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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든지 예외없이 맞는 죽음
공평한 가치 만큼 두려움도 커
또다른 출발로 맘 편히 맞아야

사람들은 공평하다거나 평등하다고 말할 때 보편적인 것을 생각한다.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평등한 권리', '부자나 가난한 사람이나 똑같이 누려야할 혜택'처럼. 때로는 세상에 불만을 가진 사람들은 나보다 일을 많이 하지 않아도 부(富)를 누리는 사람들에 대한 불만으로 불평등을 말하기도 한다. 평등(平等)은 권리·의무·자격 등이 차별없이 고르고 한결같음을 말하고, 공평(公平)은 어느 한쪽으로 치우침이 없이 고름을 말한다. 
 
   공동으로 어떤 일을 수행해 이익을 냈을 때에는 공평하게 나누는 것이 맞다. 나누되 기여한 정도를 가려서 차등을 두고 나누어야 한다. 단지 참여했다는 이유만으로 똑같이 요구하는 것은 공평하기 이전에 형평에 맞지 않는다. 차별 없는 평등이야말로 불평등(不平等)이고 악평등(惡平等)이다.

 경전에 보면, 수입이 생겼을 때 4등분해 쓰라고 했다. 첫 번째 1/4은 자신과 가족 부양을 위해 쓰고, 다음 1/4은 남에게 베풀고, 다음 1/4은 재투자하고, 마지막 1/4은 빈곤(貧困)할 때를 대비해 저축하라고 했다. 이렇게 하면 개인이나 기업이나 실패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분수를 헤아려야 할 때 평등하지 못하다고 하거나 공평하지 못하다고 하면 우(愚)를 범할 수 있다.

   적당한 비유가 될지 모르겠으나 술을 못 먹는 사람과 많이 먹는 사람이 평등하려면 같은 양의 술을 마셔야 하듯, 일도 없이 빈둥거리며 재물이 많을 때에는 과거에 지어놓은 것이 있어 뒤에 배당(?)을 받는 것이거나, 남 모르게 재물을 모았거나, 그럴만한 이유가 있기 마련이다. 겉으로 보이는 것만으로 공평하지 못하다고 불만을 말할 필요는 없다.

 보통은 고급 차를 타거나, 명품으로 치장한 사람을 비난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바른 견해라 할 수 없다. 부자들이 소비를 해야 산업사회 자본주의 경제가 돌아갈 것이 아닌가? 위화감을 주는 문제는 따로 생각해 보아야겠지만, 스스로 분수에 맞는 살림살이가 있기 마련이고 그것을 비난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분수를 모르고 능력을 벗어난 사치를 하는 사람이라면 그 또한 사치의 대가를 치룰 것이므로 비난할 것이 못된다.

    그렇다고 얘기가 끝난 것은 아니다. 탐욕스럽고 사악하고 게으르며 게다가 부정한 방법으로 남에게 손해를 보이면서 재물을 모은 것이라면 그에 걸맞는 대가를 반드시 치룰 것이기 때문이다. 아니면 지옥은 폐업신고를 해야 할지도 모른다.

 다음은 죽음에 대한 생각이다. 어찌 보면 죽음이야말로 토를 달 것도 없이 누구에게나 예외없이 공평하게 찾아온다. 아울러 죽음은 보통 사람들에게 두려움으로 다가온다. 그것이 막연한 두려움일지라도 괴로운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면 죽음의 공포를 없애는 방법은 무엇인가? 죽음이 무엇인지를 알면 그 답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이 세상에 생겨난 모든 것들은 멸(滅)한다. 이것이 진리다.

   그런데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큰 사람일수록 생(生)에 대한 집착이 강하다. 집착이 너무 강해서 놓아 버릴 수가 없고, 미련이 너무 많아서 돌아갈 수가 없는 것이다. 끝내는 길을 떠나지 않을 수 없음을 알게 되지만, 그 때는 이미 고통을 겪을 대로 겪고 난 뒤라서, 진리를 깨달은 것이 아니라 포기한 것이라서, 여전히 괴로울 뿐이다.

 세상은 무상(無常)한 것이어서 항상 변하고 있고, 생겨났기 때문에 죽어 돌아가는 것이고, '나'라고 할 것도 없이 의지하던 육신이 쇠하여 기능을 다하면, 그동안 입던 낡은 옷 벗어 버리듯이 그렇게 벗어놓고 가는 것이 죽음이다. 그래서 죽는다는 것은 이 생(生)의 끝이라기보다는 다음 생(生)의 시작의 의미가 더욱 크다고 하겠다.

   때문에 이 생(生)의 실패를 되풀이 하지 않기 위해서는 철저하게 준비하지 않으면 안 된다. 가능하다면 마음의 빚까지도 청산(淸算)하고 가야 하는 이유다. 그렇게 해서 준비된 생(生)을 맞는다면 죽음은 두렵고 무서운 것이 아니라 행복한 것이 될 수 있다. 그리해 가족과 친구의 배웅을 받으며 홀가분한 마음으로 길을 떠나는 것도 또 다른 설레임이자 희망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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