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 오후 6시 55분께 울산 남구 삼산동 농수산물도매시장 인근 한 가게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유은경기자
가야에서 대업에 실패하고 환갑을 넘겨 62세에 신라 4대왕에 오른 석탈해(昔脫解) 이사금은 키가 9자 7치 (약 2m 추정 : 1자 약 20cm 당시 도량 기준 ) 였다고 한다. 또한 용모 뿐만 아니라 매우 지혜로웠다고 한다. 장창호 작가는 바다 너머 나라(용성국) 왕비에게서 알(卵)로 태어난 석탈해는 금관 가야에서 김수로와 힘 겨루기에 패하고 큰 깨닮음을 얻어 신라에 이르자 그 땅의 문화를 받아 들이고 신망을 얻기 위해 애썼다고 추론하고 있다. 석탈해 탄생 설화에는 아진포 포구(경주시 양남면 나아리)에서 바닷 고기를 잡아 임금에게
삼국유사에 노례(弩禮)와 유례(儒禮) 등 두가지 이름으로 기록된 신라 3대 왕 유리(儒理) 이사금(尼師今). 부친 남해왕이 숨지며 "아들. 사위를 막론하고 나이가 많고 현명한 자가 왕위를 이으라"는 유언에 따라 태자 유리는 매제 석탈해에게 왕위를 넘기려 했다. 재상이었던 석탈해는 장인이 숨지자 태자에게 떡을 보내 이(齒)의 숫자가 많은 사람이 임금이 되자고 제안한다. 용성국(龍城國: 다파나국 (多婆那國)에서 너머온 석탈해는 잇금이 유리 태자 보다 적어 왕위를 물려주게 된다. 이에 왕호가 '차차웅'에서 ‘잇금(齒理 치리
박혁거세 거서간의 맏아들 남해(南解) 차차웅(次次雄 : 왕)은 신라 2대 왕위에 올라 '거서간'이란 왕호(王號)를 '차차웅'으로 바꿨다. 신라의 이두(吏讀)문자 표기에 따라 '무(巫)를 의미'하는 '차차웅'은 정치적 지배자 뿐만 아니라 제사장 이라는 두가지 역할을 함께 맡았다고 본다. 이는 남해왕 재위기에 국가적 위기가 유독 많은 것과도 무관하지 않다. 북으로 평양 낙랑(樂浪)이 남쪽 바다에선 왜(倭)의 침입이 잦아 한때 금성(金城) 궁궐 마저 위태로웠다. 또한 자연 재해도
진한 때 서라벌은 6개 촌에 사는 6개 씨족 수장(首長)들이 이끌었다. 어느날 알천 양산(楊山) 언덕에 모인 여섯마을 촌장인 알천 양산촌의 알평, 돌산 고허촌의 소벌리도, 취산 진지촌의 지백호, 무산 대수촌의 구례마 , 금산 가리촌의 지타, 명활 고야촌의 호진 등 6명이 회의를 열어 임금을 추대하고 나라를 세울 것을 논의 했다. 그러다 인근 기슭 우물가 나정(蘿井)에 흰말 한 마리가 나타나 무릅을 꿇고 울며 하늘을 향해 절을 하자 기이하게 여긴 촌장들이 나정에 이르니 자주빛 알만 있었다. 그 알에 한 아이가 태어나 동천 물가에서 아
9세기 중엽 통일신라는 전성기를 맞아 호사스런 생활를 엿보고자 한다. '사철놀이택', 일명 '금입택 (金入宅)'은 '금을 입힌 집' 혹은 '금테를 두른 집' 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이는 삼국을 통일하고 태평천하를 누린 신라 귀족들의 호사스런 생활을 엿볼수 있다. 제49대 헌강왕(憲康王)대 왕경(王京)에는 17만 8,936호(戶) 집이 있었고 그중 금입택이 35채가 있었다고 삼국유사는 전하고 있다. 삼국을 통일한후 국가는 상당한 전리품이 생겼났으며 귀족들도 또한 수많은 토지
신라의 옛땅인 삼국시대 진한. 장창호 작가는 진한의 영토와 역사에 대해 다루면서 또다시 시대를 넘나들며 통일신라 말기의 고운 '최치원'과 중국 후한서 역사서를 남긴 남북조시대 남조 송나라의 역사가 '범엽'을 등장 시켜 두 사람과 나이 든 한 백성이 함께 대화를 나눈다. 진한의 땅에서 나라를 세워 번창했던 신라는 후삼국 시대에 접어들어 외부적으로 후백제 견훤의 군사적 압박에 나라는 쇠락하고 내부적으로는 통일신라 위업이 빛을 잃어가며 골품제 폐단과 왕족.귀족들의 권력 찬탈로 갈등하며 몰락해가는 통일 신라를
해를 숭상했던 한민족은 한반도로 남하해 '삼한'이라는 고대 부족국가에서 형성했다. 장창호 작가는 삼한에 이어서 나라를 건국한 고구려의 고주몽. 가야의 김수로. 신라의 박혁거세 등 삼국시대의 대부분 국가의 시조들이 알에서 태어난 건국 신화 배경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고 있다. 신화에 대한 여러 가지 논란 속에도 장 작가는 시조들의 탄생한 알은 하늘을 숭상했던 민족에게 먼 창공을 넘나들던 '새'의 존재를 하늘의 메신저로 보는 인식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며 삼국유사의 고대국가사에 대해 스토리를 이어간다. 진행 :
주몽은 오이. 마리. 협보 등 세 벗과 동부여를 떠나 졸본으로 향하는 길에 맞닥드린 큰 강 (엄호수)을 힘겹게 건너 마침내 졸본천(흘승골성)에 이른다. 또한 이 여정에서 재사. 무골. 묵거 등 세 현인을 만나 고구려 기틀을 다지는데 큰 힘을 얻는다. 장창호 작가는 고구려 동명성왕이 건국 과정에 벗과 현인들을 만나 고대국가 세우는 여정을 스토리로 풀어 가고 있다. 진행 : 김동균기자 justgo999@ulsanpress.net ▶ 울산신문 오디오클립 'U울림통' 바로가기 ▶ 영상 보기 : 장창호 TV[22] 고구려 3
동부여 금와왕과 대소(帶素) 태자 그리고 여섯 왕자들은 끊임 없이 배 다른 형제 주몽(朱蒙)을 시기하고 견제한다. 끊이지 않는 시련에 주몽은 졸본(卒本)부여로 도망 치다 강에 이르러 강물에 길이 막히고 대소 태자 추적에 쫓기게 되자 강을 향해 하늘의 손자이자 하백의 외손자인 자신을 도와 달라 크게 외친다. 이에 강의 물고기와 자라가 무리를 지어 다리를 만드니 주몽 일행은 쉽게 강물을 건너게 된다. 그리고 기원전 37년 주몽은 압록강 지류인 동가강 유역 비류국(沸流國) 인근에 오뇨산성에 고구려를 세운다. '고구려 2'편
하늘나라 황제의 아들인 해모수를 사랑한 하백의 딸 유화는 잉태를 했는데 닷 되 정도 크기의 알을 낳았다. 금와왕은 이 알을 버려도 보고 짐승과 새들에게 내어 주지만 무사히 유화에게 돌아와 알에서 한 아이가 태어난다. 특히 아이는 활을 잘 쏘아 주몽이라 불렀다. 장 작가는 아기를 잉태한 유화를 비주었던 햇빛은 하늘의 아들인 '해모수'의 존재를 암시하며 또한 하늘의 후손 적장자가 동부여 금와왕이 아닌 주몽 임을 반추하고 있다. 진행 : 김동균기자 justgo999@ulsanpress.net ▶ 울산신문 오디오클립 '
부여국의 재상 아란불(阿蘭弗)은 선왕 해모수의 꿈을 꾸고 이에 해부루는 두만강 유역 북옥저 지역으로 국가를 옮기니 동부여 이다. 늙도록 자식이 없었던 해부루는 곤연 (鯤淵)의 연못가에서 금빛으로 빛나는 옥동자(금와 金蛙)를 얻으니 이내 태자로 삼았다. 궁으로 데려온 하백의 딸 유화가 어느날 햇빛의 정기를 받아 아들 주몽(朱蒙, 동명성왕)을 낳았다. 이에 금와는 이내 주몽을 헤치려 하나 그 뜻을 이루지 못한다. 장창호 작가는 자식이 없었던 해부루는 동부여를 세운 새 땅에서 그 지역 유력자의 자식을 태자로 삼고 왕위를 물려줄 가능성도
부여 해모수의 아들 해부루가 두만강 유역으로 천도를 하고 세운 국가가 동부여이다. 금빛 개구리의 정기를 타고 태어난 해부루의 아들 금와가 왕위를 잇고 선왕의 장례를 엄숙히 치른다. 금와왕은 태백산자락에서 만난 여인 하백의 딸 유화를 궁으로 데려왔는데 유화는 이내 아들을 낳았다. 그 아들이 주몽이다. 진행 : 김동균기자 justgo999@ulsanpress.net ▶ 울산신문 오디오클립 'U울림통' 바로가기 ▶ 영상 보기 : 장창호 TV[18] 동부여 #1
스스로 단군의 아들이라 말하며 해모수는 다섯마리 용이 끄는 마차 (오룡거 五龍車) 타고 지상에 내려와 흘승골성에 도읍을 정하고 나라를 세우니 북부여 이다. 이어 해모수는 서하(西夏)를 다스리던 하백의 맏딸 유화 사이에 아들을 낳았으니 바로 고구려를 세운 고주몽이다. 장창호 작가는 압록강변에서 해모수와 함께 오룡거를 타고 사랑을 나누는 장면을 스토리를 풀어간다. 진행 : 김동균기자 justgo999@ulsanpress.net ▶ 울산신문 오디오클립 'U울림통' 바로가기 ▶ 영상 보기 : 장창호 TV[17] 북부여 #2
서기전 59년 한반도 동북지역에 처음 세운 나라 부여는 해모수(解慕漱)와 북부여(北夫餘)와 훗날 해모수의 아들 해부루(解扶婁)왕이 세운 동부여로 나눠진다. 장창호 작가는 부여를 세운 해모수가 5마리 용이 끄는 마차를 타고 내려와 하백(河伯)의 세 딸를 만나 어울리고 노는 상황을 묘사하고 있다. 그중 첫째 딸 유화(柳花)와 사랑을 나누다 하백과의 갈등을 겪는 신화를 풀어 나가고 있다. 진행 : 김동균기자 justgo999@ulsanpress.net ▶ 울산신문 오디오클립 'U울림통' 바로가기 ▶ 영상 보기 : 장창호 T
낙동강을 둘러싼 한반도 남부지역에 존재한 5가야(伽倻, 加耶, 伽耶)는 가락(駕洛) 또는 가라(加羅)이라도 했다. 변한 땅었던 금관가야를 중심으로 아라가야(阿羅伽耶:경남 함안). 고령가야(古寧伽耶:함녕), 대가야(大伽耶:고령), 성산가야(星山伽耶:경산), 소가야(小伽耶:고성)이다. 장창호 작가는 대본에서 삼국유사 가락기를 인용해 하늘에서 자줏빛 끈 하나가 내려오더니 끈의 끝자에 달린 붉은 보자기에 싸인 금합 안에서 다섯개가 아닌 여섯알이 있었다.그중 한 개의 알에서 김수로(수로왕 首露王)가 태어난 금관가야가 시작되고 나머지 다섯 알
서기 297년 구리와 철기가 발달된 이서국(伊西國)은 사로국 금성(경주)을 침범한다. 유리 이사금의 선왕 미추왕릉(죽현릉)에 얽힌 죽엽군 설화에 따르면 죽현릉에 홀연히 나타난 군사들이 위기에 처한 유리왕과 신라를 도와 이서국을 몰아내고 여세를 몰아 이서국 땅까지 쫓아 치열한 전투 끝에 나라 마저 빼앗는다. 삼국유사와 삼국사기에 짧게 서술된 이서국의 존재는 청도에 출토된 국내 최대크기의 석제검과 여러 지석묘 등을 보아 작지 않은 고대 부족국가를 존재가 확인 되고 있다.장창호 작가는 청도 천변 장터에서 벌어진 말 싸움과 화덕에서 억센
삼한시대 변진(弁辰)의 부족국가 이서국(伊西國)은 경북의 청도군과 화양읍 일대에 있었던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청동기와 철기를 잘 다룬 정치 집단 존재로 짐작되는 이서국은 서기 297년 분쟁이 잦았던 사로국(신라 14대 유례이사금 14년)의 금성(경주)을 공격하고 기선을 제압했으나 홀연히 대나무 잎을 머리에 꽃은 병사들(죽엽군)이 나타나 신라군와 협공을 펼쳐 끝내 패하고 신라에 귀속되었다고 전해진다. 그리고 흔적 없이 사라진 이 병사들이 머리에 꽃았던 대나무 잎이 죽작릉(경주 대릉원 미추왕릉) 쌓인것을 보고 사람들은 미추왕이 전쟁을
국민의힘 소속 양산시의원들이 21일 시의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김일권 양산시장이 자신 소유의 농지 인접 제방을 건축법상 진입도로로 지정한 것에 대해 해명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가졌다. 이수천기자 news8582@ulsanpress.net#양산시 #김일권양산시장 #농지특혜
668년 신라.당나라의 연합군이 백제와 고구려를 차례로 무너 트리고 삼국이 통일된다. 이후 요동에서 멸한 고구려 유민을 이끌던 고구려 장수 걸걸중상과 그의 아들 대조영(大祚榮)은 말갈족 추장 걸사비우와 힘을 합쳐 당나라 측천무후(則天武后)의 병사를 물리치고 나라를 세우니 바로 발해(698~926년)이다. 발해는 요나라(거란) 침공에 멸망하기까지 해동성국(海東盛國)이라 불리며 드넑은 영토에 15대 230년간 존속한 국가이다. 장창호 작가는 이 시기를 '통일 신라' 아니라 1997년 부터 국정 교과서에 사용된 '남
삼국지에 한반도에 남대방(南帶方)이 있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낙랑국 이후 북대방과 남대방으로 나누어지는데 위나라 조조 때 남대방군을 두었다. 대방의 남쪽으로 바다 천 리를 한해(瀚海)라 했다. ‘한해’를 일본의 쓰시마(對馬島)와 키타큐슈(北九州) 사이 바다로 이해하는데 남대방은 지리적으로 요서(遼西) 지역이라 '한해'를 발해(渤海)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는 주장도 있다. 극본은 시대를 넘나들어 고려 일연스님과 신라 고운 최치원과 고려 김부식이 역사서에 대한 대화를 이어가다 고려 인종 묘청의 난까지 논쟁을 벌인다. 진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