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최근 데크 등으로 정비한 정자항 북 방파제 전경.

유난히도 추웠던 지난 겨울 탓일까. 봄의 첫 달이 둘째 달로 넘어가는데도 봄꽃이 화려하지 않다. 이맘때쯤 도심 거리를 수놓던 벚꽃도 아직 망울을 터뜨리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봄은 봄, 향긋한 봄 냄새가 후각을 자극하고, 입맛을 돋운다. 뿌연 하늘 밑 도심을 벗어나 무룡터널을 넘는다. 무룡터널을 지나면 짙푸른 바다가 땅 끝 보다 높다. 내리막길을 달리다 보면 흡사 바다 속으로 곤두박질치는 느낌이다. 바다는 정자항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땅 끝보다 낮아진다. 3월의 끝, 따뜻한 봄바람이 불고 향긋한 참가지미 냄새가 가득한 정자항은 진짜 봄이다.
 
 
# 제철 만난 참가지미
   
▲ 입맛을 유혹하는 참가지미는 봄 정자항의 상징이다.


비릿한 생선 내음을 따라 곧장 활어판매장으로 들었다. 평일인데도 사람들이 적지 않다. 가지미가 나왔나? 여기저기 수조의 고기들을 살폈다. 가자미가 적다.
 고기를 건지는 그물망을 들고 나온 상인은 "바닷물이 차 요즘 가지미가 많이 잡히지 않는다"고 했다. 섭씨 16~18도 정도가 적정한데, 10도 정도의 냉수대가 너무 오래 울산 앞바다에 머물러 있다는 것이다.
 자연산 어종인 참가자미는 깊은 바다에서 자라 양식이 되지 않는다. 정자항에서 참가자미를 잡는 배는 줄잡아 40여 척. 대부분 20t 이하의 소형 어선들이다. 한 번 조업을 나가면 300~400㎏ 이상 거뜬히 잡았다고 하지만, 최근 울산 앞바다에 냉수대가 형성되면서 잡히는 양이 1/3 가량으로 크게 줄었다고 한다.
 잡히는 양이 줄었으니 횟값이 비싸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1kg에 2만5,000원이란다. 지난 주말에 판 가격이다. 가자미는 성질이 급해 잡은 지 2,3일만 지나도 선도가 급격히 떨어진다. 아침에 받은 물건이라는 주인의 말을 믿고 회를 주문한 후, 횟집에서 일러 준 초장집으로 향했다.
 활어판매장 뒤로 빼곡이 들어선 초장집들은 회를 제외한 야채 등 기본적인 찬거리를 내 놓은 후 1명당 4천원을 받는다. 5천원하는 매운탕을 요구하면 한뚝배기 푸짐하게 나온다.
 가자미회는 참기름을 살짝 두른 된장에 찍어먹어야 제맛을 느낄 수 있다. 지금은 참가자미의 산란하기 전 시기로, 기름기가 많아 차지고 고소한 맛이 일품이다. 회 접시가 순식간에 비워졌다.
 정자항 활어판매장에는 참가자미 뿐 아니라 도다리 광어 우럭 해삼 멍게 등 싱싱한 해산물이 늘 넘쳐났다. 이 때문에 평일에도 포구 따라 마련된 널찍한 주차장에는 들고나는 차량들로 북적인다.
 한 상인은 "정자항은 동해안 포구 중 가장 많은 활어가 유통되는 곳"이라고 자랑했다.
 정자항에서 맛볼 수 있는 또 다른 진미는 정자 대게와 돌미역이다. 최근에 유명해진 정자대게는 크지는 않지만 껍질이 얇고 대게의 향이 살아 있어 봄철 입맛을 돋우는데 그만이다. 활어판매장 뿐만 아니라 포구에 쭉 늘어선 횟집에서도 대게가 판매된다.
 돌미역은 정자항 앞바다에서 채취한다. 본격적인 채취는 음력 3월부터 시작되지만 벌써 해녀들이 부지런히 바닷속을 오가며 돌미역을 따고 있다. 미역을 많이 생산하는 곳은 정자항 북쪽에 자리한 산하동으로 곳곳에서 미역을 채취해 말리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 곳의 미역이 맛있는 이유는 물살 때문이다. 물살이 빨라 미역이 많이 흔들리며 자라기 때문에 부드럽고 맛이 좋다고 한다.
 
# 방파제 끝 고래등대

참가자미 회로 입 호사를 누린 후, 뒷짐을 지고 정자항 주변을 산책해 보았다. 위판장 앞에는 꼬들꼬들 말린 참가자미가 널려있다. 1만원어치를 요구하자 깨끗하게 말린 가자미 10마리 넘게 건낸다.
 방파제 쪽으로 길을 잡았다. 방파제 끝에는 지난해 말 새로 고친 '고래등대'가 보인다. 붉은 색 고래? 고개가 갸우뚱 거렸지만, 배들의 안전을 생각한다면 색깔이 대수랴. 건너편 방파제에도 귀신고래 형상을 한 고래등대가 보인다. 고래는 이미 오래 전부터 울산의 상징이 되었다. 정자항 남북방파제 등대는 정자항과 인근 주전, 강동 해안 자갈밭 등 천혜의 자연환경과 잘 어울린다. 두 고래등대 사이로 무시로 드나드는 고깃배가 정겹다.

   
▲ 정자항 남 방파제 끝에 설치된 귀신고래 등대. 맞은 편에 붉은 색 등대와 짝을 이루며 이색 풍경을 연출하고 있다.
#바다에 핀 바위꽃

정자항을 중심으로 볼거리가 의외로 많다. 우선 아이들과 함께 한다면 시 기념물 제42호인 강동 화암 주상절리를 추천한다. 해안길을 따라 북쪽으로 올라가다 몽돌해변이 끝나는 지점에서 마을로 들어가면 만날 수 있다.  강동 화암 주상절리는 제주도의 그것처럼 대규모로 형성되어 있지는 않지만 몽돌해안과 어우러져 색다른 아름다움을 뽐낸다. 맑은 바다를 향해 꽃처럼 피어난 바위 화암(花巖)풍경을 만끽할 수 있는 장소이다.
 최근 북구청이 개발한 '강동사랑길'도 걸을 만 하다. 강동사랑길은 모두 7개 구간이다. 각 구간 모두 해안가 마을이 있는 포구를 거쳐 산길을 걷는 형태다. 아직 정비되지 않은 해안길도 있지만 해안을 걸으면서 바다 고동을 잡을 수 도 있고, 오솔길을 걸으면서 쑥이나 냉이를 캐는 재미에 빠질 수도 있다. 무엇보다 산에서 바다를 보는 맛도 좋다.
 이밖에도 남쪽으로 차를 몰면 봉대산 정상의 주전봉수대(울산광역시기념물 제3호), 울산 앞바다를 오가는 배들의 오랜 길잡이인 울기등대와 대왕암 등도 볼 수 있다. 봄철, 나른한 햇살을 즐기며 해안을 따라 울산의 아름다움과 맛을 즐기기에 안성 맞춤이다.
  글=강정원기자 mikang@ 사진=유은경기자 usyek@ulsanpress.net

저작권자 © 울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