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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형외과, △△피부과, □□치과, ◇◇한의원….
울산 남구 삼산동에는 '삼산로'를 사이에 두고 위치한 롯데백화점 울산점과 현대백화점 울산점 외에 눈에 띄는 것이 있다. 바로 삼산로를 따라 즐비하게 늘어선 빌딩숲에 층층마다 내걸린 병원 간판이다. 서울의 강남역 못지 않게 울산의 삼산동은 한 건물에 병원이 빽빽히 들어선 클리닉, 메디컬 건물 천지다. 이들 병원은 주로 성형외과나 피부과, 치과, 안과, 한의원 등 비 건강보험 진료과목이 대다수로 100여곳이 밀집해 있다. 삼산동 병원거리를 통해  울산의 의료 현실을 엿볼 수 있기도 하다.

#삼산은 포화상태…달동으로 확장 추세

 

   
▲ 삼산로를 사이에 두고 빼곡히 들어선 빌딩숲에서 피부과, 성형외과, 한의원, 치과 등 비보험 진료과목 병원이 층층이 들어서 있다. 이창균기자 photo@ulsanpress.net

삼산동 병원거리의 형성은 삼산동 상권 형성과 맥을 같이 한다. 삼산지구와 함께 도시계획에 의해 만들어진 삼산로 일대는 1998년 현대백화점이 주리원 백화점을 인수하고, 2002년 터미널 사거리에 롯데백화점, 롯데시네마, 롯데호텔이 연계된 복합쇼핑문화센터가 들어서면서 빠르게 성장했다. 이 상권은 구 도심이자 패션상권인 중구 성남동을 밀어내고 울산 대표상권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병원거리가 위치한 삼산로에는 고층빌딩과 주상복합이 밀집하고 달동 현대아파트를 비롯한 대단위 배후 주거세대가 둘러싸고 있어 삼산로는 서울 강남 테헤란로를 연상케 한다. 삼산동은 병원과 음식점, 숙박, 유흥업소, 금융기관 등이 높은 업종분포 비율을 차지하고 있다. 삼산로 대로변의 경우 서울에 버금가는 땅값으로 높은 분양가가 형성돼 있기도 하다.

 


 이는 건물주들이 현금 회수율이 좋은 병원을 선호했기 때문이다. 성형외과나 피부과, 한의원 등 수익성이 높은 병원이 밀집하면서 병원거리의 땅값과 임대료 역시 급등했다.
 삼산 병원거리의 포문을 연 것은 장앤정클리닉, 탑텐클리닉, 성모안과병원 등이다. 클리닉, 메디컬이란 이름을 내건 고층건물이 들어선 것은 그 당시 서울에서도 고층빌딩에 각종 병원이 들어선 클리닉이 붐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지역 병원업계 관계자는 서울의 강남, 서초 다음으로 울산 삼산동이 클리닉, 메디컬 건물이 많은 것으로 꼽힐 정도라고 말한다.


 롯데백화점이 들어서면서 이들 건물도 들어섰고 병원거리가 서서히 형성되기 시작했다. 중구 성남동에 있던 병원도 삼산동으로 이전해왔고, 무거동과 타 지역에서도 하나둘 속속 이전해오기 시작했다. 현대백화점 뒤편에 위치하던 병원도 삼산로 대로변으로 이전했다.
 이 거리는 백화점 고객으로 인해 형성됐다 보니 피부과, 성형외과 등 직장인과 주부들을 겨냥한 진료과목이 강세다. 그렇다보니 이들 병원은 대다수 넓은 평수에 큰 규모로 입점을 한다는 특징을 갖게 됐고, 병원 외에는 피부, 미용, 몸매관리 업소가 들어서게 됐다.
 삼산 병원거리의 형성 원인으로는 2~3가지가 꼽힌다. 첫째, 백화점 셔틀버스를 타고 고객이 몰리면서 병원거리가 자연스럽게 형성됐다는 것이다.
 둘째, 삼산동이 지리적으로 울산 어디에서라도 오기가 가장 편리하고 좋은 위치라는 점. 셋째, 삼산 상권이 소비와 먹을거리가 밀집해 같이 누릴 수 있다는 점이 주효한 원인으로 꼽힌다. 이 모든 조건은 타 지역에 병원이 밀집한 곳의 환경과 비슷하다.
 2008~2009년까지만 해도 이러한 고층 빌딩을 세울 공간이 있었지만 이제는 그러한 공간조차 없다. 때문에 새로운 병원은 지금의 CK병원이 위치한 달동사거리에서 공업탑 쪽으로 뻗어나가고 있다.
 물론 병원의 과밀화로 형성된 높은 임차료 역시 달동 쪽으로 병원들이 이전·확장하게 된 이유이기도 하다.
 
#과밀화가 과당경쟁 불러

롯데호텔 옆 스타벅스 건물 엘리베이터를 타 보면 삼산 병원거리, 나아가 울산의 의료 현실을 여실히 느낄 수 있다. 생명을 다루는 진료과목은 적고 생명과 직결되지 않는 성형외과나 피부과 등의 진료과목은 넘쳐난다.
 또 엘리베이터 내에 덕지덕지 붙여진 광고물을 보면 산부인과도, 성형외과도, 피부과도, 한의원도 모두 피부관리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밀집돼 있는 병원들이 제각기 특화된 진료를 하는 것이 아니라 비슷비슷한 진료 즉, 평균적인 진료만 하고 있다는 것이다. 같은 성형외과라도 '눈을 잘 하는 곳', '코를 잘하는 곳'이라는 병원만의 '색'이 없다. 서울이나 대구의 성형외과들이 한 부분을 특화해 전국을 대상으로 광고나 마케팅을 하는 것과 비교하면 이러한 현상은 더욱 두드러진다.
 자신만의 색이 없다는 것은 곧 지역 내 수요층을 서울 등지에 유출시키는 원인이 되기도 했다. 울산 내 수요만 대상으로 하다보니 경쟁력은 떨어졌다.
 삼산동의 한 병원 관계자는 "'하나만 특화해서는 살아남기 힘들 것'이라는 불안감도 색깔 없는 진료를 하게 된 원인이기도 하다"고 전했다.


 삼산동 병원거리는 병원이 밀집하기 시작하면서 성장했지만, 서울, 부산 등의 의료시장이 급격하게 성장·팽창하며 다시 유출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자체 경쟁력을 갖지 못한 상태에서 울산-부산고속도로, KTX 2단계 개통 등은 타 지역으로의 유출을 가속화하게 했다.
 의료계의 특징상, 또 비보험 과목은 더더욱 시장점유율이나 환자의 유출 등에 대한 정확한 통계가 나오기 힘든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들리는 소식이나 정황 등을 살펴보면 적어도 삼산동에 밀집한 진료과목에 대한 역외 유출은 확실히 있었고, 현재도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 병원 관계자의 말이다.
 물론 지역 내에 동강병원 해성병원(현 울산대학교병원) 두 곳만 있어 의료 사각지대에 놓였던 그 시절과 비교하면 병원이 밀집하고 또 타 지역에서도 계속해 유입이 일어나는 것은 울산에 있어서 플러스 요인이라고도 할 수 있다.

 

 

   
▲ 빼곡히 들어서 있는 병원 모습.

 하지만 지역 내 병원 만의 특화된, 혹은 지역을 대표할만한 의료 브랜드가 없다는 것은 삼산동 병원거리가 단순히 병원이 밀집한 거리에 그치고 말게 될 것이라는 결과를 가져올 우려가 있다.
 삼산동에 위치한 병원의 실수요자는 거의 울산지역 주부들에 한정된다. 또 다른 수요층이기도 한 여자 대학생들은 주로 서울, 대구, 부산 등 타 지역에서 주로 생활을 하고 있다. 수요는 적은 데 밀집한 병원은 결국 공급과잉 사태를 낳았다.
 이러한 공급과잉에 대해 삼산동 병원거리의 병원들 중에는 장기적인 안목과 대책을 마련해 풀어가고자 하는 병원보다는 그때그때 이벤트로 풀어가는 방식을 취하는 병원이 많다고 한다. 근본적인 문제해결 대책이 되지 않는 것이다.

 


 떨어지는 다양성은 마케팅 활용에도 난제를 안겨줬고, 서울지역의 전국을 대상으로 한 거대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한 마케팅에 밀릴 수 밖에 없는 현실을 만들었다. 의료 관계자들은 의료의 질, 서비스보다 주로 광고공세에 밀리는 추세라며 서울지역 병원의 공격적 마케팅에 대한 대응방안 마련을 위해 지역 병원들의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다양한 광고나 마케팅 전략의 부재가 나쁜 것만은 아니다. 삼산동 병원의 의사들은 '의료는 의료'라는 가치관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타 지역이 '의료=의료+산업'의 개념을 갖고 있는 것과 비교하면 건전한 사고를 갖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이러한 성향 때문에 경영을 등한시 하는 경향이 있다고 병원 관계자는 설명했다.
 일례로 타 지역에서 프랜차이즈 형식으로 들어온 병원들이 호객행위 등의 공격적 마케팅을 펼치는 데 대해 병원 관계자들이 눈살을 찌푸리는 것을 들 수 있다.
 
#주차공간 확충·지역밀착형 거듭나야
삼산동 병원거리 뿐 아니라 울산지역 의료계는 인력난을 겪고 있다. 지역 내에서 의료인력 배출이 적기 때문이다. 대학 병원이 한 곳이고 간호대학도 두 곳 밖에 없는 것이 원인이다. 인력난은 지역 의료의 질적 향상을 저해하는 한 요소이기도 하다. 지역 의료계는 인력난 해소를 위해 지역 내에 대학병원 등이 조금 더 설치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삼산동 병원거리가 경쟁력을 갖추려면 병원의 특색을 다양화하고 지역 밀착형으로 나아가야 한다. 서울, 부산에서 하지 못하는 서비스 등을 제공해야 하는 것이다. 거대한 자금력과 공격적인 마케팅 등을 퍼붓는 서울 등의 병원과 경쟁하기 위해서이다.


 지자체의 관심도 필요하다. 서울과 부산에서는 의료에 산업을 접목해 또 하나의 이익창출 요소로 보고 의료특구를 만드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인근 부산의 경우 성형 관광을 하는 외국인 환자까지 유치해 활성화 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울산지역에서도 지자체들이 의료를 산업으로 인식하고 지원해 활성화 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부족한 주차공간에 대한 문제도 있다. 예전에는 빈 땅이 많아 수용이 가능했지만 건물이 들어서면 들어설수록 주차공간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삼산 병원거리 자체의 지역밀착형 등의 자구방안 마련, 지자체의 관심과 지원, 울산시민들의 관심과 새로운 인식이 접목된다면 오히려 타 지역에서 울산으로의 환자 유출이 일어날지도 모르는 일이다.  글=이보람기자 usybr@ 사진=이창균기자 pho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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