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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용지물이던 기차터널이 훌륭한 와인창고로 다시 태어나고, 버려진 기찻길이 관광객을 모으는 아이템이 됐다. 프로방스 기찻길을 따라 가면 사랑하는 누군가와 만날 것 같은 막연한 그리움이 새어 나온다.

울산에서 경상북도 최남단에 위치한 청도 가는 길은 드라이브 코스로 적격이다. 잘 닦여진 울밀선을 타고 밀양까지 가서, 고속도로로 청도까지 가는데 1시간이 좀 더 걸린다. 청도IC를 빠져나오면 '맑은 길이 있는 고장'이란 청도의 이름처럼, 때묻지 않은 청정지역의 전원 풍경이 고스란히 펼쳐진다. 그래서 한적하면서도 조금은 쓸쓸한 기운마저 감도는 곳이다. 그간 소싸움의 고장으로만 알려져 있던 청도에는 가족끼리, 연인끼리 가볼만한 테마 관광명소도 즐비하다. 그중 한 곳이 '와인'을 테마로 한 와인터널과 프로방스 마을, 용암웰빙스파 등이 있는 청도군 화양읍 일대다.

#경부선 터널 감와인 숙성고·카페 탈바꿈

청도에선 달콤쌉싸름한 황금 빛 와인의 향기가 외지인을 맞이한다.
 청도 와인터널은 1904년 대한제국 말기에 경부선 철도용으로 만든 것으로 1937년 이후 운행을 중단한 이후 방치됐던 것을 정비해 감 와인 숙성고와 카페로 탈바꿈시켜 지난 2006년 문을 열었다.
 와인터널을 향하는 고갯길에는 감나무 가로수가 가득했다. 감나무 사이에 납작한 지붕들이 보이고, 굴뚝에서 솟아오른 연기가 마을과 뒷산에 아련한 연무를 그려내고 있다.

 터널 입구에 서있는 안내판이 와인 터널의 역사를 간략하게 소개하고 있다.
 와인 터널은 원래 경부선이 지나가던 터널이었다. 1905년에 개통되었으나 입구까지의 경사가 워낙 급해 열차가 이 터널을 통해 고개를 넘어가려면 기관차 두 대의 동력이 필요했다고 전해진다. 1,015m의 이 터널은 1937년까지 사용되다가 1937년 근처의 남성현 터널이 개통되고 철도 노선이 변경되면서 철도 터널의 기능을 상실했고, 그 뒤로 자동차 도로가 되었다. 이곳이 '와인 터널'로 재공개 된 것은 2006년 3월의 일이었다.

 터널 내부의 온도는 15°C, 습도는 60~70%를 유지하고 있으며 와인 숙성에 있어서는 천혜의 조건을 갖고 있다는 조사 결과가 바탕으로 이곳을 와인, 특히 청도 특산물인 감을 주원료로 한 감와인의 명소로 만들기에 이른 것이다.
 이곳에서 제작된 감 와인은 이명박 대통령이 제17대 대통령 취임 경축연회에 건배주로 선택한 와인으로 유명하다. 감 특유의 떫은 맛에 와인의 달콤하면서도 신맛이 어울려 오묘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다. 특히 10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터널에서 마시는 감 와인의 경험은 단순한 미각 여행 이상의 뜻깊은 경험을 선물한다.

▲ 붉은색 벽돌을 이어붙인 아치형 천장과 와인 병들이 고풍스러운 풍경을 연출하고 있는 와인터널 내부.


#시간이 만들어준 빈티지의 매력

문을 열고 들어서자 벽돌로 쌓은 터널의 벽과 천장의 인상적인 모습이 가슴에 확 다가온다. 또한 그 옛날 이곳을 달리던 증기기관차의 힘찬 모습이 흑백영화의 포스터처럼 상상되기도 했다. 실제로 터널의 천장에는 당시 기관차에서 뿜어져 나온 매연이 그대로 남아있었고 일부 구간에서는 물이 떨어지기도 했다.
 와인 터널은 한 마디로 예뻤다. 시간이 만들어준 빈티지를 기반으로, 적절한 조명, 터널 안 이곳 저곳에 있는 와인바와 시음장, 와인 생산의 과정을 보여주는 체험 설치물, 터널 천장 가까운 곳까지 올라가 있는 오크통, 노란 조명이 보여주는 행인들의 긴 그림자 등은 이곳이 아니면 도저히 목격할 수 없는 낯선 풍경인 것이다.

 와인터널의 절정은 터널 끝에 있는 저장고 근처에서 맛볼 수 있다. 저장고는 철문으로 막혀있고, 그 안으로 수많은 오크통 속에서 와인이 숨을 쉬고 있는데, 푸른 조명과, 철문 사이로 보이는 터널의 풍경은 깊은 여운으로 남을 만 한 모습이었다. 저장고 앞에는 와인을 따르는 형상의 등 조형물이 있어서 이곳의 추억을 간직하려는 사람들의 포토존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었다.

 와인 터널에서는 기념일에 맞춰 와인을 받을 수 있는 '키핑 서비스', 시음, 나만의 와인 만들기, 감따기, 나만의 라벨 만들기, 와인을 곁들인 식사를 즐길 수 있는 단체(15인 이상) 체험 프로그램 등이 준비되어 있다.
 와인터널 입구에서는 자신의 입맛에 맞게 감 와인을 선택해 시음할 수 있으며, 스페셜 와인 두 잔에 각종 치즈, 비스킷, 감 말랭이를 세트로 구성한 가격이 1만 3,000원으로 일반인들이 즐기기에 부담도 없다.

▲ 프로방스의 멈춰선 노란 기차가 이국적인 분위기를 풍기고 있다.


#이국적 프로방스와 사계절 자연온천

와인터널에서 밀양IC 편으로 조금만 가다 용암웰빙스파 뒷편으로 돌아서면 프로방스가 나온다. 청도 프로방스는 딱히 명승지이거나 대단한 예술작품이 있는 곳은 아니다. 그냥 레스토랑 3개나 나란히 위치한 곳이다.
 하지만 이곳은 밥 먹으로 가는 사람보다 사진 찍으러 가는 사람이 더 많을 정도로 전국에 소문이 자자한 아름다운 곳이다. 옛날 기차역을 리모델링해 레스토랑을 만들어서 레스토랑 뒷편에는 기찻길이 그대로 있고, 멈춰진 노란 기차가 이국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곳이다. 기찻길을 따라 가면 뭔가가 나올 것만 같은, 정말 사랑하는 연인과 함께라면 더욱 좋은 곳이다.

 바로 옆 용암웰빙스파는 사계절 온천여행지로 손꼽힌다. 이곳의 최고 자랑거리는 지하 1,008m에서 뽑아 올린 섭씨 43℃ 직수공급 온천수다. 직수 온천수는 말 그대로 데우지도 식히지도 않은 자연 그대로의 온천수를 공급하는 시스템으로 온천 개장 이래 변함없는 '모토'가 되고 있다.
 아쿠아테라피를 비롯해 각종 이벤트탕과 찜질시설 이용은 물론 테마별로 선택이 가능한 웰빙객실이 준비되어 있다. 실외에 설치된 노천 이벤트탕에서 상쾌한 공기를 마시며 소싸움장 전경, 저녁 무렵 붉은 노을을 감상해 보는 재미가 남다르게 다가온다. 글= 김은혜기자 ryusori3@  사진= 유은경기자 usye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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