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사시대 반구대암각화에 기호화된 문양은 다양한 스토리텔링적 요소가 풍부하다. 이들 문양이 주목받는 이유는 현존한 자료 중에 가장 오래된 것이기 때문이다. '문화의 원형', 문화의 시원, '영감의 원천'이라는 주장은 때론 낯설고, 때론 혼돈스럽다. 그럼에도 문화적 원석을 가공하여 이를 활용하는 슬기가 필요하다. 반구대암각화는 인간이 새끼 업은 귀신고래와 거북이와의 교감이야기로 시작된다. 샤먼의 역동적인 춤과 얼굴(가면)의 등장은 선사시대 BTS일까? K-컬처의 시원일까? 밧줄 그물을 짜는 직조술, 고래몰이
노루 꼬리처럼 짧던 해는 점점 길어지고,구름길 바람길이 바뀌고, 부는 바람에 따듯한 햇살이 묻어나는 봄이 왔다. 허허롭던 산과 들에 온기가 돌고, 새잎이 올라오고 연두가 돋아난다. 모진 비탈에도 허리 한번 안 펴고 엎드린 고된 세월에 굽을 대로 굽은 허리의 이 어르신은 매 순간 “집에 갈란다. 우리 이우재 신기댁이 불러 주가" -“어르신 이웃 어르신은 왜 찾으세요?" “응, 내 여 있는 줄 알아야 우리 아들한테 말해 주지 집에 델고 가라고" -“어르신 아직 추운 겨울이에요. 밖에는 추워요" “응, 봄 되면 걸어서 가면 된다. 농사일
삼국유사는 잘 알려진 책이다. 학창시절 국사(國史) 시간에 배우기도 했기에 우리나라 성인이라면 한두 번은 들어봤을 책이다. 많은 사람이 쉽게 읽을 수 있도록 풀어쓴 책도 많다. 그러면서도 제대로 읽은 사람이 드문 책이 삼국유사이기도 하다. 그만큼 내용이 어렵기도 하고 방대하기도 한 까닭이다. 총 144편의 이야기들은 전설, 민화, 신화가 곁들여진 역사이기도 하다. 원서의 저자가 승려이기도 하지만 불교가 국교였던 신라가 주무대인 만큼 불교의 영향력이 과하게 표현된 부분도 많다. 그런 부분이 독자들을 흥미진진한 판타지 속으로 빠져들게
정인이가 방과후 수업에 늦었다. 전화도 받지 않았다. 6년 내내 결석은커녕 지각 한번 없던 아이라 걱정이 되었다. 30분쯤 흘렀을까. 정인이가 뒷문으로 들어왔는데 눈가가 붉었다. '휴대폰이 깨졌어요.' 웬걸, 액정에 빈틈없이 금이 가 있었고 전원도 들어오지 않았다. 혼자 얼마나 휴대폰을 만지작거렸을까 싶어 짠했다. 부모님을 너무 일찍 여의고 할머니 할아버지의 보살핌을 받고 사는 아이. 아이돌 가수가 꿈이라는, 방탄소년단 얘기가 나오면 좋아서 꺅 소리부터 지르고 보는 아이지만 내 앞에서 노래 한 번 불러 보라고 하면 입
작년 실적 결산이 끝나는 기업들이 금년에도 직원들에게 파격적인 성과급을 지급한다는 계획을 속속 발표하고 있다. 지난해 심각한 경기부진 속에서도 기대 이상의 좋은 실적을 거둔 대기업은 물론 은행, 보험사, 카드사들도 직원들에게 성과급을 두둑히 지급한다는 뉴스 기사들이 올해도 여전하다. 울산에 부임한 이후 기업 현장방문이나 간담회 등을 통해 중소기업인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자주 접한다. 코로나19의 장기화, 고금리, 고물가, 원자재 가격 급등 등 복합적 경제위기로 경영여건이 녹록치 않다는 기업인들이 대부분이다. 성과급 파티를 벌이는 대기
일반적으로 우리는 살아가는데 두뇌의 모든 부분을 사용한다. 하지만 두뇌가 발전하는 과정에는 개인적인 차이가 있는데 개별적인 경험에 따라 패턴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 뇌는 크게 좌뇌와 우뇌로 나뉘어져 있다고 한다. 좌뇌는 논리와 언어의 뇌라고도 하는데, 그 기능은 언어, 문자, 기호, 계산, 이해, 추리, 판단, 구성, 입체인식 등의 논리적 사고를 담당한다고 한다. 우뇌는 음악, 회화, 도형, 색채, 이미지, 감정, 비언어적 관념, 공간인식에 크게 관여한다. 뿐만아니라 좌뇌와 함께 입체를 인식하며 상상과 창의력, 감성을 담
용(龍)은 상상의 동물로 바다 등 물을 관장하는 중심 신으로 우리나라에서 용왕으로 두드러졌다. 용은 주로 바다, 강, 개천 등 물에서 살지만, 때로는 산과 굴에서도 산다. 용은 항해, 풍어, 기우 등 크게 세 가지 역할을 한다. 이를 바탕으로 민속 연희에서 용배, 풍어제, 기우제 등이 현전하며, 신앙적 문화로 용선과 용왕제 그리고 용왕당이 존재하는 이유다. 일연이 지은 삼국유사에는 용이 말을 하며 사람이 돼 미녀를 아내로 받아들여 장가가며 벼슬까지 한 이야기를 찾을 수 있다. 이를 처용설화라고 부른다.처용(處容)은 미물인 용이 비로
대중을 대상으로, 그리고 인터넷 공간 등 노출되는 곳에서 무언가를 이슈화 하기는 쉬우나 깊이 있는 논리를 뒷받침하거나 해석 및 풀어나가는 과정은 이슈 조성에 비하면 어렵다. 정책이 그렇다. 지향점을 잡고 이슈화 여부는 쉽게 판단할 수 있지만 풀어가는 과정에서 대입해야 할 제도, 법들이 많기에 일련의 과정이 만만치 않다. 국민들이 직접 혜택을 받는 복지분야에 쏟아내는 것들은 오히려 복지 포퓰리즘으로 부정적 시각이 많이 나타나고 있다. 이 글의 제목처럼 국가가 자녀들을 키워준다면 과연 국민들의 반응은 어떠할까? 어떻게 보면 관심 받고
자동차 문이 덜컥 잠겼다. 시간 여유 없이 움직이려다가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 작은 틈이라도 찾으려 여기저기 들여다보지만 헛일이다. 제구실에 충실한 고무 패킹이 입을 앙다물어 공기 한 점 허용하지 않는다. 자동차를 바꿔 탄 지가 반년이지만 아직 낯설다. 운전대를 잡으면 손아귀가 어둔하고 시동 끄기 전 백미러 접는 일도 깜박깜박한다. 며칠 세워 둘 때는 블랙박스를 끄라는 아들 당부마저 까맣게 잊기 십상이다. 더구나 반자동 키의 버튼 조작이 익숙하지 않아 경보음을 울릴 때도 더러 있다. 허술하기 이를 데 없어 식구들 걱정을 싸고 산다
올해 1월 50여년만의 맹추위가 한반도를 덮었던 때를 복기해 본다. 눈도 없이 겨울을 넘기는 울산도 영하 10도를 넘나드는 추위 속에 정초를 지나던 중이던 어느 날이었다.어깨가 시려 눈을 뜨니 아직 어둠 속이다. 시계를 보았더니 새벽 3시를 가리키고 있다. 곁에는 딸이 잠시 맡겨두고 간 강아지가 코를 골고 자고 있는데 엉뚱하게도 옛날 먹던 비빔밥 감촉이 혀끝에 와 얹힌다. 이상한 일이다 싶어 일어나 앉았다. 곰곰 더듬어 보니 친정어머니 기일이 한 달 가까이나 지나 있다. 어머니 떠나신 지도 수십 년 됐고, 친정에서도 합제를 지내다
지난 2월 14일 한국지질자원연구원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경북 문경 관측정에서는 이번 튀르키예 지진의 여파로 지하수 수위가 7㎝나 높아졌다고 한다. 연구원은 규모 7.5 이상의 지진이 발생하면 심지어 멀리 7,000㎞이상 떨어진 지역에서도 지각의 흔들림과 지하수 등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을 확인했다고 발표했다. 울산시민들은 지난 2016년 규모 5.8의 경주지진, 2017년 규모 5.4의 포항지진의 여파를 직접 겪은 바 있다. 전문가들은 특히 경주 지역의 지반이 연약층이어서 지진에 매우 취약해 작은 여파에도 인근 원전에 영
글은 문장 속에 의미들을 품고 있다. 그래서 읽고 난 뒤 그 여운을 따라 많은 상상과 같은 호흡을 하기도 한다. 웃기도 하고 눈물을 머금기도 하고, 같이 그 풍경이 되어 어느 한 공간을 나도 모르게 공유하기도 한다. 특히 사투리는 의미 전달을 하는데 효과적일 수도 있다. 정성희 시인의 첫 시집 속에는 서부 경남의 사투리가 시를 생생하게 전하여 준다. 그리고 고령화된 시골의 골목마다 더 늙어가는 외로움을 담담하게 보여주는 시편들이 많다. 내 꼭꼭 숨었지 정성희 작 -86세 할머니를 찾습니다 정신 지극히 온전하시다 듣
오랜만에 울산에도 눈이 내려 산봉우리가 하얗다. 금방 녹아버렸지만 그래도 잠시나마 설산의 산정을 바라볼 수 있어 좋았다. 입춘이 지났으니 곧 봄이 올 것이다. 지난 주말에 화원에 들렀더니 이미 꽃들은 개화해서 연신 방긋방긋 봄맞이에 열중이었다. 몇 송이 꽃을 골라 거실에 두니 내 마음도 달뜬 기분으로 벙글었다. 부부가 같은 취미나 같은 방향을 바라보면 얼마나 좋을까. 그렇지 못함은 아마도 연애 시절 서로의 결핍에 이끌렸을지도 모른다. 마당에 자란 풀꽃도 보는 것이 좋아 며칠이고 풀밭으로 보일 때가 있다. 깔끔한 아내는 그런 꼴은 어
만병의 근원은 스트레스라고 한다. 최근 50~60대 부모님세대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가장 큰 스트레스가 다름아닌 '다 큰 자식걱정'이다. “라떼는 말이야~ 가정형편은 어렵고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학업도 포기하고 생활전선으로 뛰어나가는 생활력이 있었는데 요즘 애들은 너무 쉽게 가져서 그런가 포기가 빨라~" 라는 얘기도 종종 듣곤 한다. 무릇 청년이라 하면 그 젊음과 열정이 보기만해도 기운이 나는 시절이 있었다. 그런데 요즘 청년세대를 보고 있자면 어느 순간 우리 사회의 가장 아픈 손가락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어쩌다
EBS는 얼마 전 학부모의 문해력 저하 현상을 탐사보도했다. 바로 학부모들의 가정통신문 독해 능력이 해가 갈 수록 떨어진다는 내용이었다. '아니, 아이들만 그런 게 아니라 어른도 그렇다고?'라는 황당한 질문이 저절로 나오는 보도였다. 그 내용을 되새겨 보자면 다음과 같다. 한 초등학교의 담임 교사가 전학 가는 학생에게 '사용하던 교과서를 도서관 사서 선생님께 반납하라'는 내용의 가정 통신문을 보냈다. 그랬더니 학부모가 아이의 교과서를 구입해서 담임 선생에게 반납했다고 한다. 아마도 학부모는 '도서
부부에게 결혼해서 좋은 점이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내 편이 생겨 좋다고 답한 사람이 많다. 부부는 동격이다. 어지간하면 같은 편을 들게 되어 있는 것이다. 그걸 모르고 부부싸움을 자주 하는 집은 내 편은커녕 반대쪽 편을 들기 때문인 경우가 많다. 특히 여자가 시댁과의 갈등이 생겼을 때 남편이 시댁 편을 들면 가장 서럽고 분하다고 한다. 상담사의 가장 중요한 덕목은 일단 상담하러 온 사람 편을 들어주라는 것이 있다. 그래야 술술 말을 하고 상담해줄 답도 나오게 마련이다. 상담하러 온 사람은 자기편이 필요한 경우가 많다. 영화에 보면 범
입춘이 지났지만 아직도 쌀쌀한 날씨가 이어지고 있다. 이런 시기에도 불구하고 영남알프스 8봉 가지산, 간월산, 신불산, 영축산, 천황산, 재약산, 고헌산, 운문산 완주를 위해 등산 인구가 증가하는 추세다. 또한 건강을 위해 집 주변의 산을 친구, 가족 단위로 찾는 사람들로 겨울산은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다. 이렇게 산은 우리에게 건강과 아름다운 볼거리를 제공하지만, 산행으로 인한 크고 작은 안전사고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산행에 대한 자만심과 안전수칙 미준수로 고통을 받고 심지어 목숨까지 위협받는 사례가 많아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밖으로 은은하게 달빛이 비친다. 무심코 바라본 달은 어떤 날은 둥근 접시처럼 환한 달이었다가 어떤 날은 아이가 베어먹은 빵조각처럼 조각달이다. 달은 조금씩 모습을 달리해도 소소한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의 곁을 떠나지 않는 점에서 친구 같은 존재다. 잠시 눈을 돌렸을 때 달을 만나면 마음이 푸근해지면서 반가운 마음이 드는 것도 그 때문이다. 홀로서겠다고 떠난 아이들이 집을 찾아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는 것도 집이 달과 같기 때문일 것이다.달이 되고 싶을 때가 있다. 홀로서기를 위해 타지로 떠난 아이들을 생각하며 달처럼 바라보고 싶은 것이
군산 앞바다에서 배로 오 분 거리에 있는 섬 유부도는 여의도 면적의 사분의 일 크기이다. 35가구 70여 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하루에 두 번 바닷물이 빠지면 거대한 갯벌이 펼쳐진다. 이곳에는 갯벌의 시간에 맞춰 사람도 생물도 출근을 한다. 물길이 열릴 때마다 아름다운 출근길이 펼쳐진다. 하루 두 번 너른 품을 내어주는 생태 보물섬 유부도, 시베리아의 혹독한 추위를 피해 수천 킬로미터를 날아온 철새들이 머물다 가는 곳이기도 하다. 검은머리물새떼는 연미복을 차려 입은 듯 깔끔한 모습에 눈과 부리가 빨강으로 깔맞춤을 하고 있다. 튼튼
그림책 『튤립 호텔』은 모두가 존중받고 환영받는 다정한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표지에는 들쥐처럼 보이지만 알고 보면 봄날의 근사한 호텔을 운영하는 다섯 마리 멧밭쥐의 이야기이다. 이 책이 주는 첫 번째 메시지는 모두가 존중받고 환영받으며 살아야 한다는 거다. 책장을 펼치면 호텔을 운영하는 귀여운 멧밭쥐 다섯 마리가 나온다. 멧밭쥐는 설탕 한 숟갈에 달하는 몸무게를 가진 작은 쥐로, 한국 전역에 흔하게 서식하는 들쥐다. 글 그림을 함께 작업한 작가 김지안은 우리의 눈길이 닿지 않는 곳에서 부지런히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는 멧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