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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재의 남구 삼산동 전경.
   
▲ 개발되기 전인 1960년대 남구 삼산동의 전경. 울산시 제공

 

 

 

 

 

 

"자라 등에 업힌 삼산은 하늘가에 벌여 있고 백로 노는 이수가 눈앞에 푸르구나. 경치를 다 보고는 고개 돌려 멈추니 아득히 드넓은 우주가 감개로와라."
경주 출신 작가 최홍락이 삼산을 둘러본 뒤 그의 문집 송운유고에 기록한 한시의 내용이다.
울산시 남구 삼산동은 나란히 솟아있던 세 봉우리에서 유래된 지명이다. 옛 삼산은 삼면이 모두 뻘이고, 그 밑으로 염전이 있었다.
현재의 삼산동은 구획정리사업으로 남중리, 끝자락마을 등 옛마을의 모습은 사라졌지만, 울산시외·고속버스터미널이 위치하고 있는 교통의 요충지이며, 백화점, 농수산물도매시장, 주상복합 등 금융·문화·쇼핑·주거 등이 아우러진 울산 최대의 번화가로 성장했다

#줄지은 세 봉우리 '삼산'…오산으로도 불리어

옛날 읍지(邑誌)의 기록을 보면 삼산(三山)을 가르켜 3면이 바다이고 아래에는 염전이 있으며 줄을 지어 세 봉우리를 이루고 있다고 해 삼산이란 이름을 붙였다고 전하고 있다.
 그러나 동국여지승람에는 이 삼산을 오산(鰲山)이라 했는데, 이는 산세가 마치 자라같이 생겼다 해서 한자로 오산(鰲山)이라 기록한 것이다.
 울산에는 자라같이 생긴 조그만 산이 또 하나 있는데, 태화동 멍정마을 앞 태화강변에 있던 내오산(內鰲山)이 그것이다. 이 산은 이 곳에서 부사를 역임했던 박취문(朴就文)이 만회정을 지었으나 없어진지 오래이다.

 

 

   
▲ 중앙 앞쪽에 남구 문화원, KBS방송국,울산문화예술회관, 남구청,문화공원 등이 모여 있는 남구 달동.(2004) 울산시 제공

 이후 오산은 삼산으로 변하고 내오산을 단지 오산이라 부르게 됐다. 태화동의 오산대밭은 내오산 근방의 대밭을 일컫는다.
 삼산은 일제시대에 삼산동에 군용 비행장을 만들면서 산정을 깍아버려 원래의 모습을 잃어버렸다고 한다.
 지난회기 시의회의장을 지낸 윤명희 전 시의원의 부친 윤진옥 선생(1926∼1950)은 일제 당시 부산 제2상업학교(개성고등학교·옛 부산상고) 재학 중이던 때 울산비행장 광장과 부수 도로 건설공사에 동원되었다 태업을 주도했다고 한다.

 삼산동은 본래 경상남도 울산군 내현면 지역이다. 조선 숙종과 영조 때는 신리라는 단일 마을이었다. 정조 때는 신리와 삼산리로, 순조 때는 신리, 신복리, 삼산리, 신기리, 중리로, 고종 13년(1876)에는 신리, 신복, 삼산, 중리, 상리로 나눠 있었다.
 1914년 행정규역 개편 때 이를 모두 통합해 삼산리로 울산면에 편입됐고, 1962년 6월에 울산시에 편입돼 동이 되었다가 동제 실시에 따라 달동으로 바뀌었다. 이후 1995년 3월 다시 달동과 삼산동으로 분동돼 지금에 이르고 있다.
 
#염전에서 울산 경제·문화·교통 중심지로

'학성지(1749)'에서는 삼산은 오산의 별명으로 삼면이 모두 바다와 진펄로 되어 있고, 높이는 10여 장이며, 봉우리 세 개가 열 지어 서 있다고 소개한다. 예전에는 바위 사이에 해죽이 숲을 이루고 있고, 좌우에는 소금을 만드는 사람들 수백 호가 살고 있다고 한다.
 소금밭은 3만6,000평에 달했고, 특히 이곳에서 생산되는 백염은 2만6,000근 규모로, 지역 토산품으로 전국적 유명세를 떨쳤다.

 

 

 

 

   
▲ 1980년대 구획정리 작업이 진행중인 남구 삼삼동. 울산시 제공

 또한 태화강 하류에 속하는 지역이어서 삼각주가 발달해 평야가 많았다. 삼산들(三山坪), 마단들, 남정들 등이 그것이다.
 약 5%의 밭농사를 제외하고는 지대가 낮아 모두 논농사를 지었으며, 벼농사는 보통 풍년이 들었으나 2년마다 한 번씩 수해를 입기도 했다고 한다.
 남정들은 조선지지자료에 한자로 남정평이 신리동에 있다고 기록되어 있으나 현재 이곳의 위치는 알 수 없다.

 마단들은 현재 롯데백화점의 동쪽 일대에 있었던 들이다. 조선지지자료에는 한자로 저내평으로, 언문으로 마단들로 기록돼 있다.
 삼산들은 삼산동에 펼쳐져 있던 대규모 평야이다. 예전엔 이 들판의 동쪽 대부분이 염밭이었고, 염전이 폐지된 후 갈대가 무성했으며, 게들이 밀생해 온통 게 구멍 천지로 되어 있었던 곳이다.
 1980년도 말까지만 해도 대규모 평야였던 이 곳은 구획정리사업을 거쳐 지금은 울산 경제·문화·교통의 중심지로 자리잡고 있다.
 
#교통의 요지, 하이브리드한 울산사람들의 집합소

현재 삼산동은 시외버스터미널, 고속버스터미널, 태화강역(구 울산역) 등의 대중교통시설이 몰려 있다. 뿐만 아니라 중앙로, 삼산로, 번영로, 한전로 등 울산의 주요 도로가 지나가는 사통팔달한 교통의 요지이다.
 이러한 지리적 장점으로 인해 삼산동 인근에는 현대·롯데백화점, 대형마트 등 각종 쇼핑센터들이 몰려있고, 의료기관, 금융기관이 집중해 있는 등 울산시의 중추적 도시로 자리매김하면서 울산 사람들이 자주 찾는 울산사람들의 집합소로 변모했다.

 

 

 

 

   
▲ '남구 삼산동'은 삼면이 모두 바다와 진펄, 태화강 하류에 속해 삼각주가 발달해 평야가 많았던 옛날과 달리 현재는 시외·고속버스터미널, 태화강역 등 대중교통시설과 주요도로, 롯데·현대백화점, 대형마트 등의 각종 쇼핑센터, 의료·금융기관이 집중해 울산시의 중추적 도시로 자리매김해 울산 사람들이 자주 찾는 집합소로 변모했다. 유은경기자 usyek@ulsanpress.net

 이는 지난 1962년 이후 구획정리사업으로 신도심의 모습을 갖추면서 가능해졌다. 신도심의 쾌적한 환경과 넓은 도로, 거기에 지리적 유리함까지 갖춘 삼산동에 빠른 속도로 주거시설이 들어섰으며 이와 함께 여러 소비시설들이 생겨났다. 자연히 사람들이 많이 모이게 됐고, 이런 효과로 인해 병원, 은행 등의 생활 편의시설까지 갖춰지게 된 것이다. 즉, 현재의 삼산동은 구획정리 사업을 통해 '조성된 집합소' 신도심이라 할 수 있다.

 삼산동은 1992년 2차 구획정리가 완료된 시점 그리고 지금까지 계속해서 변화를 겪고 있다. 구획정리의 진행정도에 따라 새로운 공간이 형성되고 인구가 유입됐다. 아파트, 관공서, 대형마트, 백화점, 주상복합시설, 학교, 과거부터 그대로 존재하는 허물어져가는 집 등이 별 연관성 없이 각각의 사연과 개개의 이유로 한데 버무려져 있다. 하이브리드(Hybrid)한 공간인 것이다.

 이러한 공간에서 생활하는 사람들 역시 하이브리드하다. 1960년대 화학단지가 조성되면서 들어 온 사람들, 신도심의 깨끗한 아파트로 이사 온 사람들, 신도심에 큰 마음먹고 음식점을 차린 사람들, 소득이 높고 교통이 좋은 곳에 점포를 낸 대기업들, 이곳에서 배출되는 고물을 이용해 부를 축적하는 사람들, 이 모든 사람들이 저마다의 목표와 기대 그리고 꿈을 갖고 생활하고 있다.
 생존을 위해 경쟁하는 역동적인 도시공간, 구획정리 사업으로 인해 '조성된 신도심', 그리고 기록으로 남아있는 '농촌, 염전 삼산동'의 역사, 이렇듯 2011년의 울산 삼산동은 하이브리드하다.
최재필기자 uscjp@ulsanpres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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