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구석구석] 9. 구시가지 상징물 시계탑 재건으로 울산의 중심상권 부활 초읽기
[울산구석구석] 9. 구시가지 상징물 시계탑 재건으로 울산의 중심상권 부활 초읽기
  • 최창환
  • 승인 2011.06.30 21:38
  • 기사입력 2011.06.30 2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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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구 성남동
   
▲ 20여년만에 구시가지의 상징물로 새롭게 태어난 '시계탑'. 울산 토박이들의 향수 어린 조형물이었던 시계탑이 1998년 12월 성남동 경남은행 앞에 새로운 모습으로 우뚝 솟았다. (왼쪽부터 시계탑 변천사) 1.시계탑 네거리의 1957년도 풍경. 2.울산의 구시가지 중심부에 설치된 시계탑은 시민들의 만남의 장소이자 시가지 이정표로서 많은 사랑을 받았으나, 1977년 기능상실과 도시미관 훼손 등의 이유로 철거됐다. (1967년) 3. 1998년 반구대 암각화가 그려진 새로운 시계탑이 복원된 시계탑사거리 전경.

 

성남동은 법정동으로 성남동과 교동으로 갈라진다. 1973년 2개 동을 성남동에서 행정 관장하다가 1985년 교동을 중구 성남동으로 편입시킨 뒤, 1997년 울산광역시 중구 성남동으로 행정 통합시켰다.
 성남동은 구시가지 중심부에 위치하면서 전형적인 상가로, 교동은 전통적인 주택지로 자리잡았다. 경제활동이 중심을 이루는 지역으로 유동인구에 비해 상주인구가 적은 편이다.
 성남동은 울산이 공업도시로 발전하는 과정과 때를 같이 해 성장한 상업지역이다. 옥교동과 함께 구시가지의 큰 축을 이루워 1980년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 불야성을 이루던 마을이었다.

50대 토박이에게는 추억의 장소
10~20대 젊은이에게는 패션 거리

90년대 후반 침체기 겪었지만
여전히 울산서 가장 생기 넘치는
젊음과 낭만의 도시 틀림없어

# 울산읍성 남쪽마을
성남동은 울산읍성의 남쪽에 있는 마을이라고 해서 붙여진 지명이다. 울산읍성은 임진왜란 때 왜병들이 헐어 왜성을 쌓은 뒤로 복원되지 못했다.
 성남동은 영조 41년(1765)에 주부리와 남문내리로 나누어져 있었다. 정조·순조 때에는 외중부리·내중부리·남문내리로, 고종 31년(1894)에는 외부동·내부동·성남동으로 각각 갈라져 있었다. 1911년에는 상서동·하서동·교동으로 불려졌다.
 그 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외부동·내부동·성남동 등3개 동과 강정·우암 등의 각일부가 통합돼 성남동이 됐다.

 성남동의 법정동의 하나인 교동은 숙종 34년(1708)에 서문내리·서문외리·신교리·북문외리로 갈라져 있었다. 정조 때는 상서문내리·서문외리·하문내리·북문외리, 순조 10년(1810)에는 상서문내리·하서문내리·신교리, 고종31년(1894)에는 하서동·교동, 1911년에는 상서동·하서동·교동으로 각각 갈라져 있었다.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모두 교동으로 통합하고, 상서동의 일부는 북정동으로 편입시켰다.
 교동이란 지명은 향교가 있는 마을이란 뜻에서 유래됐다. 임진왜란 때 불타버린 향교를 현재의 위치로 옮겨 지으면서 신교리로 부르고, 하부면쪽은 구교동리라고 불렀다.
 
# 울산최대 위락시설 밀집

성남동은 울산 최대의 위락시설 밀집지역이었다. 백화점을 비롯해 금융시설, 시장, 극장가 들어서 있고, 각종 위락시설이 망라돼 있는 성남동은 울산에서 유동인구가 가장 많은 지역이기도 했다.
 특히 1990년 초반에는 울산전화국 앞의 300m 구간이 보행자 전용 구간으로 지정돼 도시 한가운데 새로운 낭만지대로 자리를 굳혀 젊은이들의 해방구가 됐다.

 성남동에는 나지막하고 빽빽한 상가들이 번화하게 들어서 있다. 또 구석구석 좁게 나있는 골목에는 정감 어린 아늑함이 배어 있어 10대와 20대의 유동인구를 가장 많이 흡수하고 있다.
 성남동이 현재와 같은 상권으로서의 기능을 예고한 때는 193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일제 때부터 기차역과 버스터미널이 설치돼 유동인구가 많은 곳이 성남동이었다.

 일제 초기에 동해남부선 협궤 철도가 개통되면서 지금의 울산전화국 맞은 편에 울산역사가 설치됐다. 이 역사는 홍수 때마다 침수피해가 심해 1930년 광궤 철도로 바뀌면서 학산동으로 이전됐다.
 또 역사가 이전된 후에는 시외버스터미널이 자리를 잡아 외지인들이 울산에 첫발을 내 딛는 관문 역할을 했다. 당시 시외버스터미널은 패션거리의 동아약국이 위치해있는 곳에 설치 돼 있었다.

 울산의 교통중심지로 자리잡은 성남동은 타지역과 정보교류가 신속히 이워지고 첨단위락시설의 상륙지가 됐다. 이후, 성남동이 팽창되자 시외버스터미널도 자연스럽게 우정동으로 이전됐다.
 지금도 성남동은 울산의 신세대와 멋쟁이들이 다 모여드는 곳이지만, 1970년대 울산 멋쟁이들도 이곳을 거치지 않은 이가 없을 정도였다. 50,60대 토박이들이 아직도 추억의 장소로 떠올리고 있는 신천지, 가로수, 백조 다방 등은 1970년대 만남의 장소로 유명했던 곳이다.

 성남동이 위락시설 밀집지역으로 황금기를 누린 때는 1980년대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이다. 상권의 요지로 급부상하자 대형 백화점이 들어서고, 극장가가 형성됐다. 신종 유흥업소가 줄지어 들어선 것도 이시기다. 1984년 주리원백화점이 현대식 백화점으로 개점죄고, 천도·중앙·태화·시민극장 등 극장가가 형성되면서 성남동은 시설이나 규모면에서 울산 최대 상권의 요지로 자리를 굳혔다.

 그러나 1990년대 중반으로 접어들자 성남동 역시 구시가지가 안고 있는 문제들을 고스란히 떠안게 됐다. 협소한 간선도로와 주차시설의 부족 등은 신시가지의 상대적인 발전과는 달리 접근성을 떨어뜨리는 큰 요인이 됐다.

 성남동은 울산이 공업도시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구시가지의 또 하나의 중심축으로 등장하게 된 곳이다. 1990년대 중반부터 다소 침체기를 맞고 있지만, 성남동은 여전히 유동인구가 가장 많은 곳으로, 울산의 '신세대동'으로 도심에 자리잡고 있다.
 

 

   
 

 
# 향수어린 조형물 시계탑
20여년만에 구시가지의 상징물로 새롭게 태어난 '시계탑'. 울산 토박이들의 향수 어린 조형물이었던 시계탑이 1998년 12월 성남동 경남은행 앞에 새로운 모습으로 우뚝 솟았다. 침체된 구시가지의 상권을 회복하고, 도심의 상징으로 20여년만에 복원돼 선을 보인 시계탑은 높이 10m, 직경 25m의 왕관 모양으로 시가지 한가운데를 장식하고 있다. 왕관모양의 상부는 자체 무게만 40톤에 이르는 데, 시계탑 원형 구조물에는 도장 방식으로 반구대 암각화를 그려 넣어 울산의 역사성을 한층 부각시켰다.

 또 시계탑의 남북 방향으로는 대형 전광판 2새가 설치돼 천연색 동화상으로 뉴스를 비롯한 다양한 정보가 제공되고 있다. 동서 방향으로는 지름 1.5m의 대형 시계 2개를 부착시켜 예전의 시계탑 이미지를 되살려 놓았다.
 시계탑은 조형물 제작에만 3억 2000만원이 소요됐고, 일대 정비 사업비를 포함해 모두 14억 5000여 만원이 투입됐다.

 이 시계탑을 세우게 된 것은 1967년 울산청년회의소가 현재의 위치에 설치했다가 10여년만에 철거된 시계탑을 복원하자는 여론에 따른 것이다. 원래 시계탑은 아치형의 철제구조물 한가운데 시계가 걸려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시계가 귀중품으로 취급되던 1960년대에 시계탑은 시간을 알 수 있는 유용한 장소였다. 이시계탑은 1977년 기능 상실과 도시미관 훼손 등을 이유로 철거됐다.

 얼마 전 복원된 시계탑에는 구시가지의 옛 명성을 되찾기 위한 상징적인 의미가 담겨져 있다. 향수 어린 옛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것은 물론 시계탑을 중심으로 도심소공원을 조성해 인간미 넘치는 시가지를 꾸미자는 복안인 것이다.
 
# 젊은이 넘치는 '로데오'거리
성남동 '로데오' 거리는 울산에서 유일하게 차량이 통제되는 곳이다. 현대백화점 성남점 옆 태일약국에서부터 태화극장, 소방서, 울산전화국을 지나 문화탕 네거리에 이르기까지 300여m 구간이 바로 울산의 차 없는 거리, 성남동 로데오거리다. 이 거리는 울산에서 유동인구가 가장 많은 곳으로서 신세대들이 밀집하는 구간이기도 하다. 울산의 차 없는 거리는 1990년대 초에 지정돼 지금까지 시행되고 있다.

 1980년대 중반 구시가지 일원의 뉴코아 아울렛 성남점 앞 도로를 차 없는 거리로 지정하는 의견이 제시된 적도 있었지만 주변 상인들의 반발에 부딪쳐 무산됐다. 차가 다니지 않으면 매출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었다. 그 뒤 1990년대 초반 현재의 차 없는 거리가 시행돼 도심의 새로운 낭만지대로 자리를 굳혔다.

 보행자 전용 구역인 차 없는 거리에는 다양한 업종이 들어서 있다. 1990년대 중반에는 의류업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1995년에는 의류업소가 39개소로 전체의 60퍼센트 분포를 보였다. 성남동 로데오거리의 의류상품은 젊은층의 취향과 기호가 잘 반영돼 있어 울산 패션의 일번지 역할을 하고 있다. 이처럼 성남동 로데오거리는 울산에서 가장 젊은 거리, 젊음과 낭만이 넘치는 신세대들의 해방구로서 구시가지 한가운데에 위치해 있다.  글=최창환기자 cchoi@ 사진=울산신문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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