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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달령재 오솔길과 무룡산 임도가 만나는 지점의 소나무 군락지. 송정저수지 끝부분에서 시작되는 이 길은 온전히 사람의 발길 따라 자연스럽게만들어진 오솔길이다.

오전 10시30분, 출발지는 송정저수지 둑 밑 주차장으로 잡았다. 국도 7호선을 따라 울산공항을 조금 지난 후 호계로 진입하는 원지삼거리를 앞두고 송정동으로 우회전해야 한다. 철로를 따라 다시 화봉 방향으로 가는 길을 잡으면 박상진 의사의 생가로 가는 길이다.
 송정못으로 가는 길 주변 마을은 지금 텅 비었다. 개발 바람에 너른 들에서 삶을 이어가던 주민들이 하나 둘 떠나고 빈집만 남았다. 
 

#큰 소나무 많고 좋은 정자
송정마을은 큰 소나무들이 많고, 좋은 정자가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하지만 도심에서부터 시나브로 진행된 개발은 소나무 숲도, 정자도 옛 기억 속으로 밀어냈다. 아마도 조만간 송정마을 이 너른 들에서의 농사도 끝날 것이다.
 송정저수지 둑 밑 주차장에서 산림감시원이 내민 장부에 이름을 적고 가파른 둑길을 올랐다. 몇 해 전부터 하던 둑 보강공사가 끝이 난 모양이다. 둑 북쪽 가장자리에 물이 넘칠 수 있는 시설도 새로 생겼다. 아직 논물을 댈 시기가 멀었는지 송정저수지의 물이 가득하다. 상류에 오염원이 없는 저수지 물빛은 맑다. 그 맑은 물 위로 산 그림자가 또렷하다. 저수지 둑 탓에 조금만 걸어도 마을은 보이지 않는다.
 송정저수지 인근의 옛 이름은 날개뱅이다. 울산지명사를 보면 무룡산은 서북쪽으로 함박등(연암동), 동화산(화봉동), 익봉(송정동)이라는 봉우리를 거느리고 있다. 송정동의 익봉(翼峰)은 무룡산의 한 날개라하여 날개봉이라 불렀고, 날개봉은 날개뱅이로 불렀다고 한다.
 날개뱅이는 달령재를 통해 정자쪽으로 넘어가는 통로였다. 또 양남이나 양북으로 갈 때도 날개뱅이에서 도덕(둑)골을 넘었다. 이 때문에 날개뱅이가 시작되는 원지마을에는 관영숙박지인 원(院)이 있었다고 한다.
 

 

   
▲ 참나무가 군락을 이룬 달령재 초입.

 

#저수지 끝나는 곳에 진한 약수터저수지 남쪽 둑길이 끝나는 지점에는 진산의 물맛을 느낄 수 있는 송정약수터가 있다. 최근 데크를 설치하는 등 정비를 해 놓아 길을 오가는 이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약수터를 지나면 저수지의 끝이다. 습지가 발달한 때문인지 물 버들 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다.
 조금만 더 가면 달령못 공사현장이다. 둑은 거의 완성된 듯 보였지만 아직 담수를 하지 않았다. 수자원공사가 수해예방 차원에서 저수지를 만들고 있지만, 그 효용성에 대해선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
 화봉 송정 호계지역의 개발이 가속화되고, 이들 지역으로 상수도가 공급되면서 용수댐의 역할이 줄었는데도 굳이 규모가 크지도 않는 저수지를 새로 조성해야 하는지 고개가 갸웃거렸다. 저수지 때문에 서당골 골짜기가 파헤쳐져 볼썽사납다.

 


 원래 달령못 입구에서 길이 갈렸다. 동남쪽으로 서당골, 용달골을 거쳐 무룡산, 매봉재 쪽으로 갈수 있고, 동쪽으로 곧장 오르면 강동으로 넘어갈 수 있는 달령재다. 하지만 달령못 공사로 인해 매봉재로 가는 오솔길을 찾기 쉽지 않다.
 달령재로 오르는 오솔길은 가파르다. 하지만 능선을 따라 지그재그로 길이 나 있어 오르는데 그나마 수월하다. 오솔길 주위로 산벚과 어린 찔레꽃, 이름 모를 봄꽃이 한창이다.
#내륙과 갯마을 연결 가장 빠른 길
날개뱅이에서 달골로 넘어가는 이 길은 옛날 내륙과 갯마을을 이어주는 소통의 길이다. 달령재는 한때 강동과 울산을 잇는 가장 빠른 길이었다. 연암동과 정자 사이 지금의 국도 31호선이 들어설 때 까지는 그랬다. 교통수단이 빈약했던 시절 강동에서 내륙으로, 내륙에서 강동으로 한 걸음에 다닐 수 있는 길. 나랏님께 진상되던 정자 돌미역도, 아낙네의 친정나들이도 모두 이 길로 통했으리라. 그래서 이 길과 관련된 이야기도 많다.


 달령재 북쪽 동대산 쪽 골짜기는 도둑골(도덕골이라고도 했음)이라고 불린다. 강동 사람들이 장에서 물건을 팔고 돌아오는 길에 산적들을 많이 만난다고 해서 이런 명칭이 붙었다고 한다. 울산장에 소를 팔고 오는 날이면 도둑들이 더욱 극성이었다고 한다.
 본격 산길로 접어들면 저수지에 비치던 햇살은 참나무 군락에 이내 묻히고 눅진한 숲 향기가 코를 자극한다. 초입부터 계속 이어지던 참나무 군락지는 어느새 소나무로 바뀐다. 소나무 군락지에 이르니 아직 찬 골바람이 땀을 씻어준다.
 30분 쯤 쉬지 않고 오르다 보면 임도를 만나고, 달곡마을까지는 이 임도를 따라가면 된다. 하지만 임도는 옛 정취를 사라지게 했다. 때문에 옛 달령재 길을 정확히 찾기 힘들다.
 

 

   
▲ 임도(체육시설)에서 다시 오솔길을 따라 오른 정상에서 본 강동. 왼쪽이 정자항이다.

 

#임도서 남쪽방향이 무룡산 정상임도에서 남쪽방향으로 길을 잡으면 무룡산이다. 30여분만 걸으면 백두대간이 마지막으로 솟구쳤다는 무룡산 정상에 다다를 수 있다.
 강동까지 가지 않으려면 달령재 오솔길과 임도가 만나는 지점에서 동대산 쪽으로 약 50미터 지점에 있는 체육시설에서 다시 산마루로 난 오솔길을 오르면 5분도 채 되지 않아 정상에 설 수 있다. 봉분이 조성된 정상에 서면 울창한 나무들 사이로 정자항이 눈앞에 펼쳐진다. 달령재를 통해 갈 수 있는  강동 달골도 한 걸음에 달려갈 수 있을 것처럼 지척이다.
 달령재 강동방향 하산 길은 후일로 기약하고 다시 송정저수지로 내려왔다. 송정저수지에 다시 되돌아오니 12시30분이다. 쉬엄쉬엄 2시간이 걸린 셈이다. 달령재를 통해 장정들이 한 시간 안에 강동까지 갈 수 있었다는 이 지역 주민들의 말이 허언이 아니었다.  글·사진=강정원기자 mikang@ulsanpres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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