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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구 강동동 죽전마을에 위치한 800년생 소나무는 보호수로 지정되면서 세전송에서 활만송으로 이름이 바뀌었고, 지금은 울산시목으로 지정되어 역사성에 있어서는 정이품송에 앞서며 풍모에 있어서는 정이품송의 귀족적인 모습에 대비되는 서민적인 모습의 대표적인 소나무이다.


울산김씨 학암공파 마을 만들며 심은 활만송
야산 서쪽 급경사지에 40도 기울어 생육지장
강동권 개발 6차선 도로 건설로 위기 겪기도
가치평가 제대로 안돼 천연기념물 지정 무산


소나무는 우리 겨레의 나무다. 우리 나라에 있는 1,000여 종의 나무 가운데 소나무 만큼 우리 민족과 친밀한 나무도 없다. 태어나면 솔가지로 금줄을 만들어 치고, 죽어서는 송판으로 만든 관에 들어 땅에 묻혔다.
살아있는 동안에도 소나무에 많은 것을 빚졌다. 그래서 한때 전체 산림면적의 60% 이상이 소나무였다. 지금은 25%에 불과하지만, 그래도 국민의 절반 가량이 소나무를 가장 좋아하는 나무로 꼽고 있다. 나라 안에는 정이품송(천연기념물 제103호)과 석송령(제294호) 등 천연기념물 명품 소나무가 많다.
울산에는 비록 천연기념물 소나무는 없지만, 명품 반열에 낄만한 소나무가 상당수에 이른다.

소나무의 한자명 '송(松)'은 중국의 진시황이 갑자기 만난 소나기를 소나무 아래에서 피하고는 고맙다는 뜻에서 공작 벼슬을 내려 '목공(木公)'이라 부른 데에서 '松(송)'자가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중국의 벼슬 위계에서 '공(公)'은 첫 번째에 해당됨으로 가장 훌륭한 나무라고 풀이하기도 한다. 이름도 다양하다. 껍질이 붉고, 가지 끝에 붙은 눈도 붉은 소나무는 적송(赤松)이라고 한다. 껍질이 흰 것은 백송(白松). 내륙지방에 주로 자란다고 해서 육송(陸松). 해안과 섬에서 주로 자라는 검은색 껍질을 가진 것은 곰솔. 곰솔 잎보다 부드러워서 여송(女松). 두 잎이 한 다발을 이뤘다고 해서 이엽송(二葉松). 강원도 영동지방에서는 곧게 자라는 특성을 가졌다고 해서 강송(剛松) 또는 금강송(金剛松)이라 부른다.

 소나무는 전 세계에 걸쳐 100여종이 자라고 있는데, 중생대 삼첩기 말기인 1억7,000만년 전에 지구에 나타났다고 한다. 고생물학자들은 처음으로 번성한 곳을 알래스카와 시베리아의 북동부를 연결하던 베링기아로 꼽는다. 우리 나라에는 그 뒤 중생대 백악기부터 자랐으며, 그 때의 소나무 화석이 발견되기도 했다. 소나무는 우리 나라에서 수평적으로는 제주도 한라산에서 함북 증산에 이르는 온대림 지역에 주로 분포한다. 북위 37-38도에서 가장 많이 자란다. 북쪽에서는 신갈나무 때문에, 남쪽에서는 곰솔에 밀려 점차 줄어들고 있다. 수직적으로는 해발 1m에서 1,300m까지 분포하고, 제주도에서는 500-1,500m의 산록에서 주로 자란다. 섬을 제외한 우리 나라 육지부에서는 대부분 1,300m가 수직분포의 상한선이다.

 

 

   
▲ 1997년 외과수술 후 남쪽으로 처진 가지에 받쳐놓은 지지대.

 


 우리 나라의 소나무는 여섯 가지로 나뉜다. 일본 산림학자 우에기호미키(植木秀幹)가 1928년에 분류한 것이 지금도 통용되고 있다. 개마고원을 제외한 우리 나라 전역을 여섯 곳으로 나눠 '동북형(東北型)'과 '중남부 고지형(中南部 高地型)', '중남부 평지형(中南部 平地型)', '위봉형(威鳳型)', '안강형(安康型)', '금강형(金剛型)'으로 나눴다. 동북형은 함경도 일대의 소나무를 말한다. 중남부 고지형은 중남부 고지대에서 자라는 소나무이고, 중남부 평지형은 굽었지만 가지가 넓게 퍼져 자라는 인구밀집 지역의 소나무를 나타낸다. 위봉형은 위봉산을 중심으로 전북 일부 지역에서 자라는 소나무다. 안강형은 경주와 안강 주변에서 가장 볼품 없고 못생긴 모양으로 자라는 소나무이고, 금강형은 줄기가 곧고 가지가 상부에서만 좁은 폭으로 자라는 강원도와 경북 북부 지역의 소나무을 나타낸다.

 소나무의 껍질은 붉은빛을 띈 갈색이나 아랫 부분은 검은 갈색이다. 성숙한 바늘잎 길이는 3-13㎝. 잎은 바늘잎과 퇴화돼 떨어질 비늘잎으로 이뤄진다. 바늘잎은 1-2mm의 짧은 가지에만 달리고, 가느다란 비늘잎은 긴 가지 위에 달린다. 바늘잎이 떨어질 때는 짧은 가지도 함께 떨어진다. 바늘잎은 두 개가 쌍이 돼 마주 나며, 아랫 부분은 2-3mm 길이의 엽초안에 들어 있다. 두 개의 바늘잎이 서로 붙어 한 다발이 돼 있다. 4월 말이나 5월 초가 되면 지난해 미리 만들어 두었던 겨울눈에서 새순이 자란다. 맨 윗가지의 순은 몸통이 되고, 그 밖의 순들은 가지로 자란다. 잎의 개수로 종류를 구별한다. 한 다발[束]에 잎이 하나인 것은 미국산 단엽소나무. 둘은 소나무와 곰솔. 셋은 백송과 리기다소나무, 테에다소나무. 넷은 사엽송. 다섯은 잣나무와 섬잣나무, 스토로브소나무.

 꽃은 암꽃과 수꽃이 한 몸에 피는 자웅동주(雌雄同株)다. 4-5월에 피고, 수꽃은 길이 1cm 내외로 긴타원형이다. 새 가지의 밑부분에 달리며, 노란색으로 보통 20-30개로 이뤄진다. 암꽃은 보통 윗가지 끝부분에 2-3개씩 달린다. 엷은 보라색으로 길이는 5mm 내외이고, 달걀 모양이다. 열매는 달걀 모양으로 길이 4.5cm, 지름 3cm. 열매는 70-100개의 조각으로 이뤄지고, 다음해 9-10월에 노란빛을 띈 갈색으로 익는다. 종자는 길이 5-6mm, 너비 3mm의 타원형으로 검은 갈색이며 날개는 연한 갈색 바탕에 검은 갈색 줄이 있다.

 

 

 

 

   
▲ 남·북·서 세방향으로 나뉜 줄기는 휘어지고 굽어지고 비비꼬여 제각각 수많은 가지를 내질러 그 용틀임한 모습이 신령스럽다.

 


 소나무의 쓰임새는 무척 다양하다. 잎은 각기와 소화불량 또는 강장제로, 꽃은 이질에, 송진은 고약의 원료 등에 쓰인다. 송홧가루라 불리는 꽃가루로 다식을 만들며, 껍질은 송기떡을 만들어 식용한다. 박목월의 시 '윤사월'에 송홧가루가 폴폴 날리는 정경이 묘사돼 있다. 목재는 건축재와 펄프용재로 이용되고 테레핀유는 페인트와 니스용재, 합성장뇌의 원료로 쓰인다. 선조들은 관상용과 정자목, 신목(神木)인 당산목으로 많이 심었다.

 울산도 다른 지역의 천연기념물 소나무에 결코 뒤지지 않는 고목(古木) 소나무를 갖고 있다. 600여년을 이어온 '울산김씨' 학암공파(鶴庵公派)와 함께 해온 나무다. 울산김씨 학암공파는 조선 태종 때인 1404년 북구 강동동 죽전마을에 들어와 살기 시작하면서 비롯됐다. 시조(始祖)인 신라 마지막 임금 경순왕의 둘째 아들 '덕지(德摯)'의 18세손 '비(秘)'가 형 '온(穩)'이 처가인 여흥민씨 집안의 모반사건에 연루돼 동서인 태종으로부터 죽임을 당했다. 비(秘)는 화를 피해 울산에 내려와 죽전(竹田)마을을 만들어 뿌리를 내리면서 울산 입향조가 됐다. 김비는 마을을 만들면서 소나무를 심은 뒤, 마을의 안녕과 가문의 번영을위해 소나무를 당산나무로 삼았다. 가문과 영욕을 함께 해온 세전송(世傳松)이다. 지난 1982년에 보호수로 지정되면서 이름이 바뀌어 활만송(活萬松)으로 불리고 있다.

 활만송은 강동중학교 바로 옆에 나있는 콘크리트 포장길을 따라 100여m 가량 북쪽으로 들어가면 만날 수 있다. 북구 강동동 산 20번지. 소나무는 30여m 높이의 야산 서쪽 기슭에 있다. 경사진 산기슭에 자리잡은 때문에 40도 가량 기울었다. 나무 아래는 뒤편인 북쪽에 있는 인가로 들고 나는 콘크리트 포장길이고, 그 너머는 논이다. 주위에는 새로 길을 내기 위한 표식으로 적황청 삼색 깃발이 잔뜩 꽂혀 있다. 강동권 개발지구의 진출입로로 이용될 6차로 도로를 건설하면서 활만송도 옮겨가야 할 처지에 놓였으나, 도로 선형을 변경하기로 해서 그대로 있게 됐다고 한다. 그래도 도로가 만들어지면 살아가는 데에 큰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 분명하다.

 활만송 아래에는 북구청이 세워 놓은 보호수 표지석이 있다. '지정 번호 12-29. 지정 일자 1982년 11월 10일. 수령(나이) 600년. 수고(키) 13m. 나무둘레 390㎝'로 돼 있다. 울산생명의숲은 '추정수령 700-800년. 수고 13m. 수관폭 23.78m. 가슴높이 둘레 4.15m. 뿌리부분 둘레 4.25m. 용도 당산나무'로 밝히고 있다. 울산생명의숲은 마을을 만들 때 심었다고 하면 나이가 600여년이 맞지만, 마을을 열 때 이미 자라고 있는 나무를 당산나무로 삼았을 것이라며 나이를 700-800년으로 추정한 것이다. 보호수 표지석 곁에는 활만송의 내력을 적어 놓은 오석(烏石)도 세워져 있다.

 활만송이 있는 곳은 서쪽 산자락 급경사지로 생육에 많은 지장을 받고 있다. 1997년에 외과수술을 한 뒤에 남쪽으로 처진 가지에 지지대를 받쳐놓았다. 또 가지가 찢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쇠고리로 나무의 여섯 군데를 서로 연결해서 조여놓았다.
 2005년에는 세 단으로 나뉜 축대와 계단도 쌓아 단장했다. 활만송은 서쪽을 향해 뻗었는데, 2.3m 높이에서 몸통이 남쪽과 북쪽, 서쪽 방향 세 가닥으로 나뉘었다. 동쪽은 산에 잇대어 있어서인지는 몰라도 텅 비었다. 세 방향으로 나뉜 줄기는 휘어지고 굽어지고 비비꼬였다. 세 가닥의 큰 줄기에서 제각각 수많은 가지를 내질렀다. 가지 끝 부분에 가서야 잎들을 매달고 있다. 그 처연한 모습이 세월의 무게를 이기지 못한 듯 하다.

 그래도 그 용틀임한 모습이 신령스럽다. 영기를 느끼게 한다. 그러니 위엄이 있다. 당당하다. 압도를 당한다. 껍질 또한 묘하다. 용비늘 무늬. 나무 아래에 선다. 용이 곧 하늘에 날아오를 시각인가 보다. 가만가만 숨을 죽이고 지켜본다. 일순간 청룡이 훨훨 하늘로 날아오른다. 비룡등천(飛龍騰天). 600년을 내려온 죽전마을의 신목(神木) 활만송. 울산의 최고(最古)이자, 최고(最高) 소나무. 그럼에도 지난 2005년 초에는 그 내력을 제대로 몰라 문화재청의 심사에서 떨어져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지 못했다. 그 역사문화적인 가치를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것이다. 당시 문화재청은 울산광역시에 자체 기념물로 지정할 것을 권유했는데도 울산시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고목(古木)이 역사문화와 선조들의 삶의 발자취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 울산광역시의 문화재행정의 천박함을 여실히 나타낸 것이다.

 소나무가 뭔가? 우리 민족의 나무다. 그렇다면 고목(古木) 소나무는 뭔가? 평생을 소나무에 푹 빠져 살고 있는 원로시인 박희진(朴喜璡)은 <소나무는 나무 중의 고전(古典)이다. 그 격(格)과 운치(韻致)에 있어, 소나무를 능가할 나무는 없다. 특히 낙락장송(落落長松)의 멋은 우리 나라에서만 누릴 수 있다. 이 땅에 내려진, 더없는 천복(天福)의 하나라 할 것이다>라며 우리의 소나무를 예찬하기에 주저함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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