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정 가까운 시간이다. 역사를 빠져나온 딸아이가 나풀거리며 걸어온다. 차 문을 열기 전부터 이미 할 말이 많은 표정이다. 좀 일찍 오면 어떠냐는 타박에 보드게임 카페에서 놀았다는 짤막한 이유를 댄다. 차에 시동을 건다. 다람쥐 도토리 감춘 듯한 입에서 까르르 웃음 섞인 이야기가 쏟아질 것이다. 딸은 늘 할 얘기가 많다. 게임 규칙을 익히는 것도 빠르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꾀를 내는 것도 예사롭지 않다. 자기 편을 승리로 이끄는 데 한몫할뿐더러 동생에게는 유연하게 져주기도 할 줄 안다. 지든 이기든 놀이 과정을 들려줄 때는 재잘대는
장애 하면 딱 오르는 단어가 장애인이 아닐까? 지금 당신도 그리 생각하고 있지 않은가? 장애인은 태어나면서부터 장애가 있다고 생각하고 자신과는 상관없다고 여기는 사람이 많다. 사실 그렇지 않다. 장애는 선천적 장애보다 후천적 장애가 90%가 넘는다. 그렇다면 왜 사람들은 장애가 장애인이라 생각하고 나와 상관없다고 여기는 걸까? 그만큼 장애인을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인식이 부정적이고 편견과 고정관념이 많기 때문이다. 장애인은 동정과 시혜의 대상, 돌봄과 배려의 대상, 치료와 재활의 대상이기에 비장애인 세상 속에서 그들이 사람으로서 누
울산시를 포함한 지역 지자체들의 지난해 민원서비스 종합평가는 전년도에 비해 하락한 것으로 드러나 아쉬움이 크다. 행정안전부와 국민권익위원회가 306개 행정기관을 대상으로 실시한 '2023년 민원서비스 종합평가'에 따르면 울산시와 구·군청은 평균적으로 중간 등급인 다등급을 받았다. 민원서비스 종합평가는 전국 중앙행정기관 및 광역지자체, 교육청 및 기초지자체 등 유형별로 매년 실시되고 있다. 울산에서는 울산교육청이 최우수 가등급을 받은 것을 제외하고는 나등급을 받은 지자체도 없어 자조섞인 한탄이 나온다. 울산시와 남·북구가 겨우 다등급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에서 우리나라가 노인빈곤률 1위다. 이것뿐만 아니라 고용률마저 OECD 최고 수준이라는 불명예를 안고 있다. 소득이 필요한 노인들이 단순 노무직에 몰리거나 자영업과 같은 생계형 창업이 성행하고 있어서다. 예전처럼 자녀에게 전적으로 노후를 기댈 수 없는 사회 분위기 등을 감안한 자구책이라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우리 사회 고령화 문제를 여실히 드러내는 단면이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통계청이 최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전체 자영업자(568만9,000명) 중에서 60세 이상 자영업자 수
꽃과 나무와 아이는 햇살을 받고 자란다. 어릴 적, 마당이 있는 집에 살았다. 나무 몇 그루와 맨드라미, 봉선화 같은 꽃과 채소를 심어 놓았다. 철마다 꽃이 피고 토마토와 오이가 열리고 아주 가끔은 수박도 볼 수 있었다. 무엇보다 잊을 수 없는 것은 구기자나무다. 구기자나무 덩굴이 담벼락을 타고 길게 늘어지고 주홍빛 열매가 주렁주렁 탐스럽게 열렸다. 엄마는 일요일마다 아버지가 마실 구기자차를 끓인다며 언니와 내게 한 소쿠리씩의 할당량을 주시곤 했다. 귀찮은 마음에 투덜거리기도 했지만, 어느새 언니와 함께 구기자 열매를 따다 보면 마
사람과의 만남에서 유독 정이 많은 사람이 있다. 작은 것에도 상대가 미안할 정도로 따뜻한 눈빛으로 무엇이든 그 이상 정을 담아 표현하는 사람, 부담스러울 때도 있지만 마주하고 있음 그냥 기분이 좋아질 때가 많다. 마음 한쪽에 솜사탕 같은 감미롭고 부드러운 덩어리들이 돌아다니는 것 같기도 하고. 다정에 감염되다 이대흠 다정에게는 내가 나를 어쩌지 못하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병아리 털처럼 순하고 병아리 눈동자처럼 동그랗습니다 정은 손을 내밀고 다정을 담은 그릇에는 모서리가 없습니다 다정에는 가시가 많습니다만 너무 많은 가시에서는 가시를
한국형 차기 구축함(KDDX) 사업과 관련해 군사기밀 유출로 논란이 된 HD현대중공업이 입찰 참가자격을 유지하게 됐다. 방위사업청은 27일 계약심의회를 열어 HD현대중공업 부정당업체 제재 심의는 '행정지도'로 의결됐다고 밝혔다. '군사기밀보호법 위반이 국가계약법 상 계약이행시 설계서와 다른 부정시공, 금전적 손해 발생 등 부정한 행위에 해당되지 않으며, 제척기간을 경과함에 따라 제재 처분할 수 없다고 봤다'는 게 결정 이유였다. 따라서 HD현대중공업은 향후 KDDX 건조 사업에 입찰 자격을 제한받지 않는 기회를 얻은 셈이다. 해당
울산이 교육부의 교육발전특구 1차 시범지역으로 선정됐다는 반가운 소식이다. 무엇보다 지역 특성에 맞는 인재 양성에 속도를 낼 수 있게 돼 기대를 모은다. 교육발전특구는 지방자치단체, 교육청, 대학, 지역 기업, 지역 공공기관 등이 유기적으로 협력해 지역 맞춤형 교육 혁신에 매진함으로써 지역 인재를 양성하고, 정주 여건을 개선하도록 지원하는 체제다. 따라서 울산은 3년간 특별교부금으로 30억~100억원을 지원받고 규제 개선, 특례 적용 기회 혜택을 갖는다. 또 3년간 시범 운영 후에는 교육발전특구위원회 평가를 거쳐 정식 지정 여부가
필자는 최근 2년간 팀원들에게 '코드에 맥락을 최대한 적게 담아라'라는 말을 가장 많이 한 것 같다. 다들 처음에는 무슨 소리를 하는거냐? 같은 표정을 짓는다. 프로그램 코드란 대부분 어떤 상황이 일어났을 때 그에 맞는 동작과 결과를 출력하도록 기계에게 지시하는 것이다. 여기서 어떤 상황이 일어날 때 그 상황을 구성하는 각종 배경 정보를 맥락이라고 한다. 여전히 잘 알아듣지 못하는 팀원들이 많아 다시 자세한 설명을 해 줬다. 가정을 최대한 적게 깔라는 뜻이라 풀어주자 그제야 하나둘씩 알아듣는 눈치다. 이런 표현을 이해하기 어려워하는
라면은 많은 이들에게 친숙하다. 내가 아주 좋아하는 것도 라면이다. 간편하게 한 끼 식사를 해결하기에 충분한 까닭이다. 쫄깃쫄깃 탱글탱글한 면발을 생각하면 저절로 군침이 고인다. 콩나물을 넣으면 아삭한 식감도 즐길 수 있고, 대패삼겹살 두어 조각과 계란과 파를 곁들이면 영양면에서도 부족하지 않다. '계란떡만두햄치즈김치라면'(장이랑/폭스코너)이라니 싫어할 수 없는 재료들을 다 넣은 맛은 어떨까, 라면 한 개가 커다란 냄비를 다 채울 것 같다. 양적으로도 넉넉할 것 같다는 생각과 함께 노란 표지의 책을 보면서도 군침이 흐른다. 이 책에
해마다 이맘때쯤이면 지반침하, 붕괴, 토사유출이나 낙석 등으로 인한 불상사가 속출하기 마련이다. 특히 지난주는 지역 곳곳에서 눈이나 비가 내려 안전사고 위험이 도처에 도사리고 있다. 특히 각종 건설현장, 도로변 절개지 등에는 언제든지 대형 참사로 이어질 가능성이 많아 주변 환경 정비 실태 등을 철저히 점검하는 등 각별한 주의가 요구된다. 무엇보다 일상생활 주변에 안전사각지대가 적지 않다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 옥외 전기설비, 옹벽·담장 및 각종 구조물 등은 눈여겨 봐야 한다. 게다가 날씨가 풀리면서 어린이 놀이터 등에서 안전사고가
지난해 12월 지방자치법 시행령이 개정되면서 광역의원의 의정활동비가 현행 월 150만원에서 200만원 이내로, 기초의원의 경우 110만원에서 150만원 이내로 각각 상향 조정됐다. 행정안전부가 지방의원의 충실한 의정활동 유인체계를 마련하고 인재의 지방의회 진출 동기를 부여하기 위한 것이다. 이처럼 지방자치법 시행령이 개정되자마자 울산 광역·기초의원들이 의정활동비 인상을 최대폭까지 추진하고 있어 논란을 사고 있다. 울산시 의정비심의위원회는 지난 14일 올해부터 오는 2026년까지 시의원에게 지급할 의정활동비를 월 200만원(기존 15
우리 주변에는 곳곳에 유휴공간들이 있다. 의외로 근접한 곳에 거주하는 주민들이나 시민들은 그런 공간의 존재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게 사람의 손길을 기다리고 관심을 기다리는 공간들은 시민들의 의지로 놀라운 용도로 살아나기도 한다. 2024년 1월 19일 개관한 울산 동구 방어진 '슬도아트(구, 소리체험관)'와 방어진활어센터 건물에 위치한 '문화공장방어진'이 그 대표적 예가 되겠다. 그간 동구는 이렇다 할 공공 전시시설이 없어 주민들의 문화욕구를 충족시켜주기에 역부족인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탄생한 '슬도아트'는
초저녁잠이 많은 노인이지만, 아시안 컵 축구대회의 한국 대표팀 출전 경기는 다른 스케줄도 모두 마다하고 다 봤다. 8강 전까지는 그런대로 밤잠 안 자고 본 보람이 있었다. 무거운 눈꺼풀을 치뜨고 밤잠을 안 자가며 응원했고 경기 결과에 우리 온 국민들이 일희일비했다. 그런데 준결승전인 요르단과의 경기는 눈을 의심하게 했다. 완전히 다른 팀처럼 보였다. 공격진은 따로 놀고 수비진은 오합지졸처럼 상대 공격수 한 명에 다섯 명이 붙어도 막지 못했다. 결과는 2:0 완패였다. 알고 보니 전날 밤 우리 대표팀 내부에 큰 소동이 있었다는 보도가
지역 소상공인들에게 적지 않은 부담이었던 청소년 주류 제공 금지 규제가 완화될 전망이다. 청소년 대상 주류 판매 등 제공행위의 경우, 사안에 따라 행정처분 대상업체 감면을 신속하게 추진키로 했기 때문이다. 특히 식약처는 지자체를 통해 음식점에서 청소년 대상 주류 제공행위를 적발한 경우 객관적 사실을 충분히 조사한 후 영업자에 대한 행정처분 및 고발 여부를 신중히 결정토록 요청했다. 그동안 고질적인 규제로 낙인찍혀 온 청소년 대상 주류 판매 문제가 어느 정도 해소될 것으로 전망된다. 최근 식품의약안전처가 청소년에게 주류를 제공한 가게
지역 대학생들에게 큰 호응을 얻고 있는 '천원의 아침밥' 사업이 대폭 확대됐다는 반가운 소식이다. 대부분 아침 식사를 거르던 학생들이 밀가루로 만든 빵이 아닌 쌀밥을 꼬박꼬박 챙겨 먹음으로써 건강한 식습관을 형성하는 데 도움을 줄 뿐만 아니라 쌀값 하락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농가에도 쌀 소비 활성화를 통해 안정적으로 소득을 올릴 수 있다는 점에서 퍽 다행스럽다고 생각된다. 실제 지난해 울산대학교에서는 학생 약 1만4,550명이 '천원의 아침밥' 혜택을 누렸다. 울산대보다 뒤늦게 사업에 참여한 UNIST는 지난해 5월 15일부터 1
붉은 해와 짙게 푸른 밤하늘이 만나는 시간대엔 저 멀리서 다가오는 실루엣이 '나를 공격하려고 걸어오는 늑대인지, 내가 기르는 개인지' 분간이 어렵기 때문에 황혼을 표현한 말이다. 밝은 빛이 사라지며 짙고 어두운 밤이 찾아오면서 그림자가 질 때 상대방이 '나의 적인지 동지인지?' 구분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드라마에 나올 정도로 다양한 의미로 사용되는 문장이다. "오늘 누군가가 그늘에 앉아 쉴 수 있는 것은 오래전에 누군가가 나무를 심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현재 편안하게 쉴 수 있는 환경이나 혜택이 이전 세대의 노력과 희생에 기인한다
198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울산엔 농경사회의 풍속과 유례들이 많이 남아 있었다. 그중에 음력 설날부터 2월 초하루까지의 세시풍속은 종류도 다양하고 보기에도 놀기에도 참 좋았다. 정월 대보름은 한해의 첫 보름달이 뜨는 날이고 보름달은 풍요와 부, 다산의 상징이었다. 이날 벌이는 세시풍속의 하이라이트는 지신밟기였다. '매구친다, 걸립논다'라고 불렀다. 포수를 앞세우고 다양한 오방색 종이꽃으로 치장한 걸립패가 온동네 집집마다 구석구석 지신을 밟으면 주인은 복채와 술로 답례했다. 1988년 초 이유수 선생이 사본을 공개했다
우리는 어린 시절부터 책을 많이 읽으라는 말을 수없이 들어왔다. 그러나 그 누구도 '어떻게'읽어야 하는지는 알려주지 않는다. 단지 '얼마나' 읽었는지, 독서량에 집중할 뿐이다. 우리는 왜 이렇게 '책 읽는 양'에 집착하는 걸까? '서울대 도서 목록 100권'부터 ' 초등학생 필독 도서'에 이르기까지 빨리 읽는 것에만 집중해 정작 책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는 무신경하다. 필자 역시 그랬다. 결론적으로 많은 책을 어떻게 읽음으로써 우리가 얻는 것은 단순하게 많은 책을 빠르게 읽었다는 행위뿐이다. 책을 읽는 건 즐거움 자체가 목적이어야
우리나라 국민이 느끼는 '삶의 만족도'가 전반적으로 개선됐다고는 하지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 회원국 중 35위로 나타났다. 전년보다 한 단계 오르긴 해도 여전히 최하위권이라는 것이다. 우리나라보다 낮은 국가는 그리스, 콜롬비아, 튀르키예 3개국에 불과했다는 건 부끄러운 일이다. 다만 우리나라의 삶의 만족도 점수가 최근 10년간 소폭이지만 꾸준한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는 건 긍정적으로 평가된다. 삶의 만족도는 여러 객관적 삶의 조건에 대한 국민 개개인의 주관적 만족 정도를 보여주는 지표이기 때문이다. 세계 10위권 경제력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