 요가는 할 때마다 새로운 느낌이다. 시간이 제법 흘러갔지만 요가 동작 하나 하나를 완벽하게 해내기가 쉽지 않다. 강도가 조금만 세거나 사용하지 않던 방향으로 몸을 비틀면 근육이 도통 말을 듣지 않는다. 그동안 내 생각과 행동에 길들여진 온몸의 근육들이 자극을 받아 날마다
시골 가는 길에 파랗게 펼쳐진 보리밭을 만났다. 차에서 내려 연둣빛 이삭이 성큼 올라온 보리들을 바라본다. 바람이 불자 보리밭은 햇빛에 반짝이는 물비늘처럼 가볍게 살랑거리다가, 차츰 깊은 강에 물 주름이 지듯 일렁거리다가, 이내 파도의 물이랑처럼 출렁거리며 우쭐우쭐 춤을 춘다. 바람 부는 보리밭을 보니 19세기 아일랜드 시인 로버트 드와이어 조이스의 '보
심수향 시인
저는 요즈음 산책을 즐깁니다. 수시로 태화강변 산책로를 따라서 이른 아침이나 저녁나절에 한두 시간 정도 걷다가 들어옵니다. 그러고 나면 몸은 한결 가볍고 마음은 소녀처럼 맑아지는 것에 참 기분이 좋습니다. 그것은 하얗게 피어오르는 새벽 물안개나 앙증맞은 노랑머리 유채꽃이며 평화롭게 노니는 오리들의 아침 나들이를 마음껏 마주하기 때문입니다. 저녁나절 산책길은
거울을 보다 미간에 잡힌 주름을 보게 되었다. 눈썹과 눈썹 사이에 밭이랑처럼 패인 주름은 세 가닥이다. 이렇게 선명하게 이랑을 이루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을 텐데 새삼스레 이제야 내 눈에 띄게 되었을까? 주름이란 피부가 노화하면서 탄력을 잃어 생기는 현상이다. 하지만 눈가나 미간에 생기는 주름은 표정주름으로써 얼굴의 근육을 어떻게 움직이느냐에 따라 생기는
지난 주에, 제주 바다에서 불법 포획되어 돌고래 쇼에 동원되던 남방큰돌고래를 다시 바다로 돌려보내기로 했다는 기사를 보았다. 돌고래 네 마리 가운데 두 마리는 성산포항에 마련된 가두리에서 바다 적응 훈련을 받은 뒤 5,6월경에 방류될 예정이고, 건강 상태가 안 좋은 다른 두 마리는 서울대공원에서 위탁 관리를 받은 뒤 거취를 결정할 예정이란다. 신문에는 바다
매화 이울고 개나리 진달래 흐드러지고 벚꽃이 한바탕 울산 천지를 뒤덮고 나면 바라봐 주는 이도 없이 쓸쓸히 천지를 뒤덮는 꽃이 있다. 배꽃이 그들이다. 꽃샘추위에 떨다 혼자 피어 있는 백목련은 떠나간 애인 같아 떨리는 가슴 속으로 애린 생각이 자꾸 올라오지만, 봄비라도 다녀간 다음날 함초롬히 빗방울을 이고 있는 봄까치꽃이나 노랗게 피어 방그레 웃는 민들레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