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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구 호계동 전경. 마을 동쪽에 호랑이 모양을 한 봉우리가 있고, 여기에서 흐르는 시내가 있는 마을이라서 '호계'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 수박향기 나는 수박샘
호계동 홈골 골짜기에서 동천에 이르는 1.7km의 하천인 호계천은 귀숫굴거랑이란 이름으로 불려졌다. 이 천을 경계로 북쪽은 수동마을, 남쪽은 수성마을이다.

 마을의 어르신들도 귀숫굴거랑이라는 말의 어원을 잘 모르고 있지만 수동마을의 이장을 지낸 한 주민에 따르면 여름밤이면 전 주민이 수박골샘에서 멱을 감고 호계천으로 모여 짚일과 소소한 얘기거리를 나누었다고 한다. 낮에는 들에서 수확한 곡식을 건조시키는 장소였다고도 한다.

 호계천의 북쪽 수동마을에 있는 수박샘은 물에서 수박 내가 난다고 해 이름붙혀졌다고 한다. 수박샘이 있는 수박골은 또 옛부터 수박을 많이 심어 이름이 생겼다고도 한다.

 하지만 북구문화원에 따르면 무룡산의 한 지맥인 무재산의 신령스럽고 광명한 산 아래에 있는 마을에서 유래된 이름일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가뭄이 오면 무재산에서 무(물)제를 지내온 곳이며, 무재산 아래에 자리 잡은 마을이라는 뜻에서 수(水)박골이란 이름을 얻었다고 보는 것이다.
 

 

   
▲ 호계시장.

# 동대산서 나물캐던 곳
북구 동북지역을 감싸고 있는 해발 443.9m의 동대산을 중심으로 동쪽은 해안을 끼고 있는 강동동이 있고, 서쪽은 북구의 사회경제 중심지인 농소동이 자리잡고 있다. 그 한 가운데에 호계가 있다.

 예전에는 이 산이 인근 주민들 삶의 터전이었다고 한다. 주민들은 동쪽에 있는 해안과 서쪽에 있는 평야를 중심으로 집을 지어 터를 잡았고, 산비탈을 개간해 농산물을 재배했다.
 이 산에는 씀바위, 비비추, 돌나무, 부지갱이 등 산나물이 많았고, 복수초, 삼지구엽초 등 아름다운 꽃을 피우는 관상용 식물도 많았다.
 이에 아낙들은 동대산에서 자란 나물을 뜯어 밥상에 올렸고, 일부는 장에 내다 팔기도 했다. 장정들은 이 산에서 나무를 해 집을 짓고 땔감으로 사용했다.

 옛날에는 이 동대산 때문에 동서 왕래가 어려웠으나 최근 들어 기배기재를 중심으로 새로운 산길이 생겨나면서 주민들의 소통이 늘어나고 있다. 특히 산 정상에 리조트가 생기면서 매곡동을 거쳐 강동으로 넘어가는 길이 확장돼 이 도로를 이용하는 사람이 증가한 것이다.
 산이 높으니 골도 깊어 이화천, 약수천, 매곡천 등이 이 산에서 발원해 서쪽으로 흐르고 있고, 천수답이 많은 신기마을의 경우 산비탈에 소류지를 많이 파 논밭에 물을 대기도 했다.
 
# 청동기부터 이어온 삶의 터전

 

   
▲ 호계동 홈골 골짜기에서 동천에 이르는 1.7km의 하천인 '호계천'. 호계천을 따라 나무데크 설치 및 그림벽화가 그려져있다.


1995년 경남대학교 박물관에서 발굴조사한 호계동 유적지는 청동기 시대 주거지다.
 이 유적은 서쪽으로 경사져 내려오는 구릉사면 가운데서 서남쪽 방향으로 돌출하는 구릉의 능선상에 해당된다. 구릉의 동남쪽 끝머리에서 집터 1기만 조사됐으나 대부분 파괴됐다.
 집터는 평면형태가 동-서로 난 직사각형으로 구릉의 경사면을 따라 북동-남서 방향으로 비스듬하게 축조돼 있다.
 
    집터는 생토를 파고 반지하식으로 축조된 것으로 판단되어지며 벽체의 가장자리를 따라가면서 그 안쪽에 폭 30~40cm, 깊이 15cm의 구가 정연하게 돌려져 있다. 구의 내부에서 기둥구명 등의 시설은 확인되지 않았고, 구가 노출되는 상태나 바닥과의 관계 등으로 보아 주거지 내부에서 배수로 역할을 했던 것으로 추측된다.
 

    시기를 정확히 파악할 수 있는 유물은 없지만 주거내 내부 출토 토기편 가운데만 구연 아래에 횡선문이 시문돼 있는 것으로 보아 청동기시대 전기후엽에 해당될 것으로 추측된다.
 출토유물은 경남대학교 박물관에서 보관하고 있으며, 발굴지역은 현재 구획정리돼 단독주택이 건립돼 있다.
 

 

   
▲ 경주와 울산 사이에 위치한 '호계역'은 옛 북구 지역 교통 중심지였다.


# 문학 작품에도 나오는 호계역
1922년 10월 본격적인 업무가 시작된 호계역은 1958년 신축한 후 2002년 증·개축하면서 현재의 모습을 갖췄다.

 북구 지역 교통 중심지였던 호계역은 문학작품에 두 번 등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북구문화원에 따르면 김원일의 소설 '미망'에서 주인공 고모가 식당을 했던 장소로 묘사돼 있다.
 

    또 최종두의 시 '호계역'이 있다. 대합실에 걸려 있는 '호계역'은 이렇게 쓰여져 있다.
 아장걸음으로 빠져나가던/호계역을 지나면서/아련한 기억으로 돌아보는/세월은 추억이 아니네/추억이 아니네 전설뿐이네//
 그토록 타보고 싶던/칙칙폭폭 차/기적 속 흰 연기 위로/나타나는 희미한 얼굴/아무래도 모을 떨게 하는/전설뿐이네//
 살아 있을까/봉선화 물들인 내 색시 살아 있을까/아직 내 아장걸음 남아 있는/호계리 호계역   
글=박송근기자 song@ulsanpress.net  사진=유은경기자 usye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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